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4크로스장에서 한참 놀고 있었다. 노바님 왈 “지방간님은 여기 남아서 저와 얘기를 하죠.”
둘만의 밀어? 사귀나? 아무렴! 사귀는데 전화번호도 모를라고. 위장전술?!!! 노바님이 또 말한다.
“한울아범님은 모든 날댕식구들을 모시고 프리라이딩 코스를 답사해 보고 오세요.”
듣는 순간 느껴지는 책임감, 부풀어 오르는 가슴, 으쓱해지는 어깨, 초등학교 때 분단장 이후
이런 막중한 임무는 처음이다.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되었다. 예! 각하! 오바가 시작되었다.
“노바님께서 이러한 막중한 임무를 주시다니 저에 대한 믿음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답사하고
오겠습니다.” 나의 응답에 교주님이 덧 붙였다. “사진 많이 찍어 오라!”
캬! 사진까지! 나에게! 하하하! 이건 바로 날댕 내의 나의 위치를 말해주는 일대 사건이며
자전거계의 나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자! 출동이다.
화악산의 프리라이딩 코스여 게 섰거라! 아흐 하……. 근데 찝찝하다!
노바님이 ‘타고오던지 끌고 오던지’라는 표현을 썼다. 내가 따져 물으니 교주님이 성화를
내시며 어여 올라가서 그분을 영광케 하라고 윽박질렀다. 깨갱하고 물러섰지만 아직도
찜찜하다. 끌던 지라? 이게 뭔 말일까?
하여간 가자! 배낭을 챙긴다. 꼬불쳐둔 음료수를 배낭 안에 넣는다. 그새 이걸 보고
날댕식구들이 벌떼같이 모여들어 음료수 타령을 한다. 하하하! 이건 미끼다! 올라가면
준다고 날댕 식구들을 꼬들린다. 의외로 순순히 넘어간다. 하하하! 쉽군! 나를 필두로
날댕식구들이 뒤를 따른다. 일단 4크로스 시작점으로 오르는 길로 끌바를 한다. 페인트박님
조카가 제를 뿌린다. “삼촌, 왜 타고 안가요?” 페인트박님 그냥 답변 대신 미소를 띤다.
쪼그만 놈이 별걸 다 묻네! “힘들잖아!” 한마디로 입을 봉해버렸다. 이후로 이 학생은
내 앞에선 한마디도 안했다. 여름날 보호대와 함께 끌바를 계속했다. 그대는 아는가!
보호대의 막강한 보온력을! 4크로스 시작점 전에 왼쪽으로 쪼만한 개울을 건너 경사지를 또 끌었다.
끌고 넘어 임도에 이르니 거기엔 휴양림 트럭이 프리라이딩 코스 입구까지 태워다주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럭셔리 하게 시작하는군! 죽인다.
하나하나 잔거가 실렸다. 잔거를 싣고 있는데 트럭이 떠블켑이라 좀 비좁은 듯 했다.
날댕식구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XC를 타고 온 한삽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했다.
한삽은 머뭇거리다가 이내 체념한 듯 잔거를 타고 줄행랑을 쳤다. 어! 근데 방향이
아래가 아니고 위네.
우리는 포기하고 내려가라고 눈치를 줬는데 한삽이 잘못 알아듣고 위로 잔거타고 먼저
오르는 것이었다. 불쌍한 한삽! 끝이 어딘지도 모르는 이 먼 길을 잔거를 타고 오르다니!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페달질에 여념이 없는 한삽의 뒤통수에다가 함성 비스 무리한 것을 했다.
코딱지만한 우리의 양심을 털어내기 위한 기만책 이였다. 한삽을 보내고 로켓보이의
잔거를 분해해서 싣고 즐거운 임도 업힐을 시작 했다. 두발과 두 손을 놀리면서 업힐을
하니 별짓을 다했다. 일단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기 놀이를 하다가 환스가 자신의 장갑을 떨어뜨렸다. 역시 환스 스러웠다.
길도 잃고 장갑도 잃고! 용감한 짐승 페인트박이 뛰어내려 주워다 주었다. 나머지 일행
모두가 줍지 말고 그냥가자고 했는데 유독 페인트박만 신사도(?)를 발휘했다. 아마도
환스가 여자인줄 착각한 모양이다. 아니면 페인트박의 취향이 우리와는 사뭇 다르던지!
사진 찍다 지겨워지자 한삽을 씹기 시작했다. 이래서 불안해서 내가 번개에 나오는 것이다.
한 사람이 빠지면 날댕식구들은 그 사람 욕을 한다. 안 좋은 취미지만 재밌는 취미이기도 하다.
“한삽이 왜 안보이지?”, “글쎄?” 한삽을 씹던 마음은 그대로 한삽에 대한 궁금증으로 변해갔다.
고개 하나를 또 넘었는데도 한삽은 안보였다. 한삽이 안보일수록 한삽을 씹는 속도는
빨라졌고 정도도 강해졌다. “우리 지나가고 나면 아래로 내빼려고 어디 숨어 있는 거 아냐?”
상당히 복잡하고 기발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그래도 한삽은 보이지 않았다.
어! 이상하다? 이렇게 빠를 수 없는데? 라이더가 한삽 아닌가? 굽은 산길을 돌때마다
한삽을 찾아 모든 눈동자를 한곳에 모았고 끝내 일행 하나가 애처롭게 한삽을 불렀다.
“한삽! 한삽! 돌아와라! 모든 걸 용서하마!” 능선의 끝과 이어지는 마지막 언덕임이
확실한데도 한삽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궁금증은 끝내 한삽에 대한 걱정으로 변하고 있었다.
날댕식구 얼굴에서 자책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붕에라도 태우고 올걸! 이때 장엄하게
나타난 거룩한 모습이 있었으니 바로 한삽이다.
우리는 환호와 박수와 파이팅을 외쳤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날댕식구도 있었다. 누구지? 정말?
트럭이 한삽 옆으로 다다르자 한삽은 날댕식구의 안녕을 위해서 스스로 라이딩을 멈추고
트럭의 활로를 열어주었다. 우리는 또 감동을 했다. 이름을 바꾸자! 한삽이 뭐냐! 너무 작다!
한포크레인 정도는 되는 듯 하다! 저 넓은 마음! 한삽 너로 인해 날댕식구는 언제나
자랑스럽단다! 한삽 파이팅!
임도 정상에 차를 세웠다. 기사 아저씨에게는 먼저 가셔서 프리라이딩 코스 시작점에서
계시라고 했다. 트럭에서 내려서 내리막을 즐겨보기로 한 것이다. 쏘는 맛! 특히 힘들이지
않고 업힐 한 후 내리쏘는 맛은 오르가즘에 맞먹는 쾌감이다. 그래서 가끔 산에서 내려
쏘고 나면 바지가 축축한 건가? 디지알님이 정상에서 기념 촬영을 하자고 하셨고 우리는 찍었다.
그리고 아까 가져온 미끼를 풀었다. 최 연장자이신 디지알님이 먼저 그리고 우리의 영웅 한삽이 이등
손님으로 참가해주신 로켓보이님이 삼등 그 후론 알아서 먹었다. 작으나마 갈증을 풀고 난
우리 일행 모두는 내리막 굽은 길로 하나씩 사라졌다. 나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초여름의 향긋한 풀 내음와 따갑지만 밝음으로 길을 안내하는 햇살, 굽어지며 페달질없이
인도하는 화악산의 임도길 그리고 항상 소중한 날댕식구!
이 모든 것이 어울어져 다같이 자연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P.S. http://www.flymtb.com 에 가시면 더 많은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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