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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서 땅끝까지-3-그대가 있음에 내가

wb50232005.12.22 18:01조회 수 3321추천 수 5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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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번째

둘째 날, "그대가 있음에 내가"

새벽 5시 불안한 마음으로 눈을 떴다. 3~4시간은 아무 생각없이 잠들었으나 신경이 예민하고
잠자리를 가리는 편이라 뒤척인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몸이 식물인간
처럼 누워 있는 나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펀치로 한대 얻어 맞은 듯 머리도 아프다.
최악의 기상 속에서 이 곳까지 데려 온 몸을 위하여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 안타깝다.

고요하다. 창문은 반쯤 열려 있어 창 밖의 새벽 기운을 쉽게 짐작할 수 있으나,
간간이 나뭇잎 사이로 스치는 바람소리만 들릴 뿐 음산한 기분마저 든다. 벌떡 일어나 창 밖을
내다보았다.
칠흙 같은 어둠 속으로 낚시터의 찰랑이는 물결이 희미하게 보일 뿐 비는 오지 않는 것 같았다.
방을 뛰쳐 나갔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오늘도 비가 오리라는 예고를 하지만 지금은 다행히 오지 않는다.
서둘러 옆방에 기상신호를 보낸 다음 짐을 꾸리고 출발준비를 한다. 아직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져지와 바지를 걸치자 피부에 와 닿는 차가운 느낌이 온 몸을 전율하게 하여 다시 벗어 비닐에
쑤셔 넣었다.
1분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 부드럽고 뽀송 뽀송한 느낌을 받고 싶었다.  
방문을 열고 나서면서 낮 익은 빗소리에 흠칫 놀랜다. 비는 다시 쏟아지고 있었다.

산이슬은 일어나자마자 하염없이 쏟아지는 비를 원망할 겨를도 없이 자전거의 기름 떄를 벗겨
내고 테프론을 뿌리고 타이어를 눌러 공기압을 측정하느라 바쁘다.
어제 이곳까지 오면서 보고 느낀 그의 다재 다능한 능력을 보면서 마음속 든든하고 믿음이
갔건만 또 하나의 새로운 발견에 놀라며 감사한다.
바나나와 커피로 아침을 대신하고 물과 간식 등을 넉넉히 준비한다.
출발과 동시에 닉과 산울림은 자전거를 정비하기 위하여 천안에 가기로 되어 있어 서포터 없이
달려야 한다. 예상대로라면 논산부근에서 합류할 것 같다.  

7시 10분,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기념촬영을 한 후 화이팅을 외치며 또 다른 출발을 하였다.    
산이슬,수화기제,나 이렇게 셋이서 출발하는 페달은 무겁게 느껴진다.

논산을 25여 km남겨 두고 산이슬, 수화기제와 점점 거리가 벌어진다.
하체에 전달되는 에너지의 느낌은 어제와 다름이 없는 듯한데 속도계의 숫자는 도무지 오르지
않는다.
'아직 몸이 덜 풀렸을까?', '어제 빗속에서 너무 무리한건 아닐까?', '이것이 나의 한계일까?'
점점 약해지는 생각이 들자 이제 산울림이 야속해지기까지 한다.
"산울림만 있었다면 그를 벗삼아 마음 편하고 느긋하게 따라갈 수 있을텐데..."
500여 미터 되는 완만한 업힐을 힘겹게 올라간 후 직선도로 끝에 아득히 보이는 산이슬,
수화기제를 보니 거리를 좁히기는 어려울 것 같다.
팔다리에 힘을 쭉 뺀 채 납작 엎드려 다운힐에 들어간다. 다운힐에서도 역시 속도는 나지 않아
허접한 자전거 탓을 하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뒷바퀴를 보는 순간, 펑크가 난 것처럼 보였다.
이미 30%정도의 공기가 빠진 것 같았지만 심한 펑크는 아닌 것 같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되었다. 펑크야 날 수 있지만 하필이면 이 시점에 났다는 사실이
불쾌하였다. 일단 가는 데까지 가자. 여기서 펑크를 이유로 멈추면 어제에 이어 오늘도 목표로
정한 지점까지 갈 수 없고 정지된 시간이 길면 길수록 투어는 점점 힘들어 진다.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닉과 산울림이 올 때까지 주행거리를 최대한 늘려야 한다.
고민 끝에 일단 펑크 사실은 숨기고 가는 데까지 가기로 했다.
산이슬과 수화기제는 수 차례에 걸쳐 앞서 가다가 내가 보이지 않으면 기다렸다 함꼐 가는
배려를 해 주었다. 따라 갈 수도 없었지만 홀로 라이딩을 하고자 쉽게 결정한 터라 미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논산 시내가 보이는 도로변에서 휴식을 취했다. 타이어는 60~70%의 공기가 빠진 것 같았다.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이 상태로 20km이상을 달려와 체력도 소진되었고, 타이어도 버텨 줄 수
없을 것 같았으며, 무엇보다 눈치 빠른 산이슬이 펑크 났음을 알고 수리한 다음 출발하자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오전 10시 30분, 지금쯤이면 논산을 벗어나 전주로 향하는 1번 국도에 있어야 했지만 주저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무릎의 통증을 풀어 주기 위하여 신발을 벗고 맛사지를 하면서 한시간 가까이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천안에 갔던 닉과 산울림은 소식을 듣고 급하게 돌아 왔고, 타이어를 교체한 후 11시 30분 경
전주로 향했다.

다시 1번 국도!
논산에서 1번 국도에 접어드는 길을 목전에 두고 어제의 악몽이 떠 올랐지만 그러한 생각은 곧
바뀌었다. 고속도로 수준인 것 같았다. 포장공사를 했는지, 확장공사를 했는지 노면도 깨끗하고
노견도 넓을 뿐만 아니라, 차선도 선명해 자전거 타기에는 완벽한 도로라고 생각되었다.
더구나 어제와 오늘 내린 비가 노견에 쌓여 있는 모래,유리조각,나무조각 등을 휩쓸어,
비 내린 아스팔트 바닥을 더욱 검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도로사정이 좋다 보니 차들의 속도는 제한속도를 넘기기
일쑤였고 이로 인하여 노견으로 퉁겨져 나온 차량부속품, 타이어 조각, 깨진 범퍼 등이 여기저기 있어 우리를 긴장하게 하였다.
      
연무, 삼례를 지나 오후 2시경 전주비빔밥으로 유명한 전주에 도착했다.
전주비빔밥은 평양의 냉면, 개성의 탕반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음식의 하나로 꼽히는데 그 중
에서도 으뜸이라 할 정도로 유명하다고 한다. 전주시내에서 비빔밥으로 유명한 음식점이 다섯
군데 있는데 우린 그중 한 곳에서 비빔밥과 육회를 먹었다.
입안에서 녹는 듯한 육회의 싱싱하고 담백한 맛과 진수성찬을 능가하는 전주비빔밥은 먹어 본
이들을 다시 끌어 들일만한 특별한 맛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오후 6시까지 남은 시간 3시간, 목표예정지 광주 하남까지 남은 거리 100여km!
육회와 비빔밥의 감칠 맛이 가시기도 전에 남은 일정이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또한 전주에서 광주에 이르는 방법은 세가지 길을 택할 수 있는데 어느 길을 선택하더라도
만만치 않은 업힐과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가는 도중 야간라이딩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이며 불가피 상황을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이제 비는 그쳤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갈 길이 먼 우리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전주시내를 지나는 길목에서 초등학교 학생들의 뜻하지 않는 화이팅 세례를 받는다.
20~30명 쯤 되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인도에 모여 재잘거리다가 우리 일행을 보더니,
주먹을 쥐고 하늘을 찌르는가 하면 가방이며 소지품을 쥐불놀이 하듯 돌려 대고 목이 터져라
화이팅을 외친다.
손을 들어 답례를 하고 손살같이 지나왔지만 그 녀석들 눈에는 그저 멋있어 보였을 것이라
짐작하였다. 순간이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고, 우리 이외에 우리를 바라보는 이들이 있어 기분이  쾌해지고 뿌듯해 짐을 느낄 수 있었다.  

전주를 벗어나 30여분을 달리자 주춤하던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한다.
이제 우중 라이딩에 완전히 적응되어 비가 오지 않으면 웬지 섭섭하게 생각이 든다.
30여km을 달려 오자 전라북도에서 가장 크다는 운암저수지에 도달하였다.
저수지에서 백연산(754m) 과 팔봉산(583m) 사이로 뻗은 27번 국도의 산정상까지는 급커브와
지루한 업힐이 반복되는 7~8km거리의 구간으로 2일차 10여 시간을 달려온 일행의 남은 체력을
빼앗기에 충분한 코스였다. 시간도 많이 흘러 정상에 도착했을 때 5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안개와 어둠에 휩싸인 산정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남은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초 목표지점인 광주-하남까지 남은 거리는 70여km, 현재시간 5시 30분, 그칠 줄 모르는 비,
야간라이딩을 위한 장비 부족!
저녁식사는 라이딩을 마치고 한다 하더라도 9시는 되어야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순창이든 담양이든 일단 갈 수 있는 곳까지 최대한 거리를 확보하기로 했다.
그것은 내일 예정된 거리도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노폭을 비롯한 도로사정이 좋지 않으며
더구나 도착예정시간이 오후 4시였기 때문이었다.  

프론트 라이트를 설치하고 각종 안전등의 배터리를 교체하면서 야간라이딩을 준비하던 중
두루미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전근무를 마치고 원정대를 서포트하기 위하여 KTX를 타고 광주에
도착한 것이다. 반갑기도 하였지만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원정대는 광주-하남을 10여km 남긴 지점에 있어야 하고, 두루미와
합류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련만 현실을 탓할 수 밖에 없었다.
두루미와의 합류 방법에 대한 의견이 제시되었는데
첫째는 두루미가 광주에서 4시간정도를 기다리는 방법,
둘째는 택시나 버스로 담양으로 이동하여 원정대와 합류하는 방법이었다.
두 가지 방법 모두 두루미나 우리에게 힘든 결정을 요구하고 있었다.
닉을 광주로 보내 두루미를 데리고 오다가 합류하도록 하는 방법도 제시되었는데,  
어둠이 짙게 깔린 편도 1차로의 빗 길에서, 2대 밖에 없는 프론트 라이트에 의존하여
야간라이딩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아 닉을 선뜻 보낼 수 없었다.
게다가 최단거리에 위치한 큰 도시는 순창인데 아직 25km 정도가 남아 있어 야간라이딩을 하기
위해서는 지원차량의 보호와 유도조명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틀간 원정대를 지원하느라 피로에 지쳐 있을 닉을 홀로 보내는 것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닉을 광주로 보내기로 했다.

한편으로 피하고 싶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 기대를 했던 야간라이딩을 시작한다.  
서포터 없이 가는 길이라 고장이나 사고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프론트 라이트를 장착한 수화기제와 나는 선두와 후미에, 산울림과 산이슬이 그 사이에 위치하여
4km에 가까운 다운힐을 시작한다. 야간용 고글을 챙겨 오지 못한 나는 쏟아지는 비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여서 고통스러운 라이딩을 해야 했다.  
세차게 쏟아지는 비와 눈부시게 쏘아 대는 전조등을 뚫고 전진하기란 쉽지 않았으며,
짧은 가시거리는 제한된 속도를 요구하였고, 노면에 도사리고 있는 돌발적인 위험은 두 눈을
부릅뜨게 만들었다.
그러나 야간라이딩은 아이러니 하게도 주간에 느끼지 못하는 매력을 주었다.
그것은 시공간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고, 자만에 가까운 고독을 즐길 수 있으며,
육체의 고통을 덜어 주는 신비한 힘을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고추장의 고장 순창을 지나자 빗줄기는 간간이 떨어지는 빗방울로 바뀌어, 대나무 숲과
메타세쿼이어 가로수 길로 유명한 담양으로 가는 길을 가볍게 한다.
불순한 일기와 야간임에도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담양에 도착하였다.

오늘은 여기서 라이딩을 종료하기로 하였다.
광주-하남까지 30여km 남아 있으나 약14시간을 달려와 모두가 지쳐 있었고, 무엇보다 고맙고
기특한 닉과 두루미가 이 곳 근처까지 왔다는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틀간 라이딩으로 피로가 누적된 탓인지, 자전거 펑크로 인하여 무리한 주행을 한 탓인지
몸은 어제보다 무겁고 축 늘어져 간다.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담양떡갈비로 저녁을 먹으면서
기분좋게 잠들만큼 소주를 마셨다.

공주-정안에서 담양까지 총 소요시간 14시간 00분, 실주행거리 200km, 누적주행거리 350km!
오늘도 5~6시간은 소나기와 싸우면서 달려 온 것 같다.
목표에 미달된 결과에 불만족스럽지만 나에게 이렇게 숨은 힘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전거 타기'의 매력은 1시간을 타든 10시간을 타든, 에너지가 고갈된 몸뚱이를 5분만 내버려
두면 또다시 그와 동일한 에너지가 급속충전 된다고 늘 생각해 왔는데, 이번 투어를 통하여
인간의 지독한 환경적응능력과 극복능력이 나를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음을 실감하였다.  

평화롭고 고요함이 느껴지는 담양에서 어제 그랬듯이 오늘도 깊은 생각없이 잠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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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용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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