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가봐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드디어 오늘 출발하는 날 아침입니다. 괜히 마음이 급하고 분주해 집니다. 서둘러 떠날 준비를 마치고 같이 갈 일행을 태운 차를 기다립니다. 약속한 정시에 도착 했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리 꾸물거리냐고 호통치고 괜한 심통을 부립니다.
12월 22일 토요일이 아침 7시 30분 다섯 명의 우리 일행은 태안을 향해 출발 했습니다. 날씨는 맑고 춥지 않았습니다. 달려가는 고속 도로는 차량으로 그득합니다. 그러나 막히지 않고 잘 흘러 가고 있습니다. 줄줄이 내려 가는 차량 행렬 속에서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 현장으로 가는 차량들을 금방 알아 차릴 수 있었습니다. 승용차, 승합차, 회사버스, 학교버스(고등 및 대학), 군인버스(공군사관), 관광버스 행렬이 줄을 이어 내려 갑니다. 그러다 보니 서산 톨게이트를 빠져 나갈 때는 한참 동안 막히기도 했습니다.
서산을 지나 태안 군내로 들어오자 많은 현수막들이 걸려 있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 두께로 졸지에 청천벽력 같은 일을 당한 태안 사람들의 심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들은 대개 이렇습니다.
자원 봉사자 여러분 너무 감사합니다.
국민 여러분 살려 주세요.
초등 대처 안 한 정부 책임져라
정부는 조기 보상 하라
삼성은 비자금 7조로 피해보상 하라
현대 오일뱅크는 왜 말이 없는가?
이명박 당선자님 살려 주세요
우리 일행은 우선 만리포 해수욕장에 도착하였습니다. 현장은 차량과 인파로 넘쳐 납니다. 자원봉사 등록하는 곳에서 등록을 하고 방제 복과, 장화, 장갑, 마스크를 지급 받아 착용하고 준비해간 방제 물품을 챙겨 곧 바로 바다로 향했습니다.
바닷물이 저 멀찍이 밀려나간 해수욕장 모래사장은 그 동안의 방제 작업으로 거의 하얗게 변했습니다. 주변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시커먼 기름통과 쓰다만 방제도구들을 보니 당시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그리고 보면 그 동안 먼저 온 선배 봉사자님들께서 많은 일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 일행이 안내 받은 일터가 해수욕장 입구에서 좀 떨어진 등대 주변의 갯바위 돌 자갈밭이었습니다.
일터로 가기 위해 해수욕장 백사장을 쭉 걸어서 작업장으로 향했습니다. 멀리 일렁거리는 바닷물은 이젠 검은 기름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래톱으로 밀려드는 물결 위엔 아직도 얇은 검은 기름띠가 떠있는 게 보입니다. 또 밀려나간 젖은 백사장 위엔 맑은 기름 막이 떠있습니다. 마치 물위에 식용유를 쏟아 논 것 같습니다. 물과 모래를 한줌 떠서 냄새를 맡으면 기름냄새가 물씬 납니다.
작업장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작업에 열중입니다. 우리들도 곧 바로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시커멓게 기름으로 뒤범벅이 된 돌멩이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기름을 닦았습니다.
쌓여 있던 기름은 아마 먼저 간 선배님들께서 거의 다 제거를 하셨고 우리는 그 나머지 돌과 돌 사이 그리고 밑바닥에 묻은 기름을 닦고 제거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우선 손이 닿는 부분과 뒤집을 수 있는 돌은 뒤집으면서 닦고 나면 포크레인이 와서 부우~욱 긁어 뒤집어 놓습니다. 또다시 기름 범벅이 됩니다. 그러면 또 닦습니다. 이런 일이 별반 효과도 없어 보이고 작업은 끝이 없어 보입니다. 과연 이런 작업으로 언제 이 돌들이 하얗게 제 모습을 찾을까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 돌 밭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닦기도 수월하고 닦을 수 있는 데까지 닦기라도 하는데……
우리가 작업한 갯바위 돌 자갈밭이 문제가 아닙니다.
옹벽, 방파제, 해안절벽, 갯벌, 섬 주변 등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곳에 붙어 있는 시커먼
기름 덩어리를 볼 때 그저 한 숨만 나옵니다. 그러니 안 보면 몰라도 공연히 자원봉사 한답시고 이 처참한 꼴들을 보고 말았으니 그저 가슴이 답답합니다. 가보면 발 길이 안 떨어 진다던 먼저 다녀가신 선배들의 말들이 새삼 공감이 갑니다. 열 시경부터 작업해서 열두 시쯤 되니 우리가 작업하던 곳까지 물이 밀려왔습니다. 이제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미 밀려온 물로 닦다 만 돌 밭이 다시 바다가 됩니다.
이젠 점심을 먹어야 합니다. 밥 먹기가 송구합니다. 뭐 제대로 화끈하게 한 것이 없습니다.
돌 몇 개 닦고 나니 물이 들어오고 속절없이 벌써 밥 때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밥값도 못한 게지요. 점심식사는 또 다른 자원봉사 팀에서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더운 밥이 너무 맛 있었습니다. 식사 후 커피도 자원봉사팀에서 제공합니다.
이 나라는 오직 자원봉사만 있는 나라처럼 보입니다. 정식 담당 관리들은 주말이라 등산이나 골프 혹은 테니스라도 치러 갔을까요? 이 엄청난 사고를 수습할 담당부서나 관리가 있기나 한지요? 혹시 작은 태안군 공무원 분들에만 모두 떠 맡겨 놓지는 않았는지요? 도무지 보이지 않네요. 교통정리도 군인과 예비역 해병대원 분들이 씩씩하게 합니다.
점심 식사 후 우리 일행은 천리포로 향했습니다. 역시 천리포도 사람이 넘쳐납니다. 노랑 우의를 입은 봉사자 행렬이 줄지어 산으로 올라갑니다. 산 넘어 저쪽에 해변 갯바위에 기름 닦으러 가는 길입니다. 해안으로 절벽이 가로 막혀 있으니 산을 넘어야 합니다.
우리는 방파제에 묻은 기름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은 위험합니다. 기름 묻은 돌이 미끈거리고 자세도 불량합니다. 그래도 이마에 땀이 나도록 열심히 닦고 또 닦았습니다. 이마에 땀을 훔치려다 기름을 묻혔나 봅니다. 같이 간 동료가 놀립니다. 일 못하는 사람이 얼굴에 껌정만 바르고 다닌다고요.
여기서도 오후 세시가 되니 물이 차고 작업을 마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제 여기를 떠나면 언제 다시 오게 될까요? 내년 여름 여기서 해수욕을 해야 됩니다. 반드시 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차를 타고 오면서 별별 공상을 다 해 봅니다. 기름만 먹고 사는 물고기가 없을까? 그런 물고기가 있다면 때 거지로 몰려와 배 불리 먹고 가면 깨끗이 정화될 텐데…… 그리고 아쉬움에 머리를 벅벅 긁습니다. 아쉽다 못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왜 그토록 무능력하게 초동 대처를 못했을까요? 아마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저 큰 그릇에 구멍이 나 담겨있는 기름이 흘러 내리기만 하는데 왜 막지 못했을까요? 막지 못하면 깔때기 같은 것으로 받아 낼 방법은 없나요? 그까짓 거 충분히 받아낼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안 했을 뿐입니다. 모두가 선거에 눈이 뒤집어 졌었으니까요.
도무지 이 나라엔 이런 사고가 나면 응급 대처할 방제 시나리오도 없고 해 야할 기관도 또 할 사람도 없는 나라인지요? 십 년 전에 남쪽 바다에서도 기름을 쏟아낸 사고로 한 바탕 난리를 쳤습니다. 이 나라는 사고를 내기만 하고 예방이나 방제하는 법은 도통 모르는 그런 나라인지요? 믿거나 말거나 일본은 배가 두 토막으로 동강 나지만 안으면 유출되는 기름을 거의 100% 초동 방제하는 기술이 있다고 합니다. 너무도 아쉽습니다. 속절없이 만 이틀 48시간 동안을 물 건너 불 구경을 하면서 그냥 다 쏟아냈습니다. 대 재앙은 그렇게 생산되었고 그리고 모두가 날씨 탓만 합니다.
우리는 다시 만리포로 나와서 착하고 착한 다섯 명의 어린 학생들을 태웠습니다. 이 학생들은 우리 옆에서 일했습니다. 방제 복에 빠끔히 얼굴만 내놓고 고사리 손으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어린 여중생으로 보았습니다. 안양에서 새벽 다섯 시 시외버스를 타고 태안까지 와서 태안서 다시 버스로 이곳까지 왔다고 합니다. 버스비만 편도 만원이 넘습니다. 방제 복을 벗고 차에 오를 때 대학생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돌아 가는 길 카 풀을 한 것입니다. 우정 안양까지 들어가 착한 대학생들을 내려다 주고 우리는 다시 인천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 태안 앞 바다는 신음하고 있습니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춥지 않아 떨지도 않았는데 몸살이 나려고 합니다. 태안은 지금 몸살의 신음이 아니라 독약을 마시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복될 것입니다. 반드시 회복될 것입니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내년 여름 꼭 찾아 뵙겠습니다. 끝
※바로 우측 상단
"태안반도 국립공원 기름유출사고
우리 모두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를 눌러 보시면 " 이 사고를 소재로 한
"태안 앞 바다를 생각하며.."란 소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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