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구질구질한 코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자전거를 세워놓았다가 밤늦게 어디 갈 일이 있어 자전거를 꺼내러 베란다로 나갔더니 얼씨구? 바람이 홀랑 빠져 있었다. 라이딩 내내 외래종인 듯한 담쟁이덩굴 종류로 보이는 가시풀에 줄창 종아리며 팔이며 긁혔던 요즘이었는데 오늘은 안그래도 길가의 가느다란 가시나무과의 잡목들을 베어서 길에다 널어놓은 걸 마구 넘어다니며 펑크가 걱정이었는데 집으로 올 때까지 별 이상을 느끼지 못했었다.
좀 멀기도 한 데다 아파트 옆 구멍가게까지 가는 것조차 신발을 꿰신는 것처럼 일상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위인이 펑크쯤 났다고 설마 걸어서 가랴. 펑크난 뒷바퀴를 빼고 타이어를 분리한 다음 튜브에 적당히 바람을 넣고 물을 받은 세면대에 담가 보았더니 역시 한 군데가 펑크가 났는지 물방울이 뽀로로 줄지어 올라온다. 볼펜으로 그 자리에 동그라미를 그린 다음에 물기를 말리고 패치를 붙여 때웠다. 타이어를 살피니 그 자리쯤에 조그만 금속핀이 박혀 있었다. 쪽집게를 이용해서 간신히 제거하고 적당한 압력까지 바람을 넣고 룰루랄라 밖으로 나갔더니 허걱? 바람이 또 빠져 있다. 거친 구간을 벗어나 집으로 오는 몇 킬로의 평탄한 길에서 멀쩡했던 걸 떠올리며 펑크가 한 군데만 났을 거라고 섣부른 처방을 내린 이 어리석은 돌팔이란...
좀 화는 났지만 다시 분해해서 이전의 작업을 되풀이하며 살폈더니 먼저 때운 자리의 반대편쯤에 또 펑크가 나 있는 게 아닌가.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뼈저리게 느끼며 때운 튜브를 다시 넣기 전에 타이어 안쪽을 더듬었더니 이번엔 커다란 가시 한 개가 박혀 있었다. 쪽집게 이상 가는 도구는 없는 것 같다. 예전엔 타이어에 박힌 이물질들을 뽑느라 리퍼 등을 사용했는데 금속핀이 아닌 가시의 경우는 힘 조절이 어려워 번번히 잘리는 바람에 돌팔이 의사들이 부주의로 꺼내지 않고 꿰멘 환자 뱃속의 수술도구처럼 타이어 속에 장래의 시빗거리로 남겨졌었다. 쪽집게를 이용하여 이번에도 간단히 빼냈다. 켈켈. '자 이제 다 잊고 기분좋게 출발이닷!'
커피광이라 뻔질나게 타서 먹는 걸 아는 마누라가 몸에 나쁜 거라며 여간해서 커피는 잘 타 주지 않는데 웬일로 커피를 타 주기에 한 잔 마시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어라? 공기압이 또 줄었다? 설마? 예전엔 우격다짐으로 타이어를 끼우다 주걱으로 튜브를 찝는 바람에 상하게 한 적이 있었지만 요령이 부쩍 는 지금은 굳이 주걱을 사용하지 않고도 타이어를 빼고 끼울 정도이니 그런 실수를 여간해서 하지 않는데 이상하다? '그렇다면 세 군데에 펑크가 났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돌팔이도 이런 상돌팔이는 없다. 하돌팔과 중돌팔을 넘어 정말 내가 그 위대한 상돌팔이의 경지까지 도달했을까 하는 기대감에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분해를 시작했다. (설레기는..복장이 터질 지경이었지..)
아뿔싸, 또 한 군데에서 뽀로로 작은 공깃방울이 올라온다. 으흑흑. 대관절 공기를 넣은 튜브를 물속에 담가 한 바퀴 빙 돌려가면서 차분하게 관찰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린다고 이 고생을 사서 하는지 한심하다. 아까 초저녁 무렵에 집으로 달려오면서 공기압이 빠진 느낌을 받지 못했기에 펑크가 단지 한 군데뿐일 거라는 판단은 분명 섣부른 처방이었다. 그러나 다시 분해해서 튜브를 물에 담갔다가 발견한 두 번째 펑크 부분을 발견하며 또 한 곳의 펑크가 있을 가능성을 철저히 무시했던 건 나의 타고난 운명의 작용이라 생각된다. 으흑흑.
가뜩이나 늦은 밤에 시간을 지체한 덕분인지, 맹위를 떨치던 더위가 한풀 꺾여서 그런지 선선하다 못해 가을 기운마저 느껴지는 가운데 이 돌팔이는 적어도 세 번이나 계속되었던 반복작업 과정 만큼은 제법 숙련공처럼 익숙함을 자랑했었노라고 자위하며 중랑천의 밤공기를 갈랐다. 야호~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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