작년에 최초로 산악 자전거를 타면서 처음 가 본곳이 우면산 임도였다. 3분의 2이상을 끌고 올라가서 정상에서 탈진하면서, 한가지 인생의 조그마한 목표가 생겼다. 이 임도를 한번도 내리지 않고 한 번에 올라와 보자. 누가 들으면 웃을지 모르는 일이었지만, 정말 나에게는 진지한 일이었고, 토요일마다 벙개를 열심히 하면서 결국, 4개월 만에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처음으로 한번도 쉬지 않고 우면산 정상에 올라갈 수 있었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져가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우면산의 정상에서 느꼈던 것은 예상했던 커다란 기쁨도 흥분도 아닌, 뭔가 '자 이제 이건 되었다'라는 편안한 안도감이었다. 언제나 압박감으로 다가오던, 우면산 임도를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마주볼 수 있게 된 기분, 뭐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당연히 거쳤어야할 통과의례를 이제 막 지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왼쪽 무릎 연골에 이상이 생기면서 물이 차기 시작한 것은 5년 전, 하루에 3시간 씩 무리하게 운동을 한 당연한 결과였다. 그 뒤 다 나았다 싶어서 다시 운동을 할때마다 도지기 시작하는 무릎의 통증은, 나에게 심리적인 브레이크를 주었고, 너무나 운동을 좋아하던 나에게 언제나 '어느 선'에선가는 멈추어야 하는 '할 수 없잖아, 몸이 이러니까' 라는 슬픈 자조감만을 항상 안겨주었다.
일어서서 페달을 밟을 수도 없다, 페달질에 무게가 걸려서도 안된다 조금만 다리에 힘이 가해지려고 하면 머리 속에서 비명이 울려퍼진다. '그만둬! 또 망가뜨릴거야?' 기운이 다 빠진다. 자리에 선다 일행들이 지나가면 웃으며 얘기한다.
"힘들어서요"
다들 웃으면서 화답해준다
"젊은 사람이 체력도 좋아보이는데"
미소를 지으며, 잠시 잠깐 자기 혐오에 빠진다, 난 뭘 그리 겁내는 걸까, 날 막는 것은 다리의 통증이 아니라, 한 순간에 다리가 망가졌던 예전 기억에 대한 공포가 아닐까.
그렇게 매번 우면산 임도를 올랐다. 한 발 한 발 다리에 체중이 전해지지 않게 하면서 그렇게 올라갔다. 한 번에 다 올라간 날, 다리에 통증은 없었다,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편하고 호흡도 편안했다, 다음 주에 바이크메이트에 가서 사장님에게 자랑을 하리라, 모두들 웃겠지만 나는 정말 방송국에 제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날 이후 난 더이상 우면산 임도에서 노력을 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힘들면 내려서 쉰다. 그리고 경치를 본다. 이제부터 우면산 임도는 나에게 노력해서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 천천히 올라가면서 경치를 구경하는 장소가 되었다. 마음을 비우고 편안한 마음으로 마주보게 되자, 나는 황량한 임도의 옆에서 계절의 변화를 바라 볼 수 있게 되었다.
몇 주 전 같이 산을 오르던 분이 말했다
" 요즘은 페달질을 되게 무겁게 하시네요?"
그 날 이후로 난 가끔 나도 모르게 페달에 체중을 가하고 속도를 내고 있었다, 내일 아침에 무릎에 통증이 오겠지, 뭐 좀 그럼 어때? 기분이 편안해진다.
임도에 대한 정복이 거의 완성이 되가던 시점부터 이미 제2의 목표는 정해져 있었다. 우면산 정상 헬기장 다운힐, 지금은 바이크메이트의 유선생님이 삽한자루로 길을 다져 놓으셔서 많이 좋아졌지만, 작년 장마 끝 쯤에 내가 처음 보았을 때에는, 사람이 차마 내려 갈 수 없는 장소로 보였고,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길로 내려오곤 했다.
다시금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뻔히 방법은 다 안다, 웨이트백을 하고, 앞브레이크를 너무 무리하게 잡지 말고 균형을 유지할 것, 모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그 시작 부분의 경사만 보면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머리 속에서는 수만가지 핑계가 떠오른다, '오늘은 아침부터 기분이 좀 꿀꿀했잖아?' '그러고보니 몇일전에 비가 왔었군 길이 많이 미끄러울 것 같아 다음 주도 있잖아?'
그렇게 또 2달 간이 흘렀다, 날씨 탓에 많이 탈 수도 없었다. 또 다시 정상에 섰다, 일행들은 다들 내려갔다. 혼자서 또 시작 부분의 경사를 보면서 생각한다. 고민을 한다, 겁을 먹는다, 멋대로 갖은 상상을 다 해본다. 갑자기 머리 속에 생각이 한가지 든다.
'지겨워'
난 언제까지 이 위에서 이 지겨운 생각을 하면서 바라만 보아야 할까? 내 자신에게 중얼거린다.
"알지? 여긴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장소야!"
페달에 발을 끼운다, 심장이 소용돌이 친다. 긴장해서 다른 발이 잘 안끼워진다. 주춤거리면서 내려간다, 긴장으로 뒷 브레이크는 이미 잠겼다, 뒷바퀴가 구르는게 아니라 슬릭을 일으키면서 슬슬 미끄러져 내려간다. 첫번째 경사가 끝나간다. 성공이다 이정도에서 만족하고 내릴까? 아니다 지금은 그냥 가야만 하는 시간이다. 머리 속에서 뭔가 팽팽했던 줄 하나가 끊어진다. 브레이크를 풀어버린다. 돌길을 자전거가 미친 듯이 튕겨져 내려간다. 머리가 하얘져서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간다, 엉덩이가 뒷 바퀴에 닿을 거 같다. 앞바퀴가 큰 돌을 받았다. 튕길 것 같다. 순간 비틀 거리지만, 자전거는 이미 속도가 붙어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자전거에 매달려 있는 것 뿐, 경사가 다 끝나간다, 머리는 아직도 아무런 생각이 없다, 브레이크는 잡지 않는다, 자전거는 관성의 힘으로 계속 올라가다가 멈춘다.
멈췄다, 페달에서 발을 뺀다, 잠깐 심호흡을 한다. 소리를 지른다.
놀래서 뛰어온 일행들에게 그냥 웃기만 하고 계속 간다.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게 되었다. 누가 보면 여전히 벌벌 거리면서 방만하게 올라가고 방만하게 내려 가지만, 내 자신은 마치 우면산은 다 정복한 기분인양 들떠서 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훨씬 더 느긋하게 다니게 되었다. 오히려 세월아 네월아 느긋하게 올라가고 다운 때도 조금이라도 기분이 이상하면, 내려서 끌어버리게 되었다. 어차피 몇 번 해봤으니까...
사귀귀 전에는 무조건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다가, 손 한번 잡아보고 뽀뽀라도 하게 되면, 흥미를 읽고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게 되는 연애 때의 나쁜 남자의 습성이 드러나는 거 같다.
그러기를 몇 달 어느날 작은 나의 왕국에 커다란 변화가 생겨버렸다. 약수터 쪽에 파여 있던 길을 누군가 드롭 코스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문제가 발생했다. '우면산은 어디든 갈 수 있다'라는 공식이 깨져버린 거다.
지날 때마다 잠깐 멈추어서서 노려본다. 어쩔까... 해볼까? 난 하드테일인데,
사고는 오늘 드디어 발생했다, 알고 지내던 선배님과 우면산을 같이 갔다, 평상시 은근히 점프와 드롭을 즐기던 선배님께 그 코스를 알려드리고자 갔던 것,
문제의 코스가 나오자마자 그 분은 점프를 했다 훌륭히 착지, 연거푸 성공하시고선, 바라보고 말씀하신다
"쉬워!, 갈켜 줄테니 너도 해봐!"
배운대로 그냥 땅 위에서 2번 해본다, 그래도 호핑은 좀 하는 편이다.
"잘 하네"
내가 봐도 잘안되고 있다. 호핑과 드롭은 전혀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오늘은 아마 실패할 거 같다. 난 겁이 많고 내 자신이 겁이 많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한가지 사실이 분명해진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난 절대 오늘 안할 것이다.'
갑자기 머리 속이 이상해진다. 오늘 그것도 지금 당장 안하면 난 또 다시 몇 달이 걸려야 이걸 할 수 있을 거다. 괜찮아 괜찮아, 자신에게 말해본다. 올라갔다. 반대쪽으로 좀 간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위에서 보니, 밑에서 볼 때와는 높이가 다르다.
달린다, 드롭 지점, 앞바퀴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순간 공중에서 중심이 무너지는게 느껴진다.
페달에서 발을 빼야한다!
몸이 뒤짚히는게 느껴진다, 순간 머리에 강한 충격이 느껴지면서, 몸이 구른다, 잠깐 모든 것이 검어진다,
잠시 뒤 입안에서 모래를 뱉는다, 머리가 어지럽다, 일부러 움직이지 않는다, 순간 웃음이 나온다, 옷이 찍어지고 엎어진채로 큭큭 거리면서 웃는다, 가벼운 뇌진탕의 느낌이다, 목이 뻐근하다 이건 2주일은 갈거다, 어깨와, 허벅지가 긁히고 찢긴 느낌이 온다, 견적은 전치 3~4주일 것이다, 이런 계산은 원래 칼 같이 빠른 편이다. 어깨가 아픈 것으로 봐서 무의식중에 전방 낙법을 한거 같다. 그게 아니었으면, 머리에 가해진 충격이 장난이 아니였을거다.
선배님이 놀래서 뛰어온다. 괜히 계속 웃음이 나온다. 천천히 일어나 본다 입에서 모래와 웃음이 계속 나온다, 밑에 약수터에서 상처를 물로 씻고 알콜을 바른다, 입에서 신음 소리가 나온다. 기분 좋은 고통이다.
화도 나고, 자존심도 상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어깨가 타는 거 같다. 근데 왜일까? 계속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몸 여기저기를 빨간 약으로 색칠하고 누워서 이 생각 저 생각 해본다. 전화기까지 잃어 버리고 온게 여간 억울한게 아니다. 전화기를 새로 살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하지만, 어차피 바꿔야 할 것이었다고 생각하고 참는다.
그렇게 또 우면산에서 해야할 일이 생겼다. 권태기에 빠진 나에게 그녀가 뺨을 한대 갈기고선 은근히 새로운 속살을 보여주는 것일까?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에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신중하게 할 것이다. 지루하고 한심해 보일지라도, 천천히 연습을 하면서 결국은 언젠가 해낼 것이다. 그게 우면산에 대한 나의 사랑 법이니까. 질투심이 지독한 이 어여쁜 여인을 한동안은 떠나지는 못 할 거 같다.
P.S 약수터 근처에서 혹시나 회색 삼성 옛날 깍두기 폴더 전화기를 찾으신 분은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S전화번호 다 날라갔습니다. 연락처들 쪽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네요^^
정상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져가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우면산의 정상에서 느꼈던 것은 예상했던 커다란 기쁨도 흥분도 아닌, 뭔가 '자 이제 이건 되었다'라는 편안한 안도감이었다. 언제나 압박감으로 다가오던, 우면산 임도를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마주볼 수 있게 된 기분, 뭐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당연히 거쳤어야할 통과의례를 이제 막 지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왼쪽 무릎 연골에 이상이 생기면서 물이 차기 시작한 것은 5년 전, 하루에 3시간 씩 무리하게 운동을 한 당연한 결과였다. 그 뒤 다 나았다 싶어서 다시 운동을 할때마다 도지기 시작하는 무릎의 통증은, 나에게 심리적인 브레이크를 주었고, 너무나 운동을 좋아하던 나에게 언제나 '어느 선'에선가는 멈추어야 하는 '할 수 없잖아, 몸이 이러니까' 라는 슬픈 자조감만을 항상 안겨주었다.
일어서서 페달을 밟을 수도 없다, 페달질에 무게가 걸려서도 안된다 조금만 다리에 힘이 가해지려고 하면 머리 속에서 비명이 울려퍼진다. '그만둬! 또 망가뜨릴거야?' 기운이 다 빠진다. 자리에 선다 일행들이 지나가면 웃으며 얘기한다.
"힘들어서요"
다들 웃으면서 화답해준다
"젊은 사람이 체력도 좋아보이는데"
미소를 지으며, 잠시 잠깐 자기 혐오에 빠진다, 난 뭘 그리 겁내는 걸까, 날 막는 것은 다리의 통증이 아니라, 한 순간에 다리가 망가졌던 예전 기억에 대한 공포가 아닐까.
그렇게 매번 우면산 임도를 올랐다. 한 발 한 발 다리에 체중이 전해지지 않게 하면서 그렇게 올라갔다. 한 번에 다 올라간 날, 다리에 통증은 없었다,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편하고 호흡도 편안했다, 다음 주에 바이크메이트에 가서 사장님에게 자랑을 하리라, 모두들 웃겠지만 나는 정말 방송국에 제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날 이후 난 더이상 우면산 임도에서 노력을 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힘들면 내려서 쉰다. 그리고 경치를 본다. 이제부터 우면산 임도는 나에게 노력해서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 천천히 올라가면서 경치를 구경하는 장소가 되었다. 마음을 비우고 편안한 마음으로 마주보게 되자, 나는 황량한 임도의 옆에서 계절의 변화를 바라 볼 수 있게 되었다.
몇 주 전 같이 산을 오르던 분이 말했다
" 요즘은 페달질을 되게 무겁게 하시네요?"
그 날 이후로 난 가끔 나도 모르게 페달에 체중을 가하고 속도를 내고 있었다, 내일 아침에 무릎에 통증이 오겠지, 뭐 좀 그럼 어때? 기분이 편안해진다.
임도에 대한 정복이 거의 완성이 되가던 시점부터 이미 제2의 목표는 정해져 있었다. 우면산 정상 헬기장 다운힐, 지금은 바이크메이트의 유선생님이 삽한자루로 길을 다져 놓으셔서 많이 좋아졌지만, 작년 장마 끝 쯤에 내가 처음 보았을 때에는, 사람이 차마 내려 갈 수 없는 장소로 보였고,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길로 내려오곤 했다.
다시금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뻔히 방법은 다 안다, 웨이트백을 하고, 앞브레이크를 너무 무리하게 잡지 말고 균형을 유지할 것, 모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그 시작 부분의 경사만 보면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머리 속에서는 수만가지 핑계가 떠오른다, '오늘은 아침부터 기분이 좀 꿀꿀했잖아?' '그러고보니 몇일전에 비가 왔었군 길이 많이 미끄러울 것 같아 다음 주도 있잖아?'
그렇게 또 2달 간이 흘렀다, 날씨 탓에 많이 탈 수도 없었다. 또 다시 정상에 섰다, 일행들은 다들 내려갔다. 혼자서 또 시작 부분의 경사를 보면서 생각한다. 고민을 한다, 겁을 먹는다, 멋대로 갖은 상상을 다 해본다. 갑자기 머리 속에 생각이 한가지 든다.
'지겨워'
난 언제까지 이 위에서 이 지겨운 생각을 하면서 바라만 보아야 할까? 내 자신에게 중얼거린다.
"알지? 여긴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장소야!"
페달에 발을 끼운다, 심장이 소용돌이 친다. 긴장해서 다른 발이 잘 안끼워진다. 주춤거리면서 내려간다, 긴장으로 뒷 브레이크는 이미 잠겼다, 뒷바퀴가 구르는게 아니라 슬릭을 일으키면서 슬슬 미끄러져 내려간다. 첫번째 경사가 끝나간다. 성공이다 이정도에서 만족하고 내릴까? 아니다 지금은 그냥 가야만 하는 시간이다. 머리 속에서 뭔가 팽팽했던 줄 하나가 끊어진다. 브레이크를 풀어버린다. 돌길을 자전거가 미친 듯이 튕겨져 내려간다. 머리가 하얘져서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간다, 엉덩이가 뒷 바퀴에 닿을 거 같다. 앞바퀴가 큰 돌을 받았다. 튕길 것 같다. 순간 비틀 거리지만, 자전거는 이미 속도가 붙어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자전거에 매달려 있는 것 뿐, 경사가 다 끝나간다, 머리는 아직도 아무런 생각이 없다, 브레이크는 잡지 않는다, 자전거는 관성의 힘으로 계속 올라가다가 멈춘다.
멈췄다, 페달에서 발을 뺀다, 잠깐 심호흡을 한다. 소리를 지른다.
놀래서 뛰어온 일행들에게 그냥 웃기만 하고 계속 간다.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게 되었다. 누가 보면 여전히 벌벌 거리면서 방만하게 올라가고 방만하게 내려 가지만, 내 자신은 마치 우면산은 다 정복한 기분인양 들떠서 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훨씬 더 느긋하게 다니게 되었다. 오히려 세월아 네월아 느긋하게 올라가고 다운 때도 조금이라도 기분이 이상하면, 내려서 끌어버리게 되었다. 어차피 몇 번 해봤으니까...
사귀귀 전에는 무조건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다가, 손 한번 잡아보고 뽀뽀라도 하게 되면, 흥미를 읽고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게 되는 연애 때의 나쁜 남자의 습성이 드러나는 거 같다.
그러기를 몇 달 어느날 작은 나의 왕국에 커다란 변화가 생겨버렸다. 약수터 쪽에 파여 있던 길을 누군가 드롭 코스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문제가 발생했다. '우면산은 어디든 갈 수 있다'라는 공식이 깨져버린 거다.
지날 때마다 잠깐 멈추어서서 노려본다. 어쩔까... 해볼까? 난 하드테일인데,
사고는 오늘 드디어 발생했다, 알고 지내던 선배님과 우면산을 같이 갔다, 평상시 은근히 점프와 드롭을 즐기던 선배님께 그 코스를 알려드리고자 갔던 것,
문제의 코스가 나오자마자 그 분은 점프를 했다 훌륭히 착지, 연거푸 성공하시고선, 바라보고 말씀하신다
"쉬워!, 갈켜 줄테니 너도 해봐!"
배운대로 그냥 땅 위에서 2번 해본다, 그래도 호핑은 좀 하는 편이다.
"잘 하네"
내가 봐도 잘안되고 있다. 호핑과 드롭은 전혀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오늘은 아마 실패할 거 같다. 난 겁이 많고 내 자신이 겁이 많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한가지 사실이 분명해진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난 절대 오늘 안할 것이다.'
갑자기 머리 속이 이상해진다. 오늘 그것도 지금 당장 안하면 난 또 다시 몇 달이 걸려야 이걸 할 수 있을 거다. 괜찮아 괜찮아, 자신에게 말해본다. 올라갔다. 반대쪽으로 좀 간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위에서 보니, 밑에서 볼 때와는 높이가 다르다.
달린다, 드롭 지점, 앞바퀴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순간 공중에서 중심이 무너지는게 느껴진다.
페달에서 발을 빼야한다!
몸이 뒤짚히는게 느껴진다, 순간 머리에 강한 충격이 느껴지면서, 몸이 구른다, 잠깐 모든 것이 검어진다,
잠시 뒤 입안에서 모래를 뱉는다, 머리가 어지럽다, 일부러 움직이지 않는다, 순간 웃음이 나온다, 옷이 찍어지고 엎어진채로 큭큭 거리면서 웃는다, 가벼운 뇌진탕의 느낌이다, 목이 뻐근하다 이건 2주일은 갈거다, 어깨와, 허벅지가 긁히고 찢긴 느낌이 온다, 견적은 전치 3~4주일 것이다, 이런 계산은 원래 칼 같이 빠른 편이다. 어깨가 아픈 것으로 봐서 무의식중에 전방 낙법을 한거 같다. 그게 아니었으면, 머리에 가해진 충격이 장난이 아니였을거다.
선배님이 놀래서 뛰어온다. 괜히 계속 웃음이 나온다. 천천히 일어나 본다 입에서 모래와 웃음이 계속 나온다, 밑에 약수터에서 상처를 물로 씻고 알콜을 바른다, 입에서 신음 소리가 나온다. 기분 좋은 고통이다.
화도 나고, 자존심도 상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어깨가 타는 거 같다. 근데 왜일까? 계속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몸 여기저기를 빨간 약으로 색칠하고 누워서 이 생각 저 생각 해본다. 전화기까지 잃어 버리고 온게 여간 억울한게 아니다. 전화기를 새로 살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하지만, 어차피 바꿔야 할 것이었다고 생각하고 참는다.
그렇게 또 우면산에서 해야할 일이 생겼다. 권태기에 빠진 나에게 그녀가 뺨을 한대 갈기고선 은근히 새로운 속살을 보여주는 것일까?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에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신중하게 할 것이다. 지루하고 한심해 보일지라도, 천천히 연습을 하면서 결국은 언젠가 해낼 것이다. 그게 우면산에 대한 나의 사랑 법이니까. 질투심이 지독한 이 어여쁜 여인을 한동안은 떠나지는 못 할 거 같다.
P.S 약수터 근처에서 혹시나 회색 삼성 옛날 깍두기 폴더 전화기를 찾으신 분은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S전화번호 다 날라갔습니다. 연락처들 쪽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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