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산탄 (http://cafe.daum.net/MTB) 준이리님께서 올리신 글을 옮겼습니다.
처음으로 장거리를 도전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도전을 망설이시는 분이 계시면...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올려봅니다.
처음 도전하는 장거리 라이딩이었습니다. 처음 참여하는 나산탄 모임이었습니다. 기대와 두려움을 함께 안고 속초로 달려갔습니다. 마중을 나온 임영완님과 회원님들이 생각보다 젊다는데 놀랐습니다. 내가 비빌 언덕이 아닌데, 잘못 끼어든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몇 명의 회원을 데불고 자게 되면, 숙박요금을 절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잠자리를 구한 것이 거리가 멀었습니다. 혼자 잘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은 다른 회원님들과 친해질 수 있는 시간적 기회를 삭감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여간 감동적인 라이딩에 대하여 맘 내키는 대로 끄적거려 볼랍니다. 재미 없고, 지루할 때는 사정없이 다른 곳을 클릭하십시오. 다른 회원님들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고, 거의 기억상실증 수준의 기억 저능아기 때문에, 또 다른 분들 이름이나 닉을 몰라서 잼 있게 글을 쓸 수 없음을 미리 실토합니다.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일성콘도로 열씨미 달렸습니다. 생각 보다 코스가 길고 오르막길이어서 잠 자리 더 잡은 일을 후회하며 달렸습니다. 일성콘도에 도착하니 거의 여섯시가 되었고, 회원님들은 거의 출발준비를 마쳐가고 있었습니다. 얼릉 빵 한개와 두유 하나를 얻어 마시며, 여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가방을 차에 싣고, 임영완님께 자전거 이상여부를 대략 검사받았습니다.
아! 이런! 벌써부터 기억상실증이 후기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14명 중에 임영완님과 다른 두 분이 차를 운전하고 11명(기억상실증 땜시 수에 대해 책임은 못 집니다.)이 자전거를 타고 일성콘도를 시원하게 빠져나갔습니다. 바로 미시령에 오르는 계속되는 오르막 길이었습니다. 처음 앞서 나간 분이 남산님(아님 말고)이었던 것 같은데, 하나 하나, 모두 저를 앞질러 가기 시작했습니다. 각도가 크지는 않은 길이었지만 8Km의 오르막 길은 초보자의 진을 빼기에 충분 했습니다. 엉덩이도 아파오고, 불알이 마비되는 듯 얼얼 해졌습니다. 성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거 아닐까 염려 스러웠습니다
아! 두분의 여성 선수들 마저 저를 버려두고 저만큼 앞서 갑니다. 헥헥 거리며 열씨미 따라 가려 했지만 고개를 반도 오르기 전에 선두 그룹은 1-2Km 정도 앞서 나간 듯 아득히 높은 곳의 산 길을 돌아 오르고 있었고, 내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정상 4km라는 이정표를 만난 기념으로 장거를 세우고 쉬었습니다. ‘장하다 이리, 4km를 쉬지 않고 왔구나’ 하고 생각하며 물을 마시는데 뒤 따라온 임영완님이 무서운 표정으로 협박을 하였습니다. “빨 따라 가세요. 단체로 움직이는데 혼자 뒤쳐지면 차에 싣고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이고~ 얼마나 무서븐지...... 무서워서 물도 제대로 못마시고 장거에 올랐지요
그래도 산빛을 감상하며 페달을 밟았습니다. 낮은 곳에서는 초록이던 산빛이 올라갈 수록 연두색으로 바뀌다가, 꼭대기 근처에서는 겨울색으로 바뀌어 버리데요. 계절을 역행하는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지 멉니까? 별로 이쁜 산 색은 아니었지만 특이한 경험이었어요. 내 장거의 속도는 시속 5-7km 였으니, 임영완님은 절 보고 세월아 네월아 한다고 생각했을 같아요. 사실을 죽을똥 살똥 모르고 올라갔는데요
아 참! 죽을똥 살똥 모르고 올라가다 보니까, 검은 털이 북실 북실하게 돋은 송충이만한 벌레가 자전거 바퀴 앞을 지나 도로 중앙으로 굼실 굼실 기어가던데요. 고것이 죽을똥 살똥 모른다는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게 해서, 팍, 자전거를 세우고 살려주고 싶었는데, 뒤 따르는 임영완님이 무서워서 자전거를 세울 수가 없었거든요. 아마도 차에 치인 그 벌레가 임영완님을 원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길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오르는 미시령 길
털북숭이 검은 벌레가 굼실굼실 숲에서 나와
쉴 새 없이 자동차 지나는 도로로 기어 가고 있다
나비 되는 꿈을 품고 마실 가는 애벌레 아닐까
쉬지 않고 굼실 굼실 기어간다. 온 몸으로
가는 길이 죽음을 향한 길인지
날개를 펼칠 길인지 벌레는 모르리라
제가 택한 길을 온 몸으로 길 뿐
굼실굼실 굼실굼실 움직이니 動物이다
굼실거리는 검은 털이 나비 날개 짓 보다 힘차다
하여간 꼴지로 정상에 오른 나를 향하여, 선수들이 박수를 칩니다. 아니 무거운 나를 싣고 고개를 오른 내 자전거를 향한 박수였을지도 모를 일이네요. 하여간 저는 쑥쓰러웠어요. 정상에서 잠시의 휴식을 갖고 사진을 찍으며, 임영완님을 비롯한 선수들과 친한 척 해 보려 했지만 제가 워낙 사교성이 없어서......
미시령에서 용대리(맞나요? 당근 지명은 책임 못집니다.) 쪽으로 내리꽂는 길은 신이 났습니다. 자전거가 시속 60km 넘는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고글을 끼지 않은 눈에서는 눈물이 바람에 씻겨 나왔지만, 몸을 기울이며 코너를 돌아가는 기분도 끝내줬지요. 거러나, 더 즐거울 수도 있었을텐데 기억력이 넘 좋아서 탈이네요. 작년에 수리산에서 달리던 일반자전거의 브레이크 타던 냄새가 생각나는 것 아입니까? 더 아쉬운 것은 브레이크를 염려하는 동안 산 아래에 자전거가 도착 해 버리는 불상사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산 아래 모모 식당에서 아침밥을 마식게 머겄습니다. 하이고 그 마딘는 음식 이름이 뭐였는지 또 기억이 안나네요. 아침밥 먹고 나올 때 이뿐 여성 선수께서 내 장거의 안장이 넘 높다는 지적을 해 주었습니다. 고수처럼 뵈는 선수께 조정을 부탁 드렸고, 임영완 님이 조정을 끝 마쳐 주었습니다. 평소보다 10cm 이상 낮춘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다리를 쭉 펼 수 있게 타고 다녔는데, 그 것이 관절에 해롭다고 하며 팍 낮춰 버렸습니다. 고수가 그렇다니 믿고 따를 수 밖에요. 전에 허리가 아프던 것도 그 때문잉 거 같고, 다리가 아프덩 것도 그 때문잉 거 같네요.
내 쳐 달렸습니다. 평지에서 시속 30km 이상으로 달리는데도 다른 선수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 졌습니다. 원통. 인제 다 지나고 나니 또 외톨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같이 와서 버려두고 가는 선수들의 무정함을 내심 원망했습니다. 너무 뒤쳐지면 차에 실려갈까봐 물도 못 마시고, 나오겠다고 조르는 오줌도 한참을 참았습니다. 그래도 원통 근처에서는 산빛에 취할 수 있었습니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넘어가는 산록이 폐부까지 시원하게 하였습니다. 크게 숨을 들이쉬며 혼자 봄을 즐거워 했습니다. 바람을 안고 가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천천히 느끼면서도 그 바람을 즐겼습니다.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서포터 차량은 거의 내 전용이 되었고,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던 잔차들도 "화이팅" 을 외쳐 주었고, 차를 타고 지나가던 어떤 어린 놈도 "시발느마 잘 타!" 라고 격려 해 주었습니다
얼마나 더 페달을 밟았는지, 높지 않은 오르막 길에 선수들이 쉬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 얼른 달려가 퍼져 눕고 싶었지만 자전거가 오르막 길을 얼른 달려가지 못합니다. 불쌍하게도 지칠대로 지쳐버린 장거!
그 휴식처에는 나중에 합류한 3명의 고수가 더 있었습니다. 저는 물과 바나나를 까 먹으며,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또 달렸습니다. 나중에 임영완님께 확인 하고 싶습니다. 휴식 시간을 1분씩 준 것인지 30초씩 준 거신지......
다음 휴식처인 신남 휴게소(남근목 조각 전시된 휴게소) 근처에까지 가는 동안 체력이 완전히 바닥 났습니다. 또 마지막에 쳐졌는데, 오르막 길 가운데 쯤 선수들이 쉬고 있었습니다. 얼굴과 팔 다리에는 소금이 하얗게 묻어 있었습니다. 열시미 먹고 마시고 다리를 두드리고 맛사지를 하다가 또 달렸습니다.
천천히 가도 될 것 같은데, 모두들 있는 힘껏 달리는 듯 했습니다. 내 장거는 내가 원하는 만큼 달려주지 못했습니다. 얼마동안 더 가다가, 속도 차가 많이 벌어지면 내 짐을 챙겨서 혼자 달려가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임영완님이 혼자서 떨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하면서, 그래도 우겨야 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서포터하는 임영완님과 차는 거의 내 전용서포터였습니다. 홍천에 가기 전에 한 번의 휴식이 더 있었는지 어땠는지 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기억상실증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로 따라만 갔던 거시었습니다.
홍천에서 마딘는 순대국밥을 배불리 꾸역꾸역 먹었습니다. 밥을 먹고 다른 선수들이 하는 테이핑을 따라 했습니다. 다리에 테이프 붙이는 일이 근육을 더 만들어 주는 일이라고 하는 말을 믿지 못하였지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앞,뒤 허벅지에도 길게 붙이고 무릎에도 붙였습니다. 바지를 벗고 엉덩이에서부터 붙이고 싶었는데, 다른 선수들의 눈 때문에 못했습니다.
홍천에서는 임영완님도 자전거를 탔습니다. 햐! 장거도 무지 좋아 보이고 복장도 선수같은 티가 팍팍 납니다. 테이프 효과가 좀 있는 것 같았지만, 꼴찌로 처지는 것은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밟아도 안돼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홍천에서 양평을 향하여 죽을똥 살똥 모르고 페달을 밟는데도, 조금만 오르막이 나오면 다리가 힘을 쓰지 못합니다. 저단 기어로 바꾸로 천천히 기어 올랐습니다.
임영완님이 따라 오며, "허리를 숙이고 바람을 피하라" "페달은 내리 찍듯이 밟아라." "다른 선수를 뒤따라가며 바람막이로 활용하라." 등 등 버팀을 지속시키는 요령들을 알려 주었습니다. 찍어 밟기의 효과를 느끼며 열씨미 더 달렸습니다. 그러나 오르막만 나오면 다리가 말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아! 이 때 ‘하늘도 무심치 않구나’ 알 수 없는 힘이 뒤에서 밀어 줍니다. 더 열심히 페달을 밟았습니다. 언덕길이 자꾸 나타나고, 역풍 속에서 등을 미는 손길이 그 횟수를 한 참 늘려가는 동안에도 하느님이 보우하사 등을 미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쳐지면 안돼요. 쳐지면 못 따라 가요.” 하는 말도 내 귀에는 “힘 내, 넌 할 수 있어!” 라는 하느님의 메시지로만 들렸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 나도 할 수 있어, 수경스님이 행한 고행을 생각해 봐라. 문규현 신부님이 행한 고행을 생각해 봐라. 내가 어찌 고통을 말할 수 있냐? 이정도는 당근 할 수 있어’'대기 오염 저감을 위한 자전거 타기운동이라 생각하자' 라고 되뇌이며 힘을 내었지요. 한참이나 지나서 등 뒤의 손길이 임영완님의 손이었다는 것을 느꼈을 때의 감동이란......
“혼자 가는 일도 이리 힘겨운데 어찌 밀어줄 수가 있을까?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지칠만한 시간이 지났는데......” 감동은 저에게 억지힘을 내게 하였습니다.
양평을 지나서도 바람은 나를 괴롭히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허벅지가 뭉쳐져 잘 움직이지 않을 때는 주먹으로 두드렸습니다. 몇 번의 휴식이 더 있었는지 모릅니다. 힘 들때 마다 임영완 님이 등을 밀어 주었고, 많이 쳐질 때 마다 뒤에서 “쳐지면 안돼요.”라고 주문을 하였다는 기억만 생생합니다.
양평의 연속되는 터널을 지나 어디쯤서 부턴가는 완두콩님이 내 등을 어루만졌습니다. 평지에서도 속도를 내지 못하는 나를 뒤 따르며, 등을 만지니, 근육의 힘이 없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음으로 페달을 밟았습니다. ‘이렇게 도와 주는데도 완주하지 못하면, 인간도 아니다. 힘든 줄 모르고 시작한 도전은 아니었잖냐?’ 하면서 열씨미 밟았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도착 했습니다. 그 것도 완두콩님을 따라 2등으로 광장동에 도착 했습니다. 우와 이리 만세! 나 산탄 만세!
ㅋㅋㅋ 특별히 더 많은 고행을 하신 구영일님! 함께하지 못한 점에 대한 미안함을 전하며, 아울러 심심한 위로의 말씀과 훌륭한 체력에 대한 박수를 보냅니다
등을 밀어 주신 임영완님, 완두콩님 감사합니다. 옆에 접근 할 때 마다, 격려의 말씀을 보내 주신, 남산님과 이름 모를 선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주메님을 비롯한, 앞에서 바람을 막아주신 모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휴식처에 꼴찌로 나타날 때 마다 박수를 보내어 격려 해 주신 모든 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덕분에 무사히 집까지 돌아왔습니다. 덕분에 더 아름다운 5월을 누리고 있습니다.
완두콩님을 비롯하여 본명을 알 수 없는 모든 분들께 제 무례를 사과드립니다. 전날 밤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일, 죄송합니다.
또, 항상 뒤에 쳐져 움직이느라 앞 일을 몰라서 제 이야기만 쓰게 된 점에 대한 미안함도 있고, 앞서 가신 분들은 어떤 일이 있었을지 궁금하기도 하니, 다른 선수께서도 후기를 써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좋은 날들 누리십시오.
----행복한 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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