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대자연의 일부가 되어 누구의 간섭도 없이 새처럼 자유로이 여행한다는 것. 모든 인간은 누구나 꿈꾸는 모습일것이다. 그리고 그 여행의 동반자는 오직 자전거.
나홀로 여행은 색다른 묘미가 있다. 일견 혼자서 위험하다, 외롭다는 등의 이유로 마음을 내기가 쉽지않다. 그러나 목표를 이루고 돌아와서 느끼는 성취감이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작년 봄 구례로의 첫 홀로라이딩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홀로라이딩을 결심하였다. 사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길벗이 있다면 서로 의지도 되고 깊은 교분도 나눌수 있다. 그러나 여러 사정상 항상 시간과 여건을 맞출 수 없기에 금년에는 차일피일 미뤄져 결국 9월의 마지막 주말을 맞이하였다. 여러차례 장거리 자전거여행 후 얻은 꿀맛같은 성취감을 잊을 수 없기에 이번 주말은 기필코 떠나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리고 목표를 정했다.
"나름대로 훈련해온 체력도 테스트할 겸 작년 1박2일 갔다온 속초를 당일로 완주하자 ."
이미 자전거싸이트에는 성공한 사람들의 수기가 올려져 좋은 참고가 되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금요일 귀가후 간단한 짐정리를 마친후 잠자리에 들었으나 걱정반 설레임반으로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토요일 새벽5시경 집을 나서니 아직도 한밤중, 라이트와 후미등을 켠 후 서서히 동쪽으로 페달을 밟았다. 새벽공기의 선선함이 피부를 스친다.
구리를 지나 팔당을 향하니 먼동이 동쪽 하늘부터 차오른다. 이른 새벽 한강을 끼고 6번국도를 밟아가는 기분은 자전거여행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저절로 힘이붙어 속도계는 시속30km를 넘나든다. 한걸음에 팔당대교 달려오니 시간은 6시40분, 잠시 쉬고 있는데 단체 팀라이딩하는 수십명의 무리가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것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뭐 전쟁나가는 자전거부대같아서 한동안 그들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저렇듯 죽어라고 달리는 사연이 있겠지 별 부질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금년들어 장거리여행이 없었던 것은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으로 날씨탓이 크지 않나 싶다. 주말에는 영락없이 비가오니 말이다. 사실은 마음이 다소 나약해 졌슴에도 이런 핑게를 대어본다. 그러나 9월의 마지막 주말은 정말로 라이딩하기 좋은 날씨였다. 구름도 적당히 있어 해를 가려 주었고 모처럼 산하도 선명하였다.
팔당터널을 피해 구도로로 진입하니 강변의 맞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양수대교까지 다소 힘든 라이딩이 되었으나 양수대교를 지나니 잠잠해져 다시 속도를 낼 수가 있었다.
참으로 지명도 이쁘지 않나? "두물머리", "양수리". 지명보다 경치는 더 아름다운 곳이라고 항상 이곳을 지날때마다 느낀다.
오빈교차로에서 좌회전 후 끝없는 직진. 두어달전 교통사고로 투병하다 몸을 바꾼 선배를 문상오느라 들린 양평시내를 멀찌기 바라보며 어찌그리 허망할까? 새삼 생각하였다.
자전거는 약50분 달리고 10분 쉬는 템포로 저어간다. 단월면이라며 하얀 들꽃위에 우뚝솟은 두 장승이 반갑게 맞아준다. 장승을 제작하신 촌장님의 덥수룩하고 순박한 얼굴이 떠오른다. 완경이네 아빠 친구인 그분은 근처 산음휴양림 아래 폐교에서 열심히 장승작업중이시겟지. 어쩌면 저리 작가와 장승이 닮았을꼬!!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지나니 시간은 10시30분.
작년 교우씨와 함께한 1박2일 속초라이딩이 생각났다. 그날 새벽에 비가 오락가락하여 결국 조심스레 출발하니 시간은 벌써 8시, 이곳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3시 가까웠는데 오늘은 당일 완주 목표이니 엄청 서둘러 온 기분이다.
화로구이집들이 잔뜩 몰려있는 곳을 지나며, 우리나라에는 고기집들이 정말 많다는 생각을했다. 왜 홍천에 화로구이집들이 유난히 많을까? 이곳의 누군가가 화로에다 고기구워 먹다가 시작되었다는 것일까? 혼자 다니다 보니 별 궁상맞은 생각을 이렇듯 수도없이 해본다.
홍천을 서서히 벗어나니 정말로 작년에 죽을 고생을 하였던 홍천-신남 공사구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공포스런 소름이 다시 돋는 듯 하였다. 그때 숙소를 미리 잡았어야 했는데, 결국 캄캄한 밤에 공포의 공사구간을 희미한 라이트불빛 하나로 통과해야만 했던 아찔한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다. 지금보니 우측으로는 홍천강이 흐르고 길은 꾸준한 업힐구간이라 상당히 힘을 빼는 지형, 이제는 공사가 끝나 이렇듯 넓고 안전하지만 다시하고 싶지않은 끔직한 라이딩이었다.
작년 기억을 떠올리며 묵묵히 가고있는데 한무리의 자전거 라이더들이 잠시 쉬며 나를 반기고 있었다. 6명의 부천출신 동호회원이라며 혼자가면 심심하니 같이 가자고 하여 그들과 함께 라이딩을 하였다. 그분들은 장비(자전거,클립페달)로나, 체력적으로나 나보다는 한수위인듯 오르막길에서 축축 쳐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그분들을 먼저 보내고 나는 내 페이스대로 밟아 나갔다.
작년에 공포의 공사구간 라이딩끝에 발견한 모텔이 여전하여 그때의 기억에 씁쓸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인제, 원통을 지나 한계삼거리에 도착하니 4시30분경.
참 혼자서 멀리왔구나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첩첩산중, 그러나 그산허리를 자르고 뚫어 도로를 내느라 을시년 스러운 모습을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 자동차 몇대 더다니게 할려고 저렇게 갈갈이 찢어 놓아야 되는가. 전국을 다니며 수도없이 이런 일을 볼때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백담사 휴게소에서 천근만근된 몸을 잠시 쉬며 시계를 보니 5시. 이제부터는 체력이 정신력으로 바뀌는 순간, 곧 닥칠 어둠이 염려되어 서둘러 출발. 왼쪽은 무릎앞이 오른쪽은 무릎뒤 근육이 번갈아 가며 쑤셔오고 허리도 뻐근, 부여잡은 오른팔도 쿡쿡 쑤신다.
자, 얼마 안남은 정상만 오르면 끝이다. 끝난 것이다. 완만한 오르막를 한동안 오르니 미시령 옛길 표지판을 보며 마음을 다시 잡는다.
시계는 6시20분경, 사방은 어둠이 이미 시작되었다. 바로 그때 핸드폰소리 울리니 이상오씨의 응원전화.
자, 응원도 받았으니 차근차근 오르자. 길어봐야 약30분 고생하면 행복시작. 지칠대로 지친 내몸의 사지에게 내머리가 독려를 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캄캄한 어둠이 사방에 깔렸다. 경사는 가파라져 기어비는 1:1 터널덕분에 차는 거의 없고 인적도 없는 캄캄한 설악산 깊은 곳에서 나홀로 어둠을 뚫고 정상을 오르는 그 기분이란!!
드디어 마지막 구비 돌아 보니 정상의 반가운 불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미시령 정상의 휴게소 오르니 7시, 서울노원에서 이곳까지 약210km. 저아래 속초의 야경이 정말로 찬란히 빛나 나를 환영해 주는 듯 했다. 누가 이 기분을 알리오, 말할 수없는 성취감에 내몸이 부르르 떨린다.
한가롭기만 한 휴게소에서 음료수 한잔 먹고 속초를 향해 내리막길. 그러나 칠흑같은 어둠에 급경사. 만만한 다운힐이 아니었다. 브레이크를 부여잡은 두팔이 몹시 긴장되었다. 밝은 대낮같으면 내리 쏠텐데 사실 답답하기만 하였다. 그래도 침착하자고 다짐 또 다짐하며 우측을 살짝보는 순간 엄청난 경외감에 몸서리를 쳐야 했다. 거대한 설악산의 산신령님이 팔을 괴고 누워 주무시고 있는데 그 정적을 내가 깰까봐 순간적으로 두렵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한 모습. 바로 울산바위였던 것이다. 나는 그모습을 평생 못 잊을 것이다.나자신이 자연과 완벽한 일체감을 느끼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였기 때문이다.
잊지못할 설악산을 뒤로 속초시내 진입하여 식사후 찜질방에서 1박.
이틑날 새벽에 잠을 깼다. 몸이 엄청나게 무거웠다. 내심 7번국도를 이용하여 해안 라이딩을 생각하였으나 이렇게 몸이 무거워서야. 당연하지, 여기가 어딘가, 당일로 미시령 넘어 속초까지 자전거로 왔다는 것이 어디 보통일인가? 됐다. 그만하면 됐다. 그리고 따뜻한 찜질방에 드러누우니 따끈한 온기가 몸을 감싸 안으며 어느새 스르륵 새벽잠을 달게 잤다.그리고 약1시간 후 일어나니 어느새 몸이 훨씬 가벼워져 있는게 아닌가.
이만하면 강릉까지 슬슬 내려가서 서울행 버스를 타야겠다고 다시 결심.
아침식사후 9시쯤 속초를 출발 7번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낙산해수장을 지나 낙산대교를 건너 해안선을 끼고 가는 5번도로를 이용하여 쾌적의 라이딩. 바다와 파도와 갈매기와 소나무숲사이를 지나며 페달을 밟으니 세상 부러울게 따로 없는 듯 하다. 중간 중간에 한적한 어촌마을과 항구를 구경하며 한참을 내려가니 주문진.
점심식사를 해결할겸 주문진항에 들어가 기웃기웃 구경하는데, 자전거 복장을 한 노라이더가 반갑게 말을 건넸다. 서울 자양동에 사신다는 그분은 60대 중반의 연세에 혼자서 자전거여행을 하신다는 말씀에 정말 마음으로부터 존경심이 우러나오며 한참을 자전거여행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어르신과 헤어진후 식당에 들어가 가자미물회 한그릇을 맛있게 비우니 더욱 몸이 회복되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목표가 마음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목표는 대관령.
최근 최인호님의 소설"유림"에서 읽은 이율곡선생의 여운이 나의 뇌리에 남아있어 각별히 그 감동을 대관령고개를 오르며 만끽하고 싶었다.
새로운 목표가 생기니 내몸의 세포가 다시 바빠졌다. 주문진에서 강릉 경포대로가는 해변도로를 따라 넘실거리는 파도를 끼고 계속 남하하니 경포해수욕장.
속초는 꽤 여러번 다녔지만 경포해수욕장은 대학1학년때 친구들과 코펠, 텐트 짊어지고 고래사냥 외치며 왔던 기억이 난다. 딱 30년전 이야기. 한적한 모래사장엔 중년의 양복입은 아저씨들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양 파안대소하며 모래밭을 뛰노는 모습에 왠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해준다. 누구든 나이를 먹으나 마음만은 저렇듯 동심이건만....
물끄러미 해변을 바라보며 가쁜 숨을 고르고 다시 강릉으로 출발.
잔잔한 언덕을 넘으니 강릉시내 그리고 물어물어 대관령초입. 대관령은 미시령처럼 가파르지 않지만 일정한 경사로에 정말 아흔아홉구비를 돌며 기나긴 오르막을 그야말로 꾸준히 밟아가야 했다. 고개에 대한 정보없이 도전했기에 상당히 힘들었다. 얼마나 올라가야 정상인지 모르는 상태에서끝없는 커브길. 중간에 노점하는 아주머니한테 물어보니 아직도 멀었다는 대답. 정말 지루하고 긴 업힐이었다.
참 특이한 고개이다. 도는 길만 보일뿐이고 돌아봐야 또 도는 길만 보이고, 이렇듯 시야가 막히고 표지판도 없ㅇ어 도무지 얼마를 가야 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신사임당 공덕비(?)를 지나며 커브의 각도가 서서히 커지며 길의 곡선이 보이기 시작했고 직감적으로 거의 올라온 듯 하였다. 마침 바로 옆 숲속 등산로에 있던 등산객에게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내기대와 달리 이제 삼분의 이 왔고 저전거로 가면 1시간 가까이 더올라가야 할것이라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시계는 벌써5시가 다되는데 여기서 어둠을 맞는다는것은 정말이지 끔찍한 일 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 남은 힘을 다 쏱아 부었다. 몸의 고통이고 뭐고 어둠을 피할 생각뿐이었다.
정신없이 10분여 밟았나? 갑자기 길위에 하늘이 보이고 커다란 풍차도 옆에 보이질 않는가?
"뭐야 , 다온거야?"
너무 기뻤다. 뜻하지 않게 횡재한 느낌. 등산객이 자전거의 속도를 너무 과소평가 한 듯하다.
어쨌든 해발835m 대관령 정상에서 세상을 다얻은 듯한 행복감에 젖어 가쁜숨을 몰아 쉬엇다.시간은 5시. 이틀간의 라이딩이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태백산맥을 넘고 또 넘었다. 스스로 희열을 맘껏 느꼈다.
자 이제 횡계로의 다운힐, 그러나 올라올 때의 가파른 내리막길은 없고 완만하기만 하다. 옛날 지리시간에 배운 대관령 지형의 특징이 생각났다. 10여분 내려가니 바로 횡계 버스터미널. 6시에 출발하는 동서울행 버스에 몸과 자전거를 싣고 자리에 앉아 눈을 감으니 내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스쳐간다.
1일차:235km(5시노원출발 8시속초도착)
2일차:100km(9시속초출발 5시30분 횡계도착) 총335km, 평속20.9km
에필로그
나혼자 달린게 아니다. 머리와 몸통과 사지들이 각각 대화하고 격려하며, 혹은 독려하고 또 위로하여 그 먼길을 함께 하였다. 왼쪽이 아프면 오른쪽이 더 힘을 쓰고 두다리가 힘들면 아랫배에 더 힘을 주고 서로 힘들다고 짜증낼 때에는 머리가 나서서 위로해 주고, 그리고 자전거에게도 힘든데 없냐고 물어보고 가끔은 지나가는 바람과도 얘기하고 옆에 한들거리는 코스모스에게도 말을 붙여보고, 산과 강과 들과 바다......
그리고 울산바위에게도.
길위에 흩어져있는 산생명, 죽은 생명들의 영혼에게는 제도발원, 천도발원하고.......
http://blog.naver.com/leey7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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