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번장을 하면 피곤한가보다.
청소번개의 후기를 쓰자니 좀 쩍팔리고(^^) 안쓰자니 책임을 회피하는 듯 하고. 더구나 일요일 번개의 내용 자체가 지 입으로 말하기는 좀 쑥스럽고 낮간지럽기도 하고 의당 할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면 잘난체를 바닥에 깐 인터뷰용 멘트같은 꾸리함도 풍겨나니 괜시리 뒷머리를 긁어보며 시작한다.
결혼을 하면서 집을 구하러 발품을 팔때 내 선택의 기준은 녹색과 가까운 곳이었고 마눌의 기준은 도시가 주는 편의성이었다. 그 기준에 맞아떨어진 동네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다. 베란다 건너편으로 작은 동산의 신록이 눈의 피로를 풀어주고 잔차를 끌고 5분만 가면 장수산이 시작이다. 그 산을 넘으면 바로 신월산인데다 안양천으로 내려가 20분이면 공장에 도착하니, 서울에서 찾기 힘든 이런 환경이 나의 선택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데 이런 환경을 나는 누리기만 할 것인가. 좀 이기적이지 않나? 말로는 자연과 생태와 녹색을 외치지만 까놓고 하는 짓이라고는 산을 놀이기구의 하나로 생각하는 아닐까. 물론 나 자신도 99.45% 이기적이고 놀이와 레저의 대상으로 자연을 생각한다. 그런데 나머지 0.55%가 발동한 것이다. 당연히 알콜과 떼의 위력을 등에 업은 술벙이라는 정상이 안닌 상황에서 저밑에 자리잡은 "책임과 의무"라는 단어가 슬며시 고개를 내민 것이다. 이게 나에게 "신월산 청소번개"가 다가온 과정이다. 역시 꾸리하다. 도대체 너의 "선의지"라는 것은...ㅠㅠ
렛츄에 의견이 날아다니고 결국 날짜가 정해진다. 2004년 5월 30일 오후2시
일요일 느즈막히 마눌이 챙겨준 도시락(산타님! 초밥은 울 마눌 전공임다. 딴거는 제가 다하는데 그것만...^^)을 챙겨넣고 집을 나선다. 공교롭게도 새로 바꾼 프렘이 처음 산에가는 날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은 반푼어치도 안하고 수퍼에 설설 도착하니 1시20분. 버스정류장에 엠티버 한분이 계신데 영 낮이 없다. 역시 좀있다 가던 길을 가신다. 서있기도 귀찬고 슬며시 정류장 빈자리를 채운다. 아까부터 있던 넘처럼...^^
2시가 되니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셨다. 오자마자 망치를 꺼내신 미디캡님, 부상자 레이님(너무 오래 우려먹는건 아니신지..^^), 중학생 중규, 최고령(^^) 토담님, 보고픈님 등등 평소 사진에서 보이던 얼굴이 거의 다 모였다고 치고 일단 출발한다. 화물터미널 옆길로 건너는 길에 한분이 또 오시네. 삽 한자루를 들고 목동님이 사모님과 함께 등장하신것이다. 삽과 복장이 오늘의 십장으로 충분하신 모습....
오늘의 목표는 헬기장거쳐 절개지까지 쓰레기 청소. 비닐 봉다리 하나씩 허리에 차고 산길을 타고 끌며 오른다. 나물캐는 할매들도 아니고 익숙하지 않은 무장이지만 보기는 좋다. 헉헉거리기 바빴던 길에서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올라가니 쓰레기가 장난이 아니다. 뭔가 허연 각질이 있어 들어보니 갈비 조각이다. 그것도 홀로 떨어져 있는 갈비 조각이니 걸어가면서 갈비를 뜯고 버렸다는 추리를 해본다. '참 대단한 갈비구만'.
봉투 하나씩 차고 모두들 쓰레기 줍기에 여념이 없다. 개인적인 판단에 다들 쓰레기 청소에 일가견이 있는 듯하다. 누구에게나 싫은 과거가 있지 않은가. 굳이 알려고 하지 말자. 싱글 주변의 쓰레기도 만만치 않았지만 역시 사람들이 쉬어가는 장소가 대박이었다. 등산화를 타던 잔차를 타던 무서운건 사람이다. "서울 갤로퍼가 나타나면 동네는 끝장이래요."라고 말하던 강원도 이장님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쉼터에 도착하면 산개하여 쓰레기를 치우고 다음 장소로 이동이다. 이동 중에 보이는 쓰레기 줍고 담고 이동해서 다음 쉼터를 치우고 하는 일은 그리 문제될게 없다. 문제는 차들이 다니는 고개 마루 주변이다. 여지없이 쓰레기가 쌓여있고 어떤 곳은 우리가 범접하기 어려운 매립지였다. 길 주변의 보이는 쓰레기를 치우고 봉투에 담고 일부 운반조가 작동공원으로 출발한다. 청소라이딩도 빡시게 도는 베레모님이 헬기장쪽은 다 치웠다니 남은 사람들도 작동으로 출발한다. 운반조는 고생좀 하셨을 거다. 그 많은 양을 손으로 들고 내려가려면 손가락 마디가....^^
작동공원은 역시 즐거운 마당이다. 음료와 물을 준비하고 가져온 군것질거리를 까먹고 날은 찌뿌드하지만 모두가 즐거워하는 모습이 좋은 곳이다. 이런 공간이 없다면 찌들린 한주를 어디서 벗어던질지 모를 일이다. 아마 다른 수단이 있었겠지만 어디 이 기분에 비하랴.
마지막 목표인 절개지로 향한다. 신월산 다운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절개지 측사면에 난 길이다. 산타님이 불같은 투지로 밞아놓은 그 곳으로 가는길. 헛..이게 모야. 나무로 만든 계단을 지지하는 철근이 토사유출로 인해 나무 위로 튀어나왔다. 이거 걸리면 용코로 갈께 뻔하다. 게다가 노인분이나 애들이 이 쪽으로 넘어지면 119 부르는 일이 벌어질지도. 앞서 가던 미디캡님을 호출한다. 망치가 드디어 쓰임새를 찾아 혁혁한 전과를 보이고 다시 절개지로..
절개지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많은 비에 토사 유출이 심각한 상태였고 길 가운데 엠티비 바퀴 자국이라고 볼수 밖에 없는 선명한 골은 이 길로 다녀서는 복구구는 딴나라 얘기를 라는 걸 애원하고 있었다. 방법은 폐쇄결정. 등산객도 다녀서는 안되지만 일단 잔차라도 통행을 자제해주십사 하는 마음에 팔 걷어부치고 유실된 계단용 통나무 찾아 장애물을 만들고 삽으로 흑을 퍼나르고 망치로 지지대를 박아 넣은다. 마무리로 수염풀 몇삽 떠다 착근을 기원하고 고사목으로 바리케이드를 만든다. 여길 잔차로 넘으려면 길이 2미터 높이 1미터의 바니홉에 고속 다운힐 밖에 없다는 믿음을 새기며 옆 계단으로 내려온다. 그런데 옆계단도 장난이 아니네. 결국 아파도 부상부위를 밝힐 수 없는 서러움으로 들고 내려온다....ㅋㅋㅋ
혹시 절개지를 타는 재미를 잃으셨다고 분노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옆계단을 이용하시면 산도 살고 기량이 상생하는 라이딩이 되리라 믿는다. 타협의 예술이라고나 할까. 절개지에서 단체사진을 끝으로 갓잖지만 소중한 기억을 더하고 청소번개를 끝냈다. 치운 쓰레기의 양은 변변치 않을지 몰라도, 양심의 가책을 면하기 위한 삽질이 몇번에 그쳤을지라도 각자의 면면에는 따뜻한 미소가 자연스레 번지게 만든 번개였다. 결국 청소라는 이름으로 또 하나의 즐거움을 만드는 번개였던 것이다.
뒷풀이를 위해 일단 슈퍼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로드로 복귀하려는 순간 토담님이 내뱉은 한마디 '이제 좀 타야쥐...ㅜㅜ'. 이 말과 함꼐 토담님은 120rpm으로 언덕으로 사라지고 외박군인 램프님이 뒤따르고 나는 쪽팔릴까봐 뒤따르고 하튼 이때부터 무신 바람이 불었는지 수퍼까지 거품물며 쫓아간다. 계단다운 끝내고 수퍼에 도착하니 그 짧은 거리에 20분이 차이가 났다나 어쨌대나. 탄게 20분이 안되는 것 같은데 무슨 조화인지.
잔차꾼들 모인 2차가 별거있나.션한 맥주에 또 잔차 얘기지. 결국 가까운 시일내에 20키로 평속 맞추기 강화로드벙개를 개최하기로 결정하고 해산한다.
어찌 어찌해서 청소벙개라는 이름으로 모임도 갖고 쓰레기도 치웠다. 크게 평가하자면 큰일이고 쉽게 보자면 별일도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오르는 산을 조금은 다른 눈으로 보고 접근하는 기회가 아니였을까. 그냥 거기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는 산을 본 날이라면 너무 거창할까.
별로 한일도 없는 것 같은데 지나가면서 쓰레기 봉투를 든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격려 겸 인사를 잊지않는다. '거 수고하네 쉬운일 아닌데'라고 던지는 한마디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고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는 하루였다. 그 격려와 고마움에는 다같이 이용하는 산에 대한 미안함이 숨어있는듯했다. 그 미안함이야 평생이지만 아주 조금이나마 덜어지지 않았을까라는 건방진 자위를 해본다.
오늘 나와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고 먹고살기 깝깝한 사정땜에 다음을 기약해주신분들을 위해 지양(신월)산 배수로 보수 벙개를 장마철에 대신 쳐드리겠습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특히 아랫분들...^^
삽협찬 : 목동님
망치협찬 : 미디캡님
허벅지협찬 : 베레모님
음료수협찬 : 레이님
쓰레기운반 : 디원바이크님
까만봉투 세개 : 작동공원 슈퍼아줌마
9,000원 할인 : 호프집쥔장
이상....^^
* 아 글구 3만원 남았습니다. 담에 쏘는데 보태도록하겠습니다.
강화도 왕복은 아마 6월 13일이 될 듯합니다. 다들 날을 받아놓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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