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두번째
첫째 날, "가능성이란 시각과 현실적 괴리"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뒤척인 긴긴 밤이 밝아 온다. 곁에 누운 아내의 잔잔한 숨소리를 느끼며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심정을 정리하여 보지만 좀처럼 안정이 되지 않는다. 마치 소풍가는
아이처럼 잠자리를 설쳐 가뜩이나 불안한 훈련량과 체력에 부담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따릉..따릉..따릉!" 4시 30분을 알리는 탁상시계 소리가 눈을 뜨게 하였다.
조심스럽게 밖의 날씨를 살피고 샤워를 하면서 어릴 적 부모님이 하시던 대로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였다. 묘한 기분이 든다.
별것도 아닌 일에 무의미한 의미를 자꾸 부여하고 싶지 않지만 출발 전까지는 이런 상태가
계속되리라 짐작한다.
아내는 "날씨도 별로 좋지 않은데..."라며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 보았지만 말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금새 활기찬 목소리로 분위기를 바꾸면서 간단한 요기거리를 내어 준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애써 감추고 아파트 입구까지 내려왔지만 '잘 다녀 오세요'라는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말이 없다.
"미안해! 다녀 올께! 걱정마! 꼭 성공할꺼야!"
5시 40분 약속장소인 호수공원 중앙광장에 도착하였다. 고문님,회장님과 산이슬을 비롯한 몇몇
동호인들이 이미 나와 있었다. 곧이어 수화기제,산울림이 도착하면서 날씨와 장도에 오르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몇 장의 기념사진도 찍었다. 후레쉬에서 터져 나오는 강렬한 불빛이 예전에 느껴 보지 못한
여운을 남긴다. 단체 사진촬영을 하기 위하여 지나가던 행인에게 부탁하고 포즈를 취하였는데
사진을 찍던 그 행인이 내 아내일 줄은 사진을 찍고 나서 알았다. 아내는 홀로 떠나는
걱정스러운 마음과 아쉬움을 달래고 일행과 같이 떠나는 모습을 보기 위하여 그 곳에 왔던
것이다.
투어 중 릭은 아내의 눈가에 보일 듯 숨겨진 뜨거움을 느꼈다고 한다.
예기치 못한 기쁨을 주는 아내에게 한없이 감사하고 존경하면서 가슴 뭉클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드디어 6시 정각, 환호와 박수를 받으면서 새벽공기를 가르는 힘찬 페달링을 시작하였다.
약속도 없었던 짧은 시간을 함께 나누기 위하여 이른 시간에 환송 나온 동호인들에게 감사와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뒤돌아 볼 여유도 잊은 채 서둘러 출발하였다.
"산타 화이팅!"이라는 소리가 귓가를 스치는 바람에 떠밀려 더 이상 들을 수 없었을 떄,
중앙광장을 한 바퀴 돌면서 손이라도 흔들어 줄걸 하는 후회를 하였다.
어둠 속에 가려졌던 하늘은 검은 빛깔로 물들인 채 한껏 부푼 우리의 가슴을 어둡게 한다.
아무도 말이 없다. 말이 없는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은 도전의 결과에 대한 기대와 자신과의 약속에 대한 불확신, 그리고 날씨에 대한 우려가
뒤섞인 생각을 정리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으리라.
이제 가장 단순한 육체적 움직임만 필요할 뿐 깊은 생각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뜨거운 입김과 자켓을 빠져 나온 열기가 땀방울로 변하여 이마를 적실 무렵 행주대교에 올랐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주저없이 건너 한강 자전거전용도로에 접어들자 빗방울이 고글을 타고
흘러 목덜미를 파고 들었다. 한강을 타고 온 바람 또한 예사롭지 않다.
출근 할 때마다 보아왔던 성산대교 끝 자락의 일출을 오늘은 볼 수 없을 것 같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찾아 온 현실을 이제 운명처럼 받아 들여야 한다.
일기는 좋지 않지만 라이딩은 활기를 띄고 있다. 마치 편대 비행을 하듯이 다이아몬드 대형을
유지하다가 정사각형을 이루기도 하고, 맞바람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자전거 사이의 간격을
최대한 좁히면서 선두를 번갈아 교대하기도 한다.
항상 그렇듯이 속도감이 주는 쾌감은 새로운 엔돌핀을 만들어 낸다.
한강을 벗어나 안양천으로 들어서니 우산을 받쳐든 채 도망치 듯 종종걸음치는 이들만 보일 뿐
운동을 즐기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미쳤다"라는 말이 순간 스쳐 지나 간다.
이제 헬멧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과 자켓을 떄리는 빗방울 소리가 제법 커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이미 온 몸은 물기를 잔뜩 빨아들인 스펀지처럼 젖어 있었다.
비는 더 이상 추위를 예고하는 가을비가 아니라 한여름 대지를 흠뻑 적시는 소나기로 변해
있었다.
뚝방길과 나란히 선 국도를 가득 메운 차량의 행렬만 봐도 비오는 날의 복잡한 출근길임을
알 수 있었다.
주행시간 2시간 00분, 주행거리 35km, 휴식 없었음, 강한 비바람, 코스 양호한 편!
오늘 목표인 200km를 달릴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시흥대교를 건너 1번 국도에 접어 들었다. 도로를 가득 메운 출근차량들의 행렬, 전조등,
후미등, 크락숀소리, 우산을 받쳐든 시민들의 행렬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8시경 석수역 근처에서 닉을 만나 첫 휴식 겸 아침식사를 하였다. "먹고 화이팅!"이라는
재미있는 문구를 붙인 식당이었는데 저체온증을 경계하기 위하여 따뜻한 해장국과
감자탕으로 배를 채웠다.
저체온증은 초기에 의욕상실과 함께 운동기능을 저하시키며 뇌의 오염된 신호와 신경계
의사전달의 중단으로 정신착란 및 판단착오와 환각상태에 빠지게 하며, 심한 경우 영하의
환경에서 얼굴이 달아오르고 더위를 이기지 못해 옷을 벗어 던지게 만든다고 한다.
라이딩리듬을 잃지 않기 위하여 허겁지겁 식사를 마친 후 단순한 움직임을 시작하였다.
인도와 노견 그리고 인접차로를 쉴새 없이 넘나드는 곡예라이딩이 시작된 것이다.
질주하는 차량에서 쏟아지는 터질듯한 엔진소리와 뜨거운 매연, 옷깃을 스치듯 곁을 지나는
차량, 공간을 찢는 듯한 경고음과 노면과의 마찰음, 쉴새 없이 쏟아지는 폭우, 검게 물든 빗물로
위장한 노면요철과 푹 파인 웅덩이, 빌딩만한 트럭이 지날 때마다 느껴지는 흔들림, 사방에서
튀어 오르는 흙탕물!
우리에게 유리한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공포감에 휩싸여 또다시 "미쳤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지혜롭고 현명하게 위기를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포기하는 수 밖에 없다.
수백,수천대의 차량들과 네대의 자전거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도전이 아니라 도박이다. 그것도 생명을 건 도박!
어떻게 수원까지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수원은 큰 형님 댁이 있어 도로 사정을 잘 아는
터라 힘든 고비를 예상 했었고 나름대로 준비도 했건만 살기 위해 지옥에서 도망쳐 나온 느낌
밖에 없다.
어석어석 씹히는 모래를 뱉으며 온 몸을 살펴보니 헬멧부터 신발, 심지어는 귓속까지 시커먼
흙탕물과 모래로 가득하였다. 질주하는 차량과 흙받이 없는 자전거바퀴에서 튀어 올라온
것으로, 특히 앞바퀴에서 올라온 모래는 안장과 사타구니에 파고 들어 엉덩이를 쓰라리게
만들었다.
이런 상태로 갈 수 없었다.
수원시내를 벗어나 외곽에 접어들 즈음 생활자전거를 취급하는 샵에 무작정 들렀다.
50대 중반에 접어든 주인은 흙받이를 끼워 달라는 우리를 보더니 주머니에 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바퀴를 풀고 서울로 올라 가!"라는 퉁명스러운 대답을 던지면서
무심한 빗줄기만 바라보았다.
"사장님! 저희는 일산에서 해남까지 가는 길인데...도와주세요"라고 닉이 부탁하면서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호들갑을 떨자 갑자기 주인의 눈빛이 달라지더니 쓸만한 재료와 공구를
모리 내놓았다.
두팔을 걷어 올린 주인은 생활자전거용 흙받이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케이블타이로 앞뒤
서스펜션에 묶어 주었다. 그런대로 쓸만했다.
주인은 쏟아지는 빗속에서 작별을 고하는 우리를 보며 "그래! 한 번은 미쳐 볼만도 하지!" 라며
의미심장한 에너지를 주었다.
이 짧은 한마디는 투어기간 내내 그리고 지금도 뇌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샵에서 자전거에 흙받이를 부착하는 사이 난 극심한 저체온증에 시달렸다.
손발이 아닌 가슴부터 느껴지는 오한과 떨림의 고통은 무기력하게 하였으며 초라하고
나약하게 만들었다.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혈액순환을 시도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다.
흠뻑 젖은 상태로 1시간 가까이 보낸 시간이 직접적인 원인인 것 같았다.
고통스러웠다. 포기하고 돌아갈 생각을 처음으로 하였다.
더 이상 숨긴다는 것은 모두를 위하여 바람직하지 않았다. 부정을 위한 부정한 생각들이
머리를 지배하였다.
생각이 행동을 지배한다고는 하지만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제대로 된 도전을 해보지도 않고 한계를 재조정할 수는 없었다.
화이팅이 필요하다고 느낄 무렵 흙받이를 부착한 첫 자전거가 어정쩡한 자세로 샵 문을 나섰다.
체온을 올리고 기분도 전환할 겸 시운전을 하였다. 빗속을 미친 듯이 질주했다.
지나간 일주일의 각오를 되새기며 원정대 그리고 가족을 생각하니 다행스럽게도 컨디션이
회복됨을 느낄 수 있었다.
수원에서 천안에 이르는 1번 국도의 상태는 이 전 1번 국도에 비하여 한결 좋았다.
지칠 줄 모르는 폭우는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혔으나 현저히 줄어든 교통량과 넓은 노견 폭이
그나마 우리를 위로해 주었다.
산이슬과 수화기제 그리고 산울림과 나, 이렇게 2개조로 나뉘어 진 채 천안을 30km 남긴 오산
근처를 지나던 중 산울림은 심각한 사고를 당하였다.
공사중인 교차로 복공판 위에서 빗길에 미끄러지는 사고였는데 오른손 중지 손톱부근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대퇴부 및 무릎에 손바닥만한 찰과상, 오른쪽 옆구리에는 심한 충격을 받는
중상을 입었다.
녹슨 복공판 위로 떨어진 핏방울이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며 빗물에 사라져 갔다. 두려웠다.
앞서 가던 산이슬과 수화기제 그리고 닉을 되돌려 응급치료를 하였으나 더 이상 라이딩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갑작스런 사고로 인한 신체적인 고통은 체력과 집중력 및 체온의 저하를 가져 왔으며, 이미
수원에서 저체온증을 경험한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산울림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역시 자신으로 인해 투어가 중단되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위기에 처한 현실에서 자신과의 싸움은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그 결과는 팀과 동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생각하며, 내가 그였다면 어떤 판단을 내렸을 지 상상해 본다.
오후 2시를 조금 지나 천안시내를 진입하기 전 짬뽕과 자장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독한 술도 한잔씩 마셨다.
첫날 밤을 보내기 위한 마지막 구간을 남겨 놓고 모두가 지쳐 있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산울림의 부상정도는 사고 당시보다 더 넓게 퍼져 버린 피멍이 심각함을 짐작하게 하였지만
그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이 없다.
이제 23번 국도가 공주로 안내할 것이다. 천안을 벗어나 23번 국도에 올라 오니 곁을 지나는
차량의 속도가 빨라졌지만 교통량은 줄어 들었다. 저만 치 앞서 보이는 23번 국도를 슬쩍 벗어나
누렇게 채색된 농토를 따라 구불구불 굽어진 한적한 마을 길로 방향을 바꾼다.
지름길은 아니었지만 소음과 긴장의 공포로 10여 시간을 헤쳐 온 육체에게 휴식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 였다.
인적조차 드믄 시골길은 비 맞은 가을냄새를 아낌없이 토해낸다.
고요함, 따스함, 정겨움, 발길 닿는 대로 가도 반겨 줄 것 같은 진한 향수에 마음껏 취해 본다.
얼마나 취했을까?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을 떄, 우리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길 위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길을 잘 못든 것이었다.한 시간을 헤매고 나자 23번 국도를 만날 수 있었다.
5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지만 어둠은 순식간에 우리를 감싸고, 굵어져 버린 빗줄기는 빠른
속도로 아스팔트를 때리고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더 이상의 전진은 무리라는 의견이 나왔고, 말없는 동의와 함꼐 숙소를
찾던 중 산울림의 자전거에 이상이 생겼다.
브레이크 슈가 디스크에 달라 붙어 꼼짝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 보고 여기저기 연락하여 가급적 현지에서 해결하려고 하였으나 방법이 없었다.
날이 어두운데다 부품과 장비가 필요했고, 게다가 공주 인근에는 전문샵이 없어,
날이 밝는 대로 서포터 카에 자전거를 싣고 천안으로 가서 수리하기로 하였다.
첫째 날 라이딩의 종료! 힘겹고 아쉬운 하루가 어둠에 묻혀 사라져 간다.
어둠이 깔린 시골이라 잠 잘 곳을 찾을 수 없어 사전답사 때 정하여 두었던 공주-정안근처의
숙소로 이동하였다. 인근에 낚시터가 있어 분위기가 좋다며 측은한 눈빛을 던지는 주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흙탕물로 범벅된 자전거와 옷을 대충 헹군 다음 닭고기와 돼지고기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밤 11시를 지나 잠자리에 들어 하루를 결산해 본다. 일산에서 공주를 약15km 앞둔 지점까지
총 소요시간 12시간 00분, 목표거리 200km, 실주행거리 150km!
이동한 거리와 시간보다 11시간 동안 빗속을 질주한 우리가 믿어지지 않았다.
각자의 고통을 함께 나눌 정도의 여유와 너그러움은 없었지만 최선을 다한 하루였다.
무엇보다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고, 같은 템포로 호흡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어 좋았던
하루였다.
많은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하였다.
언제 잠들었는지 알 수 없는 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