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이 번지듯 누런 잔디밭에도 서서히 초록이 물들기 시작한다.
'자전거가 좋다'
같이 라이딩을 즐기던 분들 중 어떤 분은 곧잘 이렇게 말하곤 한다.
"아, 거기? 난 싫어. 요즘 임도는 질렸어."
"싱글은 원래 싫어하잖아?"
"난 도로는 재미가 없어."
그렇다면 아마도 그분은 자전거를 타는 행위에
이미 흥미를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값비싼 고급 자전거를 여러 대나 정성스럽게 꾸민
그의 열정이 식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자전거와 함께라면 난 임도든, 싱글이든, 도로든,
장거리든, 마실라이딩이든, 시골길이든,
아니면 도심이든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곰곰 생각해 보면 특별히 흥미가 있는 코스나 장소가
있을 법하지만 미미한 차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짧지만 강렬한 모습을 보이다 가는 목련도 폭발 직전이다.
요즘 라면을 먹을 때면 별다른 맛을 느끼지 못하고 먹는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라면이란 걸 처음 맛보았는데
'아, 이 맛이란...이건 아마도 신선들이나 먹는 음식일 거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맛에 감탄했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맛대가리 없는 라면을 억지로 먹으며
대관절 무엇이 변해서 처음 맛보았을 때의 그 황홀한 맛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라면과 나의 입맛에 혐의를 둬 보는데
아무래도 간사한 나의 입맛이 변해서 그럴 거라는 판단이 든다.
아마도 그 판단이 맞을 것이다.
깡보리밥만 먹던 시절엔
밥에 쌀알이 몇 알만 섞였어도 맛이 기막히도록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보리쌀이 귀할 정도로 보기 힘들고 온통 쌀밥뿐인데도
예전의 그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맛있었던 쌀밥의 맛을 느낄 수 없어
억울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북한에서 넘어온 새터민들의 자녀들이 처음 먹어 본 라면의 맛에 반해
거의 몇 달 동안을 라면만 먹고 지낸다는 걸 티비 프로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런 걸 보면 라면의 맛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리라.
자전거를 끔찍하게 좋아하는 나이기에 가끔 이런 걱정을 한다.
'이거 혹시 나중에 자전거를 타는 일이 재미가 없어지는 건 아닐까?'
자전거가 싫어진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그야말로 이만저만한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전거를 잃어버리는 꿈을 요즘도 자주 꾸고
더구나 지금도 자전거 안장에 올라앉아 페달을 밟노라면
가슴이 여전히 설레이는 걸 보면 기우에 불과한 것 같다.
조그만 몸뚱이 하나 움직이기 위해
엄청난 기름을 태우며 괴물처럼 움직이는 쇳덩어리는 당최 정이 안 간다.
오로지 내가 흘린 땀만큼 정직하게 나를 자연속으로 데려다 주는 자전거를
난 죽기 전까지 사랑하리라.
▲아, 이 화사함이여!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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