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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靑竹2007.02.13 20:41조회 수 921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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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이야 거의 모든 가정에 욕실이 있을 뿐더러
대중 목욕탕이 주위에 흔해서 목욕문화가 많이 좋아졌지만
과거 우리네 농촌의 가옥구조란 대개 살림방과 부엌과 헛간과
짐승우리 뿐, 특별하게 목욕을 할 만한 공간이 별로 없었다.

아장아장 걸음마 수준을 넘긴  아이든 어른이든,
땡볕에 그을리며 농사일을 하느라 온통 땀에 젖어 살았으므로
때로 개운한 목욕이 절실할 때가 많았다.

남정네들이야 그저 아무데서나 웃통을 훌훌 벗어 던지고
등물을 하던지 아니면 냇가에 나가 홀랑 벗어 던지고 목욕을 했지만
여자들이 목욕을 할 만한 공간이나 기회는 상당히 제약을 받았다.

간혹 여자들이 자신의 집 뒤란에서 커다란 고무통에
물을 길어다 놓고 목욕하는 모습들을 보긴 했으나
그마저 이웃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믐날이나 마찬가지인 아주 희미한 달빛에  드러난
옆집 처녀의 뿌연 어깨의 실루엣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설렌다..(언제 철이 들꼬...)

내가 태어난 마을의 바로 앞에 금강 지류가 흘렀는데
어찌나 물이 맑았던지 모내기를 하다가 목이 마르면
고운 모래 퍼내고 흩어졌던 모래가 이내 가라앉은 뒤에
샘물처럼 맑아진 물을 항아리로 길어다 농군들이 그냥 마셨다.
그런데 그 냇물이 달이 한 달에 한 번 휴가를 떠난
깜깜한 그믐날 밤엔 동네 처녀들의 널따란 공중 목욕탕이었다.

쥐방울 만한 나는 떠꺼머리 총각들이 몰려다니면
쫄래쫄래 낑겨서 휩쓸려 다녔는데 이런 날은 예외 없이
각자 집에서 ㄱ자로 구부러진 국방색 군용 후래쉬 하나씩
들고 나오라는 지령을 받기 마련이었다.

내가 쥐방울이면서 그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건
당시 한 동네에 살면서 온통 짓궂은 모사를 잘 벌이던
외삼촌들과 외가쪽 아저씨들이 나와 나이차가
얼마 나지 않은 탓에 늘 닭서리나 과수원서리를 해도
내게 망을 본다던가 하는 결코 작지 않은 비중의 임무를
부여해 주며 데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거사일인 그믐 날,

발소리 죽여서 냇가를 향하여 보무도 당당하게(?)
행군을 한 뒤에 냇가의 반대편 둑에 일제히 볏단 널어 말리듯 엎드렸다.
귀가 밝고 눈치가  빠른 선발대 하나가 곧 위치 추적에 나서고
그에게서 신호가 오면 나머지는 곧 볏단에서 구렁이로 변신하여
구렁이 담을 넘듯 둑을 넘어 냇물의 가장자리에 넓다랗게 심어 놓은
콩밭의 이랑 속으로 끓는 물 속에 빠뜨린 미꾸라지
두부 속으로 파고들 듯이 일제히 스며들어가서는
높은포복 자세로 모래땅을 기어서 목표지점으로 나아갔다.

사전에 주고받은 신호가 잠시 후에 대장으로부터 떨어졌다.
모두 가져온 군용후래쉬를 까르르 웃음소리,
철벅거리는 물소리가 어우러져 나는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군용 후래쉬로 일제히 집중사격을 가했는데...

아뿔싸.....
난 여자들이 수염이 턱에 안나고 다른 곳에 나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푸헤헤..
그렇지만 맑은 설탕물에 담긴 백도나 황도처럼
매끈매끈한 동네처녀들의 진면목이 후래쉬의 집중포화로
다 드러나도 그 쪽에선 눈부신 빛의 뒤에 있는 우리가
보일 리 만무였다.

그런데...뭐... 그 다음 일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야~이 어떤 x 씨보룽쉐이덜이~!!!!"
"흐미..이 작것들이"
"썩울눔들아..니들 다 디졌어 인제.." 하는  
시골처녀 합창단의 퍽이나 낭랑한 악다구니에
반사적으로 후래쉬를 끄고 일어나 튀었는데
성깔이 난 시골처녀 합창단들이 일제히 물속으로 손을 넣어
조약돌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던지는데 이게 상당히 적중률이 높은 산탄총이었다.

젤 꼬맹이라 걸음이 젤 느린 난 뒤통수며 등짝이며
종아리에 따다닥 툭탁 꽃히는 조약돌 산탄의 위력에
뒷통수를 감싸쥐고는 깨갱깨갱 나오려는 비명소리
이를 악물고 삼키며 엎어졌다 뛰다가를 대여섯 번 반복한 뒤에야
비로소 구렁이 담을 넘는 것이 아니고 이번엔
선불맞은 멧돼지 철책을 넘듯 단번에 둑을 넘어
그 무간지옥을 탈출했던 것이다.

첫 출격이 있었던 뒤로 한 달이 흘러
두 번째 출격 기회가 왔다.

외삼촌의 명령이 떨어졌다.

"후라쉬 갖고 나와라"

그러나 난 단호했다.


"싫어~!!!!!!!!!!!!!!!!!!!!!!!!!"



사실 그 당시의 명령불복종으로 인하여
이렇게 생존하여 장성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푸헤헤.

또 갔다가 커다란 자갈돌에 맞아
북망산천 유람을 갔을지 누가 알겠는가..

=3=33=3333=3333=33333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고향으로 잔차를 가지고 달려가
그 둑이며 산허리며 기다란 농로들을
미친듯 달려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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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
  • 글쓰시는분인지요? 글 참 재밌게 읽었습니다 어찌 그리 글을 재밌게 잘쓰시는지 이런게 타고나야 되는건가 봅니다 말씀도 재밌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우리네 목욕 문화야
    쪽바리들이 깔보던 것이었죠.
    그네들은 온천이 발달해서 목욕문화가 발전했지만
    우리야 그냥 추석 때 한 번, 구정 때 한 번이 고작이었죠.

    수염 보실 때
    저도 좀 부르지 그러셨어요^^;;
  • 요즘에 저러면 잡혀간다지요~
    제가 살았던 시절은 아니지만 왠지 그리운 정경입니다. ^^
  • 비오는날 밤 벙개도 없고 와이프도 친구만나러 간다고 나갔고 아이들은 각자 방에서 공부하고 혼자 여유롭게 왈바에 들어오니 이렇게 좋은 글도 만나네요......이러다가 폐인되겠습니다 빠바님 때문에 웃기도하고 하늘의눈님과 청죽님 때문에 추억의 에피소드도 듣고 ~~~~~^^
  • 청죽님이 패달을 그리 빨리 밟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구먼유...ㅎ
  • "볏 짚단이 구렁이로 변신하여" <-------이 부분에서 배꼽 빠지는줄 알았읍니다요...ㅎㅎㅎㅎㅎㅎ
    참 예전엔 그랬었죠. 고무다라통이 이거 다용도였죠....때론 농약 칠 때...때론 목욕용..
    그리고..볍씨 싹 틔울 때 담가 두기도 하는....

    저도 예전에 냇가에서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목욕하던 모습들을 짙궃은 친구넘들과 논둑에
    바싹 엎드려서 구경 하며 놀려줫던 기억들이 나는군요...^^ㅎ
    동네가 워낙 작아서 어두워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어느집 아가씬줄 다
    알던 시절였죠...
    정 넘치고 향수어린 예전 생각나게 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글 너무 잘 읽었구요...미리 설 연휴 행복하시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 ㅎㅎㅎ.

    저는 성내에 살아서..

    공중 목욕탕을 다녔죠....

    근데.. 이 목욕탕이... 여탕과 남탕 사이의 벽이 천정이랑 붙어있질 않았죠...

    바가지 많이 날라 들어왔습니다...

    젬 있었습니다...
  • 벽새개안님...서울 성낸가유?....도시에서 보내셨군요....그래서 흥아표도 또렸이 격하시구..>.<::ㅎ
  • 맛깔스런 또한 옛 추억을 정말 표현 잘 하셔서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 오늘은 옜일 추억하는날이가요?
    저는 중량천에서 해봣습니다.ㅋㅋㅋ
  • 성내 란... 도시 라는 말이쥬..ㅋ
  • inside of castle유~??.....>.<::ㅎ
    왕자님 이셨구먼유....벽새개안님......ㅎㅎ.....
  • 청죽님 글이 너무 재밌어서 오늘 또 다시 읽어 봤읍니다....ㅎㅎㅎㅎㅎ...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 만땅 입니다요....늘...건강 허시구유....
    그나저나 올 해 안에 뵙기나 헐련지...원....ㅎ
  • ㅎㅎㅎ 재미있게 잘 읽었슴다. 한편의 단편소설을 읽은 느낌입니다.푸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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