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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내려 놓기

구름선비2010.01.10 10:28조회 수 1333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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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어제 저녁때 쯤의 눈발은 가슴을 오그라들게 했습니다.

어떻게들 지내시나요?

요즘 靑竹님 글이 보이는 것이
게시판이 한 결 따스해 보입니다.

며칠 전 스탐님의 글도 읽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이제야 몇 줄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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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직장에 출근할 때 검은 가방을 하나 가지고 다녔습니다.
동네 친구가 가방을 만드는 사람이라
저에게 특별히 하나 만들어 준 것인데
서류를 넣어 다니기에 적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서류 가방이죠.

이 가방 안에 들어가는 물건들이 몇 가지가 됩니다.

우선 CD가 두 장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오피스 프로그램CD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픽 프로그램CD입니다.

그 외에도 제가 만든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의 기술적인 메모를 한 노트 한 권,
참고해야 할 서류 몇 개 등입니다.

CD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고,
노트 또한 내가 만들어 준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어
급히 구원 요청이 왔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 가지고 다녔습니다.

이런 가방을 올해 초부터,
엄밀하게는 지난 해 말부터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철밥통이라는 저희 직장도 어느새
일반 회사와 비슷하게 성과 관리를 하게 되었고
그 등쌀에 근무지를 옮기고나서 부터의 일입니다.

작년 2월부터의 경쟁에서 늘 하위권이었고
누계 점수로는 꼴찌를 한 자존심에
자리를 박차고 '백의종군'하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입직경로가 최하위이고
사실상 제도적으로 저와 같은 경로의 사람들은 진급의 한계와
업무의 한계를 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거기에 불만을 느끼지는 말아야겠지만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마음은 편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오래 전에 했던 업무는 좀 설어졌습니다.
직장에서 제일 나이가 많다보니
후배 직원들이 챙겨 주기는 하지만
젊은 직원들에게 얹혀서 간다는 생각도 좀 들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제도에도 반감이 가기는 합니다.

처음 며칠 동안
항상 들고 다니던 가방을 들지 않으니
무언가 허전했습니다.

그동안 직장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후배들을 향해서도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는데
가방을 내려 놓고 보니
그 홀가분함과
허무한 마음이 교차를 하는군요.



이제 점차 여러가지를 내려놓게 되겠지만
처음 내려 놓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 보름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래도 적응이 되는 것을 보면
어려운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오늘 저녁도
가방을 들지 않고 출근하렵니다.

춥지나 말아야 할 터인데~~

 

사진은 저희동네 '영원'의 요즘풍경입니다.
영친왕의 무덤인 영원의 침전과 비각입니다.DSC_191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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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숨겨두었던 비밀이 탄로났습니다...ㅠㅠ (by 쌀집잔차) 백호랑이로 변신중... (by blue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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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
  • 마음고생 많이 하셨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를 잃으면 또 다른 하나를 얻는게 삶인 것 같습니다...그래서 공평한세상이라 믿고있구요

    저보다 많이 연배시인 것 같아 글 드리기가 조심스러운면도 없지 않지만 힘내시라는 뜻으로 글 드려봅니다

     

    온 나라가 눈인데 유독 울산만큼은 인색하네요...제 딸이랑 푹 파묻혀서 막 뒹굴어보고 싶네요^.^;;;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sarang1207님께
    구름선비글쓴이
    2010.1.11 20:59 댓글추천 0비추천 0

    사랑님의 댓글을 보면 따스한 마음을 갖고 계신 분인 것 같습니다.


    올해는 유독 옛날의 겨울을 보는 듯 합니다.
    춥고 눈이 많이 오고~~

    따스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 반갑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무언가를 내려놓는다는 것.

    그것은 짐일 수도 있고 아쉬움일 수도 있지만

    자유로움으로의 귀속임에는 틀림이 없는 사실 같습니다.

     

  • 靑竹님께
    구름선비글쓴이
    2010.1.11 21:00 댓글추천 0비추천 0
    청죽님이 오시니 게시판에서 빛이 나는 듯 합니다.

    무소유를 주장 할 사람은 못 되지만
    이제 조금씩 내려 놓으려 합니다.

    그게 맞는 것 같아서요.
  • 나이를 먹을수록,  직업상 위로 올라 갈 수록,

    한, 두 개쯤은 내려 놓아야 한다는 말이 있더군요.

    요즘같이 치열하고 각박한 세상에 하 나도 아니고 둘 이상의 그것들을 내려 놓는다는게 쉽지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별로 나이먹지도 안고 사회적으로도 윗자리가 아니지만,

    내려 놓을 때 내려 놓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그 모습에 진정 멋찌게 늙어가며 윗사람으로서의 큰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은퇴 할 때 모든것을 다 가지고 바둥대는 비열한 모습 보다,

    남아있는 후배들을 위해 길을 터 주고 눈밭에 앞서서 길을 터 주고 가는 모습 처럼

    떠나는 그 모습이 이생의 마지막 발자욱이자,

    사회의 은퇴 발자욱과 별 다른 바는 없는 것 같더군요....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새해도 건강하시고 안전하신 라이딩 되시길 기원 드립니다...^^

  • eyeinthesky7님께
    구름선비글쓴이
    2010.1.11 21:01 댓글추천 0비추천 0
    좋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실은 조직에 실망도 했고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도 그래서
    좌천성 인사를 자청한 것입니다.
  • 자건거를 타면서 한가지 진리를 깨달은게 있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반드시 오르막도 있다는 거죠~~~

    1박2일 이수근의 유행어가 생각나네요

    세상만사~~ 오르막길~~내리막길~~~~

    또 새로운 출발이라고 생각하시고 더 열심히 하시고 건강하세요~~^^

  • 쌀집잔차님께
    구름선비글쓴이
    2010.1.11 21:03 댓글추천 0비추천 0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진리를 잊지 않겠습니다.

    사실 제가 길을 터 주면서
    다른 후배는 좀 좋아 진 점은 있지만
    인생이라는 길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기에
    후회 없이 내려 놓은 겁니다.

    쌀집잔차님처럼
    웃으며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미리 조금씩 내려 놓은 것이 나중에 한꺼번에 버리는 것보다 덜 서운하겠지요.

    늘 건강하시고, 후배들에게 멋진 선배의 모습 보여 주시길..

  • 탑돌이님께
    구름선비글쓴이
    2010.1.11 21:04 댓글추천 0비추천 0
    탑돌이님 안녕하세요?

    인도에서 날씨로 인한 사망자가 많다는 보도를 보았는데
    그 쪽은 괜찮은지요?

    관심 감사합니다.
  • 가방 하나가 아닌

    마음속의 알수없는 무거움을 내려놓으셨군요

    성과급 제도가 좋은점도 있지만, 일단 눈에 보여야한다는 좋지 않은점도 있다보니

    최대한 빨리 눈에 보이게 하려고 무리수를 두다가 결과적으로 좋지않게되는수도 있지요

    그래서 묵묵히 자기일 충실히하는 사람에게는~~여러가지로 어려움이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이지 못하면,무능한 사람으로 비쳐지기도하겠죠

     

    눈에 보이는것만이 전부는 아닌데...

  • stom(스탐)님께
    구름선비글쓴이
    2010.1.11 21:05 댓글추천 0비추천 0
    내려 놓은 것은 가방이지만
    실제로는 가지고 있던 가치와
    또 강박에서 해방입니다.

    내려 놓으니 마음이 편합니다.
  • 건강 잘 챙기시어 다시한번 힘찬 발걸음을....
  • 우현님께
    구름선비글쓴이
    2010.1.11 21:06 댓글추천 0비추천 0
    우현님이나 산아지랑이님 등
    멋있게 사시는 분들을 보면 부럽습니다.

    움츠렸다가 다시 뛰어야겠지만
    전처럼 뛰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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