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놈을 데리고 산 지 오래지만 날이 갈수록 속을 썪인다.
그렇다고 쫓아내자니 내가 아쉬울 것 같아 그러지도 못한다.
모름지기 제자리를 지키는 일은 모두에게 중하다.
그런데 이놈은 왜 그리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며
왜 그리도 내 속을 끓이는지 모르겠다.
왜 뜬금없이 화장실까지 쫓아 들어가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러고는 내가 한참을 찾아도 소식이 없어 집안을 뒤지다 보면
요놈이 세제를 얹어 두는 선반에 넙죽 올라가 엎드려 있는 것이다.
금방까지 나와 같이 있다가 어느 틈에 이불 속에 기어들어가는지
기어들어가는 것까지는 좋은데 내가 찾아도 말 한 마디 없이
이불 속에서 웅크리고만 있어 화가 난 나머지
이불을 확 들추면 그제서야 얼굴을 빼꼼 내미는데
별로 미안한 기색도 비치지 않는다.
망할 녀석.
그러다가 누가 모르고 깔고 앉아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잘 데리고 있다가 밥이라도 먹을라 치면
또 따라와 밥상 아래에 숨어드는데
또 이놈을 찾느라 난리법석을 한동안 치른다.
이 애물단지 녀석이 날 호되게 고생시킨 적이 있다.
친척들을 배웅할 때 절대 바깥 출입을 해서는 안 될 녀석이
기어코 따라나간 뒤 한동안 보이지 않아 정말 오래 찾은 적이 있는데
나중에 보니 복도 출입문 밖 계단이 있는 벽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정말 뺨이라도 한 대 갈기고 싶을 정도였다.
겨울엔 이놈이 가끔 나의 파커 점퍼 주머니로 들어가기도 한다.
업은 아이 삼 년을 찾는다는 말도 있듯이 정말 찾는데 애를 먹는다.
움직임이 심한 놈 같으면 금방 낌새를 채겠지만
워낙 말수가 없고 움직임도 없이 조용한 놈이라
엉뚱한 데를 찾아다니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베란다에 나가서 숨기도 하고
소파 밑에 숨기도 하고
냉장고 위에 기어올라가기도 하고
가끔은 주방의 열린 찬장에 숨어들기도 한다.
남들도 이놈처럼 말을 도무지 듣지 않고
속만 잔뜩 썩이는 녀석을 데리고들 사시는지 궁금하다.
쩝..
쩝...
이놈 이름은 티비리모컨이다.
괘씸한 놈.
(그나저나 치매약을 먹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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