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요즘 자전거 타기 정말 좋은 계절인데...!"
별로 타지는 않지만 구색 맞추어 집안에 자전거를 세대씩이나 걸어놓고 살고있다.
벌써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은 자전거 타기엔 더 없이 좋은 계절이다.
이 좋은 때를 그냥 놓쳐 버릴까 조바심이 난다.
가을이 가기 전 소금에 절인 김장 무처럼 진액이 쏙 빠지도록 한번 타 보자.
천고마비 피둥해진 몸 덩이에 쌓인 기름을 싸악 태워 버리자.
그리고 한 동안 마냥 매달려만 있는 나의 애마도 바람 한번 씌어 주자..!
가을 정서에 맞는 어디 경치 좋은 코스를 택해 하루종일 엉덩이에 불이 나도록 타보자.
그려면 가을 나들이로 그리 섭섭치 않을 것 같다.
추워지기 전에 서둘러 잡은 날짜가 11월 3일 학생의 날이다.
그러면 어디로 갈까? 올해로 2년째 춘천 마라톤을 못 가고 있다.
가을의 전설 호반의 도시 춘천 의암호숫가를 마음껏 달리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맑은 가을볕을 받아 반짝이는 호수와 어우러진 오색 찬란한 단풍, 형형색색의 유니폼으로 한껏 멋을 낸 마라토너들의 거친 숨소리가 귀가를 맴돈다.
춘천 가자.
달리지 못했던 한을 자전거로 풀어보자. 내친김에 소양호를 거처 속초까지 가자.
늦가을 단풍은 비록 색이 바래고 잎 끝이 말라 생기는 없지만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가을정치를 느끼고 즐기기엔 충분하다.
금요일 저녁 일을 마치고 바로 떠나고자 여행준비를 미리 해서 자전거로 출근했다.
인천에서 출발해야 하니 우선 금요일 저녁 서울 외각까지 가고 당일 날 본 코스를 달리기로 하였다.
자전거포에 들러 브레이크 손보고 체인에 기름 조금 바르고 출발한 시간이 저녁 9시반.
자전거포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빈 말이나마 “속초 같이 갑시다” 하니 모두 농담으로 받아 들인다.
꽤 쌀쌀한 밤이다.
깜박등 두개 켜고 배낭에 한 개 더하니 빨간색 불빛이 정신없이 번갈아 깜박거린다.
이 정도면 알아서 피해 가겠지. 야간주행은 아예 안 하는 것이 제일 안전하고 야간에 안전을 확보하려면 한이 없다.
그저 밤눈 밝고 안전운전만 하는 차를 만나는 도리밖에 없다.
광명시를 지나 안양 천으로 내려오니 이제부터 자전거 세상이다.
그래도 세금 받아서 강변에다 이런 길이라도 닦아 놓은 국가에 감사하며 신나게 밟아본다.
여의도 나루쯤에 오줌 누고나니 몸이 떨리고 속이 허하다.
컵 라면에 김밥을 시키니 김밥은 없단다. 날이 차서 김밥은 이제 안 판다고 하네요.
국물까지 쪽 들이키니 얼었던 손끝 감각이 살아난다.
오늘 밤 목표는 팔당대교 앞 동네 하남시 이다.
쌀쌀한 늦은 밤인데도 자전거 타는 분이 많다.
요즘 자전거용 라이트와 깜박등의 성능이 좋아서 그런지 마주 오는 불빛에 눈이 부신다.
중앙선 침범하시는 분이나 이리저리 제 멋대로 분들과 가끔씩 부딪힐 뻔할 때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이미 한강변 자전거도로는 좁아 터져 서로 부딪히는 사고가 빈번하다.
갑자기 짜증이 난다.
한강고수부지 자전거 도로가 언제적 도로이던가?
아마 5공 때쯤 88올림픽 앞두고 한강개발이란 이름으로 고수부지 정리하면서 만들어진 도로인 것으로 알고있다.
세금은 받아서 뭣하는지?
서울바닥 마땅히 갈 때 없어 쏟아져 나온 시민들 머리통만 깨는 도로가 되었다.
이제 좀 넓혀주면 안되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천호대교 앞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번쩍 들고 다리끝자락으로 난 계단을 올라 하남시를 향했다.
천호대로는 자정을 넘긴 시간인데도 차와 사람이 넘쳐난다.
거나하게 술께나 드신 분들이 택시를 잡기위해 한 손을 치켜들고 마구 찻길로 들어온다.
그 옆을 피해 지나치는데 술과 안주 냄새가 물씬 난다.
또 택시는 이 분들 낳아 채려고 서로 치열한 경주를 한다.
거기에 삼삼오오 폭주족님들까지 가세하니 정신이 없다.
속도를 푹 죽이고 아수라장 틈바구니를 해쳐 복잡한 구역을 빠져 나오니 바로 환경도시
하남이다.
하남시청 부근에서 쉴 만한 곳을 찾아본다. 선뜻 눈에 안 띈다.
요즘 우리나라엔 나 같은 빈티 여행객에 더없이 좋은 것이 있다. 바로 찜질방이다.
옛날엔 이런게 없었다. 여인숙이 있었다.
흐리멍텅한 전등 불빛, 곰팡이에 오줌 섞인 냄새, 옆방의 신음소리, 썰렁한 방바닥
반드시 신발은 챙겨 방에 들여 놓아야 한다.
요즘 찜질방은 자수정, 자스민, 녹차, 쑥찜 온갖 몸에 좋은 것으로 이름 지어진 뜨끈뜨끈하게 달궈놓은 넓은 방에 들어가 퍼질러 쉬기만 하면 된다.
일단 근처 편의점에 들러 내일 보충할 간식거리 좀 마련하면서 쉴 곳을 물었다.
바로 옆에 이름도 근사한 비너스 24시 찜질방이 있단다.
온탕에서 언 몸을 녹이고 이리저리 죽은 시체처럼 널 부러져있는 넓은 찜방 구석진 곳에
자리잡고 누었다.
이 때가 새벽 1시반, 내일 아니 오늘 새벽 5시에 출발할 예정으로 눈을 붙였다.
이 동네도 역시 집 나두고 이런 곳에서 주무시는 분들이 많았다.
어제 여기까지 약 70키로 오면서 안장 접촉면이 살짝 손상됐다.
누구든 다 공감하겠지만 장시간 자전거타기에 가장 큰 난적이 바로 안장 접촉면(이하 안면) 통증이다.
지긋지긋한 안면통증만 없으면 하루에 백이든 삼백이든 탈 수 있을 것 같다.
그놈의 통증으로 엉덩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 장거리 자전거 여행에서 가장 큰 악성 바이러스다.
원래 준비성이 있어 장거리 투어를 할 때는 꼼꼼히 챙기는 편인데 오늘 밤은 좀 소홀한것 같다.
종일 입고 있었던 팬티 위에 패드없는 쫄 바지만 걸치고 70여 키로 달렸다.
항문주위 양쪽 안면 중에 한쪽 면이 시뻘건 피멍이 들었다.
아마 구겨진 팬티 천조각이 작용했을 것이다.
팬티를 벗어내고 바세린를 충분히 바른 후 패드붙은 바지를 입었어야 했다.
그래서 세상은 늘 겸손해야 한다.
특히 이런 조금은 위험한 여행은 겸손, 차분, 조심, 자제 등의 마음가짐으로 끝까지 치밀해야 한다.
여행을 마치고 안전지대로 복귀할 때까지 마치 수도승처럼 경건하게 기도하는 심정으로 집중에 집중을 해야 한다.
눈을 뜬 시간이 4시 반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바세린을 듬뿍 바르고 챙겨온 옷을 꺼내어 제대로 복장을 갖추었다.
찜질방을 나서니 바로 옆집이 김밥 집이다. 이때가 새벽 5시.
이 시간에 밥을 사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세상 참 살기 좋다!!
김밥 한 줄 먹고 출발한 시간이 5시 10분.
팔당대교를 건너니 바로 터널이 시작되고 연거푸 5개를 통과하니 귀가 멍멍하다.
자전거로 터널을 지날 때마다 느끼는데 ‘왜 이렇게 인색하게 갓길을 만들었을까?’
아마 돈을 아끼려고 줄이고 줄여 최소 폭만 겨우 만들어 놓았을 게 뻔하다.
좁은 갓길로 바짝 붙어 얼어붙은 심장으로 나의 운명을 정신없이 달려드는 운전자의
핸들에 맡기고 초라한 곡예사처럼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터널을 설계하고 만들때 터널 갓길로 자전거 통행을 생각이나 했을까?
대한민국 터널은 모두 갓길이 좁다.
우리나라 전 국도에 자전거길 만들겠다고 공약하는 대통령후보는 어찌 안 나오나!!?
별 쓸모없어 보이는 서울서 부산까지 느림보뱃길 만들겠다고 공약한 후보는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데….,??
남양주 양수리 45번 도로를 지나 46번 경춘로에 올라서니 날이 밝아온다.
춥다.
특히 손이 시렵다.
이제 발까지 시렵다.
마스크를 쓰니 안경에 김이 서려 벗어 버렸다.
콧물이 줄 줄줄 흘러 내린다.
조금후면 해가 뜨겠지.
해가 뜨면 분명 따뜻해 지리라.
이른 시간인데도 차가 많다. 지나가는 차에 스치는 바람이 더욱 차다.
에덴 휴게소 도착하니 7시다.
바짝 얼어 오그라든 것 겨우 빼네 오줌 버리고 마지막 방울 털어내니 몸은 저절로 털린다.
떡을 팔기에 인절미 한 봉지와 오뎅 한 그릇을 사서 뜨끈한 오뎅국물에 인절미 두개를
먹었다.
가벼운 스트레칭과 맨손체조를 조금해 주고 다시 안장에 올랐다.
이제는 안면(안장 접촉면) 통증이 중증이다. 도리 없다.
이 통증과 함께 속초까지 가는 거다.
누구든 다 그렇게 한다. 어떤 분들은 속초 가서 곧바로 다시 되돌아 오기도 한다.
즉 왕복 주파를 하는 것이다.
강촌 입구에서 잠시 멈췄다.
몇 년 전 한참 정신없이 자전거에 빠져들 때 여기 강촌자전거대회에 여러번 나간 적이
있어 잠시 감회에 젖어본다.
이제 나에겐 그 때가 하나의 전설로 남아 있다.
구비구비 오르고 내리던 산길 50여 키로 오르막의 힘듦과 내리막의 넘쳐 나는 행복이
마치 세상살이와 비슷하다.
언제 또다시 이 강촌대회에 나갈 기회가 있을까?
드디어 춘천 초입에서 화천행 403번 도로를 접어들었다.
가는 방향으로 우측에는 삼악산 좌측에는 의암호수을 끼고 깔끔한 자태를 간직한 길,
오늘 여기 오고싶어 이렇게 달려온 1차 목적지이다.
따뜻한 늦가을 햇볕이 쫘악 내리 쏟는다.
삼악산 단풍 빛이 조금 바래긴 했으나 여전히 볼 만하다.
호수 위에 散亂하는 반짝이는 햇볕도 여전하다.
이 길에 접어드니 다니는 차도 뜸하다.
46번 경춘 국도의 무지막지한 덤프트럭의 공포에서 벗어나니 살 것 같다.
이 순간 안면의 고통도 사라지고 페달을 돌리는 발길질이 한없이 가벼워 진다.
가을의 전설 춘천마라톤
숨을 헐떡이며 달리고 달려서 가던 길.
어느 때는 달리다 다리에 쥐가 나 그 쥐를 잡기위해 옷 핀으로 무지막지하게 찔러 빼낸 피로 붉게 물든 다리를 절룩거리며 골인하던 그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울컥한다.
춘천 마라톤 참 많은 이야기와 추억이 서려있다.
이제는 이 역시 나에게 하나의 전설로 남아있다.
그런데 오늘 또 하나의 전설을 쓰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저 험준한 고갯길을 넘어 동해 바닷가 속초로 향하고 있다.
목적지 속초에 도착하면 그것은 나에겐 또 하나의 전설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저런 상념에 벌써 춘천댐을 건너고 있다.
춘천에서부터는 초행길이다.
그래서 떠나오기 전 지도공부를 좀 했다.
그러나 지도를 잘못 본 것이다. 춘천을 벗어나 1차 고갯길인 배후령 고갯길로 가려면
춘천댐 훨씬 이전 신매교를 건너야 했다.
춘천댐을 건너자 바로 화천행 길이 갈라지기에 그 쪽으로 향했다.
왼지 그 길로 가도 될 것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 길은 엄청난 고생길이 였다.
길을 물으려 해도 도무지 사람을 만날 수 없다.
간간이 다니는 차 밖에 없으니 차를 세우고 물어 볼 수도 없고 이정표나 사람을 찾아
계속 가다 보니 화천까지 갈 것 같다.
다행히 고개 마루 길옆에 작은 휴게소가 있어 물었다.
한참 가면 우측으로 갈라지는 길이 있고 그 길로 가다 보면 양구행 길과 만나게
될 것이란다.
그러나 그 길은 엄청나게 가파른 길이라 자전거로 넘기 힘들 거라한다.
그리고 차라리 돌아서 가라는 것이다.
춘천까지 온 여정을 대충 따져 보았다.
앞으로 남은 여정에 시간과 체력 모두 여유가 있어 보인다.
어차피 자전거를 타기위한 여행이 아니던가.
힘이 든다는 그 길을 넘어 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게 객기였고 큰 오산이 였다.
이정표가 춘천이라고 적힌 우측 길로 접어드니 곧바로 급경사가 시작된다.
금새 숨이 차고 땀이 흐른다. 자전거를 세우고 잠바를 벗었다.
땀방울이 흘러 눈 안으로 들어가 눈이 따갑다.
이제 보니 땀막이 머리띠도 챙기지 못했다.
위를 쳐다보니 거의 절벽에 가까운 고개길이 아득하다.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떨구었다.
사실 땀은 배후령에서부터 흘려야 하는데 오늘 코스를 잘못 밟아 한판을 더 흘리게 되는구나. 은근히 부아가 난다.
혼자 스스로 화를 냈다가 그리고는 위로를 하기도 하면서 쉼 없이 발길질을 하였다.
다행히 오르막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굽어진 허리를 한번 감돌고 올라가니 바로 정상이다.
다시 잠바를 입고 안경을 썼다.
내리막은 역시 길지 않고 몇 구비 이리 저리 휘어졌다가 쭉 뻗으니 바로 바닥으로
내려 않는다.
앞에 근사한 건물이 보이는데 막국수 체험관 이라 적혀있다.
춘천이 막국수로 유명하니 이런 웅장한 국수체험관까지 갖추어 놓았나 보다.
결국 아직도 춘천시내를 벗어나지 못한 춘천외각지로 시간낭비에 고생만 징그럽게 하고도 진도는 조금 나가지 못했다.
슬슬 배도 고프고 이제는 좀 쉬어야 겠다.
적당한 막국수 집을 찾아 본다.
길가 막국수 집이 즐비하다. 이 동네 막국수 집은 모두가 원조다.
배후령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그 중에서도 원조에 더 가까워 보이는 집에 들어간
시간이 11시 30분 경이다.
넓은 식당에 나 홀로 막국수 한 그릇을 비웠다. 맛있다.
맛이 없을 리 없다. 자전거여행 중에 식사하게 되는 식당은 모두 맛이 일품이다.
몇 년 전 인천서 안면도까지 서해안지역 방조제순례 길을 떠난 적이 있다.
궁평리 방조제를 건너기 전 어느 식당에서 점심으로 묵 밥을 먹었다.
아! 너무도 시원하고 그 맛이 황홀했다.
그 맛을 잊지 못해 훗날 집사람과 애들을 데리고 일부러 다시 찾아갔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 나 역시 실망하고 그날 이후 식구들로부터 신뢰성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허기진 배로 맛을 평가 할 수 없다.
누가 입맛이 떨어지고 식욕이 없는가?
몇 시간 자전거를 달린 후에 식사를 해 보시라.
이 역시 자전거가 좋은 많은 것 중에 하나일 것이다.
찬 막국수를 먹고 나니 몸이 떨린다.
화장실에서 바세린 도포를 더 해주고 배후령 넘을 준비를 끝냈다.
안 해도 될 오르막 오르기를 이미 한판 하였기에 앞으로 닥칠 고개들의 크기가 궁금하다. 거리나 경사도가 어떨지 은근히 걱정된다.
이러다 해 안에 미시령 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소양호와 갈라지는 길을 벗어나니 바로 배후령이다.
경사도는 그리 심하지 안지만 거리가 만만치 않다.
청명한 가을 한 낮 따뜻한 햇살에다 방금 식사를 끝내 후라 졸음이 온다.
어디서 한 잠 자고 싶은 생각이 마구 든다.
조금 더 오르니 경사는 더욱 심해지고 땀이 비오듯 하며 졸음은 이미 달아났다.
꾸역꾸역 소처럼 성실히 올라간다.
‘오봉산 휴게소 800미터’ 표말이 보인다. 거반 다 올라온 것이다.
정상 휴게소에 도착 물 한 병을 사서 챙기고 곧바로 고개 아래 동네 오음리로 향했다.
오르막에 비해 내리막은 그리 길지도 급하지도 않다.
오음리를 지나자 바로 추곡령 오늘의 두 번째 아니 세 번째 오르막이 시작된다.
추곡령은 터널이 있다. 완만한 오르막을 조금 가니 벌써 터널이 나온다.
싱겁다.
추곡 터널을 통과하니 마치 팔당대교에서처럼 연속으로 터널이 이어진다.
소양강변으로 꼬불꼬불 이어지는 46번 도로를 터널을 뚫어 바르게 펴 놓았다.
사실 강변으로 이어진 길을 달리고 싶었는데 조금 아쉽긴 하다.
그러나 시간 단축에다 일단 편하고 보니 그리 나쁘지 만은 않다.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굉음에 시달려야 하는 터널을 들어갔다 나왔다 여러 번 반복한다.
터널이 아닌 구간에서는 간간히 소양호 풍경을 내려다 보았다.
사방 산속 푸른 물빛의 호수가 너무 아름답다.
양구까지 이어지는 이 길이 아직 전 구간 다 펼쳐 지지는 않았다.
양구 선착장이 가까워 오자 터널들은 끝이 나고 다시 옛길이 시작된다.
선착장을 지나 작은 고개 하나를 넘으니 바로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시내로 접어든다.
딱히 이정표가 없이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는 늘 심적인 곤란을 겪는다.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바로 접어들었어도 반드시 재확인 해야만 마음이 놓인다.
그래서 초행길은 예상보다 늘 더디다.
자전거도 요즘 흔한 네비게이션을 달아야 할까 보다.
사실 차에 붙이고 다니던 것을 떼어 자전거에 메달아 이번 여행에 사용해 볼까
궁리도 해 보았다.
어떻게 든 부칠 수 있다고 해도 크기와 전지가 문제였다.
앞으로 이런 문제들을 개선한 자전거용 네비게이션이 조만간 나올게 분명하다.
시내를 벗어나 이번 여행의 네 번째 언덕 광치령을 넘어야 한다.
보통 이런 여행을 다닐 때 시계를 자주 보지않는다.
햇살을 보니 이젠 늦은 오후로 접어 드는 것 같다.
아까 오봉산 휴게소에서 어떤 분이 광치령이 배후령 못지않게 높고 길다고 하였다.
과연 얼마의 시간을 잡아 먹을까?
광치령만 넘으면 바로 원통이다. 광치령 고개입구 삼거리에 군인 검문소가 있다.
우리 아들 만큼이나 잘생긴 얼짱 헌병군인이 멋지게 경례를 한다.
손을 들어 답례를 하니 힘이 솟는다.
그 과정에 가야 할 길을 살짝 벗어나 지나쳐 내려왔기에 다시 돌려 가려는 순간이다.
경찰차가 길옆으로 서더니 한 덩치 하는 경관나리께서 나를 부르는 게 아닌가?
어! 지은 죄가 없는데??
교통 위반도 아닐 테고..? 다가온 아저씨 연세가 좀 드신 분이다.
“아니 어디까지 가세요? 혼자 타십니까? 나도 산악자전거 타는데… 아~ 타야 하는데.. 잘 타십니다. 미시령은 가능하면 터널을 이용하지 말고 고개를 넘어 가세요.”
“시간 내어 열심히 타세요” 하고 서둘러 대화를 끊어버리고 갈 길을 재촉했다.
그 경관 나리의 심정 이해하고도 남는다.
수년 전 자전거에 한창 메달려 있을 즈음 어느 더운 여름날이다.
가족과 휴가차 한계령 고개를 한참 내려가는데 멋진 복장에 날렵한 자태로 자전거를 타고 올라 오는 한 분의 라이더와 딱 마주쳐 지나 갔다.
순간 차를 버리고 저분과 같이 자전거로 저 고개를 오르고 싶은 욕망이 솟구친다.
갑자기 이놈의 차가 싫어지고 자전거가 한없이 그립다.
곧 바로 차를 세우고 저 분과 무슨 말이라도 나누고 싶다.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돌려 뒤를 힐금거리며 백미러 처다 보기를 계속 했다.
험한 내막길 안전운전을 못하고 헤매는 남편을 보다 못한 아내가 기어코 한마디 한다.
“자전거 타는 사람만 보면 환장을 하시는 구만” “정신 차리세요. 사고 납니다.”
광치령에도 광치터널이 있다.
오르막이 그리 길지도 않고 높지도 않다.
터널 앞에 당도하니 조금 싱거운 감이 든다.
이 터널만 빠져 나가면 원통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옛날 많이 들어본 소리다.
터널을 나와 내리막을 쏜다. 의외로 구비구비 내리막이 길다.
요즘은 이 지역이 모든 여건이 다 너무 좋아져서 “인제 와서 원통하다”라고 한다.
거의 공짜로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까지 내려왔다.
약국이 보인다. 순간 진통제를 사 먹을까 생각해 본다.
이 지긋지긋한 엉덩이 통증에 도움이 될까 해서다.
이제 그야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원통 도착이 4시 30분 이미 오늘 해 안에 속초도착은 틀렸다.
속초까지 약 50여 키로 거기다 험한 고개까지 남아 있다.
원통을 벗어나 44번 도로에서 46번 도로로 교차하는 삼거리 신호를 받고 서있었다.
봉고차(차종을 모르는 승합차를 모두 봉고차로 부름)가 옆에 바짝 붙어서 문을 열고
소리친다. “어디까지 갑니까?” “속초요” “아! 타세요” “괜찮아요” “이 길이 복잡하고 엄청 위험해요. 타요 타.”
이미 조수석에 않은 분이 차에 내려 차문을 열고 자전거를 거의 뺏다시피 실어넣고 있다.
사실 이 시간대에 46번 도로는 엄청나게 늘어난 차량으로 정신이 없다.
유난히 좁은 갓길 마저 공사로 인해 거의 침범 당했다.
그럼 미시령입구까지 만이라도 타고가 볼까…
도중에 차에 오른다는 것은 자전거 여행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으로 볼 수가 있다.
나는 늘 그렇듯이 그런 쓸데없는 의미 같은 것은 애당초 염두에 두지 않는다.
언제든 피곤하면 쉬고, 배고프면 먹고, 힘들면 차를 타고 안전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자전거 여행을 한다.
자전거를 타면서 몇 키로를 몇 시간에 주파하였고, 평속 얼마에 최고속은 얼마 였다는
그런 의미는 나와는 거리가 멀다.
무릎이나 신체의 일부를 망가트려가면서 속초를 하루 만에 왕복하셨다는 분들을 보면
안타깝다.
자전거를 싣고 차에 올랐다. 이 지역 도로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다.
차 안은 온통 토목공사용 연장과 집기들로 가득하다.
집은 서울이고 이 고장에 일하러 와 있다.
운전하시는 분이 기술자(오야봉)고 조수석에 계신 분이 도우미(데모도)같다.
많은 질문이 쏟아진다.
그리고 옛날 한 때 싸이클을 타고 이 길을 넘어 강원도 동해안을 따라 아주 먼 곳까지
자전거 여행을 했단다.
‘그럼 그렇지 이 분 역시 아까 그 경찰아저씨와 같은 자전거향수증후군에 걸린 분이구나.’
자기들이 물어 보고싶은 것 다 물어 보고 하고 싶은 말 다 한 후에 차를 세우고 내리라고 한다. 여기가 자기네 목적지라면서 조심해서 안녕이 가시란다.
겨우 10여 키로 타고 온 것이다.
내심 미시령 입구까지 만이라도 갈까 했으나 십이 선녀탕을 조금 못 가서 달콤하고 안락함이 막을 내린다.
단감 두개를 주길래 한 개만 받아 챙겼다.
공사 구간은 거의 끝나 덤프차는 별로 없고 대신 관광버스가 정신없이 대든다.
본격적인 고갯길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은근히 오르막이다.
백담사 입구를 지나 진부령과 갈라지는 곳까지 거의 다 왔다.
어둠이 내려 않는다.
미시령을 오른다 해도 정상에서 설악산 구경은 물 건너 갔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왼지 쓸쓸하고 으스스하고 의기 소침해진다.
어떻게 할까?
고개를 넘을까?
터널을 통과할까?
터널, 고개, 터널, 고개 터널쪽으로 기울면 고개가 가만있지 않고 고개쪽으로 기울면
터널이 유혹한다.
시계를 보았다. 5시 반경.
터널을 통과한다면 용케 막차가 아니라 6시 50분에 출발하는 차도 탈 수 있다.
사실 미시령고개는 예전에 넘어본 적이 있고 그리 힘든 고개도 아니다.
넘어 올라가는 오르막이 그리 길지않고 반대로 내려가는 길은 길어 넘을 만도 하다.
드디어 미시령옛길과 갈라지는 곳까지 왔다.
이제는 결정해야 한다. 터널길이 3.3키로 미시령터널을 통과하자.
자전거를 세우고 마지막 남은 인절미와 물병을 비우고 깜박등을 비롯하여 이것 저것 재점검한 후 터널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미시령터널은 편도터널 이다. 즉 가고 오는 터널이 각각 따로 되어있다.
그래서 소음도 한결 덜하다. 차와 자전거가 한쪽 방향으로만 간다.
차는 터널 복판으로 정신없이 달려가고 자전거는 터널벽 가까이 붙어서 간다.
빠르게 지나가는 차에 스치는 바람에 이끌려 가는지 아니면 가는 쪽 방향으로 터널내
경사가 졌는지 자전거는 전혀 페달을 발지 안은 데도 저절로 잘 굴러 간다.
그러나 가속은 붙지 않는다.
경사라면 가속이 붙을 것인데.. 그러면 달리는 차량에 스치는 바람 때문인가?
터널을 통과하니 깜깜하다.
허접한 후레쉬가 희미하게 앞을 비쳐준다.
대락 시속 30키로 정도로 조금 천천히 속초를 향해 내려가고 있다.
저 멀리 속초시내 불빛이 보이고 동해바다 냄새가 물씬 느껴진다.
우측으로 어둠 속에 시커먼 설악이 내려다 보고 있다.
올해는 설악산과 인연이 별로 좋지 않나 보다.
지난달 중순 한계령, 대청봉, 공릉능선을 거처 설악동으로 내려오는 무박산행을 했다.
그때는 종일 비가 오고 안개가 끼여 약 10여 시간 산행동안 등산로외 설악의 비경은 마치 포장지로 포장된 것처럼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유로 터널이지만 공짜로 요금소를 통과하니 내리막은 거반 다 내려 온 것 같다.
요금소에서부터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한참 지나 첫 신호등을 만나니 차와 자전거가 슬슬 속도를 줄이기 시작하면서 신호대기 선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역시 어떤 중년 남자분이 차창을 열고 나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어디서 왔나? 언제 출발 했나? 위험하지 않나?”
그리고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재미있나? 그렇게 자전거를 타면 기분이 어떠냐?” 질문의 내용으로 보면 이 분은 자전거를 타는 분이 아니다.
그러나 자전거에 관심이 있는 분이다.
아마 이 밤중에 오직 차만 다녀야 할 저 황망한 터널 속을 뚫고 긴 고갯길을 자전거 한대가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는 것을 보고 남 달리 심적호기심이 유발 되었을 것이다.
속초시청과 시외버스터미널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한다.
대부분 어느 도시든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고속버스터미널도 있다.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잘못된 믿음이 였다.
속초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부근에 고속버스는 없었다.
고속버스터미널은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고 한참을 가야 한단다.
약 20여분 시내 길을 달려 드디어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출발 3분전인 6시 47분에 매표소 앞에 서다.
표를 사서 막 출발하려는 버스로 다시 오니 버스기사가 자전거를 번쩍 들어 화물실에
싣고있다.
오후6시 50분 속초 발 인천 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출발한다.
버스는 거반 비어 있다.
배낭과 헬멧을 벗어 빈 옆 자리에 내려 놓고, 언 몸을 비벼 녹인다.
신발을 벗고 발도 비벼서 녹인다. 따뜻한 차 안이라 금새 몸이 녹고 더워진다.
정신없이 하품이 나온다. 잠을 좀 잘까 눈을 붙였으나 잠은 오지 않는다.
머리 속엔 아득하던 미시령터널 입구가 아른거린다.
오늘새벽 경기도 하남 시청옆 어느 찜질방에서 출발하여 여기 속초까지 왔고 지금
다시 집으로 가고있다.
오늘 내가 지나온 긴 여정 이곳 저곳 들이 산발적으로 어른거리고 머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문막 휴게소에서 우등 한 그릇을 비우니 머리가 정리되고 마음이 갈아 않는다.
이어폰을 찾아 음악을 들었다.
참 잘한 여행이다.
집에 도착하니 열 한시가 채 안됐다.
따뜻한 온수로 몸을 씻고 신문을 깔고 손톱을 깎았다.
집사람은 연속극에 정신이 없다.
따듯한 불빛, 아직 읽지않은 오늘 조간신문, 마치 오늘하루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불과 3-4시간 전 어둠을 헤치고 저 동해를 향해 미시령 고갯길을 내 달렸던 기억은 점점 흐려지며 잠이 쏟아진다.
슬그머니 일어나 오늘 하루를 감사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끝
누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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