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1994년 5월에 구례에서 성삼재 노고단 천왕봉 중산리로 하산하는 자전거 종주기입니다.
10년이 지난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국립공원에 자전거 출입을 막지는 않았습니다.>
-지리산 종주기-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지리산 종주 말만 들어도 한번쯤 해보고 싶을 것이다.
지리산의 수많은 준봉과 준봉을 넘어가는 주능선의 산길은 장엄하면서 환상적이다.
또한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면 타고 오르고 싶고 시도 해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지리산은 산악자전거 코스는 아니다. 노고단과 천왕봉까지의 45km의 주능선과
중산리쪽 10여km의 하산길은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곳은 겨우 연하천산장 입구 몇십m,
벽소령 몇십m, 장터목 입구 등이며 나머지는 자전거를 배낭과 함께 어깨에 메든지
끌고 가야 하는 코스인 것이다. 80여km중 50여km는 자전거가 나를 타야 한다.
좌우지간 떠나보자 같이 가보자 1994년 5월, 3명이 출발.....
서울서 구례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구례에서 하루를 묵고 난 뒤, 아침 일찍 구례를 출발
천은사를 거쳐 성삼재까지는 아스팔트 도로라서 아주 수월하게 자전거에 미친 세명은
한번도 쉬지않고 성삼재까지 올랐다.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는 비포장도로로 약4km 정도 페달를 밟으면 신비롭게 운무에
싸인 노고단을 볼 수 있었다. 이구간은 비포장도로로는 군데 군데 경사가 급했으나
등산객들의 박수소리에 자전거에서 내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기까지는 신나는 투어였다. 그러나 노고단에서 주능선 산길을 들어서면서 고행의
길은 시작이다.
1507m의 노고단에서 1915m의 천왕봉까지는 1500m가 넘는 준봉이 10여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주요 준봉들로는 반야봉(1733m),삼도봉(1550m),토끼봉(1533m),
명선봉(1586m),덕평봉(1521m),칠선봉(1576m),영신봉(1651m),촛대봉(1703m),삼신봉,
연하봉,제석봉(1806m) 등.
삼도봉에 이르러서는 J와 K는 이미 말을 잃어 버렸다. 이쯤 부터는 J와 K의 두사람에게
지리산 가자고 괜히 꼬셨다는 후회 만 있을 뿐이다.
노고단에서 연하천 산장사이의 주능선은 1400m-1500m의 높이로 아주 부드럽게 이어져 있지만 그것은 배낭을 메고 산행하는 사람들의 얘기이고 자전거를 메고 끌고 가야하는
입장에서는 힘든 코스이다. 삼도봉-화개재 2km 구간은 비탈이 가파르고 길이 미끄러웠
지만 그보다도 자전거 페달에 발이 걸려 고통스러웠다. 거기다 자전거가 흠이 날까봐
신경 쓰면 자전거가 너무도 무거웠다. 이미 자전거는 암벽에 긁혀 엉망이 되었고
나야 포기한 자전거라 괜찮지만 특히나 J의 경우에는 자전거를 아끼는지라 아픈가슴이
짐작이 갔다. 뱀사골산장 능선위에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구간이 있다.
그능선에 우리는 자전거 타이어자국을 낼 수 있었다. 뒤에 산장에서 만난 등산객의 얘기
로 산악오토바이가 올라 온 줄 알았다고 한다.(도저히 산악오토바이가 올 수 없는
길이지만...) 토끼봉을 넘어 서는 K와 J는 괜히 왔다는 후회감과 포기를 하려고 해도
되돌아 갈 수 없는 입장이었다. 이미 산중에 산중으로 왔으니 어찌하랴, 그런대로
평탄한 길이 계속되어 연하천 산장까지 올 수 있었다.
연하천 산장은 해발1586m의 명선봉 정상 부근인데 오목한 골짜기 기분이 드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의외로 물이 풍부해서 불편이 없었다. 역시나 지리산은 기후 변덕이
심해 가랑비가 내리고 지친몸은 연하천 산장에서 겨우 칼잠을 자고, 코펠에 한꺼번에
밥을 해서 밥하는 시간을 절약하기로 했다.
이미 K와 J는 포기하기로 결심했지만 하산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죽으나 사나 벽소령까지
갈 수 밖에 없었다.
연하천 산장을 출발해서 삼각봉(1462m), 형제봉(1433m), 벽소령(1426m)은 해발고도가 비슷해서 수평이동이나 마찬가지 였지만 커다란 호박돌 구간을 무수히 지나야 했으므로
하산 하기로 마음먹은 K와 J는 너무도 고통스러운 구간이었다. 탈진 상태 직전이었다.
벽소령 이정표 앞에서 사진을 찍고 K와 J는 해방이라는 생각에 비상식량이고 뭐고
나에게 몽땅 건네주고 함양쪽으로 하산 해 버렸다. 뒤에 이야기이지만 함양쪽으로
내려가면서 너무 지쳐서 자전거를 탈 수 없어 끌고 내려갔다고 한다.
이제는 혼자 자전거를 메고 산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나라도 천왕봉에 올라
가야 되지 않겠는가? 선비샘에서 목을 축이고 칠선봉(1576m)을 향해 출발했다.
편편한 수평이동 인 것 같지만 위험한 곳이 몇군데 있어 상당한 주의를 했다.
지루하게 칠선봉에 도착하니 이곳에 전망이 너무도 좋았다. 칠선봉도 아름다웠고
천왕봉이 가까운 거리로 쳐다보이고, 발아래 대성계곡의 원시림은 피로를 잊게 해 주었다.
그러나 칠선봉에서 영신봉(1651m)에 아주 가파른 돌무더기는 너무도 힘들었다.
힘을 들여 오른 만큼 경치의 기쁨도 컸다. 산에 걸린 구름은 나를 신선으로 만들었다.
세석산장전에 암벽은 네발로 기어 올라야 하는 난코스였다. 아차 하면 등에 울러 멘
자전거와 함께 바위 밑으로 떨어질 판이다. 가랑비에 안개까지 겹쳐 바위는 빙판같이
미끄러웠다. 세석산장 능선을 자전거로 탈려고 했으나 지쳐있어 콘트롤이 잘 안된다.
능선에서 세석산장 내리막을 타고 가다가 뒤집어 졌다.
세석고원의 바로 동쪽 봉우리가 촛대봉(1703m)이다. 이봉우리에 오르면 천왕봉의
웅대한 모습이 건너 보인다. 촛대봉에서 장터목까지는 6km이나 등산로로서는 평탄하지만
자전거를 메고는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 였다. 그렇지만 유명한 연하봉을 바라보며 가니
기암괴석의 멋이란, 연하선경이 지리산8경에 하나라고 하더니 틀린 말은 아니 것 같다.
연하봉 능선을 지나 드디어 장터목 입구에 들어서서 자전거를 타고 들어섰다.
등산객들의 시선은 모두 나에게 쏠리고 "와아" 하는 함성과 함께 몰려 들었다.
등산로에서 계속 나를 보아 왔던 사람들은 저인간이 정말 끝까지 올 것인가? 궁금했을
것이다. 산악자전거의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 커피 끓여주는 사람, 잠자리도 봐주는 사람,
식사를 같이 하자는 사람, 여기서는 내가 특이한 놈으로 보이는 것이다.
장터목산장에 도착시간이 오후 4시쯤 된 것으로 기억된다.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서 여기서 하룻밤 자고 새벽에 출발하기로 했다.
K와 J가 생각났다. 끝까지 같이 못한 것이 아쉬웠다.
장터목산장은 밀려드는 등산객으로 초만원이었고 자리가 없어서 서서 잠을 자야 할 판
이었다. 고맙게도 옆사람이 깔판까지 깔아 주었다. 한마디로 자전거 메고 왔다고 대우를
받은 것이다.
그 다음날 나는 다른사람 보다 30분 일찍 출발했다. 캄캄한 새벽에 홀로 산중을 자전거를
메고 걷다 보니 어두워서 길을 잘못 든 모양이다.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길을 찾았다.
제석봉의 고사목지대와 통천문은 날이 밝은 뒤에 하산 할 때야 볼 수 있었다.
천왕봉 가까이 올라가자 많은 등산객이 박수를 치며 반겨 주었다.
천왕봉 표지석과 함께 사진을 찍고 많은 사람들이 내 자전거를 갖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날씨는 좋아 황홀한 천왕일출을 지켜보며 가슴이 확 터지는 감격이다.
중산리 쪽으로의 하산길은 경사가 너무 가파라서 자전거를 미리 내려 놓고 몸이 내려가는
식으로 하산했다. 순두류쪽 청소년수련장의 4km정도의 다운힐로 지리산 종주는 끝이
났다. 오늘로써 종주가 끝났다는 성취감과 기쁨으로 가슴이 벅찼다.
지리산 종주를 한번이라고 한사람은 그기억의 감동을 잊지 못 할 것이다. 힘들면서도
가슴에 남는다. 시시각각 출몰하듯 나타나는 자연의 경이로움, 겹겹이 이어지는 산중의
산중으로 더 벅차고 감격의 세계로 갈 것이다.
그러나 자전거로 가는 것은 탄다는 의미는 없다. 그저 도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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