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큐슈 자전거 여행기
2005년, 乙酉年 새해는 그간 겪어보지 못한 색다른 경험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자전거로 일본 큐우슈우 지역을 여행하게 된 것이 그것이다.
내가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게 된 것은 2004년 5월부터이다. 4월 중순경에 속이 불편하여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결과 ‘위궤양’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부터 운동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운동을 하자니 특별히 시간을 내야 한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출퇴근을 자전거로 해보자는 것이었다. 마침 집과 학교 사이의 거리가 10Km 정도 되기 때문에 운동량도 적당할 것 같았고 특별히 시간을 따로 내지 않아도 충분한 운동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간 백광범선생(경상고)이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오던 터라 망설이지 않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두 달 정도 자전거 출퇴근을 하고 나니 문득 자전거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혼자서 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아 백광범선생에게 이야기를 하였더니 여름 방학이 되면 2~3일 정도 함께 여행을 하자고 했다.
방학을 하고 나서 나와 백광범선생 그리고 전형권선생(와룡고), 이렇게 세 명의 선수(?)는 1박2일의 일정으로 경주-감포-호미곳으로 자전거여행을 떠났다. 결코 수월한 일정이 아니었다.
경주박물관에 차를 세워두고 자전거를 타고 토함산을 넘어 감포로 향했다. 평지에서 출퇴근만 하던 실력으로 토함산을 넘었으니 그 고통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1박 2일의 일정을 마치고 난 다음에는 자전거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 후로는 일기가 나쁘다든가 특별한 일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였고, 틈틈이 주말에 모여 가까운 산의 임도(林道)를 타거나 시외로 장거리 여행을 하곤 하였다.
그러던 중 백광범선생이 멋진 제안을 하였다. 자전거로 해외여행을 하자는 것이었다. 일반 여행사를 통한 팩키지 여행은 주로 버스로 이동하기 때문에 관광지 중심의 여행일 뿐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전적으로 동의를 하고 구체적인 일정과 계획을 짜기 시작하였다. 여행에 필요한 기본적인 자료는 주로 백광범선생이 준비하였다. 우선 모임의 홈페이지를 만들고 여행지의 정보를 공유하였다.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고 큐우슈우 전체 지도와 우리가 여행할 경로의 상세지도까지 준비하였다. 숙소는 인터넷을 통해 ‘유스호스텔’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예약은 대개 전화로만 가능하며 ‘유스호스텔연맹’회원으로 가입하면 10%의 할인을 받을 수가 있다.
색다른 여행에 대한 기대 덕분에 2004년 가을은 무척이나 빨리 지나갔다. 여행 참가자는 백광범, 변태석, 전형권, 이재갑 이렇게 네 명으로 확정이 되었고, 일정은 1월 1일부터 1월 8일 까지 7박 8일로 결정이 되었다.
드디어 겨울 방학을 하였다. 31일 오후, 준비물 구입을 위해 모였을 때부터 다들 소풍가기 전날의 어린이처럼 마냥 기분이 들떠 있었다.
1월 1일, 부산으로.....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새해 첫날 12시 20분, 백광범선생 집 앞에 네 사람은 상기된 표정으로 모였다. 사모님들이 그 곳까지 자동차에 자전거를 싣고 배웅을 해주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짐을 꾸리고 있는 우리 주위를 강타했지만 들떠있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짐을 정리한 후 성공적이고 무사한 여행을 위해 ‘파이팅!’을 외치고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한 후 고속버스 짐칸에 네 대의 자전거를 구겨 넣고 오후 2시 20분에 대구를 떠났다.
연휴 기간이라서 그런지 부산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정체가 심했다. 4시 40분, 부산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에는 어느 듯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고속터미널과 부두는 부산의 북쪽 끝과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4시 50분에 출발하여 도심을 통과한 후 부두에 도착했을 때에는 시간이 6시 30분이 되었고 주위는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져 도시의 네온사인이 화려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부두의 여객선 터미널을 답사한 후 숙소를 정하고 나니 공복감이 엄습해 왔다. 들뜬 마음에 점심도 제대로 먹지 않았던 터이다. 자갈치시장에서 저녁 식사와 함께 소주 몇 병을 곁들인 후라 따뜻한 온돌방에 몸을 눕히자마자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 우리 모임에서 엔진(?)이 가장 튼튼한 전형권선생님.
입으로 부는 악기는 무엇이든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1월 2일(110Km riding), 부산⇒후쿠오카⇒사세보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8시40분발 배를 타자면 최소한 7시 30분까지는 여객선 대합실에 도착해야 출국 수속과 자전거 포장을 마칠 수 있는데, 그러자면 5시에는 일어나야 아침밥이라도 한 술 뜰 수 있었던 것이었다. 숙소 옆의 식당에서 새벽 6시에 먹은 우거지 국과 갓김치를 곁들인 아침밥은 큐우슈우 여행 1주일 동안 우리의 뇌리에서 떠나본 적이 없었다.
7시 10분에 숙소를 출발하여 7시 15분에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하였지만, 처음 자전거를 포장하는 터라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에 허둥대며 꽤나 시간을 많이 허비하였다. 게다가 출국 수속까지 하느라 배에 성선하였을 때에는 거의 출발 시간에 임박하여 있었다.
시계 바늘이 8시 45분을 가리키자 늘씬하게 생긴 쾌속선‘비틀’호는 고동 소리와 함께 부산항을 출발하였다. 바닷물 위로 부상한 ‘비틀’호는 시속 80Km의 속력으로 바다 위를 미끌어지듯 달려 나갔다. 스쳐지나가는 얕은 파도 위로 부서지는 햇살이 창을 넘어 객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바다 위의 햇살은 육지의 햇살보다 훨씬 더 눈이 부셨다.
▲ 대한해협을 건너며 ‘비틀’호 선상에서 맥주 한 잔을 즐기고 있다.
세 시간 가까이 달린 ‘비틀’호는 11시 35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정된 시간에 후쿠오카항구에 도착을 하였다. 한 시간 정도의 준비를 거친 다음, 12시 30분에 후쿠오카 여객 터미널 출발하여 일본에서의 첫 riding을 시작했을 때 하늘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일본의 건물들은 대개 회색에 가깝다. 단독주택 지붕이나 벽, 아파트며 빌딩 할 것 없이 온통 회색빛 일색이다. 흐린 날씨는 회색빛 건물과 어울려 더욱 흐리게 보인다. 게다가 오늘은 일본의 설 연휴(1월1일부터 3일까지)라 거리엔 사람조차 별로 보이지 않아 매우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
일본은 차량이 좌측통행이다. 익숙하지 않은 왼쪽 길을 가노라니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도시를 지나는 동안 가로변 화단에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호랑가시나무가 나란히 심겨져 있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눈길을 주었다. 그런데 호랑가시나무는 모두 전지가위에 의해 사각(四角)으로 반듯하게 재단이 되어 평소에 느끼던 호랑가시나무의 위엄이나 품위는 찾아볼 수가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일본인들의 정원 가꾸기는 워낙 인공적으로 다듬는 것을 즐긴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이지만 가로수까지 이렇게 다듬을 줄은 몰랐다.
후쿠오카 도심을 지나는 동안 몇 개의 개울을 만났는데, 한결 같이 도시에 흐르는 개울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서 부러움의 탄성이 절로 흘러 나왔다.
▲후쿠오카의 우동 전문점
후쿠오카의 낮선 거리를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느라 도심을 벗어나는 데만 거의 한 시간이 소모되었다. 다들 상당히 허기져 있어서 우선 요기부터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도심을 거의 벗어났을 때 마침 우동전문점이 하나 있었다. 식당 안에 빈 테이블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손님이 붐비는 걸 보니 맛이 괜찮은 집인 것 같아 우리는 자전거를 세워 놓고 창가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음식점 테이블은 한국의 음식점에 비해 무척이나 좁았다. 우리 일행 네 사람은 아무도 일본어를 읽을 줄도 모르고 말할 줄도 몰랐다. 그러니 음식 주문도 당연히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침 식탁 한쪽에 놓여져 있는 메뉴판에는 몇 가지의 음식 사진이 곁들여진 또 다른 메뉴판이 있었다.(일본 여행 1주일 동안 우리가 사용한 음식점 대부분이 사진이 포함된 메뉴판을 사용하고 있었다. 관광객이 많은 큐우슈우 지역의 전략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사진이 들어있는 메뉴판을 사용하는 집만 찾아다녔는지도 모른다.) 비록 선택의 폭은 상당히 좁아졌지만 그래도 내용물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우동을 주문할 수 있다는데 만족하며, 오뎅(어묵)우동 두 개와 미소(된장)우동 2개를 주문했다. 겉으로는 골고루 맛을 보기 위해 두 종류를 주문 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우리 입맛에 맡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보험성 주문의 성격이 짙었다. 다행히 거북할 만큼 입맛에 불편하지 않아 즐겁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30분 만에 점심 식사를 마친 우리는 쉴 틈도 없이 사세보로 향해 출발을 하였다. 일정상 사세보까지 오늘 중으로 도착을 해야 하는데, 오후에 달려야할 거리가 자그마치 100Km가 넘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하루에 걸쳐 달려야할 거리를 오후 한나절에 달리는 것이라 잠시도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후쿠오카 시내를 벗어나 30분 정도 전원 지역을 달리다 보니 오른쪽으로 푸른 바다가 나타나고 띄엄띄엄 보이는 섬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였고, 해풍을 막기 위해 심어놓은 듯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커다란 숲을 이루어 사이사이로 얼기설기 엮어지는 파다 풍경과 더불어 장관을 이루었다. 도로변에 일궈놓은 넓은 채소밭에는 무, 배추 따위의 갖가지 채소가 겨울을 무시한 채 그대로 자라고 있어 남국으로의 여행을 실감하게 하였다.
자전거 타는 시간이 길어지자 이재갑선생이 조금씩 처지기 시작하였다. 이선생은 평소 자전거를 즐기지 않았는데, 백광범선생의 권유로 두 달 전에 일본 자전거 여행에 통참하기로 결정하기로 한 후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하여 그 경력이 한 달 남짓 밖에 되지 않아 다리 근력이 약한 편이었다. 출발 전부터 낙오가 되지 않을까 다들 걱정을 했는데 우려가 다소 일찍 현실로 나타났다.
이재갑선생은 전문 사진작가로 대학에 출강을 하고 계신다. 남들보다 한참이나 늦은,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 결혼을 한 터라 첫 아이가 이제 돌이 되었다. 사모님과의 애정이 남다르고 심성이 고와 자전거 여행 중에도 늘 집 걱정을 떨쳐 버리지 못하였다. 게다가 다리에 근육통까지 생겨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다. 우리는 번갈아 가며 이선생과 호흡을 함께하여 순조로운 riding이 되도록 애를 썼다.
▲ 겨울 바다의 파도타기 장면
바다를 끼고 세 시간 정도를 달리다 보니 해안에 재미있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해수욕장에서 젊은 친구들이 추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파도타기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들 신기해하며 자전거를 세워 두고 구경을 하였다. 일본의 여학생들이 추운 겨울에도 치마를 입고 맨다리를 노출 시킨 채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겨울 바다에서 파도타기를 즐기는 것은 처음 보는 장면이라 그저 놀랍기만 했다.
오후 네 시 반이 되어서야 목적지의 중간쯤 되는 ‘카라쯔(唐津)’에 도착을 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였다. 전형권선생의 행방이 묘연하였던 것이다. 분명히 선두에 서서 제일 먼저 갔으리라고 생각을 했는데, 휴식을 취할 지점에는 전형권선생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노심초사하며 30분을 기다리다가 ‘먼저 갔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출발을 하려는데 전형권선생이 도착을 하였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었던 것이다. 지도를 보니 목적지인 ‘사세보’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보통 자전거 여행은 10Km 정도 주행한 후 휴식을 취해주는 것이 좋으나 오늘은 일정이 너무 늦어져서 1시간 정도를 주행한 후 쉬기로 하고, 다음 휴식처를 이마리(伊万里)로 정한 후 출발을 하였다
이마리(伊万里) 까지는 20Km 남짓 되어 보였으나 정작 주행시간은 꽤나 많이 걸렸다. 중간 중간에 자그마한 고갯길이 많았고 날이 어두워지자 주행 속력도 많이 떨어졌던 것이다. 이마리(伊万里) 초입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고 저녁 시간이 되어 허기가 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전형권 선생이 또 보이지 않았다. 전례로 보아 먼저 길을 잡았으리라 편히 생각하며 편의점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간단하게 요기를 하였다. 이재갑선생이 무척 지쳐 있었으나 간단한 간식에 힘을 얻어 길을 재촉하였다.
▲ 사세보역 전경. 맞은편에 우리가 묵었던 사세보-시티호텔이 있다.
목적지인 ‘사세보시티호텔’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저녁 9시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호텔에 먼저 도착해 있어야할 전형권선생이 보이질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질 않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허기에 지쳐갔지만 전선생이 걱정이 되어 밥조차 생각이 없었다. 전형권선생은 11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호텔에 도착하였다. 이마리(伊万里)에서 지름길로 온다고 길을 잡은 것이 탈이었다. 지도상으로는 지름길이었지만 큰 산을 두개나 넘어야하는 험준한 길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산 위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고 차량 통행조차 드물어 길이 많이 미끄러워서 속력을 제대로 낼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전형권선생은 비록 녹초가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도착하였다는 안도감에 다들 환한 웃음을 Elf 수 있었다.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에는 1시가 넘어 있었고, 일본 자전거 여행의 첫째 날, 110Km에 이르는 riding 일정이 마감되었다.
2005년, 乙酉年 새해는 그간 겪어보지 못한 색다른 경험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자전거로 일본 큐우슈우 지역을 여행하게 된 것이 그것이다.
내가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게 된 것은 2004년 5월부터이다. 4월 중순경에 속이 불편하여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결과 ‘위궤양’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부터 운동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운동을 하자니 특별히 시간을 내야 한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출퇴근을 자전거로 해보자는 것이었다. 마침 집과 학교 사이의 거리가 10Km 정도 되기 때문에 운동량도 적당할 것 같았고 특별히 시간을 따로 내지 않아도 충분한 운동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간 백광범선생(경상고)이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오던 터라 망설이지 않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두 달 정도 자전거 출퇴근을 하고 나니 문득 자전거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혼자서 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아 백광범선생에게 이야기를 하였더니 여름 방학이 되면 2~3일 정도 함께 여행을 하자고 했다.
방학을 하고 나서 나와 백광범선생 그리고 전형권선생(와룡고), 이렇게 세 명의 선수(?)는 1박2일의 일정으로 경주-감포-호미곳으로 자전거여행을 떠났다. 결코 수월한 일정이 아니었다.
경주박물관에 차를 세워두고 자전거를 타고 토함산을 넘어 감포로 향했다. 평지에서 출퇴근만 하던 실력으로 토함산을 넘었으니 그 고통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1박 2일의 일정을 마치고 난 다음에는 자전거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 후로는 일기가 나쁘다든가 특별한 일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였고, 틈틈이 주말에 모여 가까운 산의 임도(林道)를 타거나 시외로 장거리 여행을 하곤 하였다.
그러던 중 백광범선생이 멋진 제안을 하였다. 자전거로 해외여행을 하자는 것이었다. 일반 여행사를 통한 팩키지 여행은 주로 버스로 이동하기 때문에 관광지 중심의 여행일 뿐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전적으로 동의를 하고 구체적인 일정과 계획을 짜기 시작하였다. 여행에 필요한 기본적인 자료는 주로 백광범선생이 준비하였다. 우선 모임의 홈페이지를 만들고 여행지의 정보를 공유하였다.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고 큐우슈우 전체 지도와 우리가 여행할 경로의 상세지도까지 준비하였다. 숙소는 인터넷을 통해 ‘유스호스텔’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예약은 대개 전화로만 가능하며 ‘유스호스텔연맹’회원으로 가입하면 10%의 할인을 받을 수가 있다.
색다른 여행에 대한 기대 덕분에 2004년 가을은 무척이나 빨리 지나갔다. 여행 참가자는 백광범, 변태석, 전형권, 이재갑 이렇게 네 명으로 확정이 되었고, 일정은 1월 1일부터 1월 8일 까지 7박 8일로 결정이 되었다.
드디어 겨울 방학을 하였다. 31일 오후, 준비물 구입을 위해 모였을 때부터 다들 소풍가기 전날의 어린이처럼 마냥 기분이 들떠 있었다.
1월 1일, 부산으로.....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새해 첫날 12시 20분, 백광범선생 집 앞에 네 사람은 상기된 표정으로 모였다. 사모님들이 그 곳까지 자동차에 자전거를 싣고 배웅을 해주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짐을 꾸리고 있는 우리 주위를 강타했지만 들떠있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짐을 정리한 후 성공적이고 무사한 여행을 위해 ‘파이팅!’을 외치고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한 후 고속버스 짐칸에 네 대의 자전거를 구겨 넣고 오후 2시 20분에 대구를 떠났다.
연휴 기간이라서 그런지 부산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정체가 심했다. 4시 40분, 부산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에는 어느 듯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고속터미널과 부두는 부산의 북쪽 끝과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4시 50분에 출발하여 도심을 통과한 후 부두에 도착했을 때에는 시간이 6시 30분이 되었고 주위는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져 도시의 네온사인이 화려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부두의 여객선 터미널을 답사한 후 숙소를 정하고 나니 공복감이 엄습해 왔다. 들뜬 마음에 점심도 제대로 먹지 않았던 터이다. 자갈치시장에서 저녁 식사와 함께 소주 몇 병을 곁들인 후라 따뜻한 온돌방에 몸을 눕히자마자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 우리 모임에서 엔진(?)이 가장 튼튼한 전형권선생님.
입으로 부는 악기는 무엇이든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1월 2일(110Km riding), 부산⇒후쿠오카⇒사세보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8시40분발 배를 타자면 최소한 7시 30분까지는 여객선 대합실에 도착해야 출국 수속과 자전거 포장을 마칠 수 있는데, 그러자면 5시에는 일어나야 아침밥이라도 한 술 뜰 수 있었던 것이었다. 숙소 옆의 식당에서 새벽 6시에 먹은 우거지 국과 갓김치를 곁들인 아침밥은 큐우슈우 여행 1주일 동안 우리의 뇌리에서 떠나본 적이 없었다.
7시 10분에 숙소를 출발하여 7시 15분에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하였지만, 처음 자전거를 포장하는 터라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에 허둥대며 꽤나 시간을 많이 허비하였다. 게다가 출국 수속까지 하느라 배에 성선하였을 때에는 거의 출발 시간에 임박하여 있었다.
시계 바늘이 8시 45분을 가리키자 늘씬하게 생긴 쾌속선‘비틀’호는 고동 소리와 함께 부산항을 출발하였다. 바닷물 위로 부상한 ‘비틀’호는 시속 80Km의 속력으로 바다 위를 미끌어지듯 달려 나갔다. 스쳐지나가는 얕은 파도 위로 부서지는 햇살이 창을 넘어 객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바다 위의 햇살은 육지의 햇살보다 훨씬 더 눈이 부셨다.
▲ 대한해협을 건너며 ‘비틀’호 선상에서 맥주 한 잔을 즐기고 있다.
세 시간 가까이 달린 ‘비틀’호는 11시 35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정된 시간에 후쿠오카항구에 도착을 하였다. 한 시간 정도의 준비를 거친 다음, 12시 30분에 후쿠오카 여객 터미널 출발하여 일본에서의 첫 riding을 시작했을 때 하늘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일본의 건물들은 대개 회색에 가깝다. 단독주택 지붕이나 벽, 아파트며 빌딩 할 것 없이 온통 회색빛 일색이다. 흐린 날씨는 회색빛 건물과 어울려 더욱 흐리게 보인다. 게다가 오늘은 일본의 설 연휴(1월1일부터 3일까지)라 거리엔 사람조차 별로 보이지 않아 매우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
일본은 차량이 좌측통행이다. 익숙하지 않은 왼쪽 길을 가노라니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도시를 지나는 동안 가로변 화단에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호랑가시나무가 나란히 심겨져 있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눈길을 주었다. 그런데 호랑가시나무는 모두 전지가위에 의해 사각(四角)으로 반듯하게 재단이 되어 평소에 느끼던 호랑가시나무의 위엄이나 품위는 찾아볼 수가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일본인들의 정원 가꾸기는 워낙 인공적으로 다듬는 것을 즐긴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이지만 가로수까지 이렇게 다듬을 줄은 몰랐다.
후쿠오카 도심을 지나는 동안 몇 개의 개울을 만났는데, 한결 같이 도시에 흐르는 개울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서 부러움의 탄성이 절로 흘러 나왔다.
▲후쿠오카의 우동 전문점
후쿠오카의 낮선 거리를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느라 도심을 벗어나는 데만 거의 한 시간이 소모되었다. 다들 상당히 허기져 있어서 우선 요기부터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도심을 거의 벗어났을 때 마침 우동전문점이 하나 있었다. 식당 안에 빈 테이블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손님이 붐비는 걸 보니 맛이 괜찮은 집인 것 같아 우리는 자전거를 세워 놓고 창가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음식점 테이블은 한국의 음식점에 비해 무척이나 좁았다. 우리 일행 네 사람은 아무도 일본어를 읽을 줄도 모르고 말할 줄도 몰랐다. 그러니 음식 주문도 당연히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침 식탁 한쪽에 놓여져 있는 메뉴판에는 몇 가지의 음식 사진이 곁들여진 또 다른 메뉴판이 있었다.(일본 여행 1주일 동안 우리가 사용한 음식점 대부분이 사진이 포함된 메뉴판을 사용하고 있었다. 관광객이 많은 큐우슈우 지역의 전략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사진이 들어있는 메뉴판을 사용하는 집만 찾아다녔는지도 모른다.) 비록 선택의 폭은 상당히 좁아졌지만 그래도 내용물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우동을 주문할 수 있다는데 만족하며, 오뎅(어묵)우동 두 개와 미소(된장)우동 2개를 주문했다. 겉으로는 골고루 맛을 보기 위해 두 종류를 주문 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우리 입맛에 맡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보험성 주문의 성격이 짙었다. 다행히 거북할 만큼 입맛에 불편하지 않아 즐겁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30분 만에 점심 식사를 마친 우리는 쉴 틈도 없이 사세보로 향해 출발을 하였다. 일정상 사세보까지 오늘 중으로 도착을 해야 하는데, 오후에 달려야할 거리가 자그마치 100Km가 넘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하루에 걸쳐 달려야할 거리를 오후 한나절에 달리는 것이라 잠시도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후쿠오카 시내를 벗어나 30분 정도 전원 지역을 달리다 보니 오른쪽으로 푸른 바다가 나타나고 띄엄띄엄 보이는 섬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였고, 해풍을 막기 위해 심어놓은 듯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커다란 숲을 이루어 사이사이로 얼기설기 엮어지는 파다 풍경과 더불어 장관을 이루었다. 도로변에 일궈놓은 넓은 채소밭에는 무, 배추 따위의 갖가지 채소가 겨울을 무시한 채 그대로 자라고 있어 남국으로의 여행을 실감하게 하였다.
자전거 타는 시간이 길어지자 이재갑선생이 조금씩 처지기 시작하였다. 이선생은 평소 자전거를 즐기지 않았는데, 백광범선생의 권유로 두 달 전에 일본 자전거 여행에 통참하기로 결정하기로 한 후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하여 그 경력이 한 달 남짓 밖에 되지 않아 다리 근력이 약한 편이었다. 출발 전부터 낙오가 되지 않을까 다들 걱정을 했는데 우려가 다소 일찍 현실로 나타났다.
이재갑선생은 전문 사진작가로 대학에 출강을 하고 계신다. 남들보다 한참이나 늦은,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 결혼을 한 터라 첫 아이가 이제 돌이 되었다. 사모님과의 애정이 남다르고 심성이 고와 자전거 여행 중에도 늘 집 걱정을 떨쳐 버리지 못하였다. 게다가 다리에 근육통까지 생겨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다. 우리는 번갈아 가며 이선생과 호흡을 함께하여 순조로운 riding이 되도록 애를 썼다.
▲ 겨울 바다의 파도타기 장면
바다를 끼고 세 시간 정도를 달리다 보니 해안에 재미있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해수욕장에서 젊은 친구들이 추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파도타기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들 신기해하며 자전거를 세워 두고 구경을 하였다. 일본의 여학생들이 추운 겨울에도 치마를 입고 맨다리를 노출 시킨 채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겨울 바다에서 파도타기를 즐기는 것은 처음 보는 장면이라 그저 놀랍기만 했다.
오후 네 시 반이 되어서야 목적지의 중간쯤 되는 ‘카라쯔(唐津)’에 도착을 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였다. 전형권선생의 행방이 묘연하였던 것이다. 분명히 선두에 서서 제일 먼저 갔으리라고 생각을 했는데, 휴식을 취할 지점에는 전형권선생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노심초사하며 30분을 기다리다가 ‘먼저 갔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출발을 하려는데 전형권선생이 도착을 하였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었던 것이다. 지도를 보니 목적지인 ‘사세보’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보통 자전거 여행은 10Km 정도 주행한 후 휴식을 취해주는 것이 좋으나 오늘은 일정이 너무 늦어져서 1시간 정도를 주행한 후 쉬기로 하고, 다음 휴식처를 이마리(伊万里)로 정한 후 출발을 하였다
이마리(伊万里) 까지는 20Km 남짓 되어 보였으나 정작 주행시간은 꽤나 많이 걸렸다. 중간 중간에 자그마한 고갯길이 많았고 날이 어두워지자 주행 속력도 많이 떨어졌던 것이다. 이마리(伊万里) 초입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고 저녁 시간이 되어 허기가 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전형권 선생이 또 보이지 않았다. 전례로 보아 먼저 길을 잡았으리라 편히 생각하며 편의점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간단하게 요기를 하였다. 이재갑선생이 무척 지쳐 있었으나 간단한 간식에 힘을 얻어 길을 재촉하였다.
▲ 사세보역 전경. 맞은편에 우리가 묵었던 사세보-시티호텔이 있다.
목적지인 ‘사세보시티호텔’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저녁 9시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호텔에 먼저 도착해 있어야할 전형권선생이 보이질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질 않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허기에 지쳐갔지만 전선생이 걱정이 되어 밥조차 생각이 없었다. 전형권선생은 11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호텔에 도착하였다. 이마리(伊万里)에서 지름길로 온다고 길을 잡은 것이 탈이었다. 지도상으로는 지름길이었지만 큰 산을 두개나 넘어야하는 험준한 길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산 위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고 차량 통행조차 드물어 길이 많이 미끄러워서 속력을 제대로 낼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전형권선생은 비록 녹초가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도착하였다는 안도감에 다들 환한 웃음을 Elf 수 있었다.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에는 1시가 넘어 있었고, 일본 자전거 여행의 첫째 날, 110Km에 이르는 riding 일정이 마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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