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추위와 고통을 어찌 말로 다하겠습니까. 번장으로서 사전에 악천후를 예측하고 냉정한 판단하에 폭파시키지 못한 과오를 통감하는 바입니다. 다만 참가하신 모든 분들의 가슴 속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위안을 삼아봅니다. 실패한 역사의 기록이 불행의 재발을 방지하는 길이기에 이런 저런 감상을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제 생애에 이렇게 무모한 감행이 얼마나 될까 되짚어 보지만 그 날을 생각하면 바로 이틀 전인데도 아득한 느낌이 들면서 아직도 그 추위와 고통이 느껴지네요.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아! 내가 왜 그런 짓을 벌였을까”입니다. 많은 분들이 겉으로 표현은 못해도 제 욕 많이 하셨겠죠. 라이딩 내내, 14시간 동안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군요. 그래도 끝나니 재미있습니다. 이게 사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결국은 해낼 일을 너무 고민을 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참가하신 모든 분들과 눈물겨운 차량지원으로 우리를 살려준 분들께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1. 역사의 불행은 사소한 일에서 시작한다.
일차대전이 그렇고 유고 내전이 그랬듯이 2004년 6월 모일 기억나지 않는 어느 술자리에서 속초왕복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최초의 발설자 마저 불분명하게 대개 사고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 참담한 결과를 그 자리에서 그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 사람이 아니지. 사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왕복은 꿈꾸는 사람이든 편도를 원하는 사람이든 간에 속초는 그 어떤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나름의 신비와 꿈을 주는 곳이다. 그 꿈과 비극의 카타르시스가 움트기 시작한 것이다.
2. 2004년 9월 10일
8월의 질펀한 술자리에서 거사일을 확정하고 공지를 띄웠다. 이미 일은 벌려놓았고 이제 내일 가는 일만 남았다. 기상청에 전화를 걸어보니 틀림없이 비가 온다고 힘을 주어 말한다. “이걸 어찌해야 되나.” “폭파시키까.” “아니 그러기에는 벌려놓은 판이 너무 크다.” 현재 참가의사를 밝힌 분이 모두 38명. 여기에 “비”라는 변수를 연결시키면 이건 답이 안나온다. 다시 과학팀에 전화를 해본다. 답은 역시 “비.”
저녁 11시, 잠자리에 들기 전 창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살피는데 역시 개인적인 경험의 기준으로도 비가 올듯하다. “에라 모르겠다. 내일 일어나서 많이 오면 폭파다. 일단 잠이나 자자. 잠 못자서 퍼지면 개쪽이다.” 늘 그렇듯 잠이 그리 쉽게 오질 않는다. 바람소리만 흉흉한 것이.
3. 2004년 9월 11일 새벽
2시 40분에 알람이 울리고 비비적거리며 일어난다. 화장실을 가고 짐 챙기고 김밥이나 싸서 먹을까 하는데 휴대폰이 울어댄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 내려가 보니 비는 안오고 이미 동해님 트럭과 설악맨님 카니발에 자전거를 싣고 출발준비를 하고 있다.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 특유의 음흉한 미소로 위로의 인사를 나누고 “나 말고도 많구나.”라는 안도감을 주고받으면서 잠실로 향한다. “흐흐 짐승들.” 슬슬 비가 내린다. 하루의 시작이다.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하나의 고리 바로 징글 징글한 “비”다.
잠실 선착장, 서서히 사람들이 모여들고 빗줄기도 점점 세기를 더해간다. 그러나 그 누구도 철군을 말하지 않는다. 싸움의 시기에 화친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용감한 사람이다. 그 과업은 역사가 평가하지 않았던가. 그리 자전거가 좋은가. 단 한분이라도 “철군”을 진언했다면 나는 과감하게 칼을 뽑았을 것이다. “오늘 폭파시키고 근교에서 술이나 한잔...ㅋㅋㅋ” 그러나 이미 대세를 거스르기에는 번장의 깡다구가 모자란다. “동해님 회비 걷으세요.” 이 한마디만 뱉지 않았어도
용감한 총무 동해님이 회비를 걷어보니 모두 28명이다. 이 비에 28명이라. 참 세상에 미친 사람들 많구나. 잔차질에 목숨 건 사람 많구만. “그래 가보자. 지원차도 있고. 이 정도면 비면 버틸 만하다.”
4. 머나먼 “용머리”
덕소길을 포기하고 하남으로 팔당대교를 건넌다. 비가 오는 새벽길에 늘어선 25대의 자전거가 연출하는 그림은 감탄 그 자체다. 미사리를 접어들면서 빗줄기는 굵어지고 우리는 아침을 먹기로 한 용머리 휴게소를 향해서 간다. 그런데 이 놈의 용머리는 왜 이다지도 멀단 말인가? 장소를 정한 나도 서서히 지쳐가고 몸은 이미 빗물과 일체가 된지 오래다. 방수라던 자켓은 환기를 위해 벌어진 틈으로 튀난 빗방울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맨 뒤에서 사람들을 챙긴답시고 천천히 달리는 데도 왠 빗물은 그리 많이 튀는지. 입에서 모래가 버석거리고 가끔은 코에 물이 들어가 코가 맹맹해지는 것이 더 이상 두려워 할 것이 없다.
내 머리 속의 용머리는 용문 터널 지나 한 굽이만 돌면 바로 나오는 곳인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사람들 눈빛에 서서히 원망이 차오른다. 내 속도 타오르기 시작한다. “이거 밥먹기 전에 퍼지는 거 아냐. 그냥 양평에서 때우고 올 것을. 비도 오는데 이 닭아.” 자책이 이어지지만 안갈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 가보자. 이제 곧 나온다. 용머리 직전의 직선도로가 나오고 저 멀리 휴게소가 보인다. “아! 밥이다.” 뜨거운 국물에 소주 한잔으로 어떻게 해보지만 그저 순간일 뿐이다. 밖에는 또 비다. 다시 나가기 싫은 그 길에 나선다.
5. 홍천을 지나 인제를 돌아 원통으로.
홍천을 지나고 부터 빗줄기가 거세지고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어댄다. 그러나 날씨탓을 하기에는 너무 많이 왔다. 죽든 살든 가는 수밖에 없다. 화양강 휴게소를 지나고 철정검문소를 지나면서 길이 외길로 갓길이 없다. 보리밥 쌈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공사 중인 44번국도를 지겹게 따라간다. 바람은 이미 폭풍이 된지 오래고 빗줄기는 45도를 유지한다. 이건 해도 너무한다. 장거리만 나오면 비와 친구를 먹으니 편할 날이 없다. 모두 다 그저 꾸역 꾸역 고개를 오르고 언덕을 넘어 군축령 터널을 통과한다. 중간에 초록바다님을 베레모님 차에 태우느라 늦어진 거리를 복구하느라 반 죽는 줄 알았다. 이런 경우는 정말 힘들다. 앞에서는 짐승(?)들이 끌지만 뒤에 쳐진 사람을 이 비에 방치하면 죽음이다. 대신 이 거리를 복구하는 것은 오로지 내 발의 몫이다. 인제에서 겨우 따라잡고 휴게소에서 오뎅 국물을 들이킨다. 모두가 추위에 쩔은 얼굴이고 몸은 사시나무가 따로 없을 정도로 떨어댄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가자! 원통으로...
내 기억에는 미시령으로 갈라지는 용대리 삼거리까지 평지였지만 그건 차타고 갈 때 이야기다. 최악의 빗방울이 내리치고 설악산에서 내려오는 골바람이 피부에 와 닿는다. 한계령 갈림길부터 평속은 18-19를 오가고 패달질은 본능이 된지 오래다. 그저 앞만 보고 평지를 달리며 한가지 생각만 머리 속에 떠올린다. “과연 이 인원을 데리고 미시령을 오를 수 있을까. 이미 어두워지는데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참 드럽게 재수 없구만....ㅋㅋㅋ.” 용대리 못미쳐 디원바이크님 하차한다. 다시 베레모님께 연락하여 픽업을 부탁드린다. 이 양반 없었으면 오늘 끝이구만.
6. 이제 미시령이다.
아무래도 걱정이 앞선다. 이 지경에서 미시령이라니. 번장으로서 온갖 상상이 다 든다. 삼거리 민예단지에서 의견을 물어본다. 짱구를 굴려보지만 그 시간에 그 비에 다른 대안이 없다. 전체가 한 줄로 미시령에 붙기로 한다. 레이님에게 물어보니 “죽던 살던 가볼께요.”라고 말하니 답은 뻔하다. 래핑의 마술사 가 간다는데 어찌 그 길을 막을수 있을까. 다만 마지막 휴식에서 에너지 보충을 못한게 영 아쉽다. 내 뱃속도 허한 것이 과연 저기를 올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 된다. 13시간 내내 비에 절은 몸뗑이에는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에너지는 이미 바닥이 나있었다. "과연 가능할까?“
어둠을 가르는 파이팅으로 서로를 격려하면서 한 줄로 미시령에 붙는다. 깜박이를 켜고 어두운 미시령을 오르는 짐승(?)들을 뒤에서 보니 무슨 감정이 남아있는지 찡하다. 우리가 사고를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길 잘했다.”라는 착란이 든다. 보조를 맞춰 올라가다 상단부 3키로부터 어쩔 수 없이 각자 라이딩으로 들어간다. 내 무르팍도 맛이 간지 오래지만 지나온 길을 생각하면서, 앞에서 어둠 속에 실루엣을 남기며 올라가는 분들을 보며 꾸역꾸역 올라간다. 정상이 가까워오면서 어둠 속에서 자전거를 끌고 타고 눈물겹게 비와 추위와 싸우면 올라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 저 분들과 여기까지 함께 했다는 뭉클함에 몸이 쩌릿하다. 중간에 보고픈님의 지원차가 퍼졌다. 하루 종일 반클러치로 고생을 한 탓일게다. 차마 뭐라 드릴 말이 없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핑계김의 하차를 끝내고 다시 올라간다. 멀리 엘지주유소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아..저기다. 정상이다. 끌고 타고 모든 분들이 추위와 배고픔을 누르고 올라온다. 말로 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저 사람들을 여기로 끌어 올린 것이다. 서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 멀리서 지는 태양님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예요. 여기“
7. 미시령을 탈출하라.
이제 다 올라왔다. 저 고개를 모두 다 올라온 것이다. 내려가서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사시미에 소주 한잔으로 마무리하면 오늘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하는 일만 남았다는 생각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가 되어버렸다. 그 정신에 온도계를 찍어보니 7-8도를 가르킨다. 거기에 강풍이 불고 안개는 한치 앞을 분간하기 힘들고 비는 바람에 실려 날리고 있었다. 도저히 하산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보지만 미시령 정상은 속초에서도 먼 곳이다. 찔러본 곳에서 답이 없다. 그렇다고 휴게소에서 무한정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추위와 피로에 지친 동료들의 의견을 구해보니 내려가잖다. 고민이다. 이걸 내려 갈 수 있을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답이 안나온다. “그래 내려가보자. 지원차 앞세우고 한번 가보자. 죽기야 하겠나.”고 문을 여는 순간 생존을 위한 잔머리가 돌아간다. “여기서 내려가면 죽는다.” 다시 휴게소로 들어온다. 이렇게 추워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없을 정도로 추위는 휴게소 광장에 서있기 조차 힘들 정도였다. “콜밴 수배해. 돈 내면 되잖어. 덜덜덜...” 모두의 의견이다. 그러나 여기는 속초하고도 미시령이다.
휴게소측은 트럭이 없단다. 그렇다면 속초국에 전화를 걸어 차량수배를 부탁한다. 다양한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속초경찰서에 전화를 건다. “여기 미시령인데요.” “아 미시령은 고성경찰서 관할인데요.” “아! 네. (하튼 이 인간들은...)” 그 사이 추위와 체력에 한계를 보인 팀부터 내려보낸다. 휴게소 문을 열고 나가는 그 등짝이 얼마나 부럽던지....^^
결국 고성경찰서로 전화를 해서 순찰차 한 대를 지원받기로 하고 저녁을 예약한 횟집을 통해 트럭 한 대를 부르고 다시 콘도에 내려가 있는 까망수리님의 차를 지원받기로 한다. 참 살다 살다 별짓을 다해본다. 자전거만 아니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저 밖에서 주인들의 무관심 속에 서있는 자전거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결국 차량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일차로 트럭에 자전거를 싣고 순찰차에 사람타고 해서 내려간다. 남아있는 것은 사람 7에 잔차 4. 이걸 트라제에 실을 수 있을까. 까망수리 형수님과 보고픈 형수님이 안개를 뚫고 올라오시고 결국 사람과 잔차를 우겨넣고 안개를 헤치고 내려온다. 이제 살았다. 도대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다. 우리에게 길 안내를 담당하던 앞차가 가드레일을 찾지 못하고 급정거하기를 수차례, 모두들 한마디씩 던진다. “우리 내려왔으면 죽었어요. 저 안개 속으로 날아가면.....찾기도 힘들걸요.” 안개 속에 자전거만 길바닥에 들어 누어 있고 사람은 간데 없는 9월의 미시령. 상상하기도 싫다.
8. 비야 지겹다.
2시에 잠이 들었는데 어디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루님이 터미널에 가기 위해 짐을 추스르는 소리다. 역시 선수는 다르다. 밖은 아직도 비가 내리는데 이 지겨운 비를 다시 맞으며 터미널로 가다니...^^
지겨운 비가 아직도 내린다. 아침밥보다 한화콘도를 어떻게 벗어날지가 걱정이다. 왕복으로 신청한 분들도 내리는 비에 일찌감치 포기한 듯 싶다. “여기를 어떻게 탈출하나. 도대체 뭐가 이리 복잡한거여. 욕나오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보지만 역시 버스를 대절하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자전거가 문제다. 총 16대의 자전거를 서울로 날라야 한다. 버스 트렁크에 들어가는 것은 고작 세대뿐.
여행사에 가보지만 아직 출근 전, 하긴 일요일인데 우리가 이상한 거지. 다시 가보니 아리따운 아가씨가 직원이다. “버스를 대절하려고 하는데요. 자전거가 16대있구요. 사람이랑 서울 잠실까지만 실어다 주면 됨다.” “좀 구하기 힘들텐데요. 이미 예약이 다 끝나서요.” 표정이 돌변하면서...“아 그럼 안되죠. 반드시 구하시기 바랍니다.”
돌아서서 버스가 없는 상황을 그려본다. 골치 아프다. 트럭으로 잔차를 서울로 실어보내고 사람만 버스를 타고 가는 게 제일 확실하다. 비용도 더 들어간다. 에라 버스가 구해지겠지. 동해님 핸폰이 울어대는 순간 얼굴에 화색이 돈다. 버스가 해결된다.
각 방에서 술잔이 돌고 사람들이 다시 활기를 찾고 참 힘든 여정이다. 10시30분에 버스가 도착하고 자전거를 싣고 남아있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서울을 향해 출발......이제야 끝이다. “내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각오로 소주 한컵을 완샷으로 넘긴다. 에라이...zzz
9. 에필로그
잠실에 도착하면서 비가온다. “아예 비를 몰고다니는 구만.” “이거 해도 너무하네” 잠실에서 배드테일님과 대수롭군님이 자전거로 귀가를 하신단다. “고생하셨습니다. 안녕히계세요.” 그리고 10분후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비가 쏟아진다. 두분은 그 비를 다 맞으셨을러나....
출발지인 삼성아파트에 도착하니 비가 제법이다. 모두들 다시 우비를 꺼낸다. “아! 정말 싫다.”
10. 이 분들이 없었다면....
두분 형수님과 베레모님의 차량지원과 물품보급이 없었다면 우리의 라이딩은 양평에서 끝났을 겁니다. 앞 뒤로 날아다니신 베레모님은 수송과 미캐닉 역할로 라이딩을 유지시켜주셨습니다. 미시령에서 클러치가 타버릴 정도로 라이딩과 함께 하신 보고픈 형수님과 뽑은지 얼만 안되는 트라제로 거지 중에 상거지를 자처하는 우리를 살려주신 까망수리 사모님의 지원을 어찌 잊겠습니까.
목동에서 잠실까지 차량으로 잔차를 수송한 우리의 동해님과 설악맨님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 날씨에 잠실까지 잔차를 타고 갔다면.....특히 총무를 맡아 궂은 일을 즐겁게 처리해나간 동해님께는 트리플 엑스로 감사를 드립니다.
언제나 넉넉한 협찬을 아끼지 않는 제우스강님께는 제가 소주 한잔 쏘겠습니다. 타이거님과 현진님께서 큰 숙제인 숙박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테이핑으로 무릎 생명연장의 꿈을 준 샤만님, 그 추위에 잔차를 싣느라 고생한 지는 태양님을 비롯한 에너자이저들에게 더 큰 에너지가 충만하길 바랍니다.
저는 못봤지만 지나가는 길에 격려를 아끼지 않은 kwakids님 고맙습니다. 지원금으로 미시령에서 마지막 지원차량을 기다리면서 온몸을 데파주는 감자에 소주를 정말 맛있게 사먹었습니다. 총무가 회비는 절대 못쓴다고 야박하게 자르는 바람에...^^
양평가는 길에 창문을 열고 박수와 괴성을 질러주신 여자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그 험한 길을 함께 한 우리의 팀원들에게 축하와 감사를 드립니다. 쭈욱 행복한 라이딩이 함께 하리라 믿습니다.
[“호흡곤란” 2004 닐니리 해피 속초라이딩을 만든 사람들]
출연 : 대수롭군, 초록바다, 디원바이크, haru, 설악맨, 동해, 목동, 지는태양, 보고픈 내외분, 까망수리 내외분, 불나방, 제우스강, 타이거, 늦바람, 작심3일, gd9856, badtail, 산타, 베레모, 레이, shaman, 윤기있는 세상, kkk, prollo, yangah 외 1분.(없는 분은 리플달아주세요.)
특별출연 : 말근육님, 콰키드님, 지나가는 여성한분, 고성경찰서 경찰 2분, 트럭기사
차량지원 : 베레모님, 보고픈 & 까망수리 형수님, 동해, 설악맨, 고성경찰서, 남북횟집
숙박지원 : 타이거님, 현진님 외 1분
금품지원 : 제우스강님, kwakids님
사진촬영 : 보고픈님, prollo님, 베레모님
기술지원 : 베레모님
안주지원 : 두분 형수님
의료지원 : shaman님
의류지원 : 용머리 휴게소 주방(레이님 랩)
버스섭외 : 한화콘도내 대원관광 이쁜 아가씨
기 획 : 호흡곤란 술멤버들
Executive Producer : 동해님
Producer : yangah
*고생하시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1. 역사의 불행은 사소한 일에서 시작한다.
일차대전이 그렇고 유고 내전이 그랬듯이 2004년 6월 모일 기억나지 않는 어느 술자리에서 속초왕복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최초의 발설자 마저 불분명하게 대개 사고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 참담한 결과를 그 자리에서 그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 사람이 아니지. 사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왕복은 꿈꾸는 사람이든 편도를 원하는 사람이든 간에 속초는 그 어떤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나름의 신비와 꿈을 주는 곳이다. 그 꿈과 비극의 카타르시스가 움트기 시작한 것이다.
2. 2004년 9월 10일
8월의 질펀한 술자리에서 거사일을 확정하고 공지를 띄웠다. 이미 일은 벌려놓았고 이제 내일 가는 일만 남았다. 기상청에 전화를 걸어보니 틀림없이 비가 온다고 힘을 주어 말한다. “이걸 어찌해야 되나.” “폭파시키까.” “아니 그러기에는 벌려놓은 판이 너무 크다.” 현재 참가의사를 밝힌 분이 모두 38명. 여기에 “비”라는 변수를 연결시키면 이건 답이 안나온다. 다시 과학팀에 전화를 해본다. 답은 역시 “비.”
저녁 11시, 잠자리에 들기 전 창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살피는데 역시 개인적인 경험의 기준으로도 비가 올듯하다. “에라 모르겠다. 내일 일어나서 많이 오면 폭파다. 일단 잠이나 자자. 잠 못자서 퍼지면 개쪽이다.” 늘 그렇듯 잠이 그리 쉽게 오질 않는다. 바람소리만 흉흉한 것이.
3. 2004년 9월 11일 새벽
2시 40분에 알람이 울리고 비비적거리며 일어난다. 화장실을 가고 짐 챙기고 김밥이나 싸서 먹을까 하는데 휴대폰이 울어댄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 내려가 보니 비는 안오고 이미 동해님 트럭과 설악맨님 카니발에 자전거를 싣고 출발준비를 하고 있다.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 특유의 음흉한 미소로 위로의 인사를 나누고 “나 말고도 많구나.”라는 안도감을 주고받으면서 잠실로 향한다. “흐흐 짐승들.” 슬슬 비가 내린다. 하루의 시작이다.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하나의 고리 바로 징글 징글한 “비”다.
잠실 선착장, 서서히 사람들이 모여들고 빗줄기도 점점 세기를 더해간다. 그러나 그 누구도 철군을 말하지 않는다. 싸움의 시기에 화친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용감한 사람이다. 그 과업은 역사가 평가하지 않았던가. 그리 자전거가 좋은가. 단 한분이라도 “철군”을 진언했다면 나는 과감하게 칼을 뽑았을 것이다. “오늘 폭파시키고 근교에서 술이나 한잔...ㅋㅋㅋ” 그러나 이미 대세를 거스르기에는 번장의 깡다구가 모자란다. “동해님 회비 걷으세요.” 이 한마디만 뱉지 않았어도
용감한 총무 동해님이 회비를 걷어보니 모두 28명이다. 이 비에 28명이라. 참 세상에 미친 사람들 많구나. 잔차질에 목숨 건 사람 많구만. “그래 가보자. 지원차도 있고. 이 정도면 비면 버틸 만하다.”
4. 머나먼 “용머리”
덕소길을 포기하고 하남으로 팔당대교를 건넌다. 비가 오는 새벽길에 늘어선 25대의 자전거가 연출하는 그림은 감탄 그 자체다. 미사리를 접어들면서 빗줄기는 굵어지고 우리는 아침을 먹기로 한 용머리 휴게소를 향해서 간다. 그런데 이 놈의 용머리는 왜 이다지도 멀단 말인가? 장소를 정한 나도 서서히 지쳐가고 몸은 이미 빗물과 일체가 된지 오래다. 방수라던 자켓은 환기를 위해 벌어진 틈으로 튀난 빗방울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맨 뒤에서 사람들을 챙긴답시고 천천히 달리는 데도 왠 빗물은 그리 많이 튀는지. 입에서 모래가 버석거리고 가끔은 코에 물이 들어가 코가 맹맹해지는 것이 더 이상 두려워 할 것이 없다.
내 머리 속의 용머리는 용문 터널 지나 한 굽이만 돌면 바로 나오는 곳인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사람들 눈빛에 서서히 원망이 차오른다. 내 속도 타오르기 시작한다. “이거 밥먹기 전에 퍼지는 거 아냐. 그냥 양평에서 때우고 올 것을. 비도 오는데 이 닭아.” 자책이 이어지지만 안갈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 가보자. 이제 곧 나온다. 용머리 직전의 직선도로가 나오고 저 멀리 휴게소가 보인다. “아! 밥이다.” 뜨거운 국물에 소주 한잔으로 어떻게 해보지만 그저 순간일 뿐이다. 밖에는 또 비다. 다시 나가기 싫은 그 길에 나선다.
5. 홍천을 지나 인제를 돌아 원통으로.
홍천을 지나고 부터 빗줄기가 거세지고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어댄다. 그러나 날씨탓을 하기에는 너무 많이 왔다. 죽든 살든 가는 수밖에 없다. 화양강 휴게소를 지나고 철정검문소를 지나면서 길이 외길로 갓길이 없다. 보리밥 쌈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공사 중인 44번국도를 지겹게 따라간다. 바람은 이미 폭풍이 된지 오래고 빗줄기는 45도를 유지한다. 이건 해도 너무한다. 장거리만 나오면 비와 친구를 먹으니 편할 날이 없다. 모두 다 그저 꾸역 꾸역 고개를 오르고 언덕을 넘어 군축령 터널을 통과한다. 중간에 초록바다님을 베레모님 차에 태우느라 늦어진 거리를 복구하느라 반 죽는 줄 알았다. 이런 경우는 정말 힘들다. 앞에서는 짐승(?)들이 끌지만 뒤에 쳐진 사람을 이 비에 방치하면 죽음이다. 대신 이 거리를 복구하는 것은 오로지 내 발의 몫이다. 인제에서 겨우 따라잡고 휴게소에서 오뎅 국물을 들이킨다. 모두가 추위에 쩔은 얼굴이고 몸은 사시나무가 따로 없을 정도로 떨어댄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가자! 원통으로...
내 기억에는 미시령으로 갈라지는 용대리 삼거리까지 평지였지만 그건 차타고 갈 때 이야기다. 최악의 빗방울이 내리치고 설악산에서 내려오는 골바람이 피부에 와 닿는다. 한계령 갈림길부터 평속은 18-19를 오가고 패달질은 본능이 된지 오래다. 그저 앞만 보고 평지를 달리며 한가지 생각만 머리 속에 떠올린다. “과연 이 인원을 데리고 미시령을 오를 수 있을까. 이미 어두워지는데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참 드럽게 재수 없구만....ㅋㅋㅋ.” 용대리 못미쳐 디원바이크님 하차한다. 다시 베레모님께 연락하여 픽업을 부탁드린다. 이 양반 없었으면 오늘 끝이구만.
6. 이제 미시령이다.
아무래도 걱정이 앞선다. 이 지경에서 미시령이라니. 번장으로서 온갖 상상이 다 든다. 삼거리 민예단지에서 의견을 물어본다. 짱구를 굴려보지만 그 시간에 그 비에 다른 대안이 없다. 전체가 한 줄로 미시령에 붙기로 한다. 레이님에게 물어보니 “죽던 살던 가볼께요.”라고 말하니 답은 뻔하다. 래핑의 마술사 가 간다는데 어찌 그 길을 막을수 있을까. 다만 마지막 휴식에서 에너지 보충을 못한게 영 아쉽다. 내 뱃속도 허한 것이 과연 저기를 올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 된다. 13시간 내내 비에 절은 몸뗑이에는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에너지는 이미 바닥이 나있었다. "과연 가능할까?“
어둠을 가르는 파이팅으로 서로를 격려하면서 한 줄로 미시령에 붙는다. 깜박이를 켜고 어두운 미시령을 오르는 짐승(?)들을 뒤에서 보니 무슨 감정이 남아있는지 찡하다. 우리가 사고를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길 잘했다.”라는 착란이 든다. 보조를 맞춰 올라가다 상단부 3키로부터 어쩔 수 없이 각자 라이딩으로 들어간다. 내 무르팍도 맛이 간지 오래지만 지나온 길을 생각하면서, 앞에서 어둠 속에 실루엣을 남기며 올라가는 분들을 보며 꾸역꾸역 올라간다. 정상이 가까워오면서 어둠 속에서 자전거를 끌고 타고 눈물겹게 비와 추위와 싸우면 올라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 저 분들과 여기까지 함께 했다는 뭉클함에 몸이 쩌릿하다. 중간에 보고픈님의 지원차가 퍼졌다. 하루 종일 반클러치로 고생을 한 탓일게다. 차마 뭐라 드릴 말이 없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핑계김의 하차를 끝내고 다시 올라간다. 멀리 엘지주유소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아..저기다. 정상이다. 끌고 타고 모든 분들이 추위와 배고픔을 누르고 올라온다. 말로 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저 사람들을 여기로 끌어 올린 것이다. 서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 멀리서 지는 태양님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예요. 여기“
7. 미시령을 탈출하라.
이제 다 올라왔다. 저 고개를 모두 다 올라온 것이다. 내려가서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사시미에 소주 한잔으로 마무리하면 오늘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하는 일만 남았다는 생각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가 되어버렸다. 그 정신에 온도계를 찍어보니 7-8도를 가르킨다. 거기에 강풍이 불고 안개는 한치 앞을 분간하기 힘들고 비는 바람에 실려 날리고 있었다. 도저히 하산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보지만 미시령 정상은 속초에서도 먼 곳이다. 찔러본 곳에서 답이 없다. 그렇다고 휴게소에서 무한정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추위와 피로에 지친 동료들의 의견을 구해보니 내려가잖다. 고민이다. 이걸 내려 갈 수 있을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답이 안나온다. “그래 내려가보자. 지원차 앞세우고 한번 가보자. 죽기야 하겠나.”고 문을 여는 순간 생존을 위한 잔머리가 돌아간다. “여기서 내려가면 죽는다.” 다시 휴게소로 들어온다. 이렇게 추워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없을 정도로 추위는 휴게소 광장에 서있기 조차 힘들 정도였다. “콜밴 수배해. 돈 내면 되잖어. 덜덜덜...” 모두의 의견이다. 그러나 여기는 속초하고도 미시령이다.
휴게소측은 트럭이 없단다. 그렇다면 속초국에 전화를 걸어 차량수배를 부탁한다. 다양한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속초경찰서에 전화를 건다. “여기 미시령인데요.” “아 미시령은 고성경찰서 관할인데요.” “아! 네. (하튼 이 인간들은...)” 그 사이 추위와 체력에 한계를 보인 팀부터 내려보낸다. 휴게소 문을 열고 나가는 그 등짝이 얼마나 부럽던지....^^
결국 고성경찰서로 전화를 해서 순찰차 한 대를 지원받기로 하고 저녁을 예약한 횟집을 통해 트럭 한 대를 부르고 다시 콘도에 내려가 있는 까망수리님의 차를 지원받기로 한다. 참 살다 살다 별짓을 다해본다. 자전거만 아니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저 밖에서 주인들의 무관심 속에 서있는 자전거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결국 차량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일차로 트럭에 자전거를 싣고 순찰차에 사람타고 해서 내려간다. 남아있는 것은 사람 7에 잔차 4. 이걸 트라제에 실을 수 있을까. 까망수리 형수님과 보고픈 형수님이 안개를 뚫고 올라오시고 결국 사람과 잔차를 우겨넣고 안개를 헤치고 내려온다. 이제 살았다. 도대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다. 우리에게 길 안내를 담당하던 앞차가 가드레일을 찾지 못하고 급정거하기를 수차례, 모두들 한마디씩 던진다. “우리 내려왔으면 죽었어요. 저 안개 속으로 날아가면.....찾기도 힘들걸요.” 안개 속에 자전거만 길바닥에 들어 누어 있고 사람은 간데 없는 9월의 미시령. 상상하기도 싫다.
8. 비야 지겹다.
2시에 잠이 들었는데 어디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루님이 터미널에 가기 위해 짐을 추스르는 소리다. 역시 선수는 다르다. 밖은 아직도 비가 내리는데 이 지겨운 비를 다시 맞으며 터미널로 가다니...^^
지겨운 비가 아직도 내린다. 아침밥보다 한화콘도를 어떻게 벗어날지가 걱정이다. 왕복으로 신청한 분들도 내리는 비에 일찌감치 포기한 듯 싶다. “여기를 어떻게 탈출하나. 도대체 뭐가 이리 복잡한거여. 욕나오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보지만 역시 버스를 대절하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자전거가 문제다. 총 16대의 자전거를 서울로 날라야 한다. 버스 트렁크에 들어가는 것은 고작 세대뿐.
여행사에 가보지만 아직 출근 전, 하긴 일요일인데 우리가 이상한 거지. 다시 가보니 아리따운 아가씨가 직원이다. “버스를 대절하려고 하는데요. 자전거가 16대있구요. 사람이랑 서울 잠실까지만 실어다 주면 됨다.” “좀 구하기 힘들텐데요. 이미 예약이 다 끝나서요.” 표정이 돌변하면서...“아 그럼 안되죠. 반드시 구하시기 바랍니다.”
돌아서서 버스가 없는 상황을 그려본다. 골치 아프다. 트럭으로 잔차를 서울로 실어보내고 사람만 버스를 타고 가는 게 제일 확실하다. 비용도 더 들어간다. 에라 버스가 구해지겠지. 동해님 핸폰이 울어대는 순간 얼굴에 화색이 돈다. 버스가 해결된다.
각 방에서 술잔이 돌고 사람들이 다시 활기를 찾고 참 힘든 여정이다. 10시30분에 버스가 도착하고 자전거를 싣고 남아있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서울을 향해 출발......이제야 끝이다. “내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각오로 소주 한컵을 완샷으로 넘긴다. 에라이...zzz
9. 에필로그
잠실에 도착하면서 비가온다. “아예 비를 몰고다니는 구만.” “이거 해도 너무하네” 잠실에서 배드테일님과 대수롭군님이 자전거로 귀가를 하신단다. “고생하셨습니다. 안녕히계세요.” 그리고 10분후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비가 쏟아진다. 두분은 그 비를 다 맞으셨을러나....
출발지인 삼성아파트에 도착하니 비가 제법이다. 모두들 다시 우비를 꺼낸다. “아! 정말 싫다.”
10. 이 분들이 없었다면....
두분 형수님과 베레모님의 차량지원과 물품보급이 없었다면 우리의 라이딩은 양평에서 끝났을 겁니다. 앞 뒤로 날아다니신 베레모님은 수송과 미캐닉 역할로 라이딩을 유지시켜주셨습니다. 미시령에서 클러치가 타버릴 정도로 라이딩과 함께 하신 보고픈 형수님과 뽑은지 얼만 안되는 트라제로 거지 중에 상거지를 자처하는 우리를 살려주신 까망수리 사모님의 지원을 어찌 잊겠습니까.
목동에서 잠실까지 차량으로 잔차를 수송한 우리의 동해님과 설악맨님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 날씨에 잠실까지 잔차를 타고 갔다면.....특히 총무를 맡아 궂은 일을 즐겁게 처리해나간 동해님께는 트리플 엑스로 감사를 드립니다.
언제나 넉넉한 협찬을 아끼지 않는 제우스강님께는 제가 소주 한잔 쏘겠습니다. 타이거님과 현진님께서 큰 숙제인 숙박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테이핑으로 무릎 생명연장의 꿈을 준 샤만님, 그 추위에 잔차를 싣느라 고생한 지는 태양님을 비롯한 에너자이저들에게 더 큰 에너지가 충만하길 바랍니다.
저는 못봤지만 지나가는 길에 격려를 아끼지 않은 kwakids님 고맙습니다. 지원금으로 미시령에서 마지막 지원차량을 기다리면서 온몸을 데파주는 감자에 소주를 정말 맛있게 사먹었습니다. 총무가 회비는 절대 못쓴다고 야박하게 자르는 바람에...^^
양평가는 길에 창문을 열고 박수와 괴성을 질러주신 여자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그 험한 길을 함께 한 우리의 팀원들에게 축하와 감사를 드립니다. 쭈욱 행복한 라이딩이 함께 하리라 믿습니다.
[“호흡곤란” 2004 닐니리 해피 속초라이딩을 만든 사람들]
출연 : 대수롭군, 초록바다, 디원바이크, haru, 설악맨, 동해, 목동, 지는태양, 보고픈 내외분, 까망수리 내외분, 불나방, 제우스강, 타이거, 늦바람, 작심3일, gd9856, badtail, 산타, 베레모, 레이, shaman, 윤기있는 세상, kkk, prollo, yangah 외 1분.(없는 분은 리플달아주세요.)
특별출연 : 말근육님, 콰키드님, 지나가는 여성한분, 고성경찰서 경찰 2분, 트럭기사
차량지원 : 베레모님, 보고픈 & 까망수리 형수님, 동해, 설악맨, 고성경찰서, 남북횟집
숙박지원 : 타이거님, 현진님 외 1분
금품지원 : 제우스강님, kwakids님
사진촬영 : 보고픈님, prollo님, 베레모님
기술지원 : 베레모님
안주지원 : 두분 형수님
의료지원 : shaman님
의류지원 : 용머리 휴게소 주방(레이님 랩)
버스섭외 : 한화콘도내 대원관광 이쁜 아가씨
기 획 : 호흡곤란 술멤버들
Executive Producer : 동해님
Producer : yangah
*고생하시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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