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0
일어나긴 했는데 이 시간대는 참 낯설다. 잠을 안 자고서는 만나 봤지
만 깨어나기는 오래간만인듯. 전날 챙긴 짐이랑 잔차를 가지고 집(분
당)에서 출발. 앞뒤좌우에 차가 한 대도 없다. 신난다.^^;
삼성동 애니동 건물앞에서 앤직님을 만나 일행과 합류. 인사를 나누고
출발 준비를 했다. 근데... 나 말고 모두가 로드용 타이어다. 어제 한
솔 사장님이 세미슬릭으로도 충분하다고 했지만.. 내심 불안하다. 혼
자 퍼져서 민폐끼치는 거 아니야?
06:00
편의점에서 음료수 싸들고.. 드디어 출발! 싸아한 새벽공기가 참 좋다
날씨는 9월달 달력을 빼다 놓은 듯 맑고 청명하고..
일행은 고수부지를 따라 가다가 성내동에서 빠져 미사리 방향으로 진
입했다. 아직 본격적인 출근시간 전이어서 차도 많지 않다.
07:10
팔당대교를 건너는데 잔차님이 펑크가 났다. 간단히 수리한 뒤 재출발
. 양수리에 진입했다. 최근에 안 일인데 양수리는 남한강이랑 북한강
이 만나는 곳이라 이름이 양수리란다. 그렇구나.. 왜 진작 그런 생각
을 못했을까?
양수리는 물안개가 쥑여준다길래 예전에 기를 쓰고 보려 했었는데 번
번이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오늘 본 맑은날 아침의 양수리도 참 예쁜
걸? 괜히 러브호텔이 생기는 게 아니구나..
08:00
국수리(?)인지 독수리인지 하는 곳에서 아침식사함. 순대국밥이었는데
맛도 괜찮고 아주머니 서비스도 좋았다. 이때 라이딩 기록 하는 모습
을 말발굽님께 들켜 후기를 쓰게 되었다. 잠시간의 노가리 후 다시 출
발.
10:00
사실 아홉시쯤 어디서 쉬었는데 그냥 길거리여서인지 위치를 모르겠다
. 코스코스가 운치있게 피어 있었는데.
이곳은 다대리 휴게손가 하는 곳인데 국도변 도로답게 뽕짝 테이프 소
리 가득한, 약간 정신없는 곳이다. 왜 모든 휴게소에서, 모든 유원지
에서 뽕짝을 틀어야 할까? 그냥 조용히 좀 쉬게 내버려 두지.
한편, 선택의 여지가 없이 먹었던 쭈쭈바는 굉장히 맛있었다.
11:30
홍천을 지났다. 난 길에 대한 기억이 조각 조각 끊어져 있어 연속적이
지 못한 편인데 이곳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지나갔던 곳. 차가 너무
빨라서였을까? 하지만 이젠 자전거로 느긋히 왔으니 나중에 기억이 나
겠지.. 홍천에서부터는 강원도 길 답다. 그리 심하진 않지만 계속 업
다운이 반복되고 꼬불꼬불한것이..
한편, 홍천 무렵부터 선,후발이 나뉘기 시작했다. 말발굽님,마페이 긴
바지 입고 게리피셔 타신 분(이후 마페이님이라 칭함),잔차님이 선두
였고 나머지 사또님,앤직님,감독님이 후발이었다. 나는 선발의 끄트머
리에서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맡았다. 본의 아니게..
잠깐 선두에 섰는데 맞바람이 무척 거세다. 오던 평속을 유지하려는
마음에 약간 오버했나보다. 선두를 서고 난 다음 페이스가 흐트러진
느낌이다. 뭐 여기까지는 별 탈 없이 감.
1:30
신남리 조금 못미쳐 조각공원에서 널부러져 쉼. 오른쪽 무릎이 약간
빡빡한 것 같아 파스를 뿌렸다. 난 더위에 특히 약해 여름철엔 정오
무렵이 되면 라이딩을 잘 못한다. 지난번 춘천갈때도 열두시쯤부터
헤맸는데.. 9월이긴 하지만 아직 한낮의 기온은 높다. 배도 고픈것이
일단 좀 먹어야겠다. 신남리로 내려가서 모 기사식당에서 점심식사.
이곳에서 카니발로 우릴 백업해 주신 홍선배님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여기선 육개장을 먹었는데 역시 맛있다. 라이딩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좋은 식당은 적어뒀다가 다음에 또 가야 되는데 생각만 그렇지 막상
제대로 적어오질 못한다. 아쉬움.. 3시쯤 다시 출발!
3:00 - 4:30
점심을 먹고 출발은 함께했으나 앞팀과 뒷팀, 그리고 중간팀(?)이 나
뉜 라이딩이 되었다. 말발굽님, 마페이님, 사또님이 앞팀이었고 나머
지 분들이 뒷팀이었다. 난 원래 앞팀이었으나 업힐 몇 개를 만나자 앞
도 뒤도 아닌 어중간팀의 유일한 팀원이 되었다. 어중간팀.. 다른건
다 좋았는데 군축령 대신 뚫린 터널 통과가 문제였다. 혼자 터널을 통
과하려니 암만 깜빡이등을 켜도 뒤에서 잡아먹을 듯 달려오는 자동차
소리에 간이 콩알만해졌다. 깜빡이가 제대로 동작하는지 아주 불안했
지만 뒤를 돌아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사또님 말씀이, 요 군축령은 버스도 잘못하면 후진했다 다시
올라가야할 정도로 가파르단다. 터널 뚫리는 바람에 군축령 거저먹기
로 넘어간 거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히히.
이후로 사또님이 선두를 선 앞팀과 함께 갔으나 기력이 딸려 앞팀에서
낙오했다. 뒤팀이랑 함께 가려고 기다렸는데 오질 않는군.. 다시 어
중간팀을 만들어 혼자 25km정도 달렸다. 오른쪽에는 설악에서 나온 맑
은 물이 흐르고 왼쪽에는 산이 있는 널찍한 길이다. 그리고 끝없이 피
어있는 코스모스.. 줄곧 도시에서만 살아 이렇게 긴 코스모스 행렬을
본 게 처음이었다.
근데 문제는 앞바람. 이거 모르긴 해도 평속을 5km이상 깎아먹을 정도
였다. 뭐 별 수 있나 묵묵히, 꾸준히, 아무생각 없이 페달질함.
4:40
한계령과 미시령이 나뉘는 민예단지 앞 휴게소에서 앞팀과 합류. 얼음
보숭이를 먹었다. 근데.. 어느덧 산에 가까워서인지 바람에서 냉기가
묻어난다. 잠시 후 뒷팀도착. 다시 노가리..
작년 얘길 들어보니 바람은 오늘보다 심했고 날씨는 변덕스러워 라이
딩에 매우 안좋았단다. 그에 비하면 오늘은 라이딩에 참 좋은 날씨다.
암.. 초보 속초 함 가려는데 날씨도 도와줘야지. 5시쯤 출발.
5:00-5:50
민예단지 삼거리에서 미시령이 시작하는 기점까지의 이 길은 정말 근
사했다. 라이딩 중 오른쪽 쳐다보다가 앞사람 추돌할 뻔 한 게 몇번인
가? 하여간 가을 설악산의 운치가 그대로 묻어나는 길이다. 단지.. 맞
바람이 아주 강했는데 사또님은 그 바람 속에서도 앞장을 서고.. 나중
에 안 사실이지만 사또님은 이 때 컨디션도 정상이 아니었단다. 음.
익사이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나구나.. 중간에 홍선배님도 만나 함께
라이딩함.
6:00-6:45
오늘의 하리라이트(음. 하이라이트) 미시령 업힐~!
'령'자 붙은 업은 처음이라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일단 출발이 빨라
야 중간에 추월당하더라도 도착시간이 비슷할 거 같아 선두에서 출발.
초반 3km정도는 별로 업이라 할 것도 없었다. 근데 신나게 밟다 보니
어느덧 페달이 조금씩 무거워진다. 앞기어 작은걸로 바꾸고 뒷기어는
점점 크게 크게.. 그러는 동안 한사람 두사람씩 나를 추월해간다.
어느덧 기어는 더 물러설 곳 없는 곳까지 밀렸다. 아직 가볍게 놓을
수 있는 한칸이 주는 안도감이 얼마나 큰지 아는 사람은 안다. 그런
안도는 더 이상 없다. 그냥 이 기어를 놓고 끝까지 가야 한다. 삐질삐
질...
갑자기 옆으로 승용차가 한 대 지나가는가 싶더니 두툼한 팔뚝이 쓱~
나와 '화이팅!' 하고 외친다. 앗, 깜딱이야.. 나중에 들어보니 산고
양이 팀인 모양이다. 잠깐이지만 힘든 걸 잊게 하는 화이팅이었다.(놀
라느라고)
업은 계속되었다. 이건 운중산, 청계산이랑은 차원이 다르다. 예전에
어떤 고수가 말하길, 업힐때는 다른 생각에 몰두하면 지겨운게 좀 덜
하다길래.. 이생각 저생각 떠올린다.
미국이 지금쯤 아프카니스탄을 공격했을까?(아이구 힘들어)
같은 자원으로 발키리랑 디바우러를 뽑으면 어느부대가 이길까?(내리고 싶다)
며칠전 회사 안내 데스크에 새 도우미가 왔던데 몇살일까?(잠깐만 내렸다 갈까?)
오늘 저녁엔 맥주맛이 끝내주겠지?(불현듯, 내리고 싶어)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는데 LG주유소 간판이 보인다. 이제 반쯤 왔나
보군. 기름 넣고 더 올라가라 이거지? 쓰바..절망이다.
근데.. LG 정유소 모퉁이를 돌자... 정상이다. 어라? 끝이네?
이리하여 졸지에 미시령 꼭대기에 도착했다. 사실 올라온 길이의 두
배 쯤은 되는 줄 알아서 체력 아끼느라 천천히 올라온거라면 믿어 주
실래나? 히히.
휴게소 전망대에서 바라본 속초는 참 예뻤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
간+빛이 하늘이 파란색에서 신비로운 푸른 빛으로 변하는 때인데, 이
건 거기다가 빛나는 알맹이를 뿌려 놓은 거 같았다. 저 멀리 오징어잡
이 배의 불빛도 근사했고..
감독님은 오다가 체인이 끊어진 모양이다. 해서 홍선배님이랑 몇분이
내려갔지만 남은 거리를 잔차를 끌고라도 완주하겠다고 하셨다. 드디
어 한사람의 실패와 부상도 없이 전원 미시령 정복!
시간관계상 축하 퍼레이드는 생략하기로 했다.
다운힐 -
세상에 9월 중순이 이렇게 추울 수 있다니.. 윈드자켓까지 입고 내려
오는데도 이빨이 딱딱 소리가 날 만큼 바람이 차다. 희안한 건 점점
내려옴에 따라 바람이 조금씩 따뜻해 진다는 거다. 신기 신기.
일설에 의하면 미시령에서 페달질 한번이면 속초까지 25km를 간다고
했지만 그건 낭설이다. 중간에 업힐도 잠깐 있다.(기억하자. 페달질 3
번이상은 무조건 업힐!)
속초에 도착하여 콘도까지는 정말 무자비하게 쐈다. 사조콘도.. 사조~
~~~ 안사줘.. 뭐 이런 쓸데없는 생각 해 가며..
방 잡고 대강 씻고 횟집으로 향했다. 원래는 술도 먹고 놀 생각이었지
만 전날 잠을 부실하게 잔 탓인지 자꾸 졸리고 만사가 귀찮다. 해서..
밥만먹고 콘도에서 코- 잠.
[총평]
떠나기 전에는 걱정을 많이 했다. '내가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그것
도 민폐 안끼치고?' 근데..걱정했던 것 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여기에
는 쾌적했던 날씨와 새로 뚫린 도로, 그리고 무엇보다 에니동의 많은
고수님들의 리드가 큰 도움이 되었다. 사실 내가 아는 무늬만 말바인
많은 회원들( *초님,*꾸리님, 흐*님(이건 약간 엽기적으로 늘임)에겐
속초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번 도전해 보시길 권하
고 싶다.
덧붙여..
초보를 갓 벗어난 파인더가 속초투어 완주했노라고 자랑하고 다닐 수
있게 도와주신 애니동분들께 감사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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