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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구 여행기

irule2004.07.28 19:53조회 수 1770추천 수 1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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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기록>
7월 26일                                  7월 27일
오후 02: 20 목동 출발             오전 05: 40 천안 출발
오후 08: 30 천안 도착             오후 06: 00 대구 도착

거리: 326.07 km
주행시간(속도계): 13시간 28분
실 주행시간: 약 18시간      
평속: 24.2 km/h

<출발>
며칠 전부터 막연하게나마 전국일주를 한번 해볼까 생각 중이었다. 하지만 와이프의 하명이 떨어지지 않아 계속 컴터 앞에서 각종 여행기만 탐독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마침 대구 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27일이 제삿날인데 내려올 수 있냐고 하신다. 기회다. KTX 타면 차비가 얼만지 아냐는 둥, 여행 겸 볼일 겸, 일석이조 아니냐는 둥, 갖은 애교를 떨며 설득해본다. ‘알아서 하라’고 한다. ‘가라’는 얘기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네이버에서 내려가는 길을 대충 알아보고, 전국지도에 표시를 한 후 짐을 싼다.

<준비물>
비상식량(말린 바나나와 파인애플을 섞어서 지퍼락에 담는다. 그리고 칼로리바란스 한통), 의류(나시 티, 얇은 반바지), 기타(썬글래스, 썬크림, 디카, 전국지도, 펜, 핸드폰, 현금, 신용카드, 신분증, 기타 공구류).

<여행코스>
목동-안양-수원-병점-오산-송탄-평택-직산-천안-조치원-대전-옥천-영동-추풍령-김천-왜관-칠곡-대구. 찾아가는 길은 대체로 쉽다. ‘1번 국도’를 쭈~욱 타고 가다가 대전에서 ‘4번 국도’를 타면 된다. 다만 서울 벗어날 때, 천안, 대전 정도가 길이 조금 어렵다. 서울 벗어날 때, 목동 기준으로 목동-오금교-구로역 앞 우회전해서 계속 직진-독산동-시흥대로 만나면 우회전해서 계속 따라간다. 천안에서는, 천안 들어서자 마자 4거리(?)에서 좌회전해서 쭈~욱 따라간다. 대전에서는, 유성-한밭대로 만나면 좌회전 후 계속 직진-충남대-한밭대교-대전역-삼거리(자전거포 있음)-좌회전-4번국도를 타면 된다.

<여행 소감>
--무지 덥다--
다행히 첫날은 구름이 좀 껴서 햇볕은 좀 덜했다. 하지만 담 날은 쪄 죽기 딱 좋은 날씨다. 35도 가까이 되는 폭염에 강한 햇볕에 아스팔트 복사열에… 요즘 날씨 때문에 일사병으로 사망하는 사고들을 뉴스에서 많이 본 지라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행 내내 이온음료와 물을 약 스무 병 이상 마신 것 같다. 썬크림은 별 소용이 없다. 긴팔 토시라도 사 올걸 하는 후회를 한다.

--힘들다--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시간이 충분하면 널널모드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해지기 전에 도착해야 씻고 아홉시에 제사를 모실 수 있다. 초반엔 평지에서 평속 30을 유지했다. 하지만 천안부터는 속도가 무지 안난다. 체력이 문제일까? 뒷디레일러가 문제가 좀 있는데 그것 때문일까? 뭣 보다 맞바람이 심했다. 흔히들 후기에 보면 맞바람 탓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들 핑계 좀 그만 대쇼”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었다. 하지만, 혹시나 해서 완만한 내리막에서 페달링을 멈췄더니 자전거가 거의 그냥 서 있다. 그리고 체력저하로 김천쯤 부터는 평속 25 유지하기도 힘들다.

--펑크--
평택 다 와서 묵직한 돌이 뒷바퀴를 들어올리는 느낌이 들었다. 괜챦다. 하지만 한 오분 지나니 ‘스믈스믈’ 뒷바퀴가 주저앉는다. 새 튜브로 갈아끼웠다. 대전의 한 조그만 자전거포에서 바람을 더 넣었다. 순박하게 생기신 자전거포주인이 스포크가 몇 개 안되는 휠셑이 마냥 신기한 모양이다. 손수 바람을 넣어주신다. 칠곡에서 한번 더 펑크. 길이 15센치 정도의 가는 철사가 뒷바퀴에 ‘떡’하니 꽂혀있다. 때워서 갈았다. 대구 들어와서 또 바람이 빠진다. 그런데 이번엔 펌프가 고장났다. 하는 수 없이 집까지 택시를 탔다. “대구 다 와서 이게 뭔가” 싶지만, 곧 “대구 다 와서 이랬으니 다행이다”라고 생각한다. 추풍령에서 이랬으면 어쨌을까 싶다.

--만난 이들--
휴가시즌이 다 돼서 아마도 자전거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이 없다. 평택쯤 다 와서 한 무리의 자전거 여행객들을 만났다. 근데 벌써 거의 패잔병 마냥 기진맥진해서 자전거를 끌고가고 있었다. 생활자전거에 짐받이엔 텐트며 배냥이며 잔뜩 짊어지고서. 옥천 쯤에선 인심 좋은 가게 아주머니 덕분에 목욕탕에서 샤워도 한판 했다.  

--찜질방--
천안 시내의 한 찜질방. 목욕을 워낙 싫어하는지라 찜질방도 초창기 생겨날 무렵 한번 가본게 다였다. 근데 무지 좋다. 여행 후라 그런가? 뜨끈한 허브탕에 누워 쌘 물살의 마사지를 받으니 연세드신 아저씨들이 내는 '어~허~!'하는 감탄사가 절로 난다. 티비도 보고 컴터도 하고 밥도 먹고 그리고 잔다. 초저녁에 어린 애들이 애정행각을 벌이다가 주인이랑 매섭게 한판 벌이고 쫒겨난다. 근데 한밤에 잠시 깨어보니 장난아니다. 아무튼 잠자기엔 좀 불편하다. 시끄럽고, 또 넘 더워서 거의 탈진할 것 같았다.

--길안내 에피소드--
길찾기는 대체로 쉬웠다. 하지만 대전에서 좀 해맸다. 길가에 서 있는 한 아릿다운 여성에게 길을 물었다. “한밭대교 어떻게 가요?” “헉, 잘은 모르는데, 거기 무지 먼데요” “괜챦아요. 서울서 오는 길입니다”(의기양양하게). 알려주는 대로 가파른 다운힐을 일단 쭈~욱 내려간다. 혹시나 해서 주유소에서 다시 물어본다. “오신 길로 다시 올라가셔서요…” 오르막을 오르며 느꼈다. 길은 왠만하면 택시기사나 운전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로….

--아버지--
옥천에서 쉬고있는데 전화가 ‘삐리리’. “아부지다” “예” “어디야?” 집사람이 자전거타고 간다고 얘기한게 틀림없다. “옥천입니다” “야, 니 미친나? 얼마나 위험한데, 이 날씨에 죽을라꼬? 다시 올라가라” “예? 지금 옥천인데요” “…” 한참을 정말 조심해서 가겠다는 둥, 여차하면 버스 타겠다는 둥 해서 안심시켜드렸다. 서른이 넘었는데, 갑자기 철없는 아이가 된 듯한 기분이다. 하지만 어떡하지? 앞으로 돈과 시간만 허락되면 고공낙하, 심해저 탐험, 사막횡단도 해보고싶은데…

--내 핸드폰, 흑흑흑…--
대구광역시라는 팻말이 보인다. 드뎌 다 왔다. 디카를 꺼내서 기념사진 한판. 그리고 걱정하시는 부모님과 아내에게 전화 한 통화 올리는 예를 갖추려고 자전거의 핸드폰 케이스로 손이 간다. ‘헉!’ 핸드폰이 없다. 식당에 두고왔나? 아니다. 왔던 길을 돌아가볼까? 최소한 김천까지는 가 봐야된다. ‘누군가 주웠겠지’하며 일단 대구로 왔다. 전화를 해 봐도 받질 않는다. 알뜰여행 한답시고 잠도 찜질방서 자고 했건만, 두어달 전 산 핸드폰, 30만원이 ‘휙’ 날아갔다.

--집 도착--
제사를 큰댁에서 지내는 줄 알았는데, 우리집 제사다. ‘버섯돌이 모자’와 쫄바지 차림에 거지차림으로 집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할머니 이하 큰아버지, 큰어머니, 고모…약 20여명의 눈길이 집중된다. 다들 하나같이 “미칬다”고 하신다. 한 분 두 분 더 들어오실 때 마다 “야가 서울서 자전거타고 왔답니다” “머시라? 서울서? 니 우째 왔노?” 오시는 족족 말씀을 드린다.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제사드린다. “무사히 오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저와 제 주위 모든 사람들 건강하게 지켜주세요”하고…

--여행을 마치고…--
“니 미친나?”라고 하실 때 “네”라고 사실은 대답하고 싶었다. 그리고 “저처럼 미친*들 저 말고도 저 주변에 많아요”라고… ‘매니아’라는 말이 “~에 미친 사람”이란 뜻이니 틀린 말도 아니다. 아무튼, 그리 즐겁지도 않고 볼거리가 많은 여행도 아니었다. 추천하고 싶지도 않은 코스이다. 하지만 사서 고생하고, 고생에서 희열을 느끼고, 그런 희열로 무미건조한 일상을 달구는게 목표였다면 충분히 목표를 달성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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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
  • YO~! MAN
    대단 하십니다.
    저두 집이 대구라서.... 한번 도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두려워만 하고 있죠...
    이번 여름에 11일쯤 동해쪽으로 서울에서 출발해서 경주로 7번 국도길 한번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썬크림이 필요없다는 말이 남이야기 같지 않네요...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멋집니다. 매니아~!
  • 멋지십니다... ^o^
    정말루!!!!!
    전 스물다섯인데... 계획하구 시작하기전에....늘....
    이런저런 잡생각도 많고 걱정이 압선다는.....
    저도 님처럼 확 저질러버려야 겠다는....
    잘 읽구 갑니다. ^^;;;
  • ㅎㅎ수고하셨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사서고생? ㅎㅎ
  • 천안서 대구까지 헉 ... 밤을 맞이안하시다니 ...
  • 선크림 그래도 필요합니다. 안그러면 화상입어요. 선크림 필수. 의심이 가시면 안 바르시고 하루종일 자전거 타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ㅎㅎ...^^
  • irule글쓴이
    2004.7.30 14:50 댓글추천 0비추천 0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맞아요. 그나마 썬크림이 있어서 타죽지(?) 않은 것 같네요 ^^
  • 재밌었겠네요. 저도 고향에 자전거 타고 내려갈 계획을..
    경남 합천인데... 흠.
  • irule글쓴이
    2004.7.30 17:06 댓글추천 0비추천 0
    합천이면 대구서 바로 거기죠. 어머니 고향이 합천 용주인데.. 근데, 왠만하면 고향까지는 그냥 자전거를 고속버스에 싣고 가시고, 돌아오실 때 동해안이나 서해안 쪽으로 오시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서울-대구 정말 힘만들고 볼 것 없어요 ^^
  • 와웃~ 저도 서울함올라가보고싶은데.. ㅎㅎ 모르는거있음 질문드릴꼐요.. 집이대구라 ㅎ
  • irule글쓴이
    2004.7.31 18:06 댓글추천 0비추천 0
    넵. 근데 올라오시려면 업힐이 더 많을겁니다. 참고하세요 ^^
  • 글 잼있게 잘 봤습니다.ㅎㅎ
    존경 스럽습니다.
    그리고 땀에 쩔어서 집에 도착하셨을때의 분위기가 대충 그려지는군여..ㅋㅋ
  • 정말 대단한 후기입니다..
    재밌는 내용도 많네요...참고 할게요
  • 국도 3호선타고 내려가시면 훨신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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