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새벽 강바람을 가르면서 은빛의 두바퀴에 몸을 실어본다. 지구촌과 우리 이웃을 병들게 하는 화석연료의 도움 없이 내 심폐와 근육의 힘만으로 페달을 돌려서 내 마음이 가는 데로 신나게 갈 수 있게 해주는 자전거야 정말 고맙다. 이렇게 아침 일찍 움직이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더구나 아내와 둘이서. 살아 있음의 희열 그리고 바람과 물과 대지가 주는 기쁨을 만끽해본다.
어제 저녁 야간 자타(자전거타기)에 이어서 늦은 밤까지 이어진 소주모임 때문에 아마 새벽 한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가 눈 떠보니 어느새 여섯시가 다 되었구나. 반포 네거리에서 일곱시에 만나기로 했지, 부지런히 떠나야겠다. 서둘러 아내를 깨워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지 15분 만에 한강 고수부지로 들어섰다.
언제부터 이렇게 해가 빨리 솟는지 6시인데도 환하고 한강변 산책로는 벌써부터 운동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반포대교 부근에서 아내는 집으로 돌아가고 나 홀로 잠수교를 건너간다. 고속버스 터미널 옆에서 오늘 특공임무를 같이할 동지들과 접선한다. 처음 만나는 반포동이님 시라소니님과 수인사를 나눈다. 두 분 모두 키와 체격에서 싼타페를 압도하는게 상당한 고수의 분위기를 풍기신다. 곧 오늘 번개를 위해 차량서비스를 흔쾌히 제공해주신 카리스님과 그레이스가 등장한다.
난 오늘 소위 개척번개라고 하는 모임에 처음 참가한다. 왈바의 2.3클럽에서 주관하는 번개다. 어느 정도는 길을 찾아 헤매고 끌거나 메고 가야 할 것을 각오하면서도 번개안내에 올려진 사진으로는 능선이 제법 길고 자전거를 타는 구간도 적지 않게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승합차에 자전거 싣고 출발한다. 동부간선도로가 거의 끝나는 장암역 부근에서 트윈파파님을 태우고 의정부로 향한다. 트윈파파님 아이디의 내력을 물어보니 5월이 되면 쌍둥이아빠가 되신단다. 도합 2남 1녀를 거느리게 되신다니 남은 하나 낳아 키우기도 어려운 판에 정말 능력있는 멋쟁이다.
행선지는 경원선의 종점인 연천군 신탄리의 고대산. 해발 860미터로서 민간인이 갈 수 있는 최북단의 산이다. 9시 15분경에 도착한다. 가는 길에 연천에 다 와서 양지님 차와 조우한다. 신탄리에 도착하니 엠사분들 벌써 와 계신다. 윤티, 푸르뫼, 주목, 갈메기 그리고 아마 제일 좌장격인 또 한분(아이디를 확인하지 못해서 죄송) 모두 다섯 분이신데 복장이나 얼굴 표정이 벌써 노련미가 확 풍긴다. 잠시 후 오늘의 번장이신 짱구님 도착한다. 감기로 인해 참가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번장의 몫을 다하기 위해 간신히 오셨다 한다.우선 역전식당에서 식사하고 막걸리 작게 한잔한 후 출발한다. 초반부터 상당히 빡센 경사도로 기를 죽이는 위풍당당한 임도 업힐이 나타난다. 싱글트랙 진입로까지 약 15분 정도 걸린 오르막, 주목님 노익장을 과시하며 당당하게 1위로 도달하고 싼타페 여유있게 2위로 간다.
여기서부터 고대산의 양두구육 - 그 정체가 드러난다. 벌써 하산하는 등산객들의 이야기가 기대를 여지없이 깨부순다. “여기 올라가봤자 탈 곳 없을텐데, 끌끌” 오잉, 그러면 안되는데. 이후 7부 능선까지 약 40분을 계속해서 아주 약간의 끌바와 징글맞게 긴 메바로 진행한다. 예수님이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를 진채 골고다를 올랐다면 난 머리통을 지져대는 헬멧을 쓰고 어깨가죽을 파고드는 자전거를 지고 “쓰고 큰 뫼(?)” 고대산을 기어오르고 있다. 허지만 양자사이에 다른 점도 있다. 골고다 정상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고대산 정상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신나는 내리막이 흐 흐. 그래 그거야 이 모든 괴로움은 단 한번의 재미있는 딴힐로 확 날려보내는 거야! 오호 애재라! 이 때까지도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하게 될 줄은 꿈에서도 몰랐었다.
싼타페는 메고바이크도 참으로 변화무쌍함을 맹세컨대 생애 최초로 실감한다. 어깨에 메기, 옆구리에 끼어서 들기, 한손으로 쥔 채 어깨위로 들기, 옆으로 올려 등판에 메기 -이것도 크랭크쪽을 등판에 대느냐 아님 반대쪽을 대느냐, 핸들바의 처리는 어떻게 하느냐 등등에 따서 무지무지 다양한 자세가 나옴 - 이 모두가 어떻게 하면 힘 좀 덜 들이고 어깨 안 아프게 오를 수 있을까 하는 내 JQ실력의 총동원체제에서 나온다.
우직하게 가다보니 어느새 결코 나올 것 같지 않았던 6부 능선에 도달한다. 의외로 일위로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쉬는 도중, 지나가는 등산객들의 격려성 칭찬 - 맨몸으로 오르기도 힘든 여길 어떻게 자전거까지 들고 - 에 촌음이나마 자기만족성의 우쭐감을 느껴본다. 엠사에서 오신 장로님들 체력이 상당하시다. 별로 힘든 기색 없이 사뿐사뿐 올라오신다. 몇일 전의 산악오토바이 부상으로 무릅이 편찮으신 카리스님과 감기에 시달리는 짱구님이 제일 마지막이다. 시라소니님과 반포동이님 급경사를 다시 내려가 두 분의 자전거를 날라주는 동지애를 발휘하여 주위를 감격시킨다.
정상까지의 2단계는 엠사에서 온 장로님들을 먼저, 연이어 다른 분들을 보내드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출발한다. 2단계에서는 좀 탈만한 곳이 있겠지. 희망 섞인 기대와 함께 자전거를 다시 어깨에 올린다. 초반 약 20분의 급경사 업힐. 길이 좁아서 어깨에 멘 자전거가 길가의 나뭇가지에 자주 걸린다. 아무리 오르고 또 올라도 계속 이어지는 암벽 섞인 급경사밖에 없는 데에 다소 지친다. 급경사 끝나는 지점에서 약 10 미터의 평평한 싱글을 발견한다. 환호작약하며 자전거에 올라타 출발하려는 순간 나도 모르게 다리가 힘을 잃으면서 옆으로 기우뚱 - 으악 얼굴이 따갑다.
으잉! 알고 보니 길옆에 바짝 붙어 자란 진달래가지에 안면이 확 쓸려버렸다. 상처가 났을까 안 났을까 궁금하지만 거울이 없는 관계로 그냥 간다. 얼마 후 지나가는 등산객 아주머니 왈 - "아저씨 얼굴이 많이 긁혔네요."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이후 무척이나 쓰려오는 속을 부여잡고 메바에 전력투구해보지만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집에 돌아가서 직장에 가서 얼굴의 상처보고 물어오는 인사들을 다 어떻게 받는담 - 그 잘나게 타는 자전거 실력으로 설쳐대더니만 *좋다! - 뭐 이런 식의 힐난이 올 수도 있겠지. 에구구.
다시 약 40분의 숨가뿐 메바 업힐. 급경사에 길마저 좁아서 등에 멘 자전거처리가 매우 어렵다. 계속 옆의 나뭇가지가 자전거를 잡으면서 진행을 방해한다. 헥헥 대면서 군부대경비초소가 자리잡고 있는 고대산 정상(860미터)에 도달한다. 2004년 4월 15일 고대산정상 - 해는 났지만 다소 흐리다 - 앞으로 나타날 내리막을 예고하는 걸까? 북한지역은 그다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아래 쪽으로 멀리 좌우로 뻗은 임도가 분명히 보인다. 다음에는 저기를 타면 재미 있으리라. 모두들 약 15분 휴식하면서 간식과 막걸리를 든 후 내려가기 시작한다. 싼타페는 특유의 만만디로 꾸물대다가 제일 꼬래비로 출발한다.
약 10미터 자전거를 타보고는 다시 본격적인 메바 자세로 돌입한다. 무릅인대 수술 이후 내리막에서는 잘 굽어지지 않으려는 왼쪽 무릅의 통증을 달래가며 연이어지는 급경사를 내려간다. 조금이라도 탈 만한 곳이 나오면 악착같이 시승해보지만 얼마 못가 다시 내려야 한다. 정상을 떠난지 얼마 안 돼서 트윈파파님을 따라잡는다. 그런데 트파님 좀 힘들어하시는 눈치이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마음을 바꾼다. 오늘 번개의 번짱과 다른 고수님들은 벌써 앞질러 간 모양이다. 나마저 그냥 가버리면 이 분 혼자 남게 되는데 뭔 일 생기면 도와줄 이가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 저도 초보인 주제에 남아서 같이 천천히 가기로 한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기껏해야 펑크 수리정도라서 별 힘이 못 되겠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옆에 있어주면 심리적인 안정감은 줄 수 있지 않을까? 이후 좀 타거나 메고 내려가서 트위파파님 오실 때까지 기다려서 다시 출발하는 식을 되풀이한다.
조금 진행하다보니 중간에 경사도는 좀 높지만 도전해볼 만한 코스가 나와서 오늘 탄 것중 제일 재미있게 타고 내려가본다. 다시 한참 기다린다. 트파님 다리에 힘이 빠지셨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딱히 도와드릴 만한 체력도 못되는 지라 기다리면서 사고 안 나기만을 기원한다. 덕분에 나는 만고강산 유람조로 널럴하게 내려간다.
이런게 개척인가? 너무 힘들고 재미없다. “아무리 개척번개라 해도 자전거모임인데 최소한 20-30%는 탈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며 속으로 투덜대본다. 오늘 초반 임도 약간 빼면 아마 5%, 많아야 10%나 탔을까? 그렇지만 누굴 탓하랴. 결국은 모두 내가 결정하고 내가 스스로 한 것인데. 그래, 부처님도 예수님도 그랬어. 모든게 마음먹기 달렸고(일체유심조) 그 모두가 내 탓이라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건질게 있는 법이고 생각의 가닥만 잘 잡으면 즐거울 수 있는 거야. 내 비록 지금은 힘들고 재미없어도 다리힘은 강해지겠지. 오늘 자전거를 덜 탄 만큼 내일 타는 자전거는 배나 더 재미있지 않을까?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역경을 이겨낼수록 더 익어가는 게지. 갠 날이 있으면 흐린 날도 있고 비가 온 다음엔 화창한 날이 오잖아? 라는 식의 위안성 반문으로 스스로를 다스리며 계속 하강.
쌍동이아빠님 오늘 정말 많이 고생하셨다. 다른 일행은 벌써 다 내려가서 기다리면서 셀폰을 보낸다. 알고 보니 님은 예전 오토바이 사고로 대수술을 해서 한쪽 다리가 불편하시단다. 그래서 내리막이 무지 힘들다고 하신다. 왼쪽 무릅의 인대 수술 이후 내리막이 여의치 않은 나하고는 동병상련이다. 여하간 우여곡절 끝에 다 내려와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아닌 갈채를 받으면서 본진에 합류한다. 역시 고수는 말 없이 행동으로 보여 주는 법. 엠사 장로님들 어느새 모두 내려와서 한참을 기다리셨나 보다. 모두들 생생하고 (기다림에) 지친 얼굴이다.
아! 내 얼굴의 상처. 모두들 한 마디씩 거든다. 웬 상처냐고. 주목님 왈 - “기왕에 난거 다른 쪽 얼굴에도 상처를 내면 어때요. 완조오니 염장성 코멘트.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님의 말대로 해 가지서리 아메리카로 이주해서 Indian Reservation으로 입주해버릴까요. 에잇, 열 받는데 지금부터 아이디나 바꿔 버릴까보다. 뭐냐고? 당근 Scar Face지.
번장 짱구님, 감기에도 불구하고 이 험난한 코스 아무 사고 없이 대원들 끌고 임무 완수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참가하신 모든 분들 특히 엠사에서 오신 장로님들도 한 수고 하셨습니다. 다음 번에는 기회가 되면 오늘보다는 조금 덜 험한 곳에서 한번 더 뵙지요. 그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요.
어제 저녁 야간 자타(자전거타기)에 이어서 늦은 밤까지 이어진 소주모임 때문에 아마 새벽 한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가 눈 떠보니 어느새 여섯시가 다 되었구나. 반포 네거리에서 일곱시에 만나기로 했지, 부지런히 떠나야겠다. 서둘러 아내를 깨워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지 15분 만에 한강 고수부지로 들어섰다.
언제부터 이렇게 해가 빨리 솟는지 6시인데도 환하고 한강변 산책로는 벌써부터 운동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반포대교 부근에서 아내는 집으로 돌아가고 나 홀로 잠수교를 건너간다. 고속버스 터미널 옆에서 오늘 특공임무를 같이할 동지들과 접선한다. 처음 만나는 반포동이님 시라소니님과 수인사를 나눈다. 두 분 모두 키와 체격에서 싼타페를 압도하는게 상당한 고수의 분위기를 풍기신다. 곧 오늘 번개를 위해 차량서비스를 흔쾌히 제공해주신 카리스님과 그레이스가 등장한다.
난 오늘 소위 개척번개라고 하는 모임에 처음 참가한다. 왈바의 2.3클럽에서 주관하는 번개다. 어느 정도는 길을 찾아 헤매고 끌거나 메고 가야 할 것을 각오하면서도 번개안내에 올려진 사진으로는 능선이 제법 길고 자전거를 타는 구간도 적지 않게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승합차에 자전거 싣고 출발한다. 동부간선도로가 거의 끝나는 장암역 부근에서 트윈파파님을 태우고 의정부로 향한다. 트윈파파님 아이디의 내력을 물어보니 5월이 되면 쌍둥이아빠가 되신단다. 도합 2남 1녀를 거느리게 되신다니 남은 하나 낳아 키우기도 어려운 판에 정말 능력있는 멋쟁이다.
행선지는 경원선의 종점인 연천군 신탄리의 고대산. 해발 860미터로서 민간인이 갈 수 있는 최북단의 산이다. 9시 15분경에 도착한다. 가는 길에 연천에 다 와서 양지님 차와 조우한다. 신탄리에 도착하니 엠사분들 벌써 와 계신다. 윤티, 푸르뫼, 주목, 갈메기 그리고 아마 제일 좌장격인 또 한분(아이디를 확인하지 못해서 죄송) 모두 다섯 분이신데 복장이나 얼굴 표정이 벌써 노련미가 확 풍긴다. 잠시 후 오늘의 번장이신 짱구님 도착한다. 감기로 인해 참가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번장의 몫을 다하기 위해 간신히 오셨다 한다.우선 역전식당에서 식사하고 막걸리 작게 한잔한 후 출발한다. 초반부터 상당히 빡센 경사도로 기를 죽이는 위풍당당한 임도 업힐이 나타난다. 싱글트랙 진입로까지 약 15분 정도 걸린 오르막, 주목님 노익장을 과시하며 당당하게 1위로 도달하고 싼타페 여유있게 2위로 간다.
여기서부터 고대산의 양두구육 - 그 정체가 드러난다. 벌써 하산하는 등산객들의 이야기가 기대를 여지없이 깨부순다. “여기 올라가봤자 탈 곳 없을텐데, 끌끌” 오잉, 그러면 안되는데. 이후 7부 능선까지 약 40분을 계속해서 아주 약간의 끌바와 징글맞게 긴 메바로 진행한다. 예수님이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를 진채 골고다를 올랐다면 난 머리통을 지져대는 헬멧을 쓰고 어깨가죽을 파고드는 자전거를 지고 “쓰고 큰 뫼(?)” 고대산을 기어오르고 있다. 허지만 양자사이에 다른 점도 있다. 골고다 정상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고대산 정상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신나는 내리막이 흐 흐. 그래 그거야 이 모든 괴로움은 단 한번의 재미있는 딴힐로 확 날려보내는 거야! 오호 애재라! 이 때까지도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하게 될 줄은 꿈에서도 몰랐었다.
싼타페는 메고바이크도 참으로 변화무쌍함을 맹세컨대 생애 최초로 실감한다. 어깨에 메기, 옆구리에 끼어서 들기, 한손으로 쥔 채 어깨위로 들기, 옆으로 올려 등판에 메기 -이것도 크랭크쪽을 등판에 대느냐 아님 반대쪽을 대느냐, 핸들바의 처리는 어떻게 하느냐 등등에 따서 무지무지 다양한 자세가 나옴 - 이 모두가 어떻게 하면 힘 좀 덜 들이고 어깨 안 아프게 오를 수 있을까 하는 내 JQ실력의 총동원체제에서 나온다.
우직하게 가다보니 어느새 결코 나올 것 같지 않았던 6부 능선에 도달한다. 의외로 일위로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쉬는 도중, 지나가는 등산객들의 격려성 칭찬 - 맨몸으로 오르기도 힘든 여길 어떻게 자전거까지 들고 - 에 촌음이나마 자기만족성의 우쭐감을 느껴본다. 엠사에서 오신 장로님들 체력이 상당하시다. 별로 힘든 기색 없이 사뿐사뿐 올라오신다. 몇일 전의 산악오토바이 부상으로 무릅이 편찮으신 카리스님과 감기에 시달리는 짱구님이 제일 마지막이다. 시라소니님과 반포동이님 급경사를 다시 내려가 두 분의 자전거를 날라주는 동지애를 발휘하여 주위를 감격시킨다.
정상까지의 2단계는 엠사에서 온 장로님들을 먼저, 연이어 다른 분들을 보내드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출발한다. 2단계에서는 좀 탈만한 곳이 있겠지. 희망 섞인 기대와 함께 자전거를 다시 어깨에 올린다. 초반 약 20분의 급경사 업힐. 길이 좁아서 어깨에 멘 자전거가 길가의 나뭇가지에 자주 걸린다. 아무리 오르고 또 올라도 계속 이어지는 암벽 섞인 급경사밖에 없는 데에 다소 지친다. 급경사 끝나는 지점에서 약 10 미터의 평평한 싱글을 발견한다. 환호작약하며 자전거에 올라타 출발하려는 순간 나도 모르게 다리가 힘을 잃으면서 옆으로 기우뚱 - 으악 얼굴이 따갑다.
으잉! 알고 보니 길옆에 바짝 붙어 자란 진달래가지에 안면이 확 쓸려버렸다. 상처가 났을까 안 났을까 궁금하지만 거울이 없는 관계로 그냥 간다. 얼마 후 지나가는 등산객 아주머니 왈 - "아저씨 얼굴이 많이 긁혔네요."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이후 무척이나 쓰려오는 속을 부여잡고 메바에 전력투구해보지만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집에 돌아가서 직장에 가서 얼굴의 상처보고 물어오는 인사들을 다 어떻게 받는담 - 그 잘나게 타는 자전거 실력으로 설쳐대더니만 *좋다! - 뭐 이런 식의 힐난이 올 수도 있겠지. 에구구.
다시 약 40분의 숨가뿐 메바 업힐. 급경사에 길마저 좁아서 등에 멘 자전거처리가 매우 어렵다. 계속 옆의 나뭇가지가 자전거를 잡으면서 진행을 방해한다. 헥헥 대면서 군부대경비초소가 자리잡고 있는 고대산 정상(860미터)에 도달한다. 2004년 4월 15일 고대산정상 - 해는 났지만 다소 흐리다 - 앞으로 나타날 내리막을 예고하는 걸까? 북한지역은 그다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아래 쪽으로 멀리 좌우로 뻗은 임도가 분명히 보인다. 다음에는 저기를 타면 재미 있으리라. 모두들 약 15분 휴식하면서 간식과 막걸리를 든 후 내려가기 시작한다. 싼타페는 특유의 만만디로 꾸물대다가 제일 꼬래비로 출발한다.
약 10미터 자전거를 타보고는 다시 본격적인 메바 자세로 돌입한다. 무릅인대 수술 이후 내리막에서는 잘 굽어지지 않으려는 왼쪽 무릅의 통증을 달래가며 연이어지는 급경사를 내려간다. 조금이라도 탈 만한 곳이 나오면 악착같이 시승해보지만 얼마 못가 다시 내려야 한다. 정상을 떠난지 얼마 안 돼서 트윈파파님을 따라잡는다. 그런데 트파님 좀 힘들어하시는 눈치이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마음을 바꾼다. 오늘 번개의 번짱과 다른 고수님들은 벌써 앞질러 간 모양이다. 나마저 그냥 가버리면 이 분 혼자 남게 되는데 뭔 일 생기면 도와줄 이가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 저도 초보인 주제에 남아서 같이 천천히 가기로 한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기껏해야 펑크 수리정도라서 별 힘이 못 되겠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옆에 있어주면 심리적인 안정감은 줄 수 있지 않을까? 이후 좀 타거나 메고 내려가서 트위파파님 오실 때까지 기다려서 다시 출발하는 식을 되풀이한다.
조금 진행하다보니 중간에 경사도는 좀 높지만 도전해볼 만한 코스가 나와서 오늘 탄 것중 제일 재미있게 타고 내려가본다. 다시 한참 기다린다. 트파님 다리에 힘이 빠지셨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딱히 도와드릴 만한 체력도 못되는 지라 기다리면서 사고 안 나기만을 기원한다. 덕분에 나는 만고강산 유람조로 널럴하게 내려간다.
이런게 개척인가? 너무 힘들고 재미없다. “아무리 개척번개라 해도 자전거모임인데 최소한 20-30%는 탈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며 속으로 투덜대본다. 오늘 초반 임도 약간 빼면 아마 5%, 많아야 10%나 탔을까? 그렇지만 누굴 탓하랴. 결국은 모두 내가 결정하고 내가 스스로 한 것인데. 그래, 부처님도 예수님도 그랬어. 모든게 마음먹기 달렸고(일체유심조) 그 모두가 내 탓이라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건질게 있는 법이고 생각의 가닥만 잘 잡으면 즐거울 수 있는 거야. 내 비록 지금은 힘들고 재미없어도 다리힘은 강해지겠지. 오늘 자전거를 덜 탄 만큼 내일 타는 자전거는 배나 더 재미있지 않을까?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역경을 이겨낼수록 더 익어가는 게지. 갠 날이 있으면 흐린 날도 있고 비가 온 다음엔 화창한 날이 오잖아? 라는 식의 위안성 반문으로 스스로를 다스리며 계속 하강.
쌍동이아빠님 오늘 정말 많이 고생하셨다. 다른 일행은 벌써 다 내려가서 기다리면서 셀폰을 보낸다. 알고 보니 님은 예전 오토바이 사고로 대수술을 해서 한쪽 다리가 불편하시단다. 그래서 내리막이 무지 힘들다고 하신다. 왼쪽 무릅의 인대 수술 이후 내리막이 여의치 않은 나하고는 동병상련이다. 여하간 우여곡절 끝에 다 내려와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아닌 갈채를 받으면서 본진에 합류한다. 역시 고수는 말 없이 행동으로 보여 주는 법. 엠사 장로님들 어느새 모두 내려와서 한참을 기다리셨나 보다. 모두들 생생하고 (기다림에) 지친 얼굴이다.
아! 내 얼굴의 상처. 모두들 한 마디씩 거든다. 웬 상처냐고. 주목님 왈 - “기왕에 난거 다른 쪽 얼굴에도 상처를 내면 어때요. 완조오니 염장성 코멘트.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님의 말대로 해 가지서리 아메리카로 이주해서 Indian Reservation으로 입주해버릴까요. 에잇, 열 받는데 지금부터 아이디나 바꿔 버릴까보다. 뭐냐고? 당근 Scar Face지.
번장 짱구님, 감기에도 불구하고 이 험난한 코스 아무 사고 없이 대원들 끌고 임무 완수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참가하신 모든 분들 특히 엠사에서 오신 장로님들도 한 수고 하셨습니다. 다음 번에는 기회가 되면 오늘보다는 조금 덜 험한 곳에서 한번 더 뵙지요. 그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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