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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길, 벌레 한 마리

구름선비2009.09.07 03:16조회 수 725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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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날씨가 서늘할 것이라고 점퍼를 걸쳤다.

 

하루 이틀 밤 근무를 하는 것이 아니니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갔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나 더 걸치고 나간 것이다.

도시의 외곽,
인근 읍면에서 접근하는 도로는
통행 차량이 없어서 한산하다.
달포 전에는 강도가 지나간 길이지만

오늘은 지나가는 차가적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길 가운데 서 있어야 한다는 것과
제복을 입었다는 사실이 내 근무를
피곤하게 한다.

통행 차량이 적으니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인근 아파트의 층 수도 세어 보고
가끔 지나가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쳐다보기도 한다.

그것도 지쳐서
무릎을 돌리고 아픈 다리를 굽혔다 폈다하는 찰나
연두색 벌레 한 마리가
아스팔트를 좌에서 우로 횡단하고 있다.

주변 가로등 빛에 날개의 투명한 색이 비치는 것을 보니
아마 여치 종류일 것이다.

이 녀석의 궤적을 살펴 보기로 했다.

느린 걸음으로 도로를 횡단하고 있는데
그런 걸음이라면 지나가는 차에
희생 될 것이 뻔하다.

다행히 통행하는 차량이 많지 않아
두 대의 차는 무사히 지나쳤다.

노란 두 줄의 중앙선에선 한 참을 머물러 서 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쉬고 있는 듯도 하다.

다시 벌레가 걷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 앞에서 오는 차가 아닌
뒤에서 오는 차를 신경 쓸 차례이다.

두개의 차선 중에 하나, 즉 1차로를 통과하고 있는데
다행히 2차로로 차가 지나갔다.

 

아파트의 검은 그림자 너머로
희뿌연 불빛이 오늘 내일 중으로 비가 올 거라는
예보를 전하는데

아뿔싸!!
한낱 미물,

여치 비슷한 벌레는 다 건너간 도로를
다시 건너오고 있다.


잠시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절대자가 있어서
우리 인간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다면
저 벌레와 다름이 무었일까?

지금까지는 행운이 있어서 차에 치이지 않았지만
언제 뭉개질 지 아는지 모르는지
천천히 중앙선을 향해 오고 있는 것이다.

 

녀석을 집어서 길 가장자리

풀 숲으로 던질까 생각도 했지만
그냥 자연의 일부인 것을
내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인본적인 생각으로 그냥 두었다.

 

처음 길을 건너갈 때도 노심초사 바라보았는데
이제는 갔던 길을 다시 건너오는 녀석을 보면서
공연히 내 가슴이 뛴다.

뒤에서 차 소리가 들리면
어느 차선으로 오는지,
저 녀석의 속도에는 화를 면할지 못 면할지….

 

한참을 그렇게 고민하다가
내 앞에서 오는 차,

어떤 문제가 있는지 내 뒤에서 서게 된 그 차량을 뒤돌아보고
다시 눈길을 돌린
그 자리엔
아무런 흔적이 없다.

날아갔거나, 내가 못 본 사이에
어떤 차에 치었는지도 모른다.

안경을 고쳐쓰며
눈이 뚫어져라 바라본 도로 어디에도
그 녀석의 잔해는 없다.

그냥 마음 속으로
잘 갔으려니
아무 일 없으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점퍼 속으로 더운 바람이 머무는 듯해 바라다 본 길가엔
메타세콰이어와
회화나무 가로수가 옅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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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6
  • 조그만 미물이 처한 상황을 바라보시면서

    대단한 상념에 빠지셨었군요.

    가을기운이 곧 몰려올 듯하던 요즘의 밤공기였는데

    어젯밤은 유난히 습하고 무더웠습니다.

     

    두 달여 전쯤 딸아이가 윗층의 이웃에서

    구피라는 조그만 열대어 열댓 마리를 얻어 어항에 담아왔는데

    밥 주는 일이며 물을 갈아 주는 일이 체질을 찾아서 왔는지

    곧 저의 차지가 되고 말았지요.

     

    처음의 비극은 알에서 깨어난 새끼 다섯 마리를 어미들이 잡아먹을까 따로 키우다가

    이제는 됐다 싶었는지 아직 조그만데도 딸아이가 큰 어항에 넣어 주더군요.

    하룻밤 새 세 마리의 새끼들이 성어들에게 먹히고 말았습니다. 경험부족이었죠.

    남은 두 마리는 저의 엄격한 관리 하에 다시 인큐베이터로 돌아갔습니다.

    한 달을 더 키우다 살짝 한 번 넣고 살폈더니 성어들에게 사정없이 쫓겨다니기에

    부랴부랴 다시 꺼내서 되돌렸습니다.

     

    두 번째 비극은 어항이 찰랑거릴 정도로

    새 물을 많이 받은 저의 실수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컴컴한 와중에 힘이 좋은 수컷 한 마리가 수면위로 뛰어오르다

    어항 밖으로 추락했는지 발견했을 땐 이미 바닥에 깐 종이 위에 말라붙었더군요.ㅡ,.ㅡ

     

    여러 가축이나 애완동물은 키워 보았지만 열대어는 처음이라

    시행착오가 많습니다.

     

     

    이른 새벽에 잠시 빗방울이 보였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십시오.

     

  • 靑竹님께
    구름선비글쓴이
    2009.9.7 12:46 댓글추천 0비추천 0
    靑竹님 안녕하세요?
    靑竹님의 글이 왈바 자게에 보이면서
    게시물이 한 층 풍성해 지는 듯 합니다.

    아직은 스산하지는 않은 가을인데
    곧 옷깃을 여미는 계절이 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풍성한 식탁처럼
    가을이 듬뿍 묻어나는 글 기대하겠습니다.
  • 구름선비님께

    생명을 아끼시는 마음이 크시다는 걸 자주 느낍니다.

    그게 비록 미물일지라도 아끼는 마음이 많으신 건 

    가슴이 살아계시단 뜻이겠지요.  범사, 범생이 다 소중하죠.

    저녁은 드셨습니까?

  • 이른 신새벽에 상념에 빠지 셨군요.

    나이가 먹는 증상이니...

    툴툴 털고,,자전거나 타세요.

    뭐니뭐니 해도 자전거가 최고 더군요.

  • 산아지랑이님께
    구름선비글쓴이
    2009.9.7 12:48 댓글추천 0비추천 0
    밤을 새우는 직업이다보니
    그 시간에 글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근무중 한가하니 여러가지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었습니다.

    자전거가 점점 설어져서 문제이긴 합니다.
  • 세상은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 쌀집잔차님께
    구름선비글쓴이
    2009.9.7 12:49 댓글추천 0비추천 0
    가을이 가까이 오니
    눈이 조금 달라지나 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그녀석들은, 그 조상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에서 서식하였겠지요.

    어느날 사람들이 길을 내고 자동차들이 왕래하게 되어 당황스러웠을 것이구요.

    오래전 해외생활할때 목격하였는데, 해마다 가을 초가 되면 수십만마리의 귀뚜라기가 산에 난 도로를 건너곤 하였지요.

    첨엔 자동차가 자갈을 흩뿌려 놓은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생물이더군요.

    그들이 위험한 길을 건너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이들의 터전에 위험한 길을 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비님 자전거 타시는 글 보고 싶습니다.

  • 탑돌이님께
    구름선비글쓴이
    2009.9.7 12:58 댓글추천 0비추천 0

    저희 동네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을 목격한 일이 있습니다.

    이른 봄이었는데 두꺼비들이 도로에 나와 앉아 있다가
    역살되었더군요.
    아마 추운 날씨 때문에 비교적 따듯한 포장도로에 나와 있다가 그런 일을 당하였거나
    아니면 이동중에 그렇게 되었을 것일텐데
    그 숫자가 너무 많아 안타깝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외국생활 하시면서 느끼시는 많은 일들을
    여기 게시판에 적어 주신다면
    저처럼 외국에 한 번도 못 가 본 사람들에게는
    견문을 넓히는 일이 될 것도 같고
    탑돌이님께서도 덜 적적하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 한편의 시를 읽는 느낌입니다...

    푸근한 선비님의 일상도 느껴지고요...

    제가 선비님 나이가 되도 이런글은 안나올듯 하여 내심 속상합니다...

  • 인자요산님께
    구름선비글쓴이
    2009.9.7 12:52 댓글추천 0비추천 0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던 때가 있었는데
    먹고사는데 치중하다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잘 되질 않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지요.
    직업이 척박해서 그럴 수도 있구요.

    말씀 감사합니다.
  • 삶의 여유란게 없는 세상에서 살다보니

    자꾸만 자연과 교류 및 공생하고 공존하며 느끼는 정서에 대한 것들이 점 점 사라져 가는 것이

    종국에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좋은 감정과 정서도 앗아가는 것 같더군요.

     

    조그마한 생명체를 관찰하면서 거기에서 생각되고 느껴지는 것들이 사람에 따라 이렇게도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따뜻한 글 감사히 읽었구요  환절기 건강에 유의 하십시요...^^

  • eyeinthesky7님께
    구름선비글쓴이
    2009.9.8 11:19 댓글추천 0비추천 0
    ㅎㅎ
    저도 요즘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어서
    마음의 여유란게 없어졌지만
    순간순간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란 자책(?)은 좀 하고 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구름선비님

    작은것에도 신경을 쓰시고

    가끔 그런때가 있죠

    저도 가끔 그럴때가 있읍니다

    요즘은 아니지만요 ㅎㅎㅎㅎ

  • stom(스탐)님께
    구름선비글쓴이
    2009.9.8 11:20 댓글추천 0비추천 0

    스탐님,

    작은 구름선비에 신경 쓰지 마시고
    장가가는 준비나 하세요. ㅎㅎㅎ

    토요일날 뵙죠.

  • 구름선비님

    작은것에도 신경을 쓰시고

    가끔 그런때가 있죠

    저도 가끔 그럴때가 있읍니다

    요즘은 아니지만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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