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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백암 MTB 대회 후기

finegan2003.08.22 11:35조회 수 1138추천 수 3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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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백암 MTB 대회 참가 후기


- 부제 : 또 다른 나를 찾아서


                                                                     박우칼럼中(www.mtbplus.com)


대회를 다녀온지 벌써 1주일이 흘렀다. 어제부터 비가 간간히 흩뿌리기 시작하더니 그칠줄을 모른다. 때론 이런 날도 있기에 모처럼 여유있는 생각을 할 시간도 가지게 되는가 보다. 한동안 이일저일로 바쁜 시간만을 보냈는데.. 여기저기 긁힌 영광(?)의 상처가 아직도 쑤시지만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주변 사람들이 가끔 던지는 말을 위안삼고 있다. 약지에 후시딘 연고 한움큼을 푹 찍어 상처에 쓱쓱 문질러 데는 그런 나의 모습이 그리 밉지 않다. 분명 나는 울진 백암(山), 그곳에서 또 다른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1. 2003년 8월 9일 오전 - 울진으로 출발하기전

아침에 부랴부랴 퇴근을 하고 집에 도착하니 벌써 9시가 가까워 온다. 전날 동생에게 부탁해 야영(1박)할 준비는 이미 마쳤다. 주위에선 울진까지 자전거를 타러간다고 난리지만 MTB의 참맛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 내심 미소만 지었다. 몇 일전부터 동생과 평소 친분이 두터운 박선배를 설득해 함께 가기로 약속도 했었다.
더없이 맑은 날이다. 경주까지는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했다. 이후 경주 도심을 가로질러 포항쪽으로 향하는 7번국도에 들어섰다. 휴가철 피크를 넘겼다는 것을 새삼 실감할 정도로 도로는 한산했다. 토요일이라 인근 시민들이 근교 나들이를 떠나는 듯 도로엔 경북 번호판을 단 차량들만 보였다. 푸른 하늘은 그 광채를 유감없이 발하고 있어 마치 초가을이라도 된 듯하다. 간간히 보이는 길가의 이른 코스모스 또한 이러한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포항에서 영덕쪽으로 접어들었다. 동해! 이 동해의 참맛은 멋진 해변국도에서 느낄 수 있는 듯하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해안선을 따라 순조롭게 울진으로 향한다.


2. 2003년 8월 9일 오후 - 백암온천에 도착하고

목적지인 백암온천단지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경. 온천축제 이벤트중 하나인 이번 대회는 비교적 평이하다는 43킬로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어 전부터 많은 관심을 가졌던 대회였다. 여러 이벤트의 진행으로 온천단지 광장은 떠들썩했다. 출발지점을 대충 보고 난 뒤 다시 울진으로 나왔다. 야영을 할 장소를 찾아야 했기에 해안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니 멀리 해안쪽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보였다.

월송정! 바로 관동팔경의 하나인 월송정이었다. 정자는 수 백평의 소나무 숲을 둘러싸여 있었고 숲속엔 야영장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적당한 자리를 잡아 주차를 하고 텐트를 쳤다. 밥을 지어 먹고 해변을 산책했다. 정말 간만의 야영이라 마음이 설레이기만 한다. 시원한 바닷바람은 짭조롬한 해풍을 머금은 채 자꾸만 솔밭으로 밀려들었다. 마치 구름속에 있는 착각마저 들었다. 해변은 늦휴가를 지니는 몇몇 사람들만 있었을 뿐 비교적 한가한 분위기 였다. 유유자적! 내가 이런 기분을 낼 수 있으리라 불과 몇 시간전에 상상할 수 있었을까? 더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해변을 걸었다. 멀리 갈매기 한마리가 이런 모습을 축하라도 하듯 얇은 소리를 내며 스쳐간다.
어둠이 몰려오고 달이 유난히 밝은 저녁이 되어서야 비로소 월송정은 그 정취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정자위에 올라서 어둠속에 끝없이 이어져 있을 명사십리와 솔숲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탐스러운 보름달과 시원한 파도소리를 벗삼았다. 멋있었다. 그렇게 첫날 월송정에서의 밤은 흘러가고 있었다.


3. 2003년 8월 10일 새벽 - 동해에서 맞은 새벽

해안이라 새벽의 공기는 제법 쌀쌀했다. 텐트 아래로 냉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침낭을 더욱 푹 덮어쓰고 잠을 청했다. 규칙적으로 혹은 불규칙적으로 밀려왔다 사라지는 파도소리가 묘한 감정을 자아내는 듯하다. 가끔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 또한 파도소리와 점점 밝아져오는 하늘 아래서 묘하게 어우러 진다. 4시간후쯤.. 오늘 있을 경기에 대한 기대감과 긴장감이 살짝 스쳐가고..이내 다시 꿈속으로 빠져 들었다.


4. 2003년 8월 10일 오전 -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동해안에서 맞는 아침의 백미는 뭐니해도 일출이었다. 차갑디 차가운 바다를 점점 달구며 오늘도 태양은 그렇게 떠오르고 있다. 세상의 온갖 어둠과 냉기를 서서히 지우며 떠오르는 태양의 광경이 자뭇 장엄했다. 짧게 심호흡을 여러번 했다. 마치 태양의 기를 한껏 머금으려는 듯 두팔을 바다로 향한채 기지게를 켰다. 태양이 만들어 내는 연주황빛, 그렇지만 결코 엷지만은 않은 오묘한 빛깔이 순식간에 바닷물결에 수놓아 졌다. 황금빛 태양은 어느덧 엷은 구름 속을 당당히 헤치고 수평선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떠올랐다.

선선한 바람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더없이 머리가 맑다. 이른 아침 여러척의 조각배들은 오늘도 어김없어 그네들의 삶에 터전인 바다로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겐 내 사고와 마음의 터전인 산이 기다리고 있다.


5. 2003년 8월 10일 오전 - 대회장 그리고 출발후

간단히 밥을 지어먹고 텐트를 걷었다. 20여킬로 떨어진 대회장이었지만 차가 막히지 않아 곧 도착할 수 있었다. 대회장은 이미 개회식이 시작되고 있는 듯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형형색색의 유니폼과 헬멧의 물결로 백암 대회장은 가득 차있다. 장관이다.
각종 등급으로 구성된 전체 참가자는 200여명정도라고 한다. 지역 주최 MTB대회지만 적잖은 동호인이 참가했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경상권 동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직까지 춘천 챌린지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있었던 터라 비교가 되었다. 그러나 여기 백암에서 얻고 싶은 것은 나에 대한 또 다른 발견과 완주에의 즐거움이란 사실을 한번 더 생각하니 멀리 위용을 자랑하는 백암의 봉우리만이 가슴을 향해 크게 다가오고 있는 듯 하다.
대회선언이 있고 예비 출발을 했다. 실제 출발지까진 대회장에서 약4킬로 정도 이동을 해야한다. 어린이급 선수들은 이 이동구간에서 경기를 펼쳤다. 주민인 듯 보이는 어린이들이 대다수다. 점점 출발시간인 10시가 다가오고 있다. 이미 상급 선수들은 출발을 하고 중급 선수들도 이어서 출발을 했다.

초급 시니어2 ! 함께 주행을 펼칠 선수들이 연두색 대회티를 받쳐 입고 대열을 정비했다. 열기! 텁텁한 열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긴장이 되었다.
"출발!"
드디어 출발 신호가 떨어지고 저마다 전속력으로 패달을 밟고 있는 듯했다.
'그래 경기다. 이것은 내가 최선을 다할 경기인 것이다.'
2킬로 남짓 이어진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주행한 뒤 산으로 진입하는 코스였다. 선두권 선수들은 여유있게 비포장 도로로 진입을 했고 이어서 중위그룹에서도 진입하기 시작했다.

초반 이어진 업힐은 노면이 상당히 미끄러웠다. 땅이 파여 자꾸 헛도는 뒷바퀴를 통제할 수 없어 잠시 내려서 뛰었다. 초반 치열한 접전은 벌써부터 그룹을 나누기 시작한 듯 했고 비오는 듯한 땀을 훔치며 다시 패달을 밟았다. 근래 회사 출퇴근, 중장거리 주행 그리고 산악주행까지 틈틈히 연습을 한터라 적어도 초반에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자꾸만 가빠져 오는 호흡을 컨트롤 하기가 힘들었다. 이순간 뒤의 선수들이 계속 스쳐갔다.


6. 대회시작 - 경기 초반 그리고 중반에 들어서며

무엇보다 예기치 않은 거친 호흡과 몰려오는 피로로 걱정이 되었다. 불과 5킬로 남짓 주행을 했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급하진 않지만 이어지는 미끄러운 노면의 다운힐이 이어졌다. 해발 50미터도 채 안되는 저지대 였지만 초반부터 마치 이번 경기의 전체 코스를 암시하는 듯한 다양한 형태의 코스가 이어졌다. 상당히 미끄러운 다운힐이다. "안전에 유의합시다!" 급하게 앞지르는 선수들에게 조심히 가자고 여기저기서 소리를 치고 있었다. 미끄러지는 사람도 몇 명 있었지만 아슬아슬하게 다운힐 코스를 헤져나갔다.
"집착!".. "집착에 의한 과욕!"
그래 바로 그것이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추월하는 선수들이 있어도 그들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단지 나를, 숨겨진 나를 찾기 위해 백암(山)과의 소리없는 교감을 나누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다. 곧 완만한 임도가 이어졌고 속도계의 주행거리는 막 8킬로를 넘어서고 있었다.

패이스를 찾는 듯했고 안정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조금은 빠르게 가는 "투어"라고 생각을 하니 몇명의 선수들을 여유있게 추월할 수 있었다. 초반 물보급 지역이 나타났다. 너무나 이른 물보급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도 반통의 생수를 깨끗이 비웠다. 햇살이 본격적으로 내려쬐어 점점 뜨거워지는 백암의 열기가 느껴졌다. 코스가 참 재미었었다. 43킬로 주행거리도 매력있었지만 코스의 다양성(뒤에 이어질 열악한 코스가 다가올 것을 전혀 예상치 못한채)에 은근한 즐거움이 느껴졌다. (2편에서 계속)

7. 대회시작 - 경기 중반, 나 자신을 찾아서 - 1

도대체 산이 몇 개 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제 1회 대회여서 코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고 단지 길이 이어져 있고 멀리 보이는 7부 능선(산의 정상에 조금 못미치는 위치)에 간간히 유니폼 입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줄을 지어 가는 것으로 보아 앞으로 저곳을 통과해야 된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었다. 플라스틱 보냉병 속의 이온음료로  간간히 목을 축였다. 초반의 긴장감과 피로감은 점점 사라졌고 비교적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계속 달리기 시작했다. 두선수와 20여미터 간격을 두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패이스를 유지하며 달린다. 2차 보급 받은 오이를 움컥 씹으면서 이어지는 다운힐 코스로 임했다. 춘천의 봉화와는 사뭇다른 느낌의 백암이다. 어느덧 주행거리가 20킬로를 넘어서고 있었다.

벌목이 간간히 이루어지고 있는 숲도 나오고 미끄러운 내리막, 축대 공사를 한창하고 있는 공사현장도 나왔다. 어느덧 주행거리 25킬로로 접어 들었다. 주변엔 아무도 없다. 앞선 두 선수는 조금 속력을 내 멀리 사라진 모양이다. 갈증이 나는 듯해  게이지에 꼿혀 있는 물통으로 손이 갔다. "앗!" 게이지에 꼿혀 있어야 할 물통이 없었다. 조금전 다운힐때의 진동으로 빠졌던 모양이다. 비교적 낡은 게이지를 바꿀려다 그냥 온 게 화근이었다. 순간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경기 규정에 물 보급은 단 1회였다. 남은 거리는 18킬로 남짓.. 점점 더 고지대로 이어지는 이 순간에 물 없이 주행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30킬로 지점에 마을을 통과 한다고 했는데..주머니에 든 초콜릿을 만지며 이런저런 생각을 다했다.  상실감을 애서 삼키고 마음을 추스리며 주행을 하지만 머릿속엔 별 생각이 다난다.

28킬로 지점! 바나나 보급이 있었다. 바나나 말고 물 한모금 없냐고 물으니 준비된 물이 없단다. 순간 앞이 캄캄해 졌다. 점점 탈수 현상이 가속화되는 것 같았고 호흡을 할려고 해도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태양은 그 기세를 더욱더 내뿜고 있다. 경기운영의 미비함(춘천대회는 생수가 풍부하게 지원이 되었었다)을 따지기 이전에 앞으로 남은 코스를 어떻게 가야 할지 막막했다. 본격적으로 급경사가 이어졌다. 더이상 안장에 앉을 수가 없어 내려 끌고 올라갔다. 일단의 선수들이 자꾸만 스쳐갔다. 분명 27킬로 지점까진 중상위권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멀리 웅장한 봉우리가 보였다. 깍아지르는 듯한 절벽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소나무 그리고 봉우리를 돌며 난 임도.. 점점 더 자신이 없어지는 듯했다. 고등부 상급자로 보이는 선수(파란색 대회T 착용)가 굉장히 지친 표정으로 물이 있느냐 물었다.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낄 뿐이다. 몇킬로를 더 걸어 올라갔다. 앞으로 계속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야 될 것만 같다.


8. 대회시작 - 경기 중반, 나 자신을 찾아서 - 2

잠시 길가에 멈춰 섰다. 또 다시 일단의 무리들이 지나간다. 10분 뒤에 출발했다던 베테랑급 선수들이었다. 그런데 한 선수의 뒷 주머니에 내 물통이 끼어 있었다.
"저기요, 선수분 잠시만요" 애타게 불렀다.
"예?"
"그거 등에 낀 물통 흰색 폴라리스 플라스틱 보냉병.. 꼭지는 파란색.. 내용물은 게토레이 라임향.."
잠시 멈춰서더니 머뭇거리다 이내 통을 건낸다.
"아, 이거 이까지 주어 온다고 엄청 힘들었는데, 전쟁터에서 군인이 총을 놓고 온 격이니 조심하시우, 대신 물좀 마십시다"
"내 그러시죠"
물통을 다시 찾았다는 즐거움보단 물을 얻었다는 기쁨에 온 몸에 힘이 솟는 듯했지만 한모금이 아니라 반이상을 비우는 그의 모습에 맥이 빠졌다. 그렇다고 항의를 할 수도 없고.. 남은 음료를 마시고 다시 안장에 앉아 패달을 밟았다. 힘껏 밟았다. 하지만 곧 끝없이 이어지는 업힐의 중압감으로 온몸이 다시 움츠려 들기 시작했다.

32킬로지점. 다시 내려 계속 끌고 올라간다. 알 수 없는 험난한 코스가 이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뒤에 알게 되었지만 초급 시니어급에 50명이 출전했는데 27명이 완주를 했단다. 부상도 몇 명 있었고 험난한 코스에 타이어 펑크가 많았다고 한다. 업힐이 끝나고 다운힐이 이어졌다. 현재 임도 보수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듯 길이 잘 다져졌지만 마른 학교 운동장처럼 상당히 미끄러워 보였다. 지금 상당히 지쳐있는 터라 무게중심을 잡기가 힘들었다.
"쿵, 주르륵.." 잠시 눈앞이 희미해지더니 이내 미끄러 넘어졌다.
오른 팔꿈치와 팔목, 허벅지 그리고 왼쪽 팔꿈치 무릎에 심한 찰과상을 입었다. 다행히 조금 두터운 반장갑을 착용하고 있어 손바닥은 괜찮았다. 상당한 고통이 전해져 왔다. 흙을 털어 내니 더욱 쓰렸다. 잠시 몸을 추스르고 정신을 바로 찾기 위해 노력을 했다.
'이럴순 없다, 얼마전 130킬로 당일 투어도 다녀왔다, 이번 주행을 이루지 못한다면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절대 질 수 없다..' 수많은 자문자답과 상념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정시을 차리고 남은 다운힐을 끝마쳤다. 또 다시 알 수없는 업힐이 이어진다.


9. 대회시작 - 경기 중반, 나 자신을 찾아서 - 3

이제 확실히 뒤쳐진 것을 느낀다. 아무도 없었다. 끌고 올라가다 서고 다시 끌고 올라가고 정오를 넘겨 태양은 천공에서 자신의 열기를 더욱더 맹렬히 내뿜기 시작했다. 대단한 기세다. 업힐이 끝났다. 어느 한 고개의 정상이었다. 이제 더 이상 못 갈 것같다. 잠시 쉬기로 했다. 등산객이 리본을 많이 달아놓은 커다란 소나무 아래서 헬멧과 장갑을 벗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허기가 느껴져 등뒤의 바나나를 집어 들었다. 전에 넘어진 탓에 완전히 짓물러져  있었다.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밀려오는 허기 탓에 손으로 추스려 먹었다. 모양과는 달리 정말 달콤한 꿀맛이다. '물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앞으로 걱정이었지만 15분 남짓 휴식을 취하니 숨쉬기가 조금은 편해졌다. 다시 헬멧끈을 추스리고 긴장을 한채 다운힐을 했다. 한고개 내려가니 누군가 페트병에 물을 잔뜩 담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예기치 않았지만 인근 마을 주민(진행요원)이었다. 정말 반가웠다. 인사도 나눌 겨를도 없이 벌컥벌컬 물을 들이켰다.
"저 제 물통에 물을 좀 채워가면 안될까요?"
"뒤에 분도 있기때문에 곤란하고요. 대신 조금만 더가면 수도가 있으니 거기서.."
아쉬운듯 다시 물을 들이키고 짧은 고개를 넘어갔다.

수도에 연결된 호스를 들고 또다시 마을 주민이 서 있었다. 큼직한 사발엔 물도 담겨 있었다. 뺏다시피 한사발 들이켰다. 정말 시원했다. 도시에선 볼 수 없는 약간 텁텁하며 끈끈한  지하수의 맛이다. 미리 안내를 받은 듯 온몸에 호수로 물을 뿌리기 시작한다. 시원했지만 고글에는 뿌리지 말라고 할려니 이미 늦어 뿌려 주는데로 가만히 있었다. 참 친절했다. 마을 물에 대한 농담도 곁들이며 웃음을 짓다가 상처를 보곤 물을 뿌리며 자신의 손으로 긁어내주기까지 한다. 한 3분 남짓 물을 먹으며 쉬니 다시금 힘이 솟았다. 무엇보다 물통 가득히 담긴 생수가 많은 힘이 되었다. 다시금 초중반부의 패이스를 찾는 듯 하다.

이제껏 깜깜한 밤중이나 안개 속을 걸어온 듯했다. 어쩌면 바로 앞에 물이나 내가 필요한 무언가의 것들이 풍족하게 있었는데도 나는 그것이 있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며 희망과 확신을 계속 지키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두 번의 물 보급은 진행 안내에 없었던 터라 대회운영의 미숙함을 보여주는 사례였지만 상식적으로 생각을 하고 믿음과 희망을 가진 채 25킬로 지점에서도 꾸준히 패이스를 찾을려고 노력을 했다면 그렇게 지치지 않았을 것이었다. 또한 다소 불가항력적인 일이었지만 고개 정상에서 바나나를 먹으며 쉴 때도 잠시만 내려가면 충분한 있었는데 마시고 쉬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밀려들었다.

그렇다. 어쩌면 25킬로에서 33킬로 지점까지 나는 또 다른 나 자신의 모습을 한 채 걸어 온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 경제, 인격적.. 모든 위치와 관점에서의 나! 즉 사회라는 커다란 틀이 만들어낸 역할이 부여된 피동적인 나가 아닌 또 다른 나의 모습을 한 채 온 것이다. 앞으로 거쳐야 할 사회의 수많은 난관과 걸어야 할 삶의 길에 대한 성찰을 여기, 백암에서 조금 엿본 것 같기도 하다. 힘이 샘솟고 호흡도 한결 편해졌다. 내리지 않고 부지런히 패달링을 했다. 점점 일단의 선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10. 대회시작 - 경기 중반에서 후반으로

물을 보급해 주었던 주민의 말로는 남은 10여킬로는 대부분 다운힐이라 한다. 하지만 간간히 업힐로 이어진 임도가 계속 나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지끔껏 지나온 업힐의 정도로 보아선 앞으로 상당수 다운힐로 이어질것 같았다. 무엇보다 초반 패이스를 찾는 듯해 좋았다. 35킬로가 넘어서는 인적이 드문 싱글(좁은 오솔길)과 임도의 중간성격을 지니는 도로들이 이어졌다. 풀이 적잖이 길을 덮고 있었고 뾰족한 돌들이 널려 있었다. 상당한 진동이 전해져 왔으나 브레이크를 잡기보단 컨트롤을 해서 헤쳐나갔다. 순간 커다란 돌에 걸리는 듯 했다.
"퍽, 쿵.."
엄청난 고통이 오른쪽 골반으로 전해져 왔다. 무척 아팠다. 뼈가 부러진 듯 했다. 너무 아파서 무의식적으로 엉덩이를 사정없이 문지르기 시작했다. 몇명의 사람들이 스쳐갔다. 그들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몸을 비틀며 고통을 참았다. 10분이 지났을까? 많이 아프긴 했지만 몸을 펼 수 있는 듯한걸 보니 골절이나 탈장은 아닌 듯 싶었다. 잠쉬뒤 다시 주행을 시작했다. 노면 대부분이 계곡의 뾰족한 자갈돌로 이루어졌다. 진동과 충격, 그리고 밀려오는 피로감으로 팔엔 점점 힘이 빠져만 갔다. 하지만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더욱 정신을 한곳에 집중한채 내달리기 시작했다.

난코스 탓에 경기 종반부에서 펑크가 난 사람들도 몇 명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자전거를 끌며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5킬로 이상 남은 난코스를 끌고 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리라.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다운힐은 관광 카탈로그에라도 나올 법한 경취를 자랑하고 있었다. 자갈길을 조심조심해서 내려가야 하건만 간간히 절벽사이를 비집으며 자리잡은 소나무가 그리는 멋진 곡선과 푸른 하늘 그리고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시원한 물살이 어우러내는 정취에 빠지는 듯하다. 잠시 내려 쉬고 싶었지만 경기 출발전 막연히 3시간안에 들어오겠다는 다짐이 철저히 깨어진 터라 앞만보고 부지런히 달려야 했다. 속세가 가까워 지자 다시금 속세인의 모습이 어리는 것일까?


11. 대회종료 - 경기 후반 그리고 새로운 나와 함께

마을이 나오기 시작했다. 밭 사이로 난 좁은 농로가 보였고 멀리 더 큰 마을이 보였다. 점점 도착지점이 다가옴을 느꼈다. 앞서 크게 넘어진 탓에 속도계는 37 킬로까지만 표시가 되었다. 현재 정지상태다. 남은 6킬로는 느낌으로만 달려야 했던 것이었다. 100여미터 전방에서 몇몇 선수들이 부지런히 달리고 있었다. 승부욕에 집착한 것은 아니지만 다만 신나게 마지막 질주를 하고 싶었다. 40여킬로의 산악주행에 대한 보상으로 시원한 시골 바람을 한껏 맞고 싶었던 것일까? 출발지가 점점 다가온다. 500미터 전방, 300미터 전방 그리고 손을 흔들며 왼쪽으로 빠져나가라는 수신호를 보낸다.

출발때 왔던 아스팔트 도로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결승점까진 2킬로 남았으리라. 샥레버를 잠그고 기어를 최대한 올린채 고속질주를 했다. 순간 왼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며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어 이러면 안되는데..' 침착한 마음으로 부드럽게 패달링을 했다. 조금씩 힘이 들어가며 경련이 심해지기 시작했지만 패달링을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 자세로 200여 미터 달리니 경련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었다.
'아! 백암, 당신은 마지막까지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군요..'
출발점 아니 결승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람이 더없이 상쾌했고 먼저 들어온 일부 선수들과 마을 주민들 그리고 진행요원들이 환호를 질렀다. 선수들의 멋진 완주를 힘껏 축하하는 커다란 박수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골인! 참관했던 동생과 박선배가 완주를 축하해 준다. 무더운 한낮의 열기는 어느덧 축하와 기쁨의 열기로 바뀌는 듯하다.

그랬다. 나는 백암에서 또 다른 나의 모습을 잠시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백암은 둥그런 바퀴와 함께 나에게 가르침, 삶에 있어 보석과도 같은 무언(無言)의 무언가를 전해준 것이리라. 속세의 일상에서 가려진 삶의 값진 보석에 덮힌 세상의 먼지와 청태를 쓸어낸 것이다. 바람이 더 없이 시원했고 갈증도 잊은 채 달렸던 터라 원없이 세상에서 제일 달고 상쾌한 물을 들이켰다. 정말 원없이 들이켰다. 이 순간만은 나는 승리자가 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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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 올해 6월달에 참가했던 충남 온양의 광덕산 대회가 생각나는 군요... 대회 처녀 출전, MTB시작 5개월만에 52Km 4:50분간의 사투 끝에 완주, 몸무게 2kg감소.
    님의 후기를 읽다보니 두달 전의 제모습이네요.
    그래도 또 대회에 나가시고 싶지요?
  • 2003.8.22 16:29 댓글추천 0비추천 0
    artroom님두 첫대회가 인상에 깊었던 모양이시군요.^^ 전 4번째 대회였는데.. 암튼 MTB 입문3년째 의미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ㅋㅋㅋ

  • 2003.8.22 17:43 댓글추천 0비추천 0
    첫대회라... 참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경험 하셨습니다. 가보지 않은 코스란 항상 어려운 법이지요... 인생처럼... 그러나 지나고 보면, 좋은 경험이 되는 법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화이팅...
  • 아~ 전 33km쯤에서 앞바퀴가 펑크가 났는데 어찌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던지 타이어 홀랑 벗겨내고 휠채로 달렸습니다. 마지막 긴 딴힐은 제게 엄청난 고통이더군요. 서울 올라와서 앞바퀴 몽땅 갈고 백암은 기억에서 지웠었는데... 님의 후기를 읽으니 다시금 뭉클해지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 위에님 대단하십니다;;
  • ㅎㅎ참 재밌게 잘읽어요.저두 그때 출전 했지요.님이 하시는 말 다시 읽으니까 기분이 새롭네요.맞아요,그때 그랬어요..ㅎ 어쨌든 반갑습니다.그리구 일주일 뒤 문경대회 있었는데,,전 거기두 갔다 왔어요..
  • 정말 멋진 글 입니다. 근데...finegan님은 첫대회에 나간 분이 아니라 좀 타신분 같은데 리플은 다른 얘기들을 하고 있어서 ㅋㅋㅋ 혹시 글이 여러번 수정되었나? 하여간 자기자신을 찾는다는 멋진 철학이 담겨있는 사고를 하시다니...부럽기도 하고 멋진 라이딩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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