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우중 라이딩 뒤에 남는 빨랫감들. 그래도 좋다.
이제 우기에 접어들었는지 비가 제법 쏟아진다. 한양대쯤 다녀올까 하는 생각에 집을 나섰다. 자전거포에 들르니 "역시 날이 궂으니 청죽님이 보이시는군요. 호호호."하며 반가이 맞는다. 라이딩에 나서기 전 들러서 대접받는 따끈한 커피 한 잔에서 받는 즐거운 위안은 사뭇 크다.
예전에 소음이 지독한 곳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소음을 듣는 일이 일상이 되다 보니 그 소음 속에 평소 듣지 못하던 작은 소리가 섞이면 용케도 분별해서 달려가곤 했던 기억이 난다. 직접 경험하고 보니 철도청의 선로반원들이 열차를 두드려만 보고 이상 유무를 판별하는 게 조금은 이해가 갔었다.
거센 벳줄기 속으로 자전거를 달리노라면 비닐로 된 비옷을 사정없이 때리는 빗방울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빗물이 고인 천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내는 시끄러운 소음들, 그리고 불어난 중랑천에서 들리는 물소리들이 제법 시끄러울 만도 하건만 한참을 달리다 보면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에 그 소리들이 점차 잦아들면서 사색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뜻밖의 고요함이 찾아든다.
눈보라나 진눈깨비가 날리는 혹한기의 라이딩이나, 한여름 오후의 지독한 땡볕 아래서의 라이딩이나, 오늘처럼 빗줄기가 쏟아지는 우중라이딩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자전거를 타면서 사색이 가능한 때문이다. 나의 경우, 사색하기 위해서는 한적함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기상 조건 아래서의 중랑천의 호젓함 가득 느낄 수 있는 한적함은 아주 그만이다.
▲하드테일의 마지막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크로몰리 프레임을 드디어 장롱 위에서 끌어내려 꾸몄다. 혹시 마음이 변해 다른 프레임에 눈을 돌릴 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나의 성격으로 보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날렵하게 보이는 프레임엔 역시 구형 시드 샥이 딱 어울린다. 방수 기능이 의심스러워 카메라를 집에 두고 간 탓에 사진은 엊그제 찍은 걸로 대체다.
비가 제법 많이 온 탓인지 한양대쯤의 중랑천 하류의 물이 제법 불어 수위가 꽤 높아졌다. 비가 쏟아진 직후에 몰려드는 온갖 하수들로 인해 물도 탁해지고 수중의 산소 농도가 급격히 떨어진다고 하던데 본격적인 산란기에 접어든 잉어들이 혼란스러움을 겪고 있을 것 같다.돌아오는 길에 반짝이는 빗방울이 맺힌 풀잎을 바라보노라니 사진기를 가져오지 않은 게 못내 아쉽다.
크로몰리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대체로 금기로 여기는 우중라이딩이지만 난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내구성이 훨씬 떨어지는 철제 생활자전거도 눈비를 맞아가면서도 십여 년을 넘게 타는데 녹이 슬까 하는 걱정은 공연한 기우에 불과할 것이다. '흥! 녹이 슬어 부러질 때까지만 타라지.' 타이어에 바람이 빠진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탄력이 있기도 하지만 내가 이 놈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견고함에 대한 믿음이다. 집으로 돌아와 이리저리 뒤집고 흔들어서 프레임 안의 빗물을 쏟아낸 다음 싯포스트를 빼 놓아 여분의 물기가 완전히 증발하도록 해 주었다. 두어 달에 한 번쯤 프레임 안에 방청제를 뿌려 주면 괜찮을 듯싶다.
우중라이딩이 좋다.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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