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좀 열심히 타서 체력이 좀 붙은 듯한 느낌이 든 것은 자만이었던가? 다리 근육이 뭉친 듯 뻐근하고 허리며 어깨며 온통 쑤시는 게 노곤하기만 하다. 절대 무리하지 말고 뭉친 몸도 풀 겸해서 장흥임도나 산책삼아 한 바퀴 돌아오려고 집을 나섰다.
한낮의 열기는 아직 따갑지만 그래도 그늘에 들면 제법 서늘한 것이 몰래 다가와 숨어 있는 가을 기운이 부쩍 느껴진다. 아주 천천히 차도를 따라 달려 흥복산 아래 도착하니 반갑다. 예전엔 죽자사자 열심히 다니던 곳인데 한동안 들리지 않았다. 여러 산들을 다녀 보았지만 사실 자전거로 산행을 하다 보면 대개의 느낌들은 대동소이한 편이다. 그런 점에서 집에서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2년여 동안 내게 별 이유없이 소외받은 흥복산이며 장흥임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1단 기어를 넣고 아주 천천히 사색을 즐기며 가는 듯 안 가는 듯 오르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정상을 넘어 속도가 붙는 자전거에 제동을 걸었다. 안그래도 푸른 장흥 저수지에 주위의 짙푸른 녹음까지 담아서 우려내니 더할 수 없이 푸르고 맑게 보였다. 철조망으로 보호되어 있는 탓인지 오리들이 경계심을 풀고 한가롭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길가의 논들에선 벼이삭이 제법 영글어가고 있다. 벼포기 사이에 피를 비롯한 잡초들이 무성하다. 어려서 본 논에선 저렇게까지 잡초들이 자라게 놔두는 걸 보지 못했는데 아마 요즘은 예전과 달리 일손들이 부족할 것이고 아니면 자신들이 직접 먹을 무공해 쌀을 위하여 일부러 저렇게 방치하며 욕심을 버리고 큰 수확을 기대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조그만 동네를 지나 장흥입도 초입의 작은 개울을 건너서 둔덕을 오르다 그만 미끄러지며 넘어지고 말았다. '에효, 졸음운전 탓인가?' 워낙 일순간이라 클릿페달을 분리하지 못해 제대로 넘어져 팔꿈치도 까지고 대퇴부쪽을 땅에 강하게 찧고 말았다. 그런데 그 순간 보는 사람이 당연히 없어야 할 외진 곳에서 기척이 들린다. "어? 괜찮으세요?"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서른쯤 되었을 법한 젊은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뒤따라오고 있었나 보다. (으이구~ 다 봤겠구나)
"어딜 가십니까?"고 물었더니 장흥임도를 가려는데 길을 모른단다. "마침 나도 거길 가는 길이니 말동무나 합시다"하며 동행이 되었다. "산책삼아 가는 것이니 천천히 가도 원망은 마시구랴" 했더니 "저도 그게 좋습니다. 어차피 경험도 별로라 힘들게 타지도 못합니다" 하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장흥임도길을 같이 동행하자니 그친구 내내 경치에 감탄을 연발한다. 사실 맞다. 보물은 항상 가까이에 있지만 사람들은 대개 멀리서 그 보물을 찾는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의 장흥임도에 올 때마다 나도 늘 감탄하는 경치이니 말이다.
내친 김에 b코스마저 탔다. 격하게 오르고 내리면 쉬 지치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주 천천히 라이딩을 하니 당최 별 거리감이 느껴지질 않는다. 그런데 좀 늦게 나온 생각을 미처 못하고 너무 여유를 부렸는지 내려오다 보니 온통 어둑어둑한 게 시야가 가린다. 산아래로 내려오니 석양이 제법 남아 꽤 밝은데 확실히 숲의 저녁은 이르다.
"빨리 다녀가시려다 저에게 걸려 너무 오래 지체하신 건 아니신가요?하고 물었더니 "아닙니다. 정말 재미있게 탔네요. 조용하게 산책을 즐기시려다 제가 오히려 방해를 드린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며 되레 미안한 표정이다. 오늘은 뜻밖의 동행이 생겨 덕분에 입이 심심치 않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풀벌레 소리와 바람소리와 새들이 우는 소리를 듣고 자연과 소리없는 대화를 주고받았으리라. 여름이 천천히 가고 있었다.
-홀릭님께 힘과 용기를-
뒤늦게 홀릭님 글을 읽었습니다.
자전거가 좋다
▽싱글을 타다가 넘어지면서 오래된 배낭 주머니가 심통을 내는 통에 숲으로 날아가버린 디카가 없으니 풍경을 담을 일이 없어 가끔 아쉬운 생각이 들어 요즘 눈독을 들이는 놈인데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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