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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을 닦으며...

bongpol2007.02.19 22:00조회 수 1698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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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 날부터 근무하자니 지루할것도 같고 해서

아침 출근 길에 제 애마를 사무실에 데리고 왔답니다.



그간의 묵은 기름 때와 흙강아지처럼 여기 저기 황토로 범벅이 된

애마를 깨끗이 씻겨주기 위해 비누 거품 샤워를 해주었지요.

하지만 이놈의 체인 기름 때는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기에

우리 대원들 내무실 보일러에서 등유를 조금 뽑아 pt병에 체인과

함께 넣고 사정없이 흔들었슴다.



역시나 기름이 금새 시꺼멓게 변해버리더군요.

1차 흔들기와 2차 침전기를 거친 후 기름은 버리고 pt병을 잘라

체인을 꺼내는데 거짓말 조금 더해서 흙이 한줌은 나오더군요.

체인을 고압의 호스 물로 사정없이 뿌려주고 마른 수건을 이용해

어린시절 땅꾼들이 뱀을 훑듯이 주욱 주욱 닦으면 황토물이 베어

나옵니다.

수건에 더이상 아무 흔적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닦으면

이제야 비로소 체인청소가 마무리 끝.ㅎㅎ



그런데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건 이게 아닙니다.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반짝 반짝한 체인을 보니 갑자기

이게 몇 마디로 이루어져 있는지가 궁금하더군요.

평소 궁금함을 잘 참지 못하는 성격이기에 바로 세어 보았죠.



여러분 맞춰보세요. 몇 마디일까요?

그렇다고 잔차 옆에 쪼그리고 앉아 세어보진 마세용. ㅎㅎ



제 것은 링크를 포함해서 108개로 이루어져 있더군요.

이 순간 뭔가 스치는 생각이 없나요?



저는 순간적으로 백팔번뇌(百八煩惱)가 생각났습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예전에 산을 좋아해서 산중에 있는

여러 사찰을 다니게 됐고 그러다보니 간혹 주지 스님께 차도

얻어 마시고 점심 공양도 받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요.



그러면서 스님들께 귀동냥으로 들은 것이 백팔번뇌는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온갖 욕망을 108가지로 열거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찰에서는 백팔번뇌의 잠에서 깨라는 의미에서 아침,

저녁으로 108번의 종을 치거나 염송을 하는 것이죠.



비유에 물의가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우리가 잔차를 탄다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108개의 마디를 염주알처럼 엮어 인내와 끈기로 열심히 돌려

힘들고 험한 업힐을 오르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라이딩을 혹은 잔차를 인생과 비유하곤합니다.

저 또한 여기에 적극 동감이 가는 편입니다.



오늘 정초부터 잔차 닦다가 시답잖은 개똥 철학을 역설한 점

지송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잔차를 타면서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과 수양을 통해

해탈 즉, 진정한 고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겠지요.



라이딩시 사사로운 개인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상대에게 상처주는

언행에 대해서 반성하고 저의 소심함을 없애고자 스스로의 다짐과

소망을 위해 몇 자 적은 것이니 귀엽게 봐 주세용.ㅎㅎ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복 받을겨~~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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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 좋은 글이군요.
    자전거를 타는 것이 인생과 비슷한 면이 있지요.

    풀뿌리 하나,
    나뭇잎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여유....

    그것이 참 잔차인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 라이딩중 끊어지면 ~~몇마디 잘라 버릴수도 있고

    처음 세팅할때 개인 취향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 저는 주로 혼자타는데 밤에만 탑니다.
    집근처에 조그마한 사찰이 하나있는데 운동도할겸 마음정리를 주로합니다.
    그리멀지않은 코스라 힘들지도 않고 혼자 산속에서 가만히있으면서..
    새롭게 마음을 다집니다.
    생활에 활력소와함께 정신건강에도 정말좋은것 같습니다.
  • 제 경우는 잔차를 타는 일이 108번뇌가 아니고 일상사가 108번뇌인데 안장에 오르는 순간 무념의 세계로 돌입합니다. 때로 피로하고 만사가 귀찮을 때 문득 잔차가 타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 '아..드디어 나도 매너리즘에 빠져 드는가 보다'생각하며 한 편으로 매우 걱정을 하지만 억지로라도 잔차를 끌고 밖에 나가 페달을 밟는 순간 그런 생각들이 기우였다는 걸 금방 깨닫습니다.

    정말 좋은 글입니다.
  • 정말이지 자전거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
    스트레스 만땅이었을때 달리면서 땀빼고 들어오면 기분이 상쾌하더군요
  • 108개 중에서 난 몇개나 벗어났는지...
    전 아직도 번뇌하고 있는게 더 많은 듯 하네요.
  • 한편의 짤막한 수필이네요.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궁금해서 세어 보았습니다.
    3*9인데 제잔차도 108개 입니다.
  • bongpol글쓴이
    2007.2.25 23:39 댓글추천 0비추천 0
    그동안 바빠서 리플 확인도 못했슴다. 졸필에 과한 칭찬까지 해주시니 정말 어찌해야할지...
    암튼 고맙슴다. 올한해 건강하시고 안라 즐라하세요.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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