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MTB 세상을 알게 되고 MTB가 갖는 매력 속으로 점차 빠져들면서 장거리
여행에 대한 욕망이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피어올랐다. 매번 문제는 실행이었으나 항상 바쁘다는 일상들, 날이 너무 춥단 핑계로 뒷전이었던 거사를 막 봄이 찾아오는 길목에서 드디어 결행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출발 전일 자전거 여행시 필요할 듯한 물건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하나씩 가방속에 담았다. 여행자의 기본 물품에, 라이더에게 꼭 필요한 품목은 꼼꼼함을 잃지 않았다.- 펑크패치, 펌프, 예비튜브, 물통 따위... 등에 부담이 될것이기에 가급적 경량화를 추구했지만 이 마저도 누적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원망스워지겠지......
고단한 여정의 시작을 앞두고 숙면에의 압박에 평소보다 이른 시각 잠을 청했으나 오히려 그런 시도가 화근이 되었던지 밤새 뒤척이며 아침해를 맞았다. 그것은 흡사 수학여행 출발 전날 어둠 속에서 볼록해진 머리 맡의 배낭을 만져보며 뛰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던 초등학교 적의 경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벌써 20년도 넘은 일인데...
그렇게 자전거와 함께, 자전거를 통해 동심 속으로 서서히 페달질은 시작되고 있었다.
아침 8시 30분, 최종 점검을 마치고 집앞서 김밥 세줄을 사고 서울역을 지나 한강 대교를 넘었다. 한강 잔찻길로 내려와 벤치에 앉아 가볍게 김밥 한줄로 아침을 대신했다. ‘내일이면 아파트에 갖혀 흐르는 한강물이 아닌, 뻥 뚫린 서해바다를 맘 속에 담아올 수 있겠지.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페달을 밟자, 다리 아프고 엉덩이 아파와도 당초 계획했던 것만큼은 하리라.‘ 꿀맛같은 김밥 조각들을 아작아작 씹었다. 포기라는 단어도 함께 씹었다.
사당역을 지나, 남태령 고개를 넘으며 움츠려들었던 몸이 기지개를 편 듯 퍼졌다. 적당히 땀도 솟았고, 장거리 운전의 엔진점검도 어느 정도 된 듯해 보였다. 과천을 지나 안양 다시 군포방향으로 바퀴를 돌렸다. 군포시내에 도착한 뒤 이정표가 불분명했던 관계로 이리저리 헤메고 지도와 맞춰 방향을 잡아내느라 10여분을 지체했다. 안산 방향으로 갈피를 정하고
크랭크를 돌렸다. 4차선 도로를 가득 메우고 달리는 차량 소음으로 속이 메스껍다. 안산 공단과 이어지는 길이라 그런지 유난히 큰 화물 트럭이 많다. 서울 시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수도권 지역은 골목길 구석구석 까지도 차량 천지이다. 이 시대에 자전거와 자동차는 공존하고 있지만 사실 자동차는 자전거의 적이다. 자동차 전용도로에는 자전거가 얼씬도 못한다. 국도에서도 갓길로 주행할 수 밖에 없다. 갓길의 여유마져 없는 찻길을 주행할라 치면,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음에도 무디어져야 한다. 아울러 신체에 대한 위험도 감수해야만 한다. 때론 생명도.... 그러고 보니 난 이번 여행을 위해 보험도 들지 않고 무작정 떠나오기만 한 것이 후회스럽다. 이것이 이 시대의 라이더가 처한 현실이다. 경부고속도로, 서해안 고속도로처럼 장거리 전용 자전거도로가 생기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꿈일까?
짐을 가볍게 꾸리기로 했던 탓에 한 장짜리 전국지도만 달랑 가져왔던 지라 목적지를 찾는데 있어 정확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하여 때론 내가 길을 맞게 달리고 있는지, 갈림길엔선, 어느쪽을 선택해야 하는지 곰곰이 따져보아야 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었다.
마침, 전방의 갓길에서 차량용품을 판매하시는 아저씨가 눈에 띄었다. 속도를 죽이며 아저씨 쪽으로 다가서자 아저씨는 무슨 볼일 때문인지 막 봉고차 운전석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시고 문은 열어둔 채로 계셨다. 그 찰나에 난 운전석까지 와서 자전거를 완전히 멈추면서 열어둔 봉고차 문쪽으로 자빠지고 말았다. 길만 생각하다 클릿 빼는 걸 깜박 했으니..원... ㅜ.ㅜ....ㅋㅋ
몸도 함께 자빠지면서 아저씨가 열어둔 차문을 얼떨결에 닫아버리는 형국이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난 길바닥으로 떨어졌다. 워낙 순식간의 일이었다. 아저씨께서 황당하다는 듯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 저 친군 왜 내가 열어둔 차문을 닫았을까? .... 그것도 온몸으로 말이지. 뭐 잘못 먹은 친구 아니야...’
그렇게 묻고 있음에 틀림없을 표정이었다.
난 무릎이 까진 것도 모르고 일어나자 마자 아저씨가 열어두었던 차문을 원래대로 열어야 했다. 그리고 운전석에서 어리둥절해 앉아있는 아저씨께 얼굴을 들이밀고 해명을 해야만 한다. 클릿에 대한 설명과 함께
“ 안다치셨어요? 클릿이란 거 때문에 페달에 발이 붙어 있는데요 미쳐 빼지 못해서 일이 이렇게 된겁니다 . 죄송합니다 !”
‘ 아! 이러한 나의 해명으로 나의 쪽팔림은 만회될수 있는 것일까? 이 놈의 폼나던 클릿이 결정적 순간에 스타일 완조니 구기네... 으아.... 왕짜증~’
‘ 정신집중! 클릿을 빼자!’
‘ 정신집중! 클릿을 빼자!’
다시는 클릿 때문에 자빠지지 말자고 나는 다짐하고 다짐하며 길을 물어 바퀴를 굴린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내내 참았던 웃음을 한참동안 터져라고 쏱아냈다.
아산쪽으로 향하는 4차선 도로가 교량진입을 앞에두고 갑자기 보행자, 이륜차 진입금지 표지판으로 나를 막아선다. 또 난감한 상황이다. 주변 음식점 주인에게서 길을 물어 아산 방조제쪽으로 돌아 방조제를 넘는다. 앗 그런데 역풍이 심하다 무식하게 밟아대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참으로 힘겹다. 이내 퍼지고 만다.
속도를 10km 안쪽으로 떨어뜨리며 진행해 나간다. 삶이란 본시 바람처럼 광대무변함에 역풍에 강하게 맞서야 할때도 역풍을 순하게 다스릴 줄 알아야 함도 필요함이 아닐까.
아산 방조제를 넘으니, 삽교, 당진이란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제법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기울고 있다. 중간 중간 헤메고, 길을 물었고 예상 밖의 강한 앞통수 바람에 예정된 시각보다 늦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급하게 내몰았다. 어두워지기 전에 서산에 당도하고 숙박할 곳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러다간 야간 주행을 피할 수 없을 것임에 불안함이 땅거미처럼 스멀스멀 마음속에 내려 앉고 있었다.
삽교방조제란 곳을 지나고 있다.
“내 고향 삽교를 아시나요~♫ 맘씨 좋은 사람들만 사는곳~♫ .......”
전적으로 악보를 무시하고 라이더풍으로 자유분방하게 노래를 흥얼댄다.
“내고향 삽교로 날 보내주쇼~♫ .......”
노동요처럼 페달질에 지친 몸과 마음에 나름대로의 한모금 신선함을 선사한다.
특히나 음정 무시, 박자 무시는 페달질 무시로 이어져 클릿에 구속된 두발을
해방시켜주었다.
“시냇물 위에 다리를 놓아 개다리라고 부르죠~~~~~”
개 부분에 힘껏 엑센트를 주면서 나도 모르게 어느새 개구쟁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당진 가는 길도 많은 힘을 소진해야 했다. 난 그저 바람앞에 자전거였다. 더욱이 그 바람은
봄을 시샘하는 바람이고 봄을 인도하는 바람이었으니 가히 미친 사람 널뛰듯 하다
오르막과 함께 역풍이 내몸을 밀어 제치기라도 하면 반은 죽음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차의 후폭풍이 자전거를 밀어주는 힘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시대에 원수처럼 공존하는 자동차와 타협하고 화해할 수 있는 여지를 발견하게 된 기쁨도 있었다. 이 방법은 대형차가 지나갈 때쯤 그 차옆으로 살짝 자전거를 부쳐주는 것이다.(60-70cm쯤) 그 차가 쏜살같이 앞으로 내닫고 나면 곧바로 거대한 바람이 뒤통수를 갈겨 줄 것이고 자전거는 종이비행기처럼 앞으로 날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 방법은 실제 경험을 통해 터득하고 숙달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위험요소가 있기 때문에.... 또한 어린이는 절대로 따라하면 안되겠다.
서둘러 당진을 통과했다. 이 때부터 오른 무릎의 조짐이 좋질 않았다. 따라서 주 동력원인 오른발을 제대로 쓸 수 없어 왼쪽 발에 많이 의존해야 했으므로 왼쪽발만 뺑이를 치고 있었다. 아직 서산 까지는 25km 정도는 더 가야하고 내일 일정도 생각하니 계획에 막대한 차질이 생길 듯 싶었다. 태안쪽은 둘러보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함이 일었다.
후미등을 켜야할 만큼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기온도 뚝 떨어졌다. 바다가 가까워 오는 건지 바람 또한 더욱 매서워졌다. 당진부터 서산까지는 2차선 도로였고 갓길의 여유도 많지 않았다. 쌩쌩 옆을 지나치는 차량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한발 고장으로 병자처럼 휘젓는 나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였다. 순간 내가 이길을 왜 달려왔는지 무엇하러 왔는지 따위의 생각들은 머릿속에서 텅 비워져 버렸다.
‘밝은 곳으로 가고 싶다. 따스한 곳으로 가고 싶다. 살고 싶다’
본능만이 자전거보다 빨리 저 앞에서서 달리고 있었다..
오르막 몇 개를 끌바를 했다. 예술가에게 있어 예술은 길고 인생이 짧다면 라이더에게 오르막은 길고 내리막은 짧다. 발등도 아팠고, 오른발은 폼으로 달린 듯 하였고 무엇보다 그 누가 내 엉덩이를 때렸을까나.. 이 엉덩이의 아픔은 내가 끌바를 해야만 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가벼웠던 내 등위의 배낭이 어느새 물먹은 돼지 한 마리가 되어 찰싹 붙어있었다. 일찍이 한(漢)제국을 창건했던 한 고조 유방은 과거 항우의 추격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을 때 마차에 함께 탔던 자기의 아들과 딸을 마차 밖으로 내던지고 혼자 도망했다더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그 심정도 이해가 갈 듯 했다.
눈앞에 꽤 넓은 도심의 불빛이 빛나고 있다. 서산땅이겠지.... 내가 지금 살아 있음에 대해 많은 사람앞에 감사드리고 싶은 이유는 왜일까?
150km를 꼬박 달려왔다. 숙소를 잡고 잠의 수렁으로 한껏 추락한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뜰거다.
여행에 대한 욕망이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피어올랐다. 매번 문제는 실행이었으나 항상 바쁘다는 일상들, 날이 너무 춥단 핑계로 뒷전이었던 거사를 막 봄이 찾아오는 길목에서 드디어 결행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출발 전일 자전거 여행시 필요할 듯한 물건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하나씩 가방속에 담았다. 여행자의 기본 물품에, 라이더에게 꼭 필요한 품목은 꼼꼼함을 잃지 않았다.- 펑크패치, 펌프, 예비튜브, 물통 따위... 등에 부담이 될것이기에 가급적 경량화를 추구했지만 이 마저도 누적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원망스워지겠지......
고단한 여정의 시작을 앞두고 숙면에의 압박에 평소보다 이른 시각 잠을 청했으나 오히려 그런 시도가 화근이 되었던지 밤새 뒤척이며 아침해를 맞았다. 그것은 흡사 수학여행 출발 전날 어둠 속에서 볼록해진 머리 맡의 배낭을 만져보며 뛰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던 초등학교 적의 경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벌써 20년도 넘은 일인데...
그렇게 자전거와 함께, 자전거를 통해 동심 속으로 서서히 페달질은 시작되고 있었다.
아침 8시 30분, 최종 점검을 마치고 집앞서 김밥 세줄을 사고 서울역을 지나 한강 대교를 넘었다. 한강 잔찻길로 내려와 벤치에 앉아 가볍게 김밥 한줄로 아침을 대신했다. ‘내일이면 아파트에 갖혀 흐르는 한강물이 아닌, 뻥 뚫린 서해바다를 맘 속에 담아올 수 있겠지.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페달을 밟자, 다리 아프고 엉덩이 아파와도 당초 계획했던 것만큼은 하리라.‘ 꿀맛같은 김밥 조각들을 아작아작 씹었다. 포기라는 단어도 함께 씹었다.
사당역을 지나, 남태령 고개를 넘으며 움츠려들었던 몸이 기지개를 편 듯 퍼졌다. 적당히 땀도 솟았고, 장거리 운전의 엔진점검도 어느 정도 된 듯해 보였다. 과천을 지나 안양 다시 군포방향으로 바퀴를 돌렸다. 군포시내에 도착한 뒤 이정표가 불분명했던 관계로 이리저리 헤메고 지도와 맞춰 방향을 잡아내느라 10여분을 지체했다. 안산 방향으로 갈피를 정하고
크랭크를 돌렸다. 4차선 도로를 가득 메우고 달리는 차량 소음으로 속이 메스껍다. 안산 공단과 이어지는 길이라 그런지 유난히 큰 화물 트럭이 많다. 서울 시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수도권 지역은 골목길 구석구석 까지도 차량 천지이다. 이 시대에 자전거와 자동차는 공존하고 있지만 사실 자동차는 자전거의 적이다. 자동차 전용도로에는 자전거가 얼씬도 못한다. 국도에서도 갓길로 주행할 수 밖에 없다. 갓길의 여유마져 없는 찻길을 주행할라 치면,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음에도 무디어져야 한다. 아울러 신체에 대한 위험도 감수해야만 한다. 때론 생명도.... 그러고 보니 난 이번 여행을 위해 보험도 들지 않고 무작정 떠나오기만 한 것이 후회스럽다. 이것이 이 시대의 라이더가 처한 현실이다. 경부고속도로, 서해안 고속도로처럼 장거리 전용 자전거도로가 생기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꿈일까?
짐을 가볍게 꾸리기로 했던 탓에 한 장짜리 전국지도만 달랑 가져왔던 지라 목적지를 찾는데 있어 정확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하여 때론 내가 길을 맞게 달리고 있는지, 갈림길엔선, 어느쪽을 선택해야 하는지 곰곰이 따져보아야 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었다.
마침, 전방의 갓길에서 차량용품을 판매하시는 아저씨가 눈에 띄었다. 속도를 죽이며 아저씨 쪽으로 다가서자 아저씨는 무슨 볼일 때문인지 막 봉고차 운전석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시고 문은 열어둔 채로 계셨다. 그 찰나에 난 운전석까지 와서 자전거를 완전히 멈추면서 열어둔 봉고차 문쪽으로 자빠지고 말았다. 길만 생각하다 클릿 빼는 걸 깜박 했으니..원... ㅜ.ㅜ....ㅋㅋ
몸도 함께 자빠지면서 아저씨가 열어둔 차문을 얼떨결에 닫아버리는 형국이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난 길바닥으로 떨어졌다. 워낙 순식간의 일이었다. 아저씨께서 황당하다는 듯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 저 친군 왜 내가 열어둔 차문을 닫았을까? .... 그것도 온몸으로 말이지. 뭐 잘못 먹은 친구 아니야...’
그렇게 묻고 있음에 틀림없을 표정이었다.
난 무릎이 까진 것도 모르고 일어나자 마자 아저씨가 열어두었던 차문을 원래대로 열어야 했다. 그리고 운전석에서 어리둥절해 앉아있는 아저씨께 얼굴을 들이밀고 해명을 해야만 한다. 클릿에 대한 설명과 함께
“ 안다치셨어요? 클릿이란 거 때문에 페달에 발이 붙어 있는데요 미쳐 빼지 못해서 일이 이렇게 된겁니다 . 죄송합니다 !”
‘ 아! 이러한 나의 해명으로 나의 쪽팔림은 만회될수 있는 것일까? 이 놈의 폼나던 클릿이 결정적 순간에 스타일 완조니 구기네... 으아.... 왕짜증~’
‘ 정신집중! 클릿을 빼자!’
‘ 정신집중! 클릿을 빼자!’
다시는 클릿 때문에 자빠지지 말자고 나는 다짐하고 다짐하며 길을 물어 바퀴를 굴린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내내 참았던 웃음을 한참동안 터져라고 쏱아냈다.
아산쪽으로 향하는 4차선 도로가 교량진입을 앞에두고 갑자기 보행자, 이륜차 진입금지 표지판으로 나를 막아선다. 또 난감한 상황이다. 주변 음식점 주인에게서 길을 물어 아산 방조제쪽으로 돌아 방조제를 넘는다. 앗 그런데 역풍이 심하다 무식하게 밟아대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참으로 힘겹다. 이내 퍼지고 만다.
속도를 10km 안쪽으로 떨어뜨리며 진행해 나간다. 삶이란 본시 바람처럼 광대무변함에 역풍에 강하게 맞서야 할때도 역풍을 순하게 다스릴 줄 알아야 함도 필요함이 아닐까.
아산 방조제를 넘으니, 삽교, 당진이란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제법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기울고 있다. 중간 중간 헤메고, 길을 물었고 예상 밖의 강한 앞통수 바람에 예정된 시각보다 늦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급하게 내몰았다. 어두워지기 전에 서산에 당도하고 숙박할 곳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러다간 야간 주행을 피할 수 없을 것임에 불안함이 땅거미처럼 스멀스멀 마음속에 내려 앉고 있었다.
삽교방조제란 곳을 지나고 있다.
“내 고향 삽교를 아시나요~♫ 맘씨 좋은 사람들만 사는곳~♫ .......”
전적으로 악보를 무시하고 라이더풍으로 자유분방하게 노래를 흥얼댄다.
“내고향 삽교로 날 보내주쇼~♫ .......”
노동요처럼 페달질에 지친 몸과 마음에 나름대로의 한모금 신선함을 선사한다.
특히나 음정 무시, 박자 무시는 페달질 무시로 이어져 클릿에 구속된 두발을
해방시켜주었다.
“시냇물 위에 다리를 놓아 개다리라고 부르죠~~~~~”
개 부분에 힘껏 엑센트를 주면서 나도 모르게 어느새 개구쟁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당진 가는 길도 많은 힘을 소진해야 했다. 난 그저 바람앞에 자전거였다. 더욱이 그 바람은
봄을 시샘하는 바람이고 봄을 인도하는 바람이었으니 가히 미친 사람 널뛰듯 하다
오르막과 함께 역풍이 내몸을 밀어 제치기라도 하면 반은 죽음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차의 후폭풍이 자전거를 밀어주는 힘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시대에 원수처럼 공존하는 자동차와 타협하고 화해할 수 있는 여지를 발견하게 된 기쁨도 있었다. 이 방법은 대형차가 지나갈 때쯤 그 차옆으로 살짝 자전거를 부쳐주는 것이다.(60-70cm쯤) 그 차가 쏜살같이 앞으로 내닫고 나면 곧바로 거대한 바람이 뒤통수를 갈겨 줄 것이고 자전거는 종이비행기처럼 앞으로 날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 방법은 실제 경험을 통해 터득하고 숙달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위험요소가 있기 때문에.... 또한 어린이는 절대로 따라하면 안되겠다.
서둘러 당진을 통과했다. 이 때부터 오른 무릎의 조짐이 좋질 않았다. 따라서 주 동력원인 오른발을 제대로 쓸 수 없어 왼쪽 발에 많이 의존해야 했으므로 왼쪽발만 뺑이를 치고 있었다. 아직 서산 까지는 25km 정도는 더 가야하고 내일 일정도 생각하니 계획에 막대한 차질이 생길 듯 싶었다. 태안쪽은 둘러보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함이 일었다.
후미등을 켜야할 만큼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기온도 뚝 떨어졌다. 바다가 가까워 오는 건지 바람 또한 더욱 매서워졌다. 당진부터 서산까지는 2차선 도로였고 갓길의 여유도 많지 않았다. 쌩쌩 옆을 지나치는 차량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한발 고장으로 병자처럼 휘젓는 나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였다. 순간 내가 이길을 왜 달려왔는지 무엇하러 왔는지 따위의 생각들은 머릿속에서 텅 비워져 버렸다.
‘밝은 곳으로 가고 싶다. 따스한 곳으로 가고 싶다. 살고 싶다’
본능만이 자전거보다 빨리 저 앞에서서 달리고 있었다..
오르막 몇 개를 끌바를 했다. 예술가에게 있어 예술은 길고 인생이 짧다면 라이더에게 오르막은 길고 내리막은 짧다. 발등도 아팠고, 오른발은 폼으로 달린 듯 하였고 무엇보다 그 누가 내 엉덩이를 때렸을까나.. 이 엉덩이의 아픔은 내가 끌바를 해야만 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가벼웠던 내 등위의 배낭이 어느새 물먹은 돼지 한 마리가 되어 찰싹 붙어있었다. 일찍이 한(漢)제국을 창건했던 한 고조 유방은 과거 항우의 추격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을 때 마차에 함께 탔던 자기의 아들과 딸을 마차 밖으로 내던지고 혼자 도망했다더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그 심정도 이해가 갈 듯 했다.
눈앞에 꽤 넓은 도심의 불빛이 빛나고 있다. 서산땅이겠지.... 내가 지금 살아 있음에 대해 많은 사람앞에 감사드리고 싶은 이유는 왜일까?
150km를 꼬박 달려왔다. 숙소를 잡고 잠의 수렁으로 한껏 추락한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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