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려 습하고 후줄근한 숲도 마냥 좋기만 하다.
불과 며칠 전, 무척 더울 때의 일이다.
힘들게 산을 타고 집으로 오니 너무 열이 났다.
냉수를 틀어 놓고 대강대강 샤워를 했는데
본시 샤워하는 버릇이 5분을 넘기지 않는지라
달았던 열기가 미처 다 식을 리가 없었겠다?
"어휴~씻은 지 오 분도 안 됐는데 이 땀 좀 봐라.."
"새로 갈아입은 런닝셔츠가 다 젖었네요..으이구"
우리 두 내외의 이야기에 딸아이가 끼어들었다.
"아빠...그러니까 들어오자마자 샤워하지 말고
우선 선풍기로 열을 일차 식힌 다음에 샤워하면 되잖아
머리를 쓰세요 머리를..크크"
딸아이가 하는 말이 꽤 일리가 있는 조언 같아서
이틑날인 그제 저녁에 드디어 실행에 옮겼는데
우선 눈에 뜨이는 세 가지 실수가 있었다.
첫째, 딸뇬의 조언이 아비의 연식을 계산에 넣지 않은
불효막..아니,적절치 못한 조언이었다는 점과,
둘째, 열대야가 지나고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
조석으로 서늘함마저 느낄 정도인데 이 둔한 위인이
그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점과,
셋째, 선풍기를 장시간 쪼이면서 왈바 게시판을 들여다보다가
그것도 모자라 글을 한 편 올렸다는 점이 그것인데
수카이님 옆구리가 시린 계절이 온 것도 모르고
선풍기를 마냥 틀어 놓고 덜덜덜..으시시...
숙맥처럼 하염없이 떨면서 왜 떨어야 하는지도
생각해 본 적도 없이 그저 맹꽁이 같이 떨고만 있었으니..쩝
그게 잠간이면 몰라도 두어 시간을 그랬으니
여간해서 걸리지 않는 감기가 덜컥 걸려버렸다.
이틑날,
이상하게 머리가 아프고 기침이 나오는데
그게 감기라는 건 생각도 못하고
(그만큼 감기와 별 인연이 없었으므로)
소파에서 눈꽁댕이가 게슴츠레 풀려가지고
티비를 본답시고 눈꼬리에 힘을 주어 보았지만
연속극에서 앙칼지게 소릴 지르는 아지매가
날 째려보는 게 내가 티비를 보는 건지 티비가
날 보는 건지 도무지 헷갈리게 만든다.
아무튼 누웠다 앉았다,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으려니
마눌이 웃으며
"별 일이네요? 오늘 어디 안 나가요?"
"내가 뭐 자전거만 타는 사람인가?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한 번씩 타는 걸 가지고..쩝"
"세상에나..네상에나..자전거에 올라가 있는 시간이
땅을 디디고 있는 시간보다 많은 양반이..아이고 내 웃겨서..
가뭄에 콩이 그렇게 잘 나면 평생 가물어도
콩농사는 걱정이 없게요?"
아무튼 뒤늦게 감기라는 걸 깨닫긴 했으나
태어나서 감기약이라고 딱 한 번 먹어 보았으니
이번도 예외는 아니다. 그냥 뒹굴거리며 잠을 잤다.
작년까지만 해도 감기 기운이 보이면
잔차를 끌고 나가서 땀이 흠뻑 나도록 달리면
감기가 흔적도 없이 떨어지곤 했는데
그제는 잔차를 탈 엄두가 안 나서 잠만 자고 났더니
오늘까지 차도가 없다.
밖에는 비가 뿌리다 말다 하는 것이 정말 게릴라 같다.
하늘이 게릴라면 나도 게릴라 전법으로 맞서야 한다.
'우선 지근 거리에 있는 산에 한 번 올라가 보자.'
마음을 먹고 자전거를 현관까지 끌어다 놓고
오분,,아니, 십초대기조로 완전무장한 채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내 비가 그친 데다가 하늘을 보니
제법 햇살이 엷은 구름층을 투과해서 들어온다.
'그래 이 때다..적어도 산을 타는 한 시간 반 안에는
비가 올 것 같지 않다'고 확신하고 잽싸게 출동했는데
결국 게릴라전에서 감기에 걸려 전력이 약화된 게릴라가
패하고 말았다.
집에서 출발한 지 오래지 않아 비가 내리는데
돌아갈까 하다가 내친김에 그냥 산에 올라갔다.
자전거가 알미늄일 때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저 전천후였는데 지금의 잔차는 크로몰리라
비가 오면 그래도 조심하는 차원에서 라이딩을
제법 삼가는 편이라 이럴 땐 무척 망설여진다.
급경사 길에서 뒷바퀴가 자꾸 미끄러지면서
헛도는데 예전엔 조금만 헛돌면 놀라서
클릿페달에서 발을 잽싸게 빼곤 했는데
지금은 제법 적응이 되었는지 그 슬릭이 나는 걸
은근히 즐기는 것 같다.ㅡ,.ㅡ
어쌨거나 비를 맞긴 했으나
땀을 흠뻑 흘릴 정도의 라이딩을 마치고
따순 물로 샤워도 마치고....에효효..그런데...
야심한 이 시간까지 아직 머리가 띵하고
코가 막히고 재채기가 자꾸 나오는 것이
예전과 다른 것 같다.
지금 자고 일어나서 감기 기운이 여전하다면
더 이상 땡깡과 발악을 부리지 말고 순리에 맞춰서
약을 한 첩 지어다 한 번 먹어 볼 생각이다.
구름선비님 편찮으신 걸 보니
잔차에만 너무 신경을 쓸 일이 아니라
몸도 분해..헉..분해는 안 되지..분해는 안 되니
정비라도 가끔씩이라도 해 주어야겠다.
연식이 오래 될수록 고장도 잦은 법이니끼니..
저보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이 글을 읽고
노여워 마시길 바랍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