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이 펄럭인다.
하얀 깃발이 펄럭인다.
새하얗다 못해 파란 깃발이 펄럭인다.
파랗다 못해 시퍼런 깃발이 펄럭거린다.
끝없이 돌아나가는 산등성이 모퉁이 길을 휘돌다가
하늘을 뒤덮고
억장으로 무너진 이글거리는 눈동자.
주시하라.
그것이 무엇이관데 그러느냐.
그곳이 어디관데 그러느냐.
그곳에 무엇이 있어서 그러느냐.
누가 널 부르느냐.
거역 못할 영험한 힘을 지닌 절대자 있어
부르는 염력에 이끌려 떼 지어 무리로 각축을 다투며
달린다. 달린다. 달린다.
물이 튀고 땀이 튀고
피가 튄다.
악문 이 사이로 거친 숨 몰아내며
퍼렇게 날이 선 허벅지의 살이 떨린다.
맹렬히 쏟아 붓는 폭우를 뚫고
검은 마수를 들이미는 어둠을 쪼개며
그들이 간다.
경배할 거대한 대자연의 위대함에
고개 숙이며.
그곳은
내가 갈 곳이 아니다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니 아니, 정확하게 그곳은 내가 못갈 곳이다가 맞겠습니다.
이름만으로도 기가 죽어 슬쩍 눈길을 피하곤 했던......
내가 무슨 이유를 들고 어떤 속임수를 써서 그곳에 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가지 못할 곳이다.
그랬습니다.
그곳은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결국엔 욕심만 내다가 말라 죽을 것이다, 라고 중얼거리기만 하던 곳.
네 따위가 어찌 감히 거길 간단 말인가? 하고 누군가 버럭 소릴 지를 것 같아 말도 못 꺼냈던 곳.
자랑스러운 참가기를 숨죽이며 읽어내기만도 가슴이 벅찼던 곳.
결국 치명적인 유혹을 참지 못해 가기로 맘을 먹고, 나쁜 짓을 하다 선생님께 들켜버린
어린 학생처럼 민망해 혼자 가슴만 쿵쿵거렸던 곳.
2004년 280랠리!
그곳에 갑니다.
용기와 모험과 도전정신에 가득 찬 전사들의 일원이 되어
그곳에 갑니다.
뭇 사람들의 응원과 성원과 찬사를 온몸에 받으며
그곳에 갑니다.
심장의 고동이 팽창해 폭발하는 엔진처럼 쿵쿵거립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출정하는 전사들이 속속 모여듭니다.
차가운 저녁 바람이 무색할 정도로 열기가 느껴집니다.
자랑스러운 자신만의 무기를 끌고 전장에 나가는 용사처럼 그들에게서 두려움 따위는 느낄 수가 없습니다.
수송부대와 병참부대 역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출정만을 기다립니다.
나만이 초라한 무기에 자신 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봅니다.
용감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전투조의 면면입니다.
교통편이 불편해 아예 울산에서 서울로 와버린 손오공님!
오디랠리에 이어서 이번랠리에도 출정하시는 mtbiker님!
산악자전거는 무조건 빡씨게 타는 거여, 십자수님!
카랑한 목소리에 항상 밝은 표정의 treky님!
현지로 오실 박공익님과 깜장고무신님. 그리고 정병훈님과 그리운 벗님!
그리고 전투조보다 힘든 수송과 병참 부대원.
공식지원부대장 뽀스님과 그건그래님! 와일드바이크 대장 바이크홀릭님!
시간은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자전거와 보급품을 수송차량에 올리고 출발합니다.
심장이 요동칩니다.
드디어 출발입니다.
한강변에 줄줄이 늘어서있는 가로등의 불빛들이 아스라이 멀어집니다.
어두운 강변대로를 뚫고 질주합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아무것도 생각나질 않습니다.
고속도로에 올라서자 문득 무서워집니다.
내가 다시 돌아 올 수 있을까?
마치 영영 돌아 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사람처럼 불안해 집니다.
방정맞은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잠을 청해봅니다.
긴장되고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습니다.
웅웅거리는 바람소리가 차창을 때립니다.
오만가지 생각에 한참을 뒤척입니다.
무릎이 견뎌줄까? 그동안 개인적으로 했던 훈련의 성과는 얼마나 있을까?
비가 오면 어쩌지? 가만, 행동식이 부족하지 않을까?
어후~ 이러다 혼자만 낙오되면 어쩌나?
쓸데없는 생각으로 한참을 맘 졸이다가 머릿속이 가물가물해지며 잠에 빠져 듭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누군가 내 이름을 부릅니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어느새 북평초등학교 숙암분교입니다.
벌써 도착해 있는 다른 팀들의 모습이 분주합니다.
몸놀림이 빨라집니다.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자전거를 점검하고 지도를 보며 작전회의를 합니다.
몹시 분주한데다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아 무슨 말인지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습니다.
번호판을 달고 라이트 탑재, 체인에 기름칠도 합니다.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집니다.
대한민국은 참 좋은 나라입니다.
강원도 산골의 작은 초등학교 분교인데도 화장실이 너무나 깨끗합니다.
어릴적 다녔던 학교의 화장실을 생각했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소변기 앞에 다가서니 ‘이 화장실은 푸세식입니다’ 라고 써 있습니다.
뭘 그런걸 친절하게도 써놓았나? 의아해하며 다시 자세히 보니 푸세식이 아니라 포세식입니다.
변기에는 물을 내리는 버튼이 없습니다.
물 대신에 비누거품이 포직포직 소리를 내며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첨 봤습니다, 포세식 변기.
정말 신기합니다.
서울 촌놈입니다.
소변기 말고 대변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도 물론 물을 내리는 단추 같은건 없습니다.
응가는 그냥 직공으로 뚫린 변기 아래로 떨어지게 되어있고 역시 거품이 천천히 흘러내립니다.
냄새 전혀 없습니다.
역시 친절하게 안내문구가 써있습니다.
‘응가 후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화장실 때문에 저처럼 처음 본 사람들은 한참동안 재미있어 합니다.
나만 촌사람 아닙니다.
뭘 좀 먹고 싶은데 음식이 입에 들어가질 않습니다.
깜장고무신님이 차에서 엄청나게 큰 아이스박스를 꺼내들고 오셨는데 두 사람이 들어도 무거울 지경입니다.
도대체 뭐가 들었나 하고 다들 의아해 하며 뚜껑을 열어보니
우와~ 식료품점 하나를 통째로 들고 오신 것 같습니다.
어찌 이럴 수가......
라면을 끓여 다들 한입씩 먹습니다.
바나나 하나를 입에 넣고 우물거립니다.
아무런 맛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시간은 벌써 4시가 가까워집니다.
극도의 긴장감에 빠집니다.
턱이 덜덜 떨려오고 허벅지가 후들거립니다.
브레이크에 걸려있는 손가락에 힘을 꽉 주어봅니다.
드디어 출발신호가 떨어집니다.
제1구간 단임골 48km의 시작입니다.
팀별로 숙암분교 교문을 빠져나가기 시작합니다.
왈바팀도 파이팅을 외치며 달리기 시작합니다.
잠깐의 도로 라이딩이 끝나고 본격적인 산악구간에 접어듭니다.
아~ 이런!
처음부터 사람을 잡습니다.
시작부터 상당한 오르막입니다.
몸도 풀리기 전에 거칠고 높은 각도의 오르막을 오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전날 내린 비로인해 노면의 상태도 좋지 않습니다.
날카로운 돌들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고 땅은 미끄러우며 바람은 아주 습합니다.
더운 입김을 훅훅~ 거리며 언덕을 오릅니다.
절반쯤 오르자 허벅지가 떨려옵니다.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에서 내려 끌기 시작합니다.
내리고 싶어집니다.
악을 쓰며 좀 더 올라 가봅니다.
한참을 올랐는데도 정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자전거에서 내려 끌며 한 굽이 돌아갑니다.
그러나 끄는 것 보다 천천히 라도 타고 가는 게 더 쉽고 빠르다는 걸 알고 있기에 다시 올라탑니다.
얼마를 올라가니 이제야 정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잠깐 쉬다가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내리막과 자그마한 오르막의 연속입니다.
조금씩 어둠이 걷히기 시작합니다.
라이트의 스위치를 내립니다.
검은 어둠 속에 감추고 있던 단임골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납니다.
문득 어둠이 완전히 걷히고 산은 뽀오얀 속살을 내보여 줍니다.
아~
아름답다 라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모든 아름다움의 형용사를 다 끌어 모아도 표현하지 못합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가 대자연의 앞에서는 그 표현의 한계에 여지없이 가로막히고 맙니다.
산은 높고 골은 깊습니다.
그 끝없는 골짜기마다 하얀 안개를 길게 걸치고 있습니다.
무겁게 내려앉은 산들은 깊은 골짜기로부터 파란 안개를 끝없이 피워 올리고 있습니다.
넋이 나간 듯 자전거를 멈추고 장쾌한 산맥을 굽어봅니다.
강원도의 산은 다릅니다.
그 모습이 수려하고 높으며 깊고 푸릅니다.
자비로운 대지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앉아 있습니다.
그대여!
젓을 바라는 아이와 같은 나를 어머니의 품처럼 부드럽게 품어 달라!
마음속의 긴장감이 조금씩 풀어집니다.
속도를 조금씩 올려 달려봅니다.
시작부분의 힘든 오르막을 통과하고 나서부터는 조금은 수월합니다.
왈바팀과 조금 떨어져 십자수님과 함께 달립니다.
긴장이 풀어지니 몸도 유연해집니다.
온몸에 땀이 베이기 시작합니다.
얼마를 달렸을까요.
긴 다운힐입니다.
정신없이 내리쏘다가 보니 1차 지원 포인트입니다.
시간은 아침 7시가 조금 넘어서 있습니다.
다른 팀의 선수들도 속속 도착합니다.
아침을 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왈바팀은 지원 포인트에서 끓이는 음식을 하지 않기로 계획을 세웠던 터라
따뜻한 음식은 먹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걱정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엄청난 화초장인 깜장고무신님의 아이스박스가 있으니까요.
개인이 준비한 식량과 화초장에서 음식을 꺼내어 닥치는 대로 먹습니다.
그런데 분명 끓이는 음식을 하지 않기로 했는데 한쪽 옆에서 뭔가 끓고 있습니다.
뭘 끓이는지 물어보니 홀릭님이 고기국이랍니다.
호오~ 너무 반갑습니다.
예상치 못한 따뜻한 음식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지원 대장이신 뽀스님의 작품이라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뭔가 끓고 있긴 한데 뭔지 모르겠습니다.
뽀스님이 오시더니
어이~ 잘 끓었네. 이거 한잔씩 마셔. 하시면서 종이컵에 그 고깃국이라는 걸 한잔씩 떠줍니다.
기름이 동동 떠있는 걸로 보아 분명 고깃국이 맞긴 한데 좀 이상합니다.
이게 뭔 고깃국인가요?
쿠하하하핫~
뽀스님이 웃기 시작합니다.
옆에 서있던 홀릭님이 그럽니다.
육포국 인데요.
육포라면......
그렇습니다.
행동식으로 애용되는 그 육포말입니다.
그걸 쌍둥쌍둥 잘라서 맹물에 넣고 그냥 끓이셨답니다.
다들 뒤집어집니다.
홀릭님은 그래도 고기맛은 나네, 하며 육포 건더기를 연신 집어 드십니다.
하지만 그거라도 끓여 따뜻한 국물을 전투원들에게 먹이고 싶은 뽀스님의 마음을 어찌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뽀스님의 따뜻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그 정성을 마다할 수 없어 한잔을 다 비웁니다.
정말 최고의 맛입니다.
잠깐 길바닥에 누웠는데 깜빡 졸았나 봅니다.
누군가 큰소리로 깨웁니다.
갑시다, 2구간.
십자수님입니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납니다.
이제 2구간 가리왕산 65km의 시작입니다.
다시 행동식을 챙기고 체인에 기름을 바릅니다.
지원조의 파이팅 구호를 들으며 힘차게 출발합니다.
다시 잠깐 동안의 로드를 타고 임도로 진입합니다.
그 유명한 가리왕산의 시작입니다.
임도로 진입 하자마자 이럴수가.
다시 오르막입니다.
1구간 시작부분의 오르막과 비슷한 경사인데 거리는 훨씬 더 깁니다.
마음이 바빠집니다.
조금씩 무리를 하게 됩니다.
한참을 올라가는데 뒤따라오던 십자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통나무집이 서있는 삼거리까지 올라가 잠깐 쉬며 기다려 봅니다.
한참 후에 올라오시는데 좀 힘들어 보입니다.
허리가 아파 잠깐 쉬었다 오시는 길이라고 합니다.
계곡수에 얼굴을 씻고 몸의 열기를 식힙니다.
삼거리에서 철조망을 왼쪽에 끼고 좌회전해서 마항치까지 가야합니다.
그러나 거리가 27km로 표시 되어있고 우회전하면 그 절반의 거리로 마항치까지 갈 수 있습니다.
우리 일루 가까요?
그러까? 흐흐~~
짐짓 여유를 부려봅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우회전 하여 끝없이 세워져 있는 철조망을 왼쪽에 두고 달립니다.
산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인간의 오만에 의해 산은 심장 한복판에 강력한 철망을 박아두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철망을 쳤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철망이 1m, 10m, 100m, 1000m 끝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위대한 대자연의 심장부에 섬뜩한 쇳날을 튼튼하게 박아 넣은 인간들.
아가미가 막혀 헐떡거리는 물고기의 거친 숨소리처럼 산의 절멸할 듯한 숨소리도 들리는 듯 합니다.
코스는 지루합니다.
길고 완만하며 바닥의 상태는 역시 좋지 않습니다.
말랑말랑한 맨땅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십자수님과 잠깐씩 멈춰 서서 뒤떨어진 팀원들을 기다려 봅니다.
하지만 금방 쫒아오지 않습니다.
가리왕산은 그 규모가 대단합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능선과 봉우리들이 수없이 교차하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농도의 차이를 만들어 내
마치 거대한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 합니다.
산의 장쾌한 위세에 눌려 하늘이 오히려 좁아 보입니다.
다시 달립니다.
달리고 달려 마항치에 도착합니다.
2구간의 첫 번째 목표지점입니다.
그리고 벽파령을 넘어야 합니다.
마항치에 오르니 누군가 어서오셔 합니다.
가까이 가보니 화약폭파님이 웃으며 맞이합니다.
반갑게 인사합니다.
어깨가 너무 아파 계속 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합니다.
얼굴색이 좋지 않습니다.
몇몇 분들과 한참을 쉽니다.
내가 엉덩이가 아프다고 했더니
‘좋은게 있긴 한데......’ 하며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는데 마치 커다란 립스틱처럼 생겼습니다.
‘뭔가요?’
‘엉덩이에 바르는 건데 말이죠 이걸 바르면 통증이 한결 나아질 겁니다.
근데 은밀한 부위에 바르는 거라서 혼자 써야 하는 건데......‘
‘히~ 그럼 그냥 두셔요.’ 하니
‘그게 아니라, 아까 조 아래서 어떤 어른과 잠깐 같이 쉬었는데 말이죠,
엉덩이가 너무 아프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이걸 드렸는데 그걸 그냥 통째로 엉덩이에 대고는 쓱쓱......’
허억~
‘받아서 자세히 보니 뭐가 묻어 있더라구요.’
'뭐가 묻어 있었는데요?'
'털요.'
'어흑~' -_-;;;
‘발라봐요.’
아~ 무척 우울해집니다.
저걸 발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
바르면 분명 효과는 있다고 하시는데 갈등입니다.
‘이걸 어찌 발라야 하나요?’
궁리하다가 결국 손에 묻혀서 엉덩이에 바릅니다.
다시 일어나 십자수님과 화약폭파님,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 달립니다.
한참을 달리는데 호오~ 아까 바른 그 약이 효과가 있긴 있습니다.
한결 엉덩이가 부드러워 집니다.
갈등이고 뭐고 좀 더 발라둘걸 하는 후회를 해봅니다.
벽파령을 넘어가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십자수님은 각오를 단단히 하신 듯 벽파령 오르막에 대한 투지를 불사릅니다.
마항치에서 한참을 다운하다가 오른쪽으로 시멘트 오르막이 나타나면 그길로 올라 가야합니다.
한참 다운을 하는데 오른쪽에 좁은 시멘트 오르막이 보입니다.
저기가 벽파령의 입구인가보다 하고 가는데 그길로 몇명의 선수들이 접어들어 우왕좌왕합니다.
그런데 직진길을 보니 무수한 자전거들의 바퀴자국들이 나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선수들처럼 그 지점에서 길을 잘못 들고 맙니다.
오른쪽 길로 올라섰던 선수들과 함께 직진을 하고 맙니다.
그리고 다시 내리막을 달리는데 모퉁이를 돌던 화약폭파님이 자전거를 세웁니다.
한분이 앉아 계시는데 상태가 심각해 보입니다.
가까이 가보니 오른쪽 쇄골이 골절되어 있습니다.
배수로의 턱을 보지 못하고 달리다가 넘어진 모양입니다.
십자수님이 응급처치를 하려고 해보지만 통증이 심해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해 보시라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뒤이어 따라오신 그 시멘트 오르막에서 철수하신 분들이 일행입니다.
무척 난감해 합니다.
전화도 터지지 않습니다.
약 10분전에 넘어지셨다고 하는데 앞서간 선수들에게 응급구조 요청을 부탁했다고 하십니다.
불행하게도 신청을 늦게 한 관계로 보험가입도 되지 않으신 상태라고 합니다.
결국 일행들이 같이 남고 우리는 다시 달립니다.
시간이 많이 지체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다운에 선두에서 한참을 달리는데 당연히 뒤따라 올 줄 알았던 십자수님과 화약폭파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잠깐 내려서 기다려 보지만 어찌 된 일인지 보이지 않습니다.
금방 오시겠지 하고는 다시 달립니다.
마음이 급해집니다.
돌길이고 뭐고 내리막을 무지막지하게 달립니다.
코너를 돌아나가면 산딸기 줄기의 가시들이 맨살인 팔뚝을 사정없이 긁어 놓습니다.
왼쪽 팔뚝에 피가 고입니다.
쓰라려 오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문득 작은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어느 쪽으로 가야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직 오른쪽으로 나있는 시멘트 언덕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땅바닥에 누군가 오른쪽으로 화살표를 깊게 그려 놓았습니다.
‘오른쪽이다.’
그 결정이 엄청난 실수임을 모르고 오른쪽으로 달려 나갑니다.
계속해서 내리막입니다.
두 분은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어찌된걸까?‘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어둡기 전에 산을 내려가야 합니다.
2구간은 밝은 시간대에 내려올 수 있는 구간이라 라이트를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비비적대며 지체해버린 결과입니다.
자책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잠깐 갈등을 합니다.
‘기다렸다가 두 분과 같이 갈까?’
기다립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내려오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출발합니다.
지금부터는 모르는 길을 혼자 달려야 합니다.
얼마를 달렸을까요?
드디어 오른쪽으로 시멘트 오르막이 보입니다.
그리고 왼쪽 계곡으로 철탑들이 보입니다.
‘찾았다. 벽파령이다.’
시멘트 언덕을 오릅니다.
그런데 이게 엄청난 언덕입니다.
까마득하게 고개를 치올리고 있습니다.
심한 경사에 정신이 아득해 집니다.
1구간과 2구간 시작부분의 언덕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거리 또한 대단히 깁니다.
훅훅 거리며 천천히 올라갑니다.
오르고 오르고 또 오릅니다.
오르고 오르고 또 올라도 끝은 보이지 않습니다.
올라갈수록 점점 경사는 심해집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댑니다.
온몸에선 땀이 비 오듯 쏟아집니다.
허벅지가 벌벌 떨려오고 핸들바를 움켜잡은 손은 조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내리지 않겠다.
나는 지금 벽파령을 넘고 있는 거다.
이놈을 넘어가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네가 아무리 고개를 치켜 올려도 나는 넘어간다.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너를 올라야 한다.
네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나는 결국엔 너를 오를 것이니
그러니 얌전하게 길을 열어 달라.
길을 열어 달라, 제발.
자기 최면을 걸면서 무의식적으로 페달을 돌리고 돌리고 돌립니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거대한 나무가 쓰러져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도저히 지나갈 수 없습니다.
이걸 어찌 지나가야 하나?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먼 거리를 와버렸습니다.
자세히 보니 오른쪽 배수로에 누군가 지나간 흔적이 보입니다.
배수로를 통해 나무 아래로 기어들어 통과합니다.
다시 오릅니다.
도대체 얼마나 긴 언덕인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머릿속이 멍멍해 집니다.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이럴수가......
또 나무가 쓰러져 있습니다.
길들여진 몸은 자동적으로 배수로로 향합니다.
다시 기듯이 통과합니다.
마지막 깎아지른 듯한 언덕을 올라섭니다.
심장이 파열할 듯 쿵쾅댑니다.
입에선 단소리가 나오고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핸들바에서 손을 놓아버리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생깁니다.
클릿을 빼고 자전거를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로 내 던져버리고 싶어집니다.
내 몸뚱이를 내 던져버리고 싶어집니다.
고작 이거였나?
업힐이 좋아 언덕만 나오면 괜히 기분이 고조되곤 했었습니다.
어디 좀 급한 경사가 있다고 하면 찾아가 올라보곤 했습니다.
개인 훈련도 오르막 위주로 했습니다.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요강 씻어 찬장에 넣는다고
그런 곳만 골라 코스를 만들어 타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연유로 주위사람들은 즐거운 업힐러라는 닉네임도 붙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어떤가?
넌 아직 멀었다. 아직 멀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힘이 더 듭니다.
그러나 정말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 어거지로 오릅니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입니다.
정상엔 엄청난 철탑이 서있습니다.
이제야 왔느냐?
거만하게 서있는 철탑이 비웃는 것 같습니다.
거기서부터는 계속되는 내리막입니다.
‘이곳만 내려서면 2차 지원 포인트다.’
정신없이 내리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합니다.
점점 암울해 집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중력에 몸을 내맡기고 아래로 아래로 내리 꽂히는 일밖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길의 내리막은 아무도 간적이 없는 태초의 길처럼 허리까지 이르는 무성한 풀과
칼날 같은 돌밭, 불쑥불쑥 나타나는 배수로의 위험이 뱀의 혓바닥처럼 달려듭니다.
널 온전히 내려가도록 이대로 내버려 두지 않겠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찾아온 것이냐?
너에게 길을 내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겠다.
갖가지 위험요소가 계속해서 발목을 잡아챕니다.
너무 험해서 가끔씩 내려서 끌어야 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인식하지 못합니다.
속도계를 볼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자전거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매달려 달립니다.
아~
인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람의 흔적입니다.
저 아래로 도로가 보입니다.
‘이제 다 왔다.’
조그만 마을로 떨어집니다.
시간은 6시20분!
이제 지원팀을 만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지원팀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계획대로라면 분명 이곳은 조동리 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디에고 조동이라는 글귀는 보이지 않습니다.
불안해 집니다.
전화기를 켜고 뽀스님께 전화를 합니다.
‘아이고! 지금 어디 있어?’
‘아~ 벌써 철수 하셨나요?’
‘철수는 무슨. 거 어디여?’
상황을 설명 드리니 잘못 떨어졌다고 하십니다.
이럴수가...... 할말이 없어집니다.
강하초등학교(?)에서 기다리라고 합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작은 점방에 들어가 초등학교 위치를 물으니 젊은 여자분이 나와 저기 있자나요 하며
손가락질을 하고는 신경질적으로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립니다.
괜히 멀쓱해집니다.
‘시골 인심이......’
초등학교 교문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길바닥에 주저 앉습니다.
가방을 뒤적거려 쏘세지 하나를 꺼내 입에 넣고 우물거립니다.
처량해 집니다.
‘뭐하러 와서 이러니? 꼴사납게스리......’
업친데 겹친격으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쏴아악~ 하는 소리가 천지를 뒤덮습니다.
온몸으로 쏟아지는 폭우를 받아내며 물을 튀기며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봅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30분쯤이 지나니 뽀스님과 홀릭님이 나타납니다.
홀릭님이 엉뚱한 표정으로 그럽니다.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차에 올라타 뽀스님께 묻습니다.
‘십자수님은 내려오셨나요? 다른 팀원들은요?’
‘다 내려왔지, 벌써.’
‘그럼 3구간 출발은 했나요?’
‘아녀.’
영문을 알 수 없습니다.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조동리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있는데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왈바팀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어찌 돌아가는지 물으니 계속 랠리를 진행할지 말지 결정중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옷을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사람도 보입니다.
비는 계속 쏟아집니다.
단 두명만을 제외하고는 모든 선수들이 길을 잘못 들어 이곳에 모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뭐야?
이 많은 사람들이 비록 길을 잘못 들기는 했지만 같은 곳으로 떨어졌는데 난 어찌 된걸까?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바보처럼 죽기 살기로 넘어온 산이 바로 청옥산이라고 합니다.
듣도 보도 못한 산입니다.
정말 바보짓을 했습니다.
허탈하기만 합니다.
랠리의 진행은 3구간을 탈 사람은 가고 나머지는 철수하기로 합니다.
왈바팀에서는 정병호님과 트레키님이 가기로 합니다.
지원차량이 두 사람을 태우고 출발합니다.
왈바의 다른 대원들은 로드로 숙암리까지 돌아가기로 하고 자전거를 몰아갑니다.
비는 계속 쏟아집니다.
그곳이 터전인 박공익님이 앞장섭니다.
강을 끼고 한참을 달리다 조그마한 동네에 들어섭니다.
가게에 들러 음료수 한캔씩 돌립니다.
그러더니 무리를 끌고 시장속으로 들어갑니다.
숙암리에 지원조보다 먼저 도착할테니 기다리는 동안의 먹거리를 사자고 합니다.
메밀전병이며 무침개를 한 봉지 사서 가방에 꾸겨 넣고 다시 달립니다.
이곳에 와서 놀란게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어찌된 일인지 도로에 가로등이 하나도 없습니다.
비는 쏟아지는데 가로등도 없고 차들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빗물을 튀기며 질주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라곤 십자수님의 라이트와 led라이트 두개뿐.
그 불빛에 의지해 6명의 대원이 아슬아슬하게 도로를 달립니다.
너무나 춥고 위험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엄청 긴 언덕도 넘어야 하고 그 언덕을 넘어 내려가다가 길가에 떨어져 있는 돌에
박공익님,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강물을 오른쪽에 두고 계속 달리는데 가도 가도 인가의 불빛은 나타나지 않고 계속되는 어두운 도로뿐입니다.
바람에 날리는 빗방울이 얼굴을 때립니다.
추위와 배고픔에 점점 지쳐갑니다.
차라리 3구간을 타는게 나을뻔 했습니다.
지나가는 타 참가팀의 지원차량이 차창 밖으로 파이팅을 외칩니다.
뭐하자는 거여?
앞서가는 박공익님께 소리칩니다.
‘아직 멀었나요?’
‘아뇨, 조금만 가면 되는데요.’
조금만 가면 된다는 소리를 몇 번 더 들은 후에 결국 포기하기로 합니다.
춥고 배고프고 너무나 위험합니다.
숙암리를 목전에 두고 지친 대원들이 좁은 버스정류장 속으로 기어 들어갑니다.
비를 피하니 그나마 살 것 같습니다.
뽀스님과 홀릭님께 급전을 칩니다.
우리는 도로위에서 조난당했습니다.
280 산악랠리에 도전한 사람들이 산에서가 아니라
도로위에서 조난을 당하고 맙니다.
탈진한 대원들은 할말을 잃고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잠을 잡니다.
기다리는 구조팀은 오지 않습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요?
드디어 홀릭님과 그건그래님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많은 인원과 자전거를 디스커버리로 모두 이동시키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래봐야 자전거 두 대에 사람 두명 뿐입니다.
누구는 먼저가고 누구는 기다려야 하는 그런 상황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단한 끈으로 묶인 팀이니까요.
어쩔 수 없이 뽀스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누군가 그럽니다.
‘아까 사온 거라도 먹읍시다.’
시장에서 사온 메밀전병과 부침개를 바닥에 펼쳐놓고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웁니다.
홀릭님을 채근해서 먹을걸 더 사오라고 합니다.
박공익님과 홀릭님이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가시고,
그러나 여전히 뽀스님은 오지 않습니다.
다행히 지나가시던 뮤즈님을 발견하여 도움을 요청합니다.
숙암까지 가셨던 뮤즈님, 다시 오시고 때를 맞춰 홀릭님 오시고.
홀릭님은 순대를 사오셨는데 뭐 눈치 볼 거 없습니다.
역시 마파람에 게눈입니다.
쪼그리고 앉아 순대를 맨손으로 집어먹는데 그 맛이 대장금이가 만든 궁중의 산해진미보다 백배는 더 좋습니다.
사람이 간사해서 먹거리가 조금 들어가 배가 든든해지니 이제는 따뜻한 음식이 먹고 싶어집니다.
끝이 없는 인간의 욕심!
산허리를 절단 낸 인간들의 욕심, 이기심과 다를 바 없습니다.
잠시후 드디어 나타나신 뽀스님!
너무나 반갑고 뽀스님이 너무 멋져 보입니다.
그런데 뽀스님 혼자가 아닙니다.
트레키님이 같이 오셨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결국 정병호님 혼자 다른 팀의 김교용님과 가셨답니다.
숙암리로 돌아와 민박집을 잡습니다.
대충 씻고 나서 과자 한 봉지를 터 소주 한병을 나눠 마십니다.
홀로 3구간에 도전하신 정병호님 걱정이 앞섭니다.
고기를 구워서 소주를 더 하자고들 하셨으나 지친 나는 그냥 잠에 빠져들고 맙니다.
어느 소설의 제목처럼 그야말로 죽음보다 깊은 잠입니다.
암울한 심연의 바다 밑으로 끝없이 침잠하는 돌고래와도 같이 수면위로 부상하길 거부하며
아래로 아래로 빠져듭니다.
이것이 끝이라 해도 상관없다.
다시 시작하지 못하여도 항의하지 않겠다.
우선은 잠을 자겠다.
두런거리는 소리에 푸스스 잠에서 깨어납니다.
눈을 떠 반사적으로 창문 밖을 쳐다봅니다.
어느새 밖은 어둠이 물러나 있습니다.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고 비는 오락가락 합니다.
손바닥만한 창문틀 속으로 거대한 산의 봉우리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산은 아직도 하얀 안개를 무럭 거리며 끊임없이 피워 올리고 있습니다.
대기오염이 없어서인지 산의 초록이 너무도 선명해 눈이 아립니다.
그대로 창틀을 들어올려 대자연의 풍광을 그림으로 떠내고 싶어집니다.
방안으로 눈을 돌리니 발가벗은 채로 누군가 쪼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팬티 한장만 달랑 걸친 정병호님이 동그랗게 등을 말고 앉아 있습니다.
타이어 트러블로 인해 결국 새벽 3시쯤 하산했다고 합니다.
몸의 상태는 아직 좋습니다.
어디 아픈 곳도 없고 잠을 푹 잔 이유인지 아주 가볍습니다.
귀경을 하기위해 준비를 서두릅니다.
차에 짐을 올리는데 다시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준비를 끝내고 숙소로 다시 올라가 수박 한통을 잘라 놓고 동그랗게 둘러 앉아 후적후적 먹습니다.
지원차가 달립니다.
강원도의 산과 골짜기와 논과 밭을 뒤로하고 달립니다.
강원도의 사람들을 뒤로하고 달립니다.
내 생애 혁혁한 감동을 안겨주었던 그 강원도 오지의 풍광을 뒤로하고 차가 달립니다.
종횡무진 지원과 구조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 주었던 왈바의 팀차가 달립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 0으로 셋팅했던 지원차량의 거리계엔 700km가 넘는 운행거리가 찍혀있습니다.
한참을 달리다가 아침을 수박 한통으로 해결했던 대원들, 그림 같은 풍광을 뒷마당에 펼쳐놓은
산채비빔밥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 음식점 또한 예쁘게 지어 놓아서 유려한 수묵화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농가처럼
주변의 풍광과 아주 잘 어울립니다.
통일을 염원하는 대한민국 사람들, 산채비빔밥으로 통일하고 주문합니다.
잠시 후 비빔밥이 나왔는데 아주 정갈하고 깔끔한 차림입니다.
썩썩 비벼 맛을 보니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담백하고 깨끗한 맛이어서 기분이 아주 좋아집니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음식다운 음식인지 하고 생각해 보니 그래봐야 하루 차이 입니다.
대원들 모두 아주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다시 차를 몰아 고속도로에 올라섭니다.
이제 정말 안녕입니다.
내년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
.
이젠 정말 안녕입니다.
그대여.
허황된 욕망과 뜨겁지 못한 정열로 무장하고
그럴듯한 이론과 설익은 심장으로
무모하게 손을 내밀던 인간들에게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무섭게 달려들던 그대여.
절대 허락하지 않겠다.
너 따위를 받아들일 작정이었다면 태초에 솟아나지도 않았다.
와보라.
강력한 발톱으로 심장을 도려내겠다.
그 서슬 퍼렇던 공포의 외침은 어찌하고
왜 무겁게만 앉아 있는가 그대여.
슬픈 눈동자를 보이지 말라.
더 이상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말라.
이기심으로 중무장한 인간들에게
잠시나마 자신의 동강난 심장을 허락했던 그대여.
무섭게 일어나 하늘을 가르라.
험악한 표정으로 위세를 떨치라.
그리고
자신의 오류를 발견하지 못한 인간들이 그대를 찾아오면
따뜻한 손을 들어
그들을 맞으라.
우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서툴지만 뜨거운 아버지의 손길처럼
가슴 가득히 그들을 맞이해다오
그대여.
Special thanks : 뽀스님. 바이크홀릭님. 그건그래님.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도 없었습니다.
지원조의 아낌없는 분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마중 나오신
락헤드님. 이슬님. 레드맨님. 필스님.
라이트와 베터리 지원해주신 지방간님과 hp100님.
또한 와일드바이크 280랠리 팀에게 응원과 성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모든 분들.
하얀 깃발이 펄럭인다.
새하얗다 못해 파란 깃발이 펄럭인다.
파랗다 못해 시퍼런 깃발이 펄럭거린다.
끝없이 돌아나가는 산등성이 모퉁이 길을 휘돌다가
하늘을 뒤덮고
억장으로 무너진 이글거리는 눈동자.
주시하라.
그것이 무엇이관데 그러느냐.
그곳이 어디관데 그러느냐.
그곳에 무엇이 있어서 그러느냐.
누가 널 부르느냐.
거역 못할 영험한 힘을 지닌 절대자 있어
부르는 염력에 이끌려 떼 지어 무리로 각축을 다투며
달린다. 달린다. 달린다.
물이 튀고 땀이 튀고
피가 튄다.
악문 이 사이로 거친 숨 몰아내며
퍼렇게 날이 선 허벅지의 살이 떨린다.
맹렬히 쏟아 붓는 폭우를 뚫고
검은 마수를 들이미는 어둠을 쪼개며
그들이 간다.
경배할 거대한 대자연의 위대함에
고개 숙이며.
그곳은
내가 갈 곳이 아니다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니 아니, 정확하게 그곳은 내가 못갈 곳이다가 맞겠습니다.
이름만으로도 기가 죽어 슬쩍 눈길을 피하곤 했던......
내가 무슨 이유를 들고 어떤 속임수를 써서 그곳에 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가지 못할 곳이다.
그랬습니다.
그곳은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결국엔 욕심만 내다가 말라 죽을 것이다, 라고 중얼거리기만 하던 곳.
네 따위가 어찌 감히 거길 간단 말인가? 하고 누군가 버럭 소릴 지를 것 같아 말도 못 꺼냈던 곳.
자랑스러운 참가기를 숨죽이며 읽어내기만도 가슴이 벅찼던 곳.
결국 치명적인 유혹을 참지 못해 가기로 맘을 먹고, 나쁜 짓을 하다 선생님께 들켜버린
어린 학생처럼 민망해 혼자 가슴만 쿵쿵거렸던 곳.
2004년 280랠리!
그곳에 갑니다.
용기와 모험과 도전정신에 가득 찬 전사들의 일원이 되어
그곳에 갑니다.
뭇 사람들의 응원과 성원과 찬사를 온몸에 받으며
그곳에 갑니다.
심장의 고동이 팽창해 폭발하는 엔진처럼 쿵쿵거립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출정하는 전사들이 속속 모여듭니다.
차가운 저녁 바람이 무색할 정도로 열기가 느껴집니다.
자랑스러운 자신만의 무기를 끌고 전장에 나가는 용사처럼 그들에게서 두려움 따위는 느낄 수가 없습니다.
수송부대와 병참부대 역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출정만을 기다립니다.
나만이 초라한 무기에 자신 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봅니다.
용감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전투조의 면면입니다.
교통편이 불편해 아예 울산에서 서울로 와버린 손오공님!
오디랠리에 이어서 이번랠리에도 출정하시는 mtbiker님!
산악자전거는 무조건 빡씨게 타는 거여, 십자수님!
카랑한 목소리에 항상 밝은 표정의 treky님!
현지로 오실 박공익님과 깜장고무신님. 그리고 정병훈님과 그리운 벗님!
그리고 전투조보다 힘든 수송과 병참 부대원.
공식지원부대장 뽀스님과 그건그래님! 와일드바이크 대장 바이크홀릭님!
시간은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자전거와 보급품을 수송차량에 올리고 출발합니다.
심장이 요동칩니다.
드디어 출발입니다.
한강변에 줄줄이 늘어서있는 가로등의 불빛들이 아스라이 멀어집니다.
어두운 강변대로를 뚫고 질주합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아무것도 생각나질 않습니다.
고속도로에 올라서자 문득 무서워집니다.
내가 다시 돌아 올 수 있을까?
마치 영영 돌아 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사람처럼 불안해 집니다.
방정맞은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잠을 청해봅니다.
긴장되고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습니다.
웅웅거리는 바람소리가 차창을 때립니다.
오만가지 생각에 한참을 뒤척입니다.
무릎이 견뎌줄까? 그동안 개인적으로 했던 훈련의 성과는 얼마나 있을까?
비가 오면 어쩌지? 가만, 행동식이 부족하지 않을까?
어후~ 이러다 혼자만 낙오되면 어쩌나?
쓸데없는 생각으로 한참을 맘 졸이다가 머릿속이 가물가물해지며 잠에 빠져 듭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누군가 내 이름을 부릅니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어느새 북평초등학교 숙암분교입니다.
벌써 도착해 있는 다른 팀들의 모습이 분주합니다.
몸놀림이 빨라집니다.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자전거를 점검하고 지도를 보며 작전회의를 합니다.
몹시 분주한데다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아 무슨 말인지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습니다.
번호판을 달고 라이트 탑재, 체인에 기름칠도 합니다.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집니다.
대한민국은 참 좋은 나라입니다.
강원도 산골의 작은 초등학교 분교인데도 화장실이 너무나 깨끗합니다.
어릴적 다녔던 학교의 화장실을 생각했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소변기 앞에 다가서니 ‘이 화장실은 푸세식입니다’ 라고 써 있습니다.
뭘 그런걸 친절하게도 써놓았나? 의아해하며 다시 자세히 보니 푸세식이 아니라 포세식입니다.
변기에는 물을 내리는 버튼이 없습니다.
물 대신에 비누거품이 포직포직 소리를 내며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첨 봤습니다, 포세식 변기.
정말 신기합니다.
서울 촌놈입니다.
소변기 말고 대변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도 물론 물을 내리는 단추 같은건 없습니다.
응가는 그냥 직공으로 뚫린 변기 아래로 떨어지게 되어있고 역시 거품이 천천히 흘러내립니다.
냄새 전혀 없습니다.
역시 친절하게 안내문구가 써있습니다.
‘응가 후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화장실 때문에 저처럼 처음 본 사람들은 한참동안 재미있어 합니다.
나만 촌사람 아닙니다.
뭘 좀 먹고 싶은데 음식이 입에 들어가질 않습니다.
깜장고무신님이 차에서 엄청나게 큰 아이스박스를 꺼내들고 오셨는데 두 사람이 들어도 무거울 지경입니다.
도대체 뭐가 들었나 하고 다들 의아해 하며 뚜껑을 열어보니
우와~ 식료품점 하나를 통째로 들고 오신 것 같습니다.
어찌 이럴 수가......
라면을 끓여 다들 한입씩 먹습니다.
바나나 하나를 입에 넣고 우물거립니다.
아무런 맛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시간은 벌써 4시가 가까워집니다.
극도의 긴장감에 빠집니다.
턱이 덜덜 떨려오고 허벅지가 후들거립니다.
브레이크에 걸려있는 손가락에 힘을 꽉 주어봅니다.
드디어 출발신호가 떨어집니다.
제1구간 단임골 48km의 시작입니다.
팀별로 숙암분교 교문을 빠져나가기 시작합니다.
왈바팀도 파이팅을 외치며 달리기 시작합니다.
잠깐의 도로 라이딩이 끝나고 본격적인 산악구간에 접어듭니다.
아~ 이런!
처음부터 사람을 잡습니다.
시작부터 상당한 오르막입니다.
몸도 풀리기 전에 거칠고 높은 각도의 오르막을 오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전날 내린 비로인해 노면의 상태도 좋지 않습니다.
날카로운 돌들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고 땅은 미끄러우며 바람은 아주 습합니다.
더운 입김을 훅훅~ 거리며 언덕을 오릅니다.
절반쯤 오르자 허벅지가 떨려옵니다.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에서 내려 끌기 시작합니다.
내리고 싶어집니다.
악을 쓰며 좀 더 올라 가봅니다.
한참을 올랐는데도 정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자전거에서 내려 끌며 한 굽이 돌아갑니다.
그러나 끄는 것 보다 천천히 라도 타고 가는 게 더 쉽고 빠르다는 걸 알고 있기에 다시 올라탑니다.
얼마를 올라가니 이제야 정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잠깐 쉬다가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내리막과 자그마한 오르막의 연속입니다.
조금씩 어둠이 걷히기 시작합니다.
라이트의 스위치를 내립니다.
검은 어둠 속에 감추고 있던 단임골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납니다.
문득 어둠이 완전히 걷히고 산은 뽀오얀 속살을 내보여 줍니다.
아~
아름답다 라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모든 아름다움의 형용사를 다 끌어 모아도 표현하지 못합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가 대자연의 앞에서는 그 표현의 한계에 여지없이 가로막히고 맙니다.
산은 높고 골은 깊습니다.
그 끝없는 골짜기마다 하얀 안개를 길게 걸치고 있습니다.
무겁게 내려앉은 산들은 깊은 골짜기로부터 파란 안개를 끝없이 피워 올리고 있습니다.
넋이 나간 듯 자전거를 멈추고 장쾌한 산맥을 굽어봅니다.
강원도의 산은 다릅니다.
그 모습이 수려하고 높으며 깊고 푸릅니다.
자비로운 대지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앉아 있습니다.
그대여!
젓을 바라는 아이와 같은 나를 어머니의 품처럼 부드럽게 품어 달라!
마음속의 긴장감이 조금씩 풀어집니다.
속도를 조금씩 올려 달려봅니다.
시작부분의 힘든 오르막을 통과하고 나서부터는 조금은 수월합니다.
왈바팀과 조금 떨어져 십자수님과 함께 달립니다.
긴장이 풀어지니 몸도 유연해집니다.
온몸에 땀이 베이기 시작합니다.
얼마를 달렸을까요.
긴 다운힐입니다.
정신없이 내리쏘다가 보니 1차 지원 포인트입니다.
시간은 아침 7시가 조금 넘어서 있습니다.
다른 팀의 선수들도 속속 도착합니다.
아침을 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왈바팀은 지원 포인트에서 끓이는 음식을 하지 않기로 계획을 세웠던 터라
따뜻한 음식은 먹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걱정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엄청난 화초장인 깜장고무신님의 아이스박스가 있으니까요.
개인이 준비한 식량과 화초장에서 음식을 꺼내어 닥치는 대로 먹습니다.
그런데 분명 끓이는 음식을 하지 않기로 했는데 한쪽 옆에서 뭔가 끓고 있습니다.
뭘 끓이는지 물어보니 홀릭님이 고기국이랍니다.
호오~ 너무 반갑습니다.
예상치 못한 따뜻한 음식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지원 대장이신 뽀스님의 작품이라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뭔가 끓고 있긴 한데 뭔지 모르겠습니다.
뽀스님이 오시더니
어이~ 잘 끓었네. 이거 한잔씩 마셔. 하시면서 종이컵에 그 고깃국이라는 걸 한잔씩 떠줍니다.
기름이 동동 떠있는 걸로 보아 분명 고깃국이 맞긴 한데 좀 이상합니다.
이게 뭔 고깃국인가요?
쿠하하하핫~
뽀스님이 웃기 시작합니다.
옆에 서있던 홀릭님이 그럽니다.
육포국 인데요.
육포라면......
그렇습니다.
행동식으로 애용되는 그 육포말입니다.
그걸 쌍둥쌍둥 잘라서 맹물에 넣고 그냥 끓이셨답니다.
다들 뒤집어집니다.
홀릭님은 그래도 고기맛은 나네, 하며 육포 건더기를 연신 집어 드십니다.
하지만 그거라도 끓여 따뜻한 국물을 전투원들에게 먹이고 싶은 뽀스님의 마음을 어찌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뽀스님의 따뜻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그 정성을 마다할 수 없어 한잔을 다 비웁니다.
정말 최고의 맛입니다.
잠깐 길바닥에 누웠는데 깜빡 졸았나 봅니다.
누군가 큰소리로 깨웁니다.
갑시다, 2구간.
십자수님입니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납니다.
이제 2구간 가리왕산 65km의 시작입니다.
다시 행동식을 챙기고 체인에 기름을 바릅니다.
지원조의 파이팅 구호를 들으며 힘차게 출발합니다.
다시 잠깐 동안의 로드를 타고 임도로 진입합니다.
그 유명한 가리왕산의 시작입니다.
임도로 진입 하자마자 이럴수가.
다시 오르막입니다.
1구간 시작부분의 오르막과 비슷한 경사인데 거리는 훨씬 더 깁니다.
마음이 바빠집니다.
조금씩 무리를 하게 됩니다.
한참을 올라가는데 뒤따라오던 십자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통나무집이 서있는 삼거리까지 올라가 잠깐 쉬며 기다려 봅니다.
한참 후에 올라오시는데 좀 힘들어 보입니다.
허리가 아파 잠깐 쉬었다 오시는 길이라고 합니다.
계곡수에 얼굴을 씻고 몸의 열기를 식힙니다.
삼거리에서 철조망을 왼쪽에 끼고 좌회전해서 마항치까지 가야합니다.
그러나 거리가 27km로 표시 되어있고 우회전하면 그 절반의 거리로 마항치까지 갈 수 있습니다.
우리 일루 가까요?
그러까? 흐흐~~
짐짓 여유를 부려봅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우회전 하여 끝없이 세워져 있는 철조망을 왼쪽에 두고 달립니다.
산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인간의 오만에 의해 산은 심장 한복판에 강력한 철망을 박아두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철망을 쳤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철망이 1m, 10m, 100m, 1000m 끝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위대한 대자연의 심장부에 섬뜩한 쇳날을 튼튼하게 박아 넣은 인간들.
아가미가 막혀 헐떡거리는 물고기의 거친 숨소리처럼 산의 절멸할 듯한 숨소리도 들리는 듯 합니다.
코스는 지루합니다.
길고 완만하며 바닥의 상태는 역시 좋지 않습니다.
말랑말랑한 맨땅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십자수님과 잠깐씩 멈춰 서서 뒤떨어진 팀원들을 기다려 봅니다.
하지만 금방 쫒아오지 않습니다.
가리왕산은 그 규모가 대단합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능선과 봉우리들이 수없이 교차하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농도의 차이를 만들어 내
마치 거대한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 합니다.
산의 장쾌한 위세에 눌려 하늘이 오히려 좁아 보입니다.
다시 달립니다.
달리고 달려 마항치에 도착합니다.
2구간의 첫 번째 목표지점입니다.
그리고 벽파령을 넘어야 합니다.
마항치에 오르니 누군가 어서오셔 합니다.
가까이 가보니 화약폭파님이 웃으며 맞이합니다.
반갑게 인사합니다.
어깨가 너무 아파 계속 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합니다.
얼굴색이 좋지 않습니다.
몇몇 분들과 한참을 쉽니다.
내가 엉덩이가 아프다고 했더니
‘좋은게 있긴 한데......’ 하며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는데 마치 커다란 립스틱처럼 생겼습니다.
‘뭔가요?’
‘엉덩이에 바르는 건데 말이죠 이걸 바르면 통증이 한결 나아질 겁니다.
근데 은밀한 부위에 바르는 거라서 혼자 써야 하는 건데......‘
‘히~ 그럼 그냥 두셔요.’ 하니
‘그게 아니라, 아까 조 아래서 어떤 어른과 잠깐 같이 쉬었는데 말이죠,
엉덩이가 너무 아프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이걸 드렸는데 그걸 그냥 통째로 엉덩이에 대고는 쓱쓱......’
허억~
‘받아서 자세히 보니 뭐가 묻어 있더라구요.’
'뭐가 묻어 있었는데요?'
'털요.'
'어흑~' -_-;;;
‘발라봐요.’
아~ 무척 우울해집니다.
저걸 발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
바르면 분명 효과는 있다고 하시는데 갈등입니다.
‘이걸 어찌 발라야 하나요?’
궁리하다가 결국 손에 묻혀서 엉덩이에 바릅니다.
다시 일어나 십자수님과 화약폭파님,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 달립니다.
한참을 달리는데 호오~ 아까 바른 그 약이 효과가 있긴 있습니다.
한결 엉덩이가 부드러워 집니다.
갈등이고 뭐고 좀 더 발라둘걸 하는 후회를 해봅니다.
벽파령을 넘어가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십자수님은 각오를 단단히 하신 듯 벽파령 오르막에 대한 투지를 불사릅니다.
마항치에서 한참을 다운하다가 오른쪽으로 시멘트 오르막이 나타나면 그길로 올라 가야합니다.
한참 다운을 하는데 오른쪽에 좁은 시멘트 오르막이 보입니다.
저기가 벽파령의 입구인가보다 하고 가는데 그길로 몇명의 선수들이 접어들어 우왕좌왕합니다.
그런데 직진길을 보니 무수한 자전거들의 바퀴자국들이 나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선수들처럼 그 지점에서 길을 잘못 들고 맙니다.
오른쪽 길로 올라섰던 선수들과 함께 직진을 하고 맙니다.
그리고 다시 내리막을 달리는데 모퉁이를 돌던 화약폭파님이 자전거를 세웁니다.
한분이 앉아 계시는데 상태가 심각해 보입니다.
가까이 가보니 오른쪽 쇄골이 골절되어 있습니다.
배수로의 턱을 보지 못하고 달리다가 넘어진 모양입니다.
십자수님이 응급처치를 하려고 해보지만 통증이 심해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해 보시라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뒤이어 따라오신 그 시멘트 오르막에서 철수하신 분들이 일행입니다.
무척 난감해 합니다.
전화도 터지지 않습니다.
약 10분전에 넘어지셨다고 하는데 앞서간 선수들에게 응급구조 요청을 부탁했다고 하십니다.
불행하게도 신청을 늦게 한 관계로 보험가입도 되지 않으신 상태라고 합니다.
결국 일행들이 같이 남고 우리는 다시 달립니다.
시간이 많이 지체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다운에 선두에서 한참을 달리는데 당연히 뒤따라 올 줄 알았던 십자수님과 화약폭파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잠깐 내려서 기다려 보지만 어찌 된 일인지 보이지 않습니다.
금방 오시겠지 하고는 다시 달립니다.
마음이 급해집니다.
돌길이고 뭐고 내리막을 무지막지하게 달립니다.
코너를 돌아나가면 산딸기 줄기의 가시들이 맨살인 팔뚝을 사정없이 긁어 놓습니다.
왼쪽 팔뚝에 피가 고입니다.
쓰라려 오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문득 작은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어느 쪽으로 가야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직 오른쪽으로 나있는 시멘트 언덕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땅바닥에 누군가 오른쪽으로 화살표를 깊게 그려 놓았습니다.
‘오른쪽이다.’
그 결정이 엄청난 실수임을 모르고 오른쪽으로 달려 나갑니다.
계속해서 내리막입니다.
두 분은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어찌된걸까?‘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어둡기 전에 산을 내려가야 합니다.
2구간은 밝은 시간대에 내려올 수 있는 구간이라 라이트를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비비적대며 지체해버린 결과입니다.
자책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잠깐 갈등을 합니다.
‘기다렸다가 두 분과 같이 갈까?’
기다립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내려오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출발합니다.
지금부터는 모르는 길을 혼자 달려야 합니다.
얼마를 달렸을까요?
드디어 오른쪽으로 시멘트 오르막이 보입니다.
그리고 왼쪽 계곡으로 철탑들이 보입니다.
‘찾았다. 벽파령이다.’
시멘트 언덕을 오릅니다.
그런데 이게 엄청난 언덕입니다.
까마득하게 고개를 치올리고 있습니다.
심한 경사에 정신이 아득해 집니다.
1구간과 2구간 시작부분의 언덕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거리 또한 대단히 깁니다.
훅훅 거리며 천천히 올라갑니다.
오르고 오르고 또 오릅니다.
오르고 오르고 또 올라도 끝은 보이지 않습니다.
올라갈수록 점점 경사는 심해집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댑니다.
온몸에선 땀이 비 오듯 쏟아집니다.
허벅지가 벌벌 떨려오고 핸들바를 움켜잡은 손은 조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내리지 않겠다.
나는 지금 벽파령을 넘고 있는 거다.
이놈을 넘어가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네가 아무리 고개를 치켜 올려도 나는 넘어간다.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너를 올라야 한다.
네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나는 결국엔 너를 오를 것이니
그러니 얌전하게 길을 열어 달라.
길을 열어 달라, 제발.
자기 최면을 걸면서 무의식적으로 페달을 돌리고 돌리고 돌립니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거대한 나무가 쓰러져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도저히 지나갈 수 없습니다.
이걸 어찌 지나가야 하나?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먼 거리를 와버렸습니다.
자세히 보니 오른쪽 배수로에 누군가 지나간 흔적이 보입니다.
배수로를 통해 나무 아래로 기어들어 통과합니다.
다시 오릅니다.
도대체 얼마나 긴 언덕인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머릿속이 멍멍해 집니다.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이럴수가......
또 나무가 쓰러져 있습니다.
길들여진 몸은 자동적으로 배수로로 향합니다.
다시 기듯이 통과합니다.
마지막 깎아지른 듯한 언덕을 올라섭니다.
심장이 파열할 듯 쿵쾅댑니다.
입에선 단소리가 나오고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핸들바에서 손을 놓아버리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생깁니다.
클릿을 빼고 자전거를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로 내 던져버리고 싶어집니다.
내 몸뚱이를 내 던져버리고 싶어집니다.
고작 이거였나?
업힐이 좋아 언덕만 나오면 괜히 기분이 고조되곤 했었습니다.
어디 좀 급한 경사가 있다고 하면 찾아가 올라보곤 했습니다.
개인 훈련도 오르막 위주로 했습니다.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요강 씻어 찬장에 넣는다고
그런 곳만 골라 코스를 만들어 타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연유로 주위사람들은 즐거운 업힐러라는 닉네임도 붙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어떤가?
넌 아직 멀었다. 아직 멀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힘이 더 듭니다.
그러나 정말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 어거지로 오릅니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입니다.
정상엔 엄청난 철탑이 서있습니다.
이제야 왔느냐?
거만하게 서있는 철탑이 비웃는 것 같습니다.
거기서부터는 계속되는 내리막입니다.
‘이곳만 내려서면 2차 지원 포인트다.’
정신없이 내리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합니다.
점점 암울해 집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중력에 몸을 내맡기고 아래로 아래로 내리 꽂히는 일밖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길의 내리막은 아무도 간적이 없는 태초의 길처럼 허리까지 이르는 무성한 풀과
칼날 같은 돌밭, 불쑥불쑥 나타나는 배수로의 위험이 뱀의 혓바닥처럼 달려듭니다.
널 온전히 내려가도록 이대로 내버려 두지 않겠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찾아온 것이냐?
너에게 길을 내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겠다.
갖가지 위험요소가 계속해서 발목을 잡아챕니다.
너무 험해서 가끔씩 내려서 끌어야 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인식하지 못합니다.
속도계를 볼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자전거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매달려 달립니다.
아~
인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람의 흔적입니다.
저 아래로 도로가 보입니다.
‘이제 다 왔다.’
조그만 마을로 떨어집니다.
시간은 6시20분!
이제 지원팀을 만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지원팀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계획대로라면 분명 이곳은 조동리 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디에고 조동이라는 글귀는 보이지 않습니다.
불안해 집니다.
전화기를 켜고 뽀스님께 전화를 합니다.
‘아이고! 지금 어디 있어?’
‘아~ 벌써 철수 하셨나요?’
‘철수는 무슨. 거 어디여?’
상황을 설명 드리니 잘못 떨어졌다고 하십니다.
이럴수가...... 할말이 없어집니다.
강하초등학교(?)에서 기다리라고 합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작은 점방에 들어가 초등학교 위치를 물으니 젊은 여자분이 나와 저기 있자나요 하며
손가락질을 하고는 신경질적으로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립니다.
괜히 멀쓱해집니다.
‘시골 인심이......’
초등학교 교문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길바닥에 주저 앉습니다.
가방을 뒤적거려 쏘세지 하나를 꺼내 입에 넣고 우물거립니다.
처량해 집니다.
‘뭐하러 와서 이러니? 꼴사납게스리......’
업친데 겹친격으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쏴아악~ 하는 소리가 천지를 뒤덮습니다.
온몸으로 쏟아지는 폭우를 받아내며 물을 튀기며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봅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30분쯤이 지나니 뽀스님과 홀릭님이 나타납니다.
홀릭님이 엉뚱한 표정으로 그럽니다.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차에 올라타 뽀스님께 묻습니다.
‘십자수님은 내려오셨나요? 다른 팀원들은요?’
‘다 내려왔지, 벌써.’
‘그럼 3구간 출발은 했나요?’
‘아녀.’
영문을 알 수 없습니다.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조동리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있는데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왈바팀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어찌 돌아가는지 물으니 계속 랠리를 진행할지 말지 결정중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옷을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사람도 보입니다.
비는 계속 쏟아집니다.
단 두명만을 제외하고는 모든 선수들이 길을 잘못 들어 이곳에 모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뭐야?
이 많은 사람들이 비록 길을 잘못 들기는 했지만 같은 곳으로 떨어졌는데 난 어찌 된걸까?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바보처럼 죽기 살기로 넘어온 산이 바로 청옥산이라고 합니다.
듣도 보도 못한 산입니다.
정말 바보짓을 했습니다.
허탈하기만 합니다.
랠리의 진행은 3구간을 탈 사람은 가고 나머지는 철수하기로 합니다.
왈바팀에서는 정병호님과 트레키님이 가기로 합니다.
지원차량이 두 사람을 태우고 출발합니다.
왈바의 다른 대원들은 로드로 숙암리까지 돌아가기로 하고 자전거를 몰아갑니다.
비는 계속 쏟아집니다.
그곳이 터전인 박공익님이 앞장섭니다.
강을 끼고 한참을 달리다 조그마한 동네에 들어섭니다.
가게에 들러 음료수 한캔씩 돌립니다.
그러더니 무리를 끌고 시장속으로 들어갑니다.
숙암리에 지원조보다 먼저 도착할테니 기다리는 동안의 먹거리를 사자고 합니다.
메밀전병이며 무침개를 한 봉지 사서 가방에 꾸겨 넣고 다시 달립니다.
이곳에 와서 놀란게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어찌된 일인지 도로에 가로등이 하나도 없습니다.
비는 쏟아지는데 가로등도 없고 차들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빗물을 튀기며 질주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라곤 십자수님의 라이트와 led라이트 두개뿐.
그 불빛에 의지해 6명의 대원이 아슬아슬하게 도로를 달립니다.
너무나 춥고 위험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엄청 긴 언덕도 넘어야 하고 그 언덕을 넘어 내려가다가 길가에 떨어져 있는 돌에
박공익님,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강물을 오른쪽에 두고 계속 달리는데 가도 가도 인가의 불빛은 나타나지 않고 계속되는 어두운 도로뿐입니다.
바람에 날리는 빗방울이 얼굴을 때립니다.
추위와 배고픔에 점점 지쳐갑니다.
차라리 3구간을 타는게 나을뻔 했습니다.
지나가는 타 참가팀의 지원차량이 차창 밖으로 파이팅을 외칩니다.
뭐하자는 거여?
앞서가는 박공익님께 소리칩니다.
‘아직 멀었나요?’
‘아뇨, 조금만 가면 되는데요.’
조금만 가면 된다는 소리를 몇 번 더 들은 후에 결국 포기하기로 합니다.
춥고 배고프고 너무나 위험합니다.
숙암리를 목전에 두고 지친 대원들이 좁은 버스정류장 속으로 기어 들어갑니다.
비를 피하니 그나마 살 것 같습니다.
뽀스님과 홀릭님께 급전을 칩니다.
우리는 도로위에서 조난당했습니다.
280 산악랠리에 도전한 사람들이 산에서가 아니라
도로위에서 조난을 당하고 맙니다.
탈진한 대원들은 할말을 잃고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잠을 잡니다.
기다리는 구조팀은 오지 않습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요?
드디어 홀릭님과 그건그래님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많은 인원과 자전거를 디스커버리로 모두 이동시키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래봐야 자전거 두 대에 사람 두명 뿐입니다.
누구는 먼저가고 누구는 기다려야 하는 그런 상황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단한 끈으로 묶인 팀이니까요.
어쩔 수 없이 뽀스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누군가 그럽니다.
‘아까 사온 거라도 먹읍시다.’
시장에서 사온 메밀전병과 부침개를 바닥에 펼쳐놓고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웁니다.
홀릭님을 채근해서 먹을걸 더 사오라고 합니다.
박공익님과 홀릭님이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가시고,
그러나 여전히 뽀스님은 오지 않습니다.
다행히 지나가시던 뮤즈님을 발견하여 도움을 요청합니다.
숙암까지 가셨던 뮤즈님, 다시 오시고 때를 맞춰 홀릭님 오시고.
홀릭님은 순대를 사오셨는데 뭐 눈치 볼 거 없습니다.
역시 마파람에 게눈입니다.
쪼그리고 앉아 순대를 맨손으로 집어먹는데 그 맛이 대장금이가 만든 궁중의 산해진미보다 백배는 더 좋습니다.
사람이 간사해서 먹거리가 조금 들어가 배가 든든해지니 이제는 따뜻한 음식이 먹고 싶어집니다.
끝이 없는 인간의 욕심!
산허리를 절단 낸 인간들의 욕심, 이기심과 다를 바 없습니다.
잠시후 드디어 나타나신 뽀스님!
너무나 반갑고 뽀스님이 너무 멋져 보입니다.
그런데 뽀스님 혼자가 아닙니다.
트레키님이 같이 오셨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결국 정병호님 혼자 다른 팀의 김교용님과 가셨답니다.
숙암리로 돌아와 민박집을 잡습니다.
대충 씻고 나서 과자 한 봉지를 터 소주 한병을 나눠 마십니다.
홀로 3구간에 도전하신 정병호님 걱정이 앞섭니다.
고기를 구워서 소주를 더 하자고들 하셨으나 지친 나는 그냥 잠에 빠져들고 맙니다.
어느 소설의 제목처럼 그야말로 죽음보다 깊은 잠입니다.
암울한 심연의 바다 밑으로 끝없이 침잠하는 돌고래와도 같이 수면위로 부상하길 거부하며
아래로 아래로 빠져듭니다.
이것이 끝이라 해도 상관없다.
다시 시작하지 못하여도 항의하지 않겠다.
우선은 잠을 자겠다.
두런거리는 소리에 푸스스 잠에서 깨어납니다.
눈을 떠 반사적으로 창문 밖을 쳐다봅니다.
어느새 밖은 어둠이 물러나 있습니다.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고 비는 오락가락 합니다.
손바닥만한 창문틀 속으로 거대한 산의 봉우리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산은 아직도 하얀 안개를 무럭 거리며 끊임없이 피워 올리고 있습니다.
대기오염이 없어서인지 산의 초록이 너무도 선명해 눈이 아립니다.
그대로 창틀을 들어올려 대자연의 풍광을 그림으로 떠내고 싶어집니다.
방안으로 눈을 돌리니 발가벗은 채로 누군가 쪼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팬티 한장만 달랑 걸친 정병호님이 동그랗게 등을 말고 앉아 있습니다.
타이어 트러블로 인해 결국 새벽 3시쯤 하산했다고 합니다.
몸의 상태는 아직 좋습니다.
어디 아픈 곳도 없고 잠을 푹 잔 이유인지 아주 가볍습니다.
귀경을 하기위해 준비를 서두릅니다.
차에 짐을 올리는데 다시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준비를 끝내고 숙소로 다시 올라가 수박 한통을 잘라 놓고 동그랗게 둘러 앉아 후적후적 먹습니다.
지원차가 달립니다.
강원도의 산과 골짜기와 논과 밭을 뒤로하고 달립니다.
강원도의 사람들을 뒤로하고 달립니다.
내 생애 혁혁한 감동을 안겨주었던 그 강원도 오지의 풍광을 뒤로하고 차가 달립니다.
종횡무진 지원과 구조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 주었던 왈바의 팀차가 달립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 0으로 셋팅했던 지원차량의 거리계엔 700km가 넘는 운행거리가 찍혀있습니다.
한참을 달리다가 아침을 수박 한통으로 해결했던 대원들, 그림 같은 풍광을 뒷마당에 펼쳐놓은
산채비빔밥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 음식점 또한 예쁘게 지어 놓아서 유려한 수묵화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농가처럼
주변의 풍광과 아주 잘 어울립니다.
통일을 염원하는 대한민국 사람들, 산채비빔밥으로 통일하고 주문합니다.
잠시 후 비빔밥이 나왔는데 아주 정갈하고 깔끔한 차림입니다.
썩썩 비벼 맛을 보니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담백하고 깨끗한 맛이어서 기분이 아주 좋아집니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음식다운 음식인지 하고 생각해 보니 그래봐야 하루 차이 입니다.
대원들 모두 아주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다시 차를 몰아 고속도로에 올라섭니다.
이제 정말 안녕입니다.
내년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
.
이젠 정말 안녕입니다.
그대여.
허황된 욕망과 뜨겁지 못한 정열로 무장하고
그럴듯한 이론과 설익은 심장으로
무모하게 손을 내밀던 인간들에게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무섭게 달려들던 그대여.
절대 허락하지 않겠다.
너 따위를 받아들일 작정이었다면 태초에 솟아나지도 않았다.
와보라.
강력한 발톱으로 심장을 도려내겠다.
그 서슬 퍼렇던 공포의 외침은 어찌하고
왜 무겁게만 앉아 있는가 그대여.
슬픈 눈동자를 보이지 말라.
더 이상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말라.
이기심으로 중무장한 인간들에게
잠시나마 자신의 동강난 심장을 허락했던 그대여.
무섭게 일어나 하늘을 가르라.
험악한 표정으로 위세를 떨치라.
그리고
자신의 오류를 발견하지 못한 인간들이 그대를 찾아오면
따뜻한 손을 들어
그들을 맞으라.
우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서툴지만 뜨거운 아버지의 손길처럼
가슴 가득히 그들을 맞이해다오
그대여.
Special thanks : 뽀스님. 바이크홀릭님. 그건그래님.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도 없었습니다.
지원조의 아낌없는 분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마중 나오신
락헤드님. 이슬님. 레드맨님. 필스님.
라이트와 베터리 지원해주신 지방간님과 hp100님.
또한 와일드바이크 280랠리 팀에게 응원과 성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모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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